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자
붉은 로자. 불꽃의 여인. 마르크스 이후 최고의 두뇌.
레닌, 한마디 덧붙인다.

"그녀는 혁명의 독수리였으며, 독수리로 남을 것이다."
로자 룩셈부르크. 순정한 혁명주의자의 이름.  
급진적이었고, 극좌라는 표현도 잘못된 건 아닐 것이다.
폴란드 출신 독일의 사회주의자인 그녀는,

타협을 모르는 불굴의 혁명가였다.

엊그제 장원봉 교수의 협동조합 강연,

로자 누나의 이름이 언급됐다. 반가웠다.
뜨거운 수정주의 논쟁을 펼친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과 협동조합과 관련해 펼친 논쟁의 일부.

 

로자는 협동조합을 수정주의로 인식했다. 그녀는 주장했다.
"협동조합에게서 무슨 사회성을 발견할 수 있지? 결국 그것들은 개인주의적인 것뿐이야. 결국 개인주의 기업으로 퇴행할 거야."

베른슈타인은 반박했다.
"생산자협동조합은 판매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소비자 협동조합의 구매를 위해 생산한다고!"

다시 로자는 공격했다.
"그렇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세상을 봐. 거대한 제조산업이 성장하고 있고, 그것이 협동조합으로 가능할까?"

베른슈타인, 뜸을 다소 들이며,
"하지만 우리는 산업자본은 노동조합이 통제하고, 상업자본은 소비자협동조합이 통제할 수 있다고 믿어."


100년 전이었다. 결과적으론 로자의 주장이 옳았다. 
급격한 시장화와 제도화가 진행되면서 이전에 발흥했던 사회적경제는 퇴조했다.
복지국가의 도래도 협동조합이 약해지는데 한몫했다. 국가가 협동조합의 몫을 대신했으니까.

로자는 어쨌든 대처 이전 '철의 여인'이었다. 물론 대처와 판이하게 다른 철학과 사상으로 실천한.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사회. 로자의 신념과 이상은 그에 기반했다. 실패도 그녀에겐 자극일 뿐.  

로자가 마지막에 남긴 글은 이랬다.
"그러나 혁명이 가진 특수한 생명 법칙이 있다면 그것은 거듭되는 패배를 통해서만이 최후의 승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말, 바꿔말하면, "씨바, 쫄지 마!"
즉, 패배는 혁명의 '스펙'이다. 스펙을 그만큼 쌓아야, 승리도, 혁명도 가능하다는 법칙.

결론은 이렇다.
나로선, 로자 룩셈부르크와 커피의 친연성은 알 수가 없다.
다만 순정한 혁명주의자였기에 그녈 떠올린다면 1월15일의 커피는 '리스트레또'.
커피 향과 맛을 좌우하는 성분 중심으로 뽑는 리스트레또가 맞다.
잡맛을 가능한 제거한 순정한 에스프레소의 엑기스.  

로자는 93년 전인 1919년 이날,

살해당했다. 비극, 그 자체였다.
한때의 동지가 집권한 가운데, 군인의 개머리판에 머리를 맞고 확인사살당했고 강에 버려졌다.

그 죽음,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이렇게 노래했다.
"붉은 로자도 사라졌네/ 그녀의 몸이 쉬는 곳마저 알 수 없으니/ 그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유를 말했고/ 그 때문에 부유한 사람들이 그녀를 처형했다네."  


한명숙
1월15일. 1919년 로자는 죽었고 2012년 한명숙은 민주통합당 당대표가 됐다.
한 여성이 죽고, 한 여성이 일어났다. 1월15일의 커피가 '리스트레또'가 돼야 할 또 하나의 이유.

아 물론, 로자와 한명숙은 너무도 다른 인물이다.
'무죄녀' 한명숙 대표, 청렴한 행정가일 수 있겠다. 반MB정서를 업고 야당 대표로까지 올라섰다. 잘된 일이다. 그것도 여성이. 격하게 찬성!

그러나, 냉정하게. 한 대표가 정권을 바꾸게 하는데 일조할지는 모르겠다. 
한명숙(으로 대표되는 세력)이 인민의 삶을 바꾸진 못할 것이다. 혁명은 없다.   
지금 엄혹한 1대99 시스템을 바꿀 정치인, 아니다. 나는 그들의 개혁(가능성)조차 회의한다.
근본적 모순에 대한 언급도 없고, 반성도 미미하다. 그 모순을 해결할만한 콘텐츠도 미약하고.

더 냉정하게 투표로 이들 세력에게 권력을 준들,
그들이 김대중·노무현 시대의 반성과 성찰, 깨달음을 통한 실천을 못한다면,
우리는 투표 기계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투표만 하면 뭐든 바뀐다고? 조까라 마이싱. 내가 보기엔 그들은 로자가 아니다.
결국 인민이 말을 하고 행동해야 한다. 투표보다 직접 액션을 통해 점령해야 한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월호, 세르주 알리미 발행인의 말을 담아둬야 할 이유. 
"만약 올 한 해 동안, 권력을 휘두르는 금융자본을 제어할 적절한 수단과 정치적 의지가 표출되지 않는다면 모든 선거는 쓸데없는 짓이 될 것이다."
 


