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하의 선율에 젖은 날이면
잊었던 기억들이 피어나네요
바람에 날려간 나의 노래도
휘파람 소리로 돌아오네요

내 조그만 공간 속에 추억만 쌓이고
까닭 모를 눈물만이 아른거리네

작은 가슴 모두 모두와
시를 써봐도 모자란 당신
먼지가 되어 날아가야지
바람에 날려 당신 곁으로

작은 가슴 모두 모두와
시를 써봐도 모자란 당신
먼지가 되어 날아가야지
바람에 날려 당신 곁으로

 

-김광석 < 먼지가 되어 >

 

아무렴. 1월 6일은 '김광석'으로 채우는 하루.

그래서 '커피 김광석'을 마시면서, 김광석의 노래로 마음을 다스린다. 

 

2013년 1월 6일, 김광석 17주기.

광석이 형이 없음에도, 노래가 여태 불리고, 추모의 기운이 번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렵지 않다.  

그의 노래 한 곡 한 곡이 누군가의 추억에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추억에선 <사랑했지만>이, 또 누군가에겐 <서른 즈음에>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그녀가 처음 울던 날> <거리에서> <이등병의 편지> 등이 어쩔 수 없이 박혀 있음으로 인해서다. 

 

모든 노래가 모든 이의 추억 속 한 자락이 되는 경우, 김광석이다. 

김광석이기에 가능한 그것은, 많은 이의 삶의 결에 김광석이라는 노래가 묻어 있다.

 

오늘, 동숭동 학전블루에서 '김광석 따라부르기'가 열렸다.

1월 26일 대구와 2월 1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김광석 다시 부르기 콘서트' 무대가 열린다. 4월엔 김광석 쥬크박스 뮤지컬 <그날들>(6월까지)이 무대에 오른다.

 

언제부터인가, 이맘 때면 늘 찾아갔던 홍대 부근의 그곳. '들꽃이 피는 자리'.

주점이다. 김광석이 있고, 체 게바라가 있다. 주인 아저씨에게 김광석에 얽힌 뭔가 추억이 있음을 유추할 수 있는 공간이다. 김광석 노래가 늘 울려퍼지는 이곳. 원하면 또 틀어준다. 조만간 들꽃이 피는 자리에 들러야 겠다.     

 

오늘 김광석으로 모든 것을 채우는가 했는데, 

또 하나의 먼지가 된 사람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조성민.

그는 내 또래다. '한국야구 황금세대 92학번'의 절정이었던 조성민.  

뭣보다 내 고등학교 때의 여신, 진실 누나의 한때 사랑이었다. 

성민은 먼지가 되어 진실 누나에게 날려갔다. 참, 슬프다.

 

광석이형 만으로도 헛헛한 이내 마음.

성민이의 죽음이 내 마음에 먼지를 불러 일으킨다.

(유)덕화 형의 <심플 라이프>가 그런 내 마음을 다독여줬다.

커피 김광석이 1월 6일을 달래주었다. 

 

그리고, 광석이 형 노래(<사랑했지만>)에 묻어 있는 너.

그런 너는 잘 있는지, 문득 궁금해지는 하루.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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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을 할까, 커피나 한 잔 할까?

- 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중에서  

 

 

오늘, 엄마가 죽었다.
전보가 그렇게 왔다. 내 탓은 아니지만, 가지 않을 수 있나. 사장은 좋아하지 않는 눈치였지만, 휴가를 내고 버스를 탄다. 피곤했을까. 계속 잠을 잔다. 도착해선 엄마의 시신도 보지 않는다. 눈물? 글쎄, 눈물샘이 마른 건가. 엄마의 주검이 담긴 관. 경비가 커피를 권한다. 홀짝. 커피엔 역시나 담배. 그래도 엄마 시신 앞인데... 잠깐 망설인다. 그렇다고 꺼릴 이유도 분명치 않다. 담배 한 모금. 후~ 커피가 담배를 부른 것인지, 담배를 피우기에 앞서 커피를 애피타이저로 마신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맞다. 뫼르소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첫 문장 중의 하나인 "오늘, 엄마가 죽었다"로 시작하는 ≪이방인≫이다. 커피, 태양, 담배, 바다, 정사... 그리고 숱하게 명명된, 그래서 지겨울 법한 부조리. ≪이방인≫을 떠올리자면, 그렇다. 태양이 너무 강렬해서 살인을 저질렀다는, (문학)역사상 가장 병맛(!)스러운 살인의 이유를 들이댄 뫼르소. 다양한 병맛짓으로 그야말로 인생사 병맛을 실감케 한 재능은, 온전히 그에게서 나왔다. 이 책을 내놓았을 때, 카뮈는 스물아홉이었다. 스물아홉의 청년이 내놓았던 이 책에 대해 문학평론가 롤랑 바르트는 "건전지의 발명에 맞먹는 사건"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데, 그 호들갑, 틀리지 않았다. ≪이방인≫은 에너자이저다. 부조리는 지독하게 현재적으로 점점 더 강도를 더해가니까. 프랑스에선, 이 책에 대해 매년 20만명의 새로운 독자가 생겨날 정도다.

