갑툭튀 난민?


작년이었는지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난민신청을 했다가 받아들여지지않자 제주로 왔는데 도움을 청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어떤 상황인지 명확히 아는게 아니어서 말하기 좀 그렇지만.
그들의 사연을 들을때 우리나라 국내법을 잘 모르는 그들이 제주도는 특별자치도여서 특별법이 존재하니 대한민국에서 받아주지 않는 난민도 제주에서는 받아주지않을까,라는 기대가 있는거 아닐까 생각했었더랬다. 사실 그때까지만해도 난민문제는 먼나라 얘기인줄만 알고 있어서 실제 내 주위에 난민이 있다는것에 놀랐고 그들은 종교적인 박해를 피해 나온 경우이기도해서 놀라웠다. 사촌이 천주교라는 이유로 살해당했. . .


주교좌성당 근처에 이주사목위 사무실이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들었다. 조용한 오후에는 그들의 낯선 언어가 많이 들린다고.
다들 그런건 아니겠지만 일부 개신교 목사들이, 난민의 제주 입도목적이 이슬람선교이기때문에 그들을 반대하는거라고하더라.
이주사목담당 수녀님은 아픈이들을 위해 신자병원을 연결해주고. 담당신부님은 피정끝나고 상황파악을 해보니 그 사이에 배에 팔려간 사람들도 너무많다고. 팔려갔다고 말할수밖에없는건. 바다생활을 해본적없는 우리도 고기잡이 배를 타면 힘들어 죽는데 거기에 언어를 몰라 의사소통도 안되고 기술도 없으면. 그게 팔려간거지 뭐겠냐고.

이런저런 여러 말이 많지만.
고국을 떠나 흘러다닐 수 밖에 없는 이들에게 의약품을 주고 치료를 해주고 필요한 물품을 보내거나 물질적 지원을 해주고. 또 누군가는 그냥 집에 큰 방이 하나 있어서 잠잘곳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내어줬을뿐이라고 하는 사람들.
아무튼 그 누군가의 눈엔 이런 활동을 하는 신부님, 수녀님, 천주교 신자들이 이단으로 보일까?

선교목적으로 들어오는 이들 결사반대라는 누군가와는 너무 다르지않은가. 이슬람국가에 몰래 들어가 선교를 하는 이들은 영웅인것이고?
아이쿠야. 그들이 믿는 하느님이 내가 믿는 하느님이라면 나는 믿음을 버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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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하라, 리뷰 8개.

내 비공개카테고리를 공개전환한후 숫자는 변함없지만 내 리뷰가 보이면서 리뷰숫자는 9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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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18-06-22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숫자가 안바뀔 줄 몰랐다. 그랬다면 내 리뷰가 없다는 걸 전체사진으로 찍었을텐데. 도대체가 왜 이런 문제가 생기고 있다는 걸 컴도 잘 모르는 내가 증명하려고 하니 너무 힘드네.
그래서 비공개 카테고리를 공개전환했다. 하아.. 이러면 또 뭔가 꼬이지 않을까 무섭지만.
 
 전출처 : chika > 답변부탁드립니다

 

 

http://blog.aladin.co.kr/lifewith_/10162677

 

나의 서재 페이퍼에 댓글이 올라와 그 글에 답글을 달았는데 다음날 보니 사라졌더군요. 그래서 혹시나 내가 착각했나, 싶어서 또 한번 댓글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또 다시 댓글이 사라졌네요.

 

그리고 그 전에 글을 남긴것이 있는데, 작년 말 생성한 비밀 카테고리에 지금까지 작성한 리뷰와 페이퍼가 무작위로 담겨있습니다. 그중에는 이벤트 당선 페이퍼도 있고 많은 사람들의 댓글이 남겨진 글들도 많습니다. 일관되게 담겨진것도 아니고.

내가 실수로 카테고리로 이동시켰다고 하기에도 너무 무작위적이라 도무지 이해가 안되네요.

그동안 분명 리뷰를 작성했다고 기억하는데 급하게 내 리뷰를 찾아봤을 때 보이지 않았던 것도 비공개 카테고리에 담겨버려서 그런가가 싶은데.

명확한 해명을 듣고 싶습니다.

관련 페이퍼 글   http://blog.aladin.co.kr/lifewith_/10065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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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18-06-21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에 답글도 안남기는 사람이 되어부렀다.


 

운동 혹은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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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서 2
ㅡ죽음은 살아 있어야 한다


죽음은 살아 있어야 한다.
사십구일은 살아 있어야 한다.
적어도 일 년에 사나흘
기일 전후만큼은 다시 살아 있어야 한다.

죽음이 살아 있지 못해서
삶이 이 지경이다
죽음이 죽음과 함께 죽어버려서
살아 있음이 이토록 새카맣다.
삶의 정면이 이토록 캄캄하다.

죽음아 죽음들아
홀로 죽어간 죽음들아
홀로 죽어서 삶을 모두 가져간 죽음들아
삶을 되돌려주지 않는 죽음들아
뒤도 돌아보지 않는 죽음들아

죽음은 살아 있어야 한다.
죽음이 삶 곁에 살아 있어야 한다.
죽음이 생생하게 살아 있어야
삶이 팽팽해진다.
죽음이 수시로 말을 걸어와야
살아 있음이 온전해진다.

죽음을 살려내야 한다.
그래야 삶이 살 수 있다.
그래야 삶이 삶다워질 수 있다.
그래야 삶이 제대로 죽을 수 있다.

죽음을 살려내야 한다.
죽음을 삶 곁으로
삶의 안쪽으로 모셔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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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6-20 12: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얼핏보고 이문세가 책을 냈나 했습니다 ㅎ 죄송합니다

chika 2018-06-22 21:15   좋아요 0 | URL
어느 부분에서 이문세가 떠올랐을까요?
아, 이문재 시인님 이름.... ㅎㅎ

카알벨루치 2018-06-22 21:29   좋아요 0 | URL
제가 좀 단순합니다! 이 댓글을 바로 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