직접 눈으로 확인한 바는 아니지만,
독일 베를린의 지하철 한 역 이름이 '로자 룩셈부르크'라더라.
그 언젠가 1월15일엔 로자 룩셈부르크 역에서 리스트레또 한 잔을.

아 물론, 강철 여인, 혁명의 독수리에게도 사랑은 있었다.
리투아니아 출신 사회주의자 레오 요기헤스. 로자의 오랜 스승, 동료, 연인이자 사실상 남편.
고종석에 의하면, "독립 여성의 상징이라 해도 좋을 로자가 레오 앞에서만은 순한 양이 되었다." 로자가 레오에게 보낸 연애편지, 참으로 달큼하다. 로자라는 한 여자안에서 나온 것인지, 우와~

혁명은 사랑과 함께다. 커피도 사랑과 함께라면, 이날의 리스트레또는 달금하다.  


룩셈부르크
로자 '룩셈부르크' 얘기기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룩셈부르크의 속담 중 하나. (으응?)
"룩셈부르크인은 혼자 있을 때 장미밭을 가꾸고, 둘이 모이면 커피를 마시고, 셋이 모이면 악단을 만든다." 그렇게 커피를 들입다 마시니, 이런 통계도 나온다.

2010년 기준 27.2kg.
룩셈부르크 한 사람당 1년에 소비하는 커피의 양이다. 세계 최대란다. 한국? 
같은 해 기준 1.9kg이다. 전 세계 34위. 그래봐야 룩셈부르크의 1/14이다. 


루니 마라(루느님!) 
여자 얘기 또 안 할 수 없는데, 나, 한 여자한테 단단히 뿅 갔다.
이토록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이라니! 일은 물론이요, 자기 앞가림도 끝내주게 잘한다.  
용 문신한 여자가 이리 치명적일 줄이야. 격하게 애정할 수밖에 없는 여자, 루니 마라!!!
데이비드 핀처판 <밀레니엄>히로인이다. 남자주인공 미카엘 역의 다니엘 크레이그, 저리 가~

얼굴과 몸 곳곳엔 피어싱, 등에는 용 문신, 가죽점퍼로 간지를 뽐내고 줄담배를 피우며 오토바이를 모는 폭주족, 리스베트 역의 루느님.

그녀가 극중 법적보호자인 변호사 닐스(요릭밴 와게닌젠)의 변태성행위에 복수하면서부터, 나는 훅~ 갔다.

미카엘을 죽음 직전에서 구하고,
그에게 May I Kill? 하고 묻는데, 씨바, 얼릉 죽여 줘, 죽여 줘, 뒤따라다니면서 외치고 싶었다.

한 마디로 '마성'!
예쁘진 않은데, 이뻐~
그 미친 존재감에 내 눈은 번쩍, 귀는 쫑긋, 말초신경은 아~
아드레날린 강하게 돋는다. 보장한다. 이 여자만으로도 충분하다.

리스베트가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미카엘을 사랑할 때, 나는 한없이 미카엘이 부러웠더랬다.
그녀의 온몸을 더듬고 애정하는 미카엘이 되고 싶었다.
물론 마지막 장면, 그녀는 끝까지 쓸쓸하고 멋지다. 
뻔하디뻔한 금발 편집장과 시간 보내려 리스베트의 사랑을 소외시킨 미카엘, 바보에 멍충이다.
여자 볼 줄 모르는 병신. 내게 이런 여자만 있어봐라. 평생 뫼시고 산다!

이런 파격은 드물다.
루니 마라, 단숨에 줄리아 로버츠, 스칼렛 요한슨과 동급으로 내 여신전에 올랐다. 루느님~

강한 여자에 대책없이 끌리는 나는 역시 '강한 여자종속형 수컷'일세.ㅋ



남자3호
남자 3호, 재밌고 신나는 경험.
내가 찍은 여자는 매력투성이에 마성이 보이건만, 아무도 안 찍는다.
선물만 줬다. 나도 염치를 아는 사람이니까!ㅋ   
그녀, 독립적이고 자주적이며, 자신의 서사를 가진 사람 같았다.
살면서 어떤 변수가 그녀에게 개입할진 몰라도, 내 느낌이 맞다면,
그녀는 더 멋있는 마성의 여자이면서 아름다운 사람이 될 것이다.

헤이데이의 캘리그래피. 멋있다!


아울러,
10만 년 전에 내가 여자였다는 것도 알았다.
나는 얼마나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여자였을까? 궁금해졌다.

그나저나, 내 이름은 왜 이리 제 각각이야. 쯧.  
인디언식 이름. 웅크린 태양의 그늘(그림자) (음력. 웅크린 늑대의 고향)
조선식 이름. 소싯적 마당쓸던 기생오라비. (팡 터졌다.)
일본식 이름. 아이노 켓쇼오. 사랑의 결정.
중세식 이름. 알버트 콘라드. 대단히 뛰어난 수다스런 조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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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살. 가족(의 아픔)을 생각하기엔 어린 나이다.