 

 

그렇다. 그. 알베르 카뮈.
그는 커피 한 잔과 함께(물론 담배도 곁들여서) ≪이방인≫을, 뫼르소의 병맛짓을 휘적거렸다. 빠뤼의 골목, 생제르맹 거리에 위치한 '레 되 마고·Les Deux Magots(2개의 도자기 인형)'와 '드 플로르·de Flore'에서였다. 생제르맹 교회 앞 광장에 위치한 카페들.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카뮈는 담배를 뻑뻑 피워가며 커피의 힘을 빌어가며, 뫼르소를 탄생시켰다. 부조리의 탄생. 커피로 조리한 부조리? 물론, 이곳엔 카뮈와 한때 절친이었던 사르트르를 비롯해 보부아르, 랭보, 베를렌, 알퐁스 도데, 앙드레 지드, 헤밍웨이, 피카소 등 내로라하는 문인·사상가·철학자·예술가 등이 즐겨찾았다. 오죽하면 "집으로 삼았다"는 얘기(사르트르)까지 나왔겠나. 지금은 관광객들이 호기심으로 머무는 장소가 됐다지만. 뫼르소는 커피의 힘을 빌린 부조리였던 것이다.

 

 

카뮈는 반항아였다. 
윗 사진이 뿜어내는 포스를 보라.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반항 아니면 죽음을! 그는 부조리에서 세 가지 귀결을 이끌어낸다고 했다. 반항, 자유, 열정. 자유주의자이자 사회주의자였던 그를 오해하는, 아니 그를 이용해 먹은 한국 지배세력의 유언비어도 있었다. 스탈린주의에 반대했던 그를, 반공주의자로 끼워맞춘 것이다. 카뮈는 말하자면, 반스탈린주의적 사회주의, 반전체주의적 사회주의에 가까웠다. 폭력에 근간한 정복자의 모습을 한 절대주의적인 이데올로기에 대한 두드러기 혹은 알러지. 부조리에 반항하되, 반항의 기원을 잊지 말아라! 카뮈가 우리에게 속살거린다.

 

다만, 나는 안다.

커피가 카뮈를 꼬드겼다. 약간 과장하자면, 커피 없이 ≪이방인≫이 나왔을까. 다른 판본으로 말하자면, 그의 지성을 자극한 것은 커피였다. 어느 커피하우스에선, 또 다른 카뮈가 담배 한 모금과 함께 커피의 힘을 빌어 지금 이 시대의 부조리를 끄집어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1959년 한 인터뷰, "내 나이 마흔다섯, 아직 놀랄 정도로 활력이 남아 있습니다"라고 자신만만하던 카뮈는 이듬해 초, 소설(≪최초의 인간≫) 원고를 품고 가다가 차에 치여 아듀. 요절이었다. 커피가 그를 죽인 것은 아니었다. "나는 가난 속에서 자유를 배웠다"고 말한 이의 부조리한 죽음이었다. 

 

그런데 왜, 카뮈?
1월4일은 카뮈의 53주기다. 뭣보다, 올해 카뮈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11월7일)다. 그래서 특별한 커피를 볶았다. 이름하여, 부조리 커피다. 레시피는 알려주지 않겠다. 힌트가 있다면 알제리 커피가 가미됐다. 알제리는 커피를 '샤딜리에'라고 부르는데, 카뮈는 알제리에서 태어났다. 알제리로 이주한 프랑스노동자의 후손이다. 이 커피, 마셔보면 뫼르소의 심경이 이해가 간다. 지금 우리를 둘러싼 온통 부조리한 현실 덕분이다. '부조리 커피'가 그것을 명징하게 일깨워줄 것이다.

