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표본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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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가 광기를 심어준 게 아니다. 광기는 처음부터 내 안에 있었다. 그런 인간을, 세상은 필시 악마라 부르리라."(105)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미나토 가나에의 작품, 데뷔 15주년 기념작이라 할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재미있게 읽었다, 라는 표현을 쓰기에는 그 내용이 결코 재미있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 정신없이 읽다가 어느 순간 그 흐름이 바뀌어버리고 이미 사이코패스같은 살인마임을 확신하고 있는데 또 다른 의심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더 심란해지고 있음을 느끼게 되어버린다. 사실 책을 다 읽고난 후 처음 들었던 생각은 작가의 저력이 아니라 불편함이었다. 뭔가 꼬집어 얘기하기 힘든 불쾌함 같은 감정.

옮긴이의 말을 읽어보니 이런 감정은 나만의 특별한 감정은 아닌 것 같다. '읽고 나면 뒷맛이 찝찝하고 기분이 언짢아지는 '이야미스'(일본어로 싫다, 불쾌하다는 뜻의 이야나와 미스터리의 합성어)라고 일컬어진다고 하는 걸 보면. 


"인간도 가장 아름다울 때 표본으로 만들 수 있다면'이라는 문구를 읽으며 사이코패스의 엽기적인 행위를 아름다움으로 포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라는 생각을 하기는 했는데 소설 속에서 표현하는 나비와 표본을 뜨는 구체적인 모습은, 상상할수도 없는 것이기도 하지만 은근슬쩍 대충 넘겨버리기도 했다. 내게는 잔혹함의 느낌이 너무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 부모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 나를 믿어주기를 바라는 마음.... 이 모든 것들이 뒤엉키며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는데 마지막까지 도대체 이 섬뜩한 일을 벌인 사이코패스가 누구라는 거야,라는 생각을 하다가 어느 순간, 가장 큰 잘못의 시작은 사랑이라는 명목하에 믿음을 저버리고 그것이 모든 것을 다 망쳐버리게 하는구나 라는 깨달음이 생긴다. 

아버지가 아들을 죽였다는 살인자의 고백처럼 시작되는 이야기는 그 끝을 다 읽을 때까지 내내 마음이 불편하고, 누가 누구를 속이는 것인지 소설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다가 어느 순간 깨닫게 되는 사랑과 믿음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마음에 시선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나비의 왕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일찍이 본 적 없는, 아름답고 잔혹한,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 이야기를 선사합니다. 당신 눈에 비치는 세상은, 타인이 보는 세상과 똑같을까요?"

저자의 친필 사인을 먼저 읽고 책을 읽었는데 그저 가볍게 읽었던 이 글이 책을 다 읽고난 후에는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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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채식주의
김윤선 지음 / 루미의 정원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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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오해를 했다. '내가 먹은 한끼가 세상을 바꾼다'인데 나는 이것을 내가 먹은 한끼가 나 자신을 바꾼다는 의미로 읽었다.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는 않지만 나 중심의 사고방식은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인가보다. 어쨌든 내 한 몸 건강해져보자고 책을 펼치고 읽다가 슬그머니 부끄러움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나는 오늘도, 내일도 채식주의자가 되지는 못하리라는 생각에.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이 책이 육식에 대한 부끄러움을 갖게 하는 것은 아니며, 채식을 강요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그저 채식주의자인 저자가 일상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거창하게 환경운동이라거나 사회정의를 말하지 않아도 그 모든 것의 시작은 나 자신의 일상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고 있을 뿐이다. 


아들이 초등학생일 때 이미 동물친구들을 먹을수는 없다며 채식주의를 선언했다는 말은 놀랍지 않았지만 직장을 다니는 아들의 비건주먹 주먹밥 도시락을 싸준다는 것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릴때 한순간의 마음으로 비건을 시작한 것이 아니며 그것을 지지해주는 부모와 사회생활을 하면서 비건생활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을 알기 때문이다. 


시작부터 거창하게 이야기를 꺼냈지만 실제 이 책은 저자 자신의 소소한 생각을 일기처럼 풀어놓아서 술술 읽히는 글이다. 부록처럼 저자의 비건 요리 레시피가 실려있는데 채소를 좋아하는 내게는 모두 한번 해보고 싶은 요리다. 채소 본연의 맛을 좋아하기도 해서 별다른 소스나 양념없이 그대로 먹는 것도 좋아하는데 거기에 감칠맛을 더해주는 레시피를 보니 저절로 입맛이 다셔지고 있다. 