그러나 11살 줄리안은 커서 배우가 돼 돈을 벌어 가족을 돕고 싶단다.

 

엄마는 이미 암으로 돌아가셨다.

아임 파인(I'm fine), 괜찮다고 이 소녀, 웃었지만 이내 눈물을 뚝뚝 흘리고야 만다.

어쩔 수 없는 11살 소녀다.

어찌 괜찮을 수가 있나. 그건 평생 괜찮지 않을 상처인데.

 

 

아이 해브 어 드림. 꿈을 그리고 있다. 이 소녀.  

돈을 벌어 밑의 세 동생들 학교에 보내주겠다는 다짐도 한다. 

꿈을 이루겠다고 약속한다.

그 약속, 꼭 지켜졌으면 좋겠다고 울음을 터트리는 13살 한국의 소녀도 있다.

 

 

줄리안 로렌쇼.

한국 아이쿱생협 조합원들이, 그들이 건립한 공정무역 마스코바도 설탕공장의 첫 설탕 생산 공정을 보기 위해, 필리핀 빈곤율 2위의 파나이섬을 찾았다. 

그들과 사흘동안 부대끼며 지냈던 11살 소녀는, 그들이 떠나자 이내 그들이 그립다며 눈물을 펑펑 흘린다.  

 

KBS2TV < 다큐멘터리 3일 : 달콤한 공생 - 파나이 섬의 이상한 설탕공장 >.

 

파나이 섬에 안티케 빨간지붕의 설탕공장이 만들어졌다.

좋은 품질의 사탕수수로 유기농 설탕을 만들 수 있는 그곳은, 공정무역이 이뤄지는 현장이다.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행복하자는 모토의 공정무역.

 

줄리안에 감정적으로 꽂혀 단순히 돕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줄을 잇겠지만,

지속가능한 삶(사회)과 사회 인프라 확충 등 공정무역이 지닌 진짜 의미와 그들을 빈곤에 빠트린 주류 경제(무역)구조에 대한 사유까지 이어졌으면 좋겠다.

 

우리가 공정무역 커피를 내리고,  

미욱하지만 공정무역과 관련한 활동을 계속하는 건,

그것이 우리가 지금 세계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공정무역 커피를 통해 세계의 일부임을 자각하고 세계는 우리의 일부임을 확인한다.

 

부디,

의사나 교사보다 마스코바도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년의 꿈이 이뤄지길. 가족들을 돕고 싶다는 줄리안의 꿈이 열매를 맺길.

그 꿈에 당신의 흔적이 보태지길.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공정무역 제품을 통해 당신은 그들과 맺어질 수 있으니까.

그것이 내가 아는 세계가 작동하는 원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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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 커피로드]② 동티모르의 역사에 사소한 흔적이 되다

탐사가 진행될수록 사물들에 대한 더욱더 많은 새로운 사실들이 인간의 마음과 정신을 꽉 채울 것이다.  -에드워드 O. 윌슨,《바이오필리아》

차가 꿀렁거린다.  

수도 딜리의 풍경과 또 다르게, 산지는 어쩔 수 없이 역시 산지다. 꾸르릉꾸르릉. 차의 꿀렁거림은 당연한 것이다. 처음 만난 이방인을 등짝에 태우기까지 했으니, 차라고 오죽하겠나. 나도 꿀렁, 차도 꿀렁. 우리는 그렇게 꿀렁거리는 것으로 하나가 됐다.  

나의 꿀렁거림은 설렘이다. 커피는 평지에서 자라지 않는다. 산지형 생물이니까, 나는 그를 만나기 위해 당연히 올라가야 한다. 평지형 인간이 산지형 생물을 만나러 가는 길, 평탄한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동티모르의 풍경은, 다른 동남아의 것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트럭이든 버스든, 사람을 꾸역꾸역 매달고 다닌다. 뒤뚱거리듯 왠지 불안해도 가기도 잘도 간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매달린다. 갖가지 자세와 표정으로 차와 합체한다.  

나도 군대에서 군트럭에 매달려봤지만, 저렇게까진 해보지 않았다. 꿀렁거려도 편하게 가는 내가 약간은 미안하다.  

달리 말하면, 동티모르는 아직 모터리제이션(Motorization) 사회가 아니다.  

자동차가 일상과 밀접하게 관련되고 광범위하게 보급돼 있지 않다. 다행이랄까. 모터리제이션이 본격 진전되면, 당신도 알다시피 자동차를 놓고, 사람을 가르는 일이 비일비재해진다. 차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부터, 어떤 차를 소유하고 있는가로 사람을 평가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저항 없는 일상이 된다.  