 

그나저나, 카뮈 사진의 저 포스, 저 간지.
아주 부러워 죽는다. 저 정도 간지, 누구나 '소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저 정도 간지가 돼야, 뫼르소라는 인간형을 내놓을 수 있다. 장례를 앞두고 밤을 새며 커피를 마시고(그래, 밤 새며 커피를 마신 것이 무슨 죄란 말인가!), 어머니 장례를 치르고 난 다음 날 섹스를 하며(섹스랑 밥 먹는 일이 뭐 그리 다른가? 장례 다음 섹스를 하면 정말 (관습법에서라도) 죄가 되는겨?), 어머니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울지 않는 인간도 있다. 분명!).

 

 

카뮈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일러스트 이방인≫이 출간됐다.

지난해 ≪이방인≫출간 70주년을 기념해 프랑스에서 나온 특별 에디션이 드디어 한국에도 나왔다. 프랑스에서는 무려 750만부가 팔려나갔다. 흑과 백, 두 가지 색깔만으로 모든 것을 표현했다. '부조리 커피'를 마시면서 ≪일러스트 이방인≫을 보시라.

 

다만, 햇살은 피해서.

꼭. 당부한다. 너무 강한 태양은 몸에도, 마음에도, 해로울 수 있다. '행쇼(행복하십쇼)'하고 싶거든, 지나치게 강렬한 태양은 피하고 볼 일. 비(정지훈)의 '태양을 피하는 방법'을 읊는 것은 좋지만, 비도 몰랐던 것이 있다. 김태희와 연애할 때 국방의 의무를 회피하는 방법까진 몰랐던 거지. 연애할 때 주의할 것, 내 안의 부조리. 아, 물론 연애질할 땐, 당연히 그따위 것 모른다. 세상이 온통 김태희뿐인데, 부조리가 보이겠나. 태양은 피해도, 김태희는 못 피했겠지. 비에겐. 뫼르소라면 몰라도. 그러니, '밤9시의 커피'를 마시면서 태양도 피하고, 피할 수 없는 '부조리'도 꿀꺽 마셔야 한다. 삶처럼. 딴 이유 없다. 알다시피, 삶은 부조리니까!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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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공유경제를 만나다] 첫 번째 시간 : 양석원(이장) 코업 대표 (1월10일)


솔직히 말해보자. 한국은 망해가고 있다. 무슨 말인가 할 텐데, 그 징조만 나열해도 끝이 없을 테니, 뭉뚱그리자. ‘OO발 경제위기’는 일상이 됐다. 위기의 일상화, 더 이상 위기가 아니라는 얘기다. 비정상이 정상을 대신한다. 사람들, 더 이상 ‘위기’라는 말에 놀라지 않는다. 면역이 됐다. 걱정하는 척은 한다. 그러나 이면, ‘나는 아니겠지’라는 마음이 똬리를 틀고 있다.

 

중산층 붕괴, 하우스푸어 등 푸어족의 만연, 자영업자의 몰락 등 언론을 연일 장식하는 기사들, 이젠 놀랍지도 않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자살률 1위 자리, 공고하다. 한국청소년상담소 연구결과에 의하면 자살을 고민하는 고등학생은 2008년 214명에서 2010년 476명으로 배 이상 늘었다.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거나 고통스런 세상에 살게 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아이를 낳기 싫다고 말하는 사회. 이런 사회에 미래가 있다고 진심으로 말할 수 있나? 이른바 ‘싸가지’가 없어야 할 청년들이 기성세대의 위로와 측은지심을 받아야 하는 건 또 어떻고.

 

멘붕(멘탈붕괴)이 일상용어가 된 지금, 뉴욕타임즈도 대선 이후 한국 젊은 세대의 절망을 다루며, ‘men-boong’이라는 단어를 게재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은 곧 세계가 인정할 ‘멘붕 사회’가 될 것이다. 그토록 바라는 세계화, 이미 도달했다.

 

왜 절망만 늘어놓느냐고? 우리는 절망이라는 명확한 현실 인식에서 시작해야 한다. 근거 없는 낙관과 뼈대 없는 희망의 개소리에 더 이상 혹해선 안 된다. 분명히 하자. 희망은 없다. 고생 끝에 오는 건 낙이 아니라, 병이다. 고통은 그저 고통일 뿐. 거짓 희망이나 미화가 없는 시선이 필요하다. 그것이 삶을 버틸 수 있게 하고 자기 치유(힐링)할 수 있는 기운을 준다. 기득권이 내세우는 창조 혹은 창의니 상상력이니, 그것은 고장 나고 파탄 난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미끼다. ‘창조성을 바탕으로 한 소규모 아이디어 창업’ 따위의 동어반복만 거듭한다. 핵심도 없다.