오늘부터 채식주의자가 될수는 없겠지만 고기보다 채소를 더 좋아할 자신은 있기에 나도 또 다른 것을 시도해봐야겠다. 어느 날 저자가 느꼈던 것처럼, 자신이 또한 그러한 사람이 되려고 하는 것처럼 나 역시 '다정한 타인'이 되어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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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 하나로 김밥‘에서 물론 당근은 가장 중요한 주인공이지만, 밥의 상태와 간도 중요하다. 고슬고슬 지은 밥에 소금과 깨소금간, 식초, 설탕을 조금 넣어 잘 버무려 놓는다. 깨끗이 씻은 당근을 채칼, 혹은 직접 쳐 살짝 기름을 두른 팬에 볶아내면 두 번째 준비가 끝난다. 지지용성 비타민A가 풍부한 당근은 기름에 볶을 때 영양의 흡수도가 높아진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볶은 당근을 살짝 간 한밥위에 듬뿍 얹어 잘 말아내면 된다. 너무 간단하지 않은가?
한가지 더 이 김밥을 맛있게 먹는 방법이 있다. 바로 고추냉이간장인데, 간장에 설탕과 사과식초 그리고 초록색 고추냉이 소스를 새콤달콤 간간하도록 섞으면 된다. 이 소스에 ‘하나로 김밥콕콕 찍어 먹다 보면 한줄, 어느새 두 줄을 순식간에 먹게 된다.
혹 고추냉이가 많이 풀어진 쪽 간장에 순간 매워서 어쩔 줄 모게 되지만 그조차도 입맛을 돋우는 역할을 해준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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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신, 우리 괴물 1 - 신과 인간의 이야기, 신화 우리 신, 우리 괴물 1
김혜정 지음 / 페이퍼타이거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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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신, 우리 괴물은 예전부터 전해져오는 우리의 신화이야기를 우리 시대의 관점에서 풀어내고 있는 이야기이다. 사회, 문화의 적인 변화가 반영된 신화의 의미에 대해 쉽게 풀어내며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모계중심 사회가 농경생활과 정착생활이 시작되면서 부계사회로 바뀌게 되었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어도 우리의 신화 속에서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나는 것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 제주의 설문대할망 이야기가 설문대 할망의 위대함을 이야기하는 듯 하면서도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으로 허망하게 죽고 사라지는 이야기도 있어서 그저 옛날 이야기란 이리 허술한가보다 라는 생각만 했었는데 꽤 설득력 있는 저자의 해설은 우리 신화이야기를 뭔가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진짜 신화'를 만들고 싶다면 ...... 그 시대의 사람들이 진짜로 바라는 것을 정확히 꺼내 보여줘야 하요. 그 순간 이야기는 매력이라는 무기를 갖게 됩니다. 신이란 결국 시대가 꼭 필요할 때 나타나는 존재니까요."(158)


개념과 구조를 알고, 서사를 이해하면 신화이야기를 전래동화를 전하듯이 만들어낼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책의 이야기들을 더욱 풍성하게 이해하고 깊이있게 사색해보게 하는 '칼럼'은 단순히 신화의 재해석을 해주는 것을 넘어 더 많은 흥미를 갖게 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칼럼에서 누구나 신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하지만 이건 역설적이게도 '진짜 신화'를 찾아보게 하고 있는것이다. 


정말 오래 전에 체험했던 것이기는 하지만 당시에는 그저 문화적인 체험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 물론 문화적인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 맞지만 그것이 담고 있는 사회,문화적 은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제주에는 만팔천이 넘는 신이 있다고 하는데 과거의 제주에는 흔했던 밖거리의 부엌에 있는 조왕신을 모셨던 흔적이 남아있는 곳에 찾아갔던 기억은 그저 문화적인 흥미로움이었지만 지금 이 책을 읽다보니 어쩌면 조왕신을 모신다는 것은 그만큼 먹거리 생활이 힘들었던 섬사람들의 애환이 느껴지게 되기도 하다.

익히 알고 있었던 이야기들은 더 깊이있게 읽을 수 있었고 몰랐던 우리 신, 신화의 이야기는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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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가 광기를 심어준 게 아니다. 광기는 처음부터 내 안에 있었다.
그런 인간을, 세상은 필시 악마라 부르리라. 105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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