물론 동티모르에도 차는 꼭 필요하다. 나 같은 평지형 인간이 높은 커피 산지를 갈 수 있는 건, 차 덕분이다. 평지형 인간에게 아웃도어의 후원·협찬이 있을 턱이 없잖나. 커피를 만나고픈 마음에 자리한 것은 등정주의도 아니요, 등로주의도 아니다. 오로지, 날 받아아달라는 애원과 한 없는 겸손. 내 일상을 지배하는 커피를 키운 대지를 만난다는, 득템의 순간을 향한 종종걸음. 

다시 더 자세하게 얘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커피는 모순의 시대를 뚫고 분출한 액체다. 커피를 본격적으로 들이키기 시작한 시민사회 형성기로 돌아가보자. 시민사회의 이념적 동력이 뭔가.  

자유, 평등, 박애!  

커피라는 검은 혈액의 투여 혹은 흡입. 근대적 시민의식의 형성은 커피를 일정부분 빚졌다. 커피하우스에서 이뤄진 작당모의. 커피는 지성을 깨우고(잠을 못자게 하고), 토론을 빚었다(수다를 이끌어냈다).  

그럼에도, 그 시민사회는 자국 울타리에만 머물렀다. 그것도 주로 남성들에게만! 물론 그 시민사회는 완성형이 아니었다. (내 부박한 지식으로, 한국은 언제고 시민사회를 제대로 열어젖힌 적이 없다. 지금까지도!) 울타리 밖으로 나갔을 때, 자유, 평등, 박애라는 시민사회의 이념은 탱자가 됐다. 인종주의나 쇼비니즘(배외주의)이 그것이다. 씁쓸하지 않나? 

지들 나라의 시민사회 완성을 위해 식민지를 두고, 커피를 마시려고 식민지에 커피나무를 심게 했다. 당시 많은 열강이 그랬다.   

 

구름과 안개가 산을 에워싸고 있다. 저것이 커피가 자라는 풍경이다. 열대의 어딘가에 나는 있는 것 같았다. <아비정전>의 시작과 끝을 장식했던 필리핀의 열대우림이 떠올랐다. <아비정전>의 슬픔 띤 정조와는 달랐으나, 동티모르라고 왜 슬픔이 없겠나. 커피나무도 그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차는 오르고 또 오르고 넘고 또 넘는다. 조디와 하 대표님의 말은 통하지 않으나 말이 되는 대화는 계속 되고 있다.  

어디에도 같은 풍경이 없으니, 심심하지 않다. 중간중간 쉬면서 나는 나무를 바라봤다. 나무가 품은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물론 내 공력으론 어림도 없다. 아쉽고 슬픈 일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달렸다. 어스름도 지나갔다. 어둠이 깊다. 마우베시(Maubisse)란다. 딜리에서 약 70km 거리라지만, 척박하고 험준한 산지를 오르내리다보니 시간은 꽤나 걸렸다. 해발 1400m에 위치한 산간 마을.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밤하늘이 훌쩍 내려앉아 있다.  

우리가 묵은 곳은 과거 식민시대 포르투갈 성주의 거처였던 곳이다. 현재는 게스트하우스 비슷하게 운영되는데, 객실이 6개, 레스토랑이라고 말하기 힘든 식당이 있다. 겉으로 보아, 나름 운치가 있다. 물론 동티모르는 관광시설이나 편의시설을 거의 기대할 수 없다. 편안하고 안락한 여행? 그런 건, 동티모르에서 저 멀리 안드로메다의 얘기다.   

대신, 깊고 깨끗하다. 그 깨끗함, 우리가 길들여진 청결함과는 또 다른 것이지만.   

기분이 약간 묘했다. 포르투갈 성주의 관사라. 저 아래 동네가 보였고, 성주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통치를 했던 것 같다. 모든 것이 오래되고 낡았다. 시간이 멈춘 것 같다.  

포르투갈은 시민사회의 형성이 부실했었다. 동티모르를 식민지로 삼았을 무렵인 16세기, 포르투갈은 해양왕국으로 자리매김할 시점이었다. 동티모르도 포르투갈의 식민지 경영의 희생자였다. 포르투갈은 식민지를 통해 노예 획득은 물론 주요 농산물을 거둬들였다. 커피도 나중에 포함되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곳의 성주도 본국에 가져갈 커피를 관리하는 것이 가장 큰 임무였을지 모른다. 해발 1400m의 깊고 깨끗한 아라비카 커피를 찾는 포르투갈 왕조와 귀족들의 명령 혹은 앙탈 때문에.  

덕분에 동티모르 사람들은 노예처럼 일을 했을 것이다.  

성주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마지못해 임무를 완수했지만 동티모르 사람들에게 관대했을까, 아니면 채찍을 들고 노동을 착취했을까. 

해상왕국 포르투갈에는 막대한 부가 쌓였으나 국부 유출 등으로 부르주아 계급이 형성되지 못했다. 즉, 시민계급이 만들어지지 못했다. 그리고 18세기 후반 개혁 시도 등이 있었으나 봉건세력의 반발로 무위가 됐고, 프랑스혁명 등의 영향이 파급된 19세기에도 중산층은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  

동티모르가 포르투갈의 식민에서 벗어난 것은 20세기 포르투갈 내부의 혼란에 힘입었다. 20세기 초 국왕 왕살과 공화파의 혁명으로 공화제가 성립했으나 거듭된 쿠데타와 제1차 세계대전 참전에 따른 경제위기 등으로 혼란 그 자체였다.  