 

‘창의적 인재 육성’이 어떤 결과를 냈는지도 봐라. 이명박 정부 내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청소년 사망원인 1위였다. 대학은 취업일꾼 양성소로 전락했고, 취업사관학교라는 타이틀을 자랑스럽게 내건다. 정부가 나서 취업률을 대학평가기준으로 삼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일어난다. ‘대학’이라는 이름, 떼야 한다. 그냥 취직학원이며 대기업 예비사원 연수원이면 족하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이야기할 ‘공유경제’가 지금 절망의 세상을 수렁에서 건져낼 구원투수냐? 천만에. 그럼에도, 공유경제를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희망을 말하기 위해서가 아닌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와 당신 우리가 세상의 야멸찬 풍파에 휩쓸려 변하지 않기 위함이다.

 

서론이 길었다. 일부 언론이 써대는 ‘공유경제(Sharing Economy) 시대가 왔다’는 수사는 약간의 허풍이 섞였다. 그러나 이 수사, 마냥 허세로만 여길 순 없다. 공유경제에 대한 거듭된 호명은 기존의 것이 준 폐해에 대한 반발이자 다른 새로운 경제 원리, 사회의 흐름이 작동하기 시작했음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유도시 서울’의 탄생

 

20세기 영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E.M.포스터의 《하워즈 엔드》에 나온 유명한 경구(警句), “오직 연결하라(Only connect)”. 공유경제를 말하기 위해서는 포스터의 이 말부터 새겨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는 도시, 그리고 서울. 파편화와 개인화를 우리는 도시의 특성으로 오해한다. 그것은 도시의 태생과 도시성을 모르기 때문이다.

 

도시는 애초 공유성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즉, 도시성의 중요한 지점이 공유공간이다.사람과 사람, 사람과 물건, 물건과 물건, 연결될 수밖에 없는 것이 도시였다. 가령, 뉴욕의 아파트, 아주 좁다. 때문에 밥은 식당에서, 빨래는 빨래방에서, 야구경기는 바에서 해결한다. ‘홈(Home)’이 우리가 아는 집, 가정만 일컫는 것이 아닌 셈이다. 홈이 도시 곳곳에 퍼져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바깥에 있는 지저분함에 대해 서로 지적하고, 규율을 함으로써 도시는 아름다워진다. 우리의 공간은 즉, 나의 공간으로 여기는 공유성이 진짜 도시의 속성이다. 즉, 최소화된 개인 공간. 이것은 역설적으로 도시 전체를 ‘나’와 ‘너’, ‘우리’의 공간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나의 공간은 도시로 확장되며, 자연스레 공유 공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나타난다.

 

물론 지금의 서울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도시로서 근본을 저버린 것이라고나 할까. 예를 들어, 뉴욕에서 브런치를 먹는 행위는 멋이 아닌 이웃과 사귀는 계기다. 공유공간에서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웃이 된다. 그러나 지금 서울의 많은 우리에게 브런치는 과시적이거나 그것이 뉴욕스타일인양 허세로 소비된다. 귤이 태평양을 건너 탱자가 됐다.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는지, 서울시는 지난 9월 20일 ‘공유도시 서울’을 선포했다. 나누고 공동으로 사용하고 같이 소비하며, 자원을 개방해 함께 사용하고 사장되어 있는 자원의 가치와 효율을 높이는 도시를 만들자고 시민들에게 말을 건넸다. 유럽과 미국에서 활성화되고 있는 공유경제의 흐름을 서울시가 정책 차원에서 받아들이기로 한 셈이다.

 

서울시가 공유에 주목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도시는 원래 ‘공유를 위한 플랫폼’이라는 담론을 통해 △새로운 공유경제 활성화 △아름다운 공유문화 회복 △행정효율 제고 및 예산절약 효과 등을 위함이다. 서울시는 이를 위해 공유촉진 조례 제정과 공유허브 구축 등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공유단체·공유기업 인증 등 공유단체나 기업을 지원하는 한편 공유참여 안내시스템 구축 등 시민참여를 확산할 계획이다. ‘공유’가 도시행정의 중요한 핵심 축으로 자리 잡을 것임을 예고한다고 볼 수 있다. 도시생활 또한 자연스레 연동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것은 삶을 바꾸는 어떤 기제가 될 수 있다.

 

소유보다 공유, 사유보다 공유

 

공유경제 개념이 본격적으로 자리를 튼 것은 2008년경부터다. 미국발 금융위기의 도래로 고장 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개선의지가 들끓는 시점과도 맞물린다. 재화의 팽창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문제의식이 싹텄다. 성장은 한계에 다다랐고, 고용의 불안정성에 따른 위기가 터졌다. 세계 경제가 기운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반성과 성찰의 담론이 나오는 가운데, 사람들은 자신이 소유한 것을 돌아보게 됐다. 쓰지도 않는 물건을 소유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비용면에서도 손해 아닌가? 남은 방과 자동차 등을 공유하는 모델이 나타났고, 다양한 물건과 공간, 정보, 지식 등을 공유하자는 흐름이 확산됐다. 인터넷에 이은 스마트폰의 보급이 공유경제의 흐름을 더욱 가속화했다고 볼 수 있다.

 

미국 하버드대 법대 로렌스 레식 교수가 2008년 ‘공유경제’라는 단어를 처음 언급했다. “공유경제는 재화를 소유하지 않고 공유, 교환, 임대, 활용하는 협력적 소비다.” ‘대량생산-대량소비’를 동력으로 삼았던 20세기 자본주의 경제가 한계에 다다랐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공유경제라는 언어의 형성은 또한 ‘소유보다 공유, 사유보다 공유’가 또 다른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음을 알려준 시발이기도 했다. 이는 경기침체와도 맞물렸다. 저성장의 시대, 불황을 뚫을 수 있는 하나의 대안으로도 부각됐다. 경제활동에 대한 인식을 바꾼 계기였기에 지난해 타임지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10개 아이디어’의 하나로 ‘공유경제를 통한 소비문화’를 꼽았다.

 

지난해(2012년) 10월14일 영국, 세계에서 처음 ‘세계 공유의 날’행사가 열렸다. 공유경제의 미래를 논했고, 서로 연결해야 함을 확인했다. 영국만 해도 공유경제 규모가220억 파운드(약 38조원)에 달할 정도로 커졌다. 올해(2013년) 3월 열릴 산업박람회 세빗(CeBIT) 주제도 공유경제로 정해졌다. 세빗의 주최 ‘도이치메세’는 “공유현상이 기업 성장의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흐름은 전통적인 기업들이 공유경제에 뛰어드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BMW, 폴크스바겐 등 자동차 업체들이 카셰어링 시장에 뛰어들었다. 공유경제를 비즈니스모델(BM)에 적용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집이라고 다르지 않다. 일본에서는 거실과 테라스를 공유하는 셰어하우스가 인기를 끌고 있으며, 한국에도 금호동의 ‘Y-하우스’ 등 ‘함께 더불어 사는 집’을 모토로 한 주거소통법이 재시도 되고 있다. 이른바 ‘공유주택’의 탄생이다. 아울러, 경험과 지식, 기술, 재능 등 무형자산도 공유의 대상이 확산되고 있다.

 

공유경제와 관련,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에어비앤비’는 온라인 민박사이트에서 출발했다. 서브프라임모기지론 사태로 위기에 처한 하우스푸어와 저렴한 비용으로 잘 곳을 구하는 여행객을 연결시켜주는 사업이었다. 성장은 눈부셨다. 전 세계 190여 개국에서 하루 100만 명이상이 이용하는 서비스가 됐다. 현재 에어비앤비는 숙박뿐 아니라 차량, 주차, 의류, 도서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카셰어링 서비스업체인 ‘집카’도 공유기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공유경제가 씨앗을 뿌리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낯선 것은 아니다. 이미 이웃과 음식을 나눠먹던 문화가 있었고 TV를 같이 보던 시절이 있었다. 함께 일하고 나누는 두레와 품앗이의 전통 또한 우리의 DNA에 있다. 2010년 양석원 대표가 공유사무실(코워킹 스페이스) ‘코업(CO-UP)’을 열었다. 코업은 공유경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지원활동을 하고 있다. 카셰어링 업체인 ‘그린카’나 ‘쏘카’, 아이들 의류나 잡화를 교환할 수 있는 ‘키플’이나 정장공유서비스 ‘열린옷장’, 개인용품을 빌려주는 ‘원더렌드’ 등도 주목받고 있다. 공간을 공유하는 ‘비앤비히어로’ ‘코자자’, 서가공간과 책을 나누는 ‘국민도서관 책꽂이’도 있다.