마우베시의 성주도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본국에 돌아가지 않기로 마음먹고 이곳 사람들에 동화한 시간이 많은, 널찍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동티모르의 자연과 커피에 취해 그는 그냥 눌러앉기로 했을지 모른다. 그곳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곳이다.  

저녁을 먹어야 했다. 배가 고팠고, 동티모르에서의 첫 식사. 좋았다. 그 이상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쌀이 있었고, 고기가 있었으며, 감자가 자리하고 채소가 함께 했다. 멋진 저녁식사다. 허나 이 모든 것은 커피 한 잔을 하기 위한 성찬! 

저녁만찬을 마친 우리는 깊고 깨끗한 마우베시의 커피를 손에 들고 입을 적셨다. 동티모르가 내 속을 파고 들었다. 이것은 탐사요, 탐험이다. 동티모르에서의 첫밤이 익어가고 있었다. 커피가 마음을 흘렀고, 이야기가 새어나왔다. 아마도 이곳의 마지막 포르투갈 성주의 유령도 귀를 쫑긋 세워 우리와 함께 였을 것이다. 그의 희미한 웃음소리를 나는 들었다! 

양동화 간사의 동티모르 이야기는 그만큼 흥미진진했다. 특히 애정편력사. 그러니까, 다음 이야기는, 그녀는 어떻게 세계 각국의 남자들을 울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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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마실까?"... '천일의 약속'을 맺은 시작

   
 

사실, 거의 모든 커다란 위기 때 우리의 심장에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따스한 한 잔의 커피인 것 같다.       - 알렉산더 왕(?) 

 
   

밤 9시, 늦은 시간이다. 커피를 마시기엔. 물론, 커피 마시면 잠 못잔다고 징징대는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얘기다.

누군가에겐 밤 9시가 깨어나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정신이 또렷해지고, 이성과 감성이 서로를 견제한다. 세계가 새롭게 열리기도 하는 창조의 시간.

우리 커피하우스를 찾는 많은 사람은 후자의 시간일 것이다. 나는 그 구체적인 하나하나를 위해 단 하나의 커피를 내린다. 그들이 창조의 비행기를 몰다가 잠시 숨을 고를 때, 창조의 윤활유를 공급하는 공중급유기.  

밤 11시에 도달한 시간이었다.

"에스프레소 도피오 주세요."

이 시간, 에스프레소, 흔하지 않은 경우다. 그것도 도피오라니. 50대로 보이는 여인은 전혀 주저함이 없었다. 말투는 단호했고, 어떤 옵션도 필요없다는 투였다. 설탕 혹은 시럽, 크림이나 (스팀)우유도, 꼭 사치라는 뉘앙스. 이럴 땐 말 없이 추출하는 수밖에. 그저 황금빛 에쏘 도피오를 놓으면 그 뿐이다.  

알레고리.

표면에 드러난 것으로 내면의 숨은 뜻을 전달하거나 해석하는 방식이다. 그건 곧 하나의 의미만 있는 게 아니란 얘기다. 주관성이 개입될 여지가 많다. 다층적이고 모호한, 풍부한 해석이 가능하다. 헛다릴 짚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천일의 약속>에는 커피가 알레고리가 되는 지점(들)이 있다. 아마 대부분 시청자들은 그런 생각, 않을 것이다. 하긴 내가 괜한 꼼수다. 커피를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에 갖는 혼자만의 알레고리. 작가의 의도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의 커피를 통해 나는 상상의 나래를 편다.

"자살 폭탄을 짊어진 놈"같은 얼굴을 하고 있던 지형(김래원)이 결국 폭탄을 터트렸다. 충분히 터질 줄, 누구나 알았던 그것. 향기(정유미)를 향한 파혼 선언. 정혼자가 있음에도 사랑했던, 아니 사랑하는, 그러나 기억을 잃어가는 슬프도록 아름다운 여자, 서연(수애) 때문이다.

뭐, 수애 정도라면 나라도 그러겠다, 고 말하지만, 알다시피 폭탄의 사정거리는 주변부 싹쓸이! 직격탄을 맞은 지형의 엄마 수정(김해숙)은 용케 연락처를 알아내어 득달같이 서연을 찾는다. 

  


수정과 서연이 처음 마주대하는 순간. 서빙이 이뤄지는 고급스런 커피하우스다.

"어, 나는 에스프레소 더블, 서연씨는?"

어떤 차를 마실지 묻는 서연의 질문에 한 치의 주저함도 없는 단호한 말투다. 당연히 그것이어야 한다는, 그것이 아닌 다른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는.

알렉산더 왕의 것인지 의심(BC에 커피를 마셨을까?)이 가는, 커피에 대한 말이 떠올랐다. 커다란 위기, 심장에 필요한 것, 한 잔의 따스한 커피. 커피 메뉴로 위기의 정도를 가늠한다면, 에스프레소, 그것도 도피오는 최강이다.  