 

특히, 경험, 지혜, 시간 등 무형의 것을 공유하면서 관계 맺기를 촉진하는 사업들도 있다. 경험과 지혜를 공유하고 관계를 맺는 ‘위즈돔’과 함께 식사를 나누고 대화할 수 있는 ‘집밥’ 등이 그것이다. 엄마가 지닌 육아의 재능을 공유하는 ‘품앗이파워’도 있다. 누구나 여행가이드가 될 수 있는 ‘마이리얼트립’과 사람과 지역을 연결하는 공정여행의 플랫폼인 ‘플레이플래닛’도 있다.

 

한국의 공유경제 전도사 역할을 하는 양석원 코업 대표의 말을 들어보자. “공유경제는‘소유하지 않아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모토로 한다. 갖고 있지 않아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많다. 공유경제, 어렵지 않다. 보통 ‘소유’하면 집과 자동차를 먼저 떠올리는데, 집을 온라인 플랫폼에 내놓고 공유하는 회사들이 있고, 차를 공동소유하는 사업도 있다. 지금은 자동차를 갖고 있는 것보다 어떤 수단으로 이동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툴 라이브러리(공구 도서관)’도 마찬가지다. 보쉬 전동드릴이 남자들의 로망이긴 하나,(웃음) 이젠 갖고 있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국내 공유경제 기업현황(2012.9 현재, 서울시 제공)은 다음과 같다.

 

연번

회사/프로젝트명

공유분야

관련 URL

비고

1

그린카

자동차

greencar.co.kr

 

2

키플

아동의류

kiple.net

 

3

BnB Hero

숙박

bnbhero.com

 

4

코자자

숙박

kozaza.com

 

5

북메이트

해외한인민박

vookmate.com

 

6

한인텔

해외한인민박

hanintel.com

 

7

CO-UP

사무실공유

co-up.com

 

8

국민도서관 책꽂이

도서

bookoob.co.kr

 

9

북체인지닷컴

도서

www.bookchange.com

 

10

위즈돔

경험/지혜

wisdo.me

 

11

품앗이 파워

품앗이 육아

pumpa.co.kr/new

 

12

스티커잡

재능품 공유

stickerjob.com

 

13

집밥

소셜다이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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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나룸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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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열린옷장

면접용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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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Wonderl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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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얼트립

여행/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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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공유경제를 만나다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말이 있다. 공공자원을 구성원 자율에 맡길 경우 자원이 고갈될 위험에 처할 수 있음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개인과 공공의 이익이 상충될 때, 개인이 사리사욕을 취하고자 하면 경제 주체 모두 혹은 공동체 전체가 파국에 이를 상황이나 위험에 처하면 이 말을 쓴다. 민영화라는 이름의 사유화를 조장하기 위해 흔히 인용하는 이론이기도 하다.

 

그러나 공유경제는 그것이 모든 게 아님을 알려준다. ‘공유지의 비극’의 허구성을 까발리는 것이 공유경제이다. 빌려주고 공유할 때 관리도 되고, 가치가 창출될 수 있음을 공유경제는 증명한다.

 

공유경제는 필히 관계를 동반한다. 마을공동체 등에서 재화부터 지혜, 일 등을 공유하면서 자연스레 ‘관계맺음’을 하는 것처럼, 공유경제를 ‘경제’라는 협소한 범주에서 바라보거나 해석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지금 사람들의 의식과 인식을 바꾸거나 변화시키는 삶의 태도라고도 볼 수 있다. 공유경제는 곧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인류 문명의 발생 이후 인간이 믿어온 신은 늘 변화해왔다. 신은 인간본성에 대한 정의를 표상해왔다. 즉, 인간이 이렇게 돼야한다거나 되고 싶은 믿음의 산물이었다. 구석기 시대에는 이것이 벽화로 드러났었고, 신석기 시대, 사람을 닮은 신이 등장했다. 청동기 시대, 동물과 인간이 합쳐졌다. 스핑크스가 대표적인데, 동물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철기시대 들어서, 동물에서 벗어난 인간 자체의 모습을 신으로 상상했고, 그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고 여겼다.

 

인류는 그렇게 다양한 신을 거쳤다. 지금의 신은 ‘지름신’이다. ‘소유하라, 그러면 행복할 것이다’라는 지름신이 20세기부터 본격 강림했다. 소유를 가치로 등가교환 하는 인식이 뿌리를 내렸기에 불필요한 소비가 확산됐다. 그러나 인간은 뒤늦게 그 신이 세상을 파국으로 몰아가고 있음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인간 본성보다 탐욕을 자극했음을 깨달았다.

 

공유경제, 아직은 미미하지만, 그러한 흐름의 궤에 중요한 지점을 차지하고 있는 시대정신이다. 단순히 ‘경제’로만 바라보고 해석할 무엇이 아니다. 그것은 그동안 파국으로 치달았던 관계를 복구하려는 ‘회복탄력성’이며, ‘소비의 과잉’ ‘소유의 함정’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사람은 무엇을 하였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았는가로 평가받는다”는 오시다 시로시의 시구를 변용하자면, “사람은 무엇을 소유하였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소유하지 않고 공유하였는가로 평가받는다.”

 

사람이 땅에 남긴 무늬를 ‘터무니’라고 한다. 공유경제는 ‘터무니 있는’ 사회를 위한 발걸음이다. 인류 문명은 터에 무늬를 새기는 일로부터 시작했고, ‘터무니없다’는 말은 근거 없다, 허황하다의 뜻이다. 사람이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존재이기에 이런 말이 생겼는데, 공간, 물건, 협업, 의식, 경험, 지혜 등의 공유는 곧 터에 무늬를 새기는 일인 것이다.

 

 

 

2013년 1월 10일부터 서울시가 주최하고 위즈돔과 코업이 주관하는 ‘서울, 공유경제를 만나다’는 이런 방향에서 비롯된다. 공유함으로써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는다. ‘공유도시 서울’을 함께 만들어가자는 ‘손 내밈’이면서 한국의 공유경제 모델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참가자들은 공유경제 모델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4월25일까지 매주 목요일 저녁 7시30분부터 9시30분까지 서울시 신청사 3층 회의실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가해서 ‘뇌주름’을 함께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서로에게 번지고 스며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자발적 참여가 공유경제, 공유도시를 만든다. (☞ 신청 : 서울, 공유경제를 만나다 http://wisdo.me/863)

 

박원순 서울시장은 말했다. “공유경제가 얼마나 빨리 안착하느냐의 관건은 공유자원의 정보를 집적하는 시스템과 시민의 동참이다.” 1월10일 목요일 첫 시간, 공유사무실을 통해 공유경제 기업들의 협업과 대중적 확산을 꾀하고 있는 코업의 양석원 대표를 만난다.

 

상상해보자. 자신이 소유했으나 사용하지 않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서 생명을 얻고 날개를 다는 순간. 혹은 내 것이 우리의 것으로 변모하는 순간. 그것은 번짐이며, 우리는 연결해야 살고, 번져야 산다. 나는 네게로 번지고, 너는 내게로 번진다.

 

장석남의 ‘번짐’을 이 겨울의 詩로 권한다.

 

水墨정원 9 - 번짐 (장석남)

 

번짐,
목련꽃은 번져 사라지고
여름이 되고
너는 내게로
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
나는 다시 네게로 번진다
번짐,
번져야 살지
꽃은 번져 열매가 되고
여름은 번져 가을이 된다
번짐,
음악은 번져 그림이 되고
삶은 번져 죽음이 된다
죽음은 그러므로 번져서
이 삶을 다 환히 밝힌다
또 한번 - 저녁은 번져 밤이 된다
번짐,
번져야 사랑이지
산기슭의 오두막 한 채 번져서
봄 나비 한 마리 날아온다

 

(☞ 신청 : 서울, 공유경제를 만나다 http://wisdo.me/863)

 

by. 커피향 공유하는 남자, 김이준수
밤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가 있는, 당신과 나의 공간을 꿈꾼다.
커피 한 잔으로 우리는 세계를 사유하고, 세계를 공유한다.
그 알싸하고 향긋하며 좋은 커피향, 나만 맡을 수 없어 당신과 함께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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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이 영화. 

이 장면, 이 영화의 아주 많은 것 혹은 모든 것이 들어있다.