곧 그것은, 수정여사의 마음이다. 아들의 폭탄같은 파혼선언으로 벌렁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고 싶은. 빠르게(express) 내린 에스프레소마냥 위기에서 빨리 벗어나고, 특별히 너(손님)를 위해(especially for you) 만든 에스프레소(Espres)를 마시는 날 봐서, 내 애원을 들어달라는.
 
에스프레소 더블이 내겐 그런 알레고리였다. 폭탄 맞은 여자의 어떤 안간힘 같은 것.

그렇다면, 알츠하이머와 싸우는 여자의 주문은 무엇일까.

에쏘 더블을 시킨 수정이 뭘 마실지 묻자, 서연은 살짝 벙 찐 표정을 짓는다. 엇, 이게 뭐지? 하는 얼굴. 처음 보는, 심각하거나 불편할 수 있는 관계의 사람이 에쏘 도피오를 시킨다면, 충분히 흠칫 놀랄 수도 있겠다. 에쏘가 주는 알레고리 때문이다.

서연은 곧 이를 수습하면서 아메리칸을 주문한다. 에쏘와는 확연하게 다른 커피. 그것이 두 사람이 현재 처한 세계의 다름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아메리칸은 진한 커피를 싫어하는, 아주 연하게 추출한 커피다. 드립이나 커피메이커로 내려서 거기에 다시 물을 섞은. 나는 당신이 왜 온 것인지 모릅니다, 라고 말하는 듯한.
 

그것은 유럽과 미국의 차이이기도 하다.

유럽의 이탈리아나 프랑스 등지에선 에스프레소(도피오)를 즐기나, 미국은 매우 엷은 아메리칸을 선호한다. 그래서 아메리칸이다. 레귤러보다 더 연하다. 
 
그녀는 지형과 나눈 사랑의 단초가 된 커피를 마실 때도 해롭다며, 오래 살아야 한다며 설탕을 넣지 않는다고 농담처럼 말한다. 아메리칸 역시 설탕이나 크림을 넣지 않는다. 그녀의 커피 취향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맑고 자극적이지 않다.

두 사람의 관계와 성향이 커피를 통해 드러나는 순간. 두 사람이 처한 상황과 이야기를 커피를 통해 다시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알게 된 서연이 지형을 만나 오피스텔로 가는 그때. 그 위태롭고 애처로운 순간에도 서연은 익숙하게 커피를 갈고 추출한다. 두 사람의 익숙한 리추얼. 그러면서도 위기에 그들의 심장에 필요한 따스한 커피 한 잔.

날마다 바보가 되어가는 치매 환자인 여자와 그녀를 사랑해서 다른 여자와 파혼한 남자에게 필요한 것은 커피 한 잔이다. 그것은 어쩌면 안간힘이다. 왜 저들이 저런 상황에서 한가로이 커피를 마시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사람은, 커피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11시에 가까운 시간, 에쏘 도피오를 마셔야 하는 저 여인의 심연도 그럴 것이다. 내가 구체적으로 알진 못하나, 그녀의 심장이 근본적으로 필요로 한다. 나는 그것을 인정하기에 황금빛 'especially for you'를 그녀의 심장 앞에 대령한다.

커피의 심장이 그녀의 심장을 관통한다. 오늘, 그것으로 충분하다.

참, 서연의 사촌오빠 장재민(이상우)이 초반에 서연에게 아이스커피와 따뜻한 커피를 들고 가서 둘 중의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

그걸 놓고 자상하다고 많은 사람들이 얘기한다. 허나,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서연을 아끼고 보살펴주는 척 하는데, 그녀의 취향조차 모른다? 예술가적 예민함과 섬세함을 지닌 서연이라면, 아마 아이스든 따뜻한 음료든 자기 것이 있을 것이다. 그걸 모르고 냉온 모두를 들고 간 것은 무심함을 감추기 위한 행동이다!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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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1월10일, '나의 가장 빛나는 죄악' 랭보 한 잔
    from 맺고,따고,볶고,내리고,느끼고,사랑하라! 2011-11-10 02:51 
          세상을 바꾸기 위해선 먼저 인생을 바꿔야 한다. - 장 니콜라 아르튀르 랭보       오늘, 특별히 이 커피콩을 볶는다. 에티오피아
 
 
 

   
 

사물과 동물의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여전히 당신이 휘말릴 수 있는 우연한 일들로 가득합니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중에서

 
   

 

소설가 유재현의 쿠바 기행문 《느린 희망》이었다. 쿠바인들의 수도 아바나에 발을 디디기 직전, 인상적인 표지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 표지판은 이렇게 말한단다.  

"모든 쿠바인들의 수도에 오셨습니다."  

'쿠바'의 수도가 아니라, '쿠바인'들의 수도. '人'이라는 말 하나만 덧붙였는데, 그 느낌이 확 다르다. 국가가 아닌 사람을 앞세우는 발상이라니, 놀랍고 재밌다. 아마도, 체 게바라가 쿠바 사람들과 함께 이룩한 쿠바 혁명의 영향이 아닐까, 나는 진단했었다. 