비디오는 라디오 스타만 죽인 것이 아니라, 나도 킬 했다오.ㅋ 


헌데, 자꾸만 추락하는 노동자들의 소식이 슬프고, 슬프고 또 슬프다.

일주일 새 벌써 다섯 명. 심근경색이라는 말이 마음경색을 불러온다. 

죽음만큼은 그 개별성과 구체성때문에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러니 오로지 이 말. 함께 살자. 함께 살자. 함께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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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우리가 상상하고 싶어 하지 않는 식으로, 가령 우리의 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중에서

 


크리스마스.


얼마 전, 친구와 크리스마스가 예전같지 않다고 구시렁거렸어. 즉, 크리스마스의 낭만이 사라졌다는 불평이었던 거지. 물론, 우리가 더 이상 예전같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겠지. 크리스마스의 낭만도가 떨어졌다는 것, 나이를 먹었다는 증명과도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어.


우리가 좀 더 크리스마스에 흥겨이 달뜨고 감흥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크리스마스가 사회적으로도 점점 더 삭막해지고 있다는 안타까움이었어. 본디 크리스마스는 나보다 남을 더 생각하는, 타인의 안녕과 평화를 바라는 그런 시기가 아니었던가? 그렇지 않았어? 예수의 탄생은 그런 의미 아니었어?  


그러나, 나는 이제 더 이상 크리스마스를 반길 수가 없게 됐어. 무엇이든, "크리스마스잖아요~"라고 퉁 칠 수 있었던 시대, 완벽하게 끝났어. 올해는 그것을 분명하게 확인했어.




어제(21일) 한진중공업 복직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서른 다섯, 두 아이의 아빠는 "돈이 전부인 세상에 없어서 더 힘들다"며 "돈이 무섭다"고 유서를 남겼어. 


그리고, 가족들에게도 덧붙여. "사랑하는 내 가족. 먼저 나쁜 생각해서 미안합니다. 나쁘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힘듦입니다. 이제야 내가 많이 모자란 걸 압니다. 슬픕니다." 눈물이 났어.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눈물이 뚝뚝.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슬프건만, 오늘(22일), 현대중공업하청지회 노동자가 19층 아파트에서 투신했어. 한중 노동자의 소식을 듣고 많이 힘들어했다고 했어. 무섭다. 슬프다. 


과연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세상, 우리가 살아갈 만한 곳인가.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드는 사회라니. 정치교체는 언감생심, 유신적 정치로의 회귀를 우려하며 '죽음의 번호표'가 발부되는 것 아닐까, 라는 트친의 염려가 산산이 흩어질 언어가 될 것 같지가 않아. 이게 그저 우려로 끝났으면 하지만 말이지.


그럼에도 이 국가는, 이 나라의 정치(권력)는 묵묵부답이야. 젊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응답하라고 부르짖건만 말이야. 넌, 아니? 국가는 대체 왜 있는 것일까. 이 사회는 왜 남의 고통에 무덤덤하기만 한 것일까.


그래, 너와 나의 크리스마스가 다 무색해졌어.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크리스마스였었어. 크리스마스라는 그 이유만으로 흥겹고 즐거우며 벅찼던 시간은 모두의 것이었어. 그러나 이젠 크리스마스를 즐길 수 있는 부류와 그렇지 못하는 부류로 나눠지나보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도 자본(화폐)의 자장 안에 들어간 까닭에 온 누리에 선물을 베풀지 못하나 봐. 크리스마스가 슬퍼.ㅠ.ㅠ 


이 땅의 노동자에게, 크리스마스는 없어!   


이 엄혹한 세상, 커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나는 고민하고 고민해.

커피 한 잔으로 이 모든 슬픔을 달랠 수 있을까. 위로할 수 있을까. 아니, 차라리 이 커피로 세상의 각성을 깨우고 혁명을 추동하는 것이 훨씬 더 낫지 않을까. '혁명 커피'가 필요한 것 아닐까. 커피에 시대의 통증이 고스란히 담겼다. 커피에서 느낄 수 있는 통각이란 이런 것일까. 


그러니까, 궁금해요. 

당신은 이 슬픔을 어떻게 견디나요?... 이 환멸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나요?...


우리의 커피, 우리의 음악, 당신과 함께 이 음악, 나누고 싶어.

우리의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우리의 아름다운 시절이 언제 올지는 몰라도. 그래도. 그래도.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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