그 뒤, 어디라도 갈라치면 나는 그곳의 표지판을 본다. 허나, 아직 쿠바를 만나지 못한 탓일까. 나는 다른 어디에서도 사람을 앞세우는 표지판을 보진 못했다. 어설프게라도 우리의 공정무역 커피하우스에선 'OOO OO지역 사람들이 만든 커피'라고 알려주면서 자족하는 정도랄까.  

물론 동티모르라고 다르진 않다. 비행기에서 땅에 발을 디디자, 제일 먼저 반기는 말은 'WELCOME TO TIMOR-LESTE'다. 동티모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래도 저 말이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를 알려준다. 아, 진짜 동티모르 사람들이 사는 곳, 동티모르 커피가 자라는 곳에 왔구나.  

하늘은 맑았고, 구름은 복스러웠다. 우리의 발걸음을 환영해주는 듯한 태도라고, 멋대로 생각한다. 언젠가 내가 동티모르에서 동티모르에 온 사람들을 환영하는 인사말을 건넨다면, 동티모르 커피 한 잔을 주면서 이리 말하리라. 

"여러분이 마시는 동티모르 커피가 자라는 나라에 오셨습니다." 

 그 '커피'라는 말에는 모든 것이 들어있다. 땅, 햇빛, 구름, 비, 안개 등과 같은 자연 그리고 사람들. 한 잔의 커피는 그렇게 '사물과 동물의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우연처럼 휘말리고 결합한 관계의 결정체다. 그 관계는, 다시 "커피 한 잔 하자"는 말로 새끼를 친다. 관계는 관계를 낳는다.   

동티모르 사람들의 수도에 있는 딜리공항은 작고 소박했다. 한국의 어느 작은 도시의 공항보다 더 작고 낡았다. 시골의 터미널 수준이라고 보면 되겠다. 낯섦과 설렘이 한 공간에서 뒤엉킨다. 숨을 한 번 들이쉬고, 동티모르를 느껴본다. 한국과는 확연히 다른 공기가 목구멍을 넘어간다. 그렇다고 커피 냄새가 날리는 없다.   

우리와 다르지 않지만, 피부가 약간 더 검은 사람들이 공항을 메우고 있다. 몇 년 전의 내전 탓인지, 군복 비슷한 것을 입은 요원도 보이고, 시골 터미널의 어수선함을 닮았다. 그들이 우리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것 같진 않다. 다만 아이들의 시선은 다르다. 경제적으로 가난한 나라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 펼쳐진다.   

애처로움을 품은 똘망똘망한 눈으로 여행객에게 다가서는 아이들이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충분히 알 수 있다. 십 수년 전, 인도에 처음 발을 디딜 때, 나는 그것에 무척 당황했었다. 기브 미 원 달러. 몇 명의 아이들이 나를 에워싸고는 하나같이 외쳤다. 어찌할 바를 몰라, 줘야 할 지 말아야 할 지의 문제가 아니라, 이 난국을 어떻게 타개해야 하는 것인지 머리가 하얗게 탈색됐던 인도의 첫밤이었다.  

뭣보다, 그 아이들은 너무 일찍 어른이 된다. 원하는 바도 아니요, 돈벌이를 위해 어른들에게 등을 떠밀려 나와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지어야하는지, 어떻게 해야 동정을 살 수 있는지, 곧 스스로 알아차린다. '아이가 아이답게 자랄 수 없는' 환경은 아이를 어른이 되게 만든다. 이 초롱초롱한 아이의 눈에서 고단하고 애처로운 삶의 면모를 엿봐야 한다는 사실도 우리를 슬프게 만든다. 

딜리공항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일행이 있었다.  양동화 전국YMCA전국연맹 간사와 현지인 조디. 이 낯선 땅에서 의지할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안도할 일이기도 하다.  

5년 전, YMCA가 동티모르에서 공정무역 커피사업을 전개할 무렵, 양 간사는 산지 개발과 커뮤니티 조성을 위해 이곳에 왔다. 이십대 후반에 동티모르를 자원한 양 간사는 어느덧 삼십대가 돼 있다. 국내에서 두 번 가량 본 적이 있어 나와는 구면이다. 건강한 얼굴의 그녀를 보니 좋았다.

그 옆의 조디. 잘 생기고 착하게 생긴 청년이다. 인도네시아 출신인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동티모르에서 YMCA의 공정무역 커피사업을 위해 일하고 있단다. 영어조차 쉬이 알아듣지 못해 의사소통이 쉽지 않지만, 우리는 지구인 아니던가! 반갑게 인사를 하고, 웃음으로 서로를 확인한다. 

인사를 대강 마치고, 두 대의 차에 나눠타고 딜리공항을 떠난다. 며칠 후면 다시 만날 곳이겠지만, 여기(사는 곳)가 아닌 어딘가에 왔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확인하게 되는 장소가 공항이다.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됐다는 것을 확인해주는 장소 또한 목적지의 공항이다.  

그곳을 떠난다. 딜리 시내를 향한다. 동티모르의 첫 기착지인 마우베시를 향하는 길이다. 험한 길을 달려야 하는 여정, 오프로드용 차는 왠지 믿음직하다. 나는 두 사람과 함께 조디가 운전하는 차를 탔다.  

차창을 통해 가난이 덕지덕지 묻은 풍경이 지나간다. 여느 동남아시아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의 모습 또한 엇비슷하다. 섬나라이며, 오세아니아에 속한다지만, 그 모습은 영락없이 동남아시아인이다. 물론, 그들은 그런 나의 이방인적인 시선에 불쾌할지도 모르겠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한국, 일본, 중국 사람을 구분 못하지만, 우리는 작은 차이를 통해 그들을 구분할 수 있는 것처럼.  

수도라지만, 높은 건물도 없고, 도로 포장도 시원찮다. 바깥 풍경은, 만만디 그 자체였다. 덥고 가난한 나라의 여유로움 혹은 나른함이 도시를 휘감고 있었다. 느릿했고, 무심한 듯 흘러가고 있었다. 곳곳에서 노점상이 진을 치고 있었고, 허름하고 청결해 뵈지 않는 상점들도 도열해 있다. 집도 대충 지은 듯 허술해 뵌다. 이런 시각은 아마 지나치게 깔끔하고 정결하게 구획된 자본의 질서에 익숙해진 탓일 게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도로를 달리는 차에서 나는 하나하나 놓치지 않겠다는 듯 밖을 바라본다. 나와 동티모르는, 동티모르 사람들은 어떤 우연으로 이렇게 마주한 것일까. 어떤 우연한 일들이 함께 할까. 궁금하고 설렜다.  

테튬어라는 언어를 사용하고,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최하위권인 나라의 사람들. 오랜 식민의 기억과 독립의 짜릿함도 잠시, 그들은 어쨌든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가는 구체적인 존재들이다. 이방인의 해묵은 관점으로 그들을 재단하려는 사고를 막아야 했다. 나는 이것만은 세상 누구에게나 똑같으리라 믿는다. 하루를 잘 살아내는 일이 가장 어렵고 중요하다는, 변치 않을 사실.  

그러고보면 그들과 우리는 똑같은 '하루'를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의도적으로 동티모르 사람들의 삶에 틈입한 이방인이지만, 서로 우연한 일들에 휘말린 동지다. '커피'라는 관계의 창을 통해 우리는 이렇게 만난 것이다.  

동티모르가 내 삶의 사정권 안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내가 이들을 만날 수 있었을까. 동티모르라는 말이 나오면, 나는 솔깃했고, 더듬이를 세웠다. 그리고 마침내 이렇게 찾아온 것이다.  

장병원 영화평론가는 말했다. "타인의 사정에 무심한 개인은 뿔뿔이 나뉜 자신의 영역 안에서 그들만의 진실을 쌓기 마련이다."  

아마 그랬다면, 나는 동티모르를 그저 '내전이 일어나고 있는 위험한 나라'라고만 생각하고 어떤 더듬이를 세울 노력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내가 이곳에 와 있다는 사실은 내 삶에 동티모르를 끌어들였고, 나 역시 동티모르 사람들의 역사에 아주 작고 사소한 흔적이 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그런 풍경에서도 차 안에서는 즐겁다. 옥천에서 장애인들을 고용해 빵을 만드는 하 대표님의 구수한 입담 덕분이다. 운전을 하는 조디의 옆자리에서 말도 통하지 않는데, 그들은 대화를 한다. 뒷자리에서 그걸 보면서 신기했다. 서로를 알아듣고, 이야기를 나눈다. 동티모르는 또 다른 신기한 경험을 하게 만든다.   

낯선 땅이라는 두려움보다 설렘이 점점 더 크게 자리를 잡아간다.  

 

딜리의 바다를 봤다. 저 바다는 내 고향 바다와 잇닿아 있을 것이다. 이십 수 년 전 봤던 그 바다가 흘러흘러 지금 여기에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딜리를 차츰 벗어난다. 길이 점점 더 울퉁불퉁해지더니 산악지대로 차츰 접어든다. 모험은 본격적으로 이제부터다. 커피야, 기다려라. 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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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동티모르 커피로드]③ 포르투갈 성주는 왜 동티모르에 눌러 앉았나?
    from 맺고,따고,볶고,내리고,느끼고,사랑하라! 2011-11-19 02:57 
    탐사가 진행될수록 사물들에 대한 더욱더 많은 새로운 사실들이 인간의 마음과 정신을 꽉 채울 것이다.- 에드워드O.윌슨,《바이오필리아》 차가 꿀렁거린다.수도 딜리의 풍경과또 다르게,산지는 어쩔 수 없이 역시 산지다.꾸르릉꾸르릉. 차의 꿀렁거림은 당연한 것이다.처음만난 이방인을 등짝에 태우기까지 했으니, 차라고 오죽하겠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