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51 | 5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수학을 무지 싫어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수학 선생님은 우리들이 알아듣거나 말거나 혼자 열심히 칠판에 문제를 푸시고는 알았냐? 물어보시고

몰라요~~하고 우리가 대답하면 왜 몰라? 하고 칠판을 지워버리면 끝인  그런 분이셨다.


2학년 때 수학선생님은 안타깝게도 1학년 때 그 분이셨고.......


3학년 때는 여선생님이셨는데 우리 담임이셨고, 이 분은 정말 열심히 가르쳐주시고 모르겠다는 아이가 있으면 몇 번이고 다시 설명해 주시는 분이셨다.

3학년 때야 비로소 수학도 조금은 재미있네? 하고 생각해봤지만, 이미 수학혐오증에 걸려버린 나를 치유하기에는

상당히 늦은 감이 있었다.


지금도 숫자가 많이 연관된 일이면 몸속 깊은 곳에서 거부감이 무럭무럭 피어오르곤 하는 나.......


그런 나에게, 숫자가, 수식이, 기호가

아름답고 따뜻한 것으로 다가오게 만든 책. <박사가 사랑한 수식>.




주인공 "박사"는 수학자인데, 17년 전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치고 뇌의 기억기능에 이상이 생긴 사람이다.


예전 기억은 사고를 당한 17년 전에 멈춰있고, 새로운 기억은 80분밖에 지속되지 않는다.

마치 머릿속에 80분짜리 비디오테이프가 들어있어서 새로운 것을 녹화하면 이전에 녹화했던 것이 지워져 버리는 것처럼.......

매일 오는 파출부도 그에게는 매 번 새로운 사람으로 여겨질 뿐이고, 심지어 파출부가 시장에 갔다가 80분이 지나서 돌아오면 다시 처음 인사부터 시작해야 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인사대신 그는 각종 숫자를 물어본다.  “자네 생일이 언제인가?”

“신발 치수는 몇인가?” 등등.

박사의 집에 10번째로 오게 된 파출부 ‘나’는 박사의 이런 모습을 열린 마음으로 대하고, 박사를 통해 수의 아름다움, 다정함, 그런 것들을 알게 된다.

특히 ‘나’의 생일이 2월 20일이라는 얘기를 듣고 박사가 대학 때 학장상으로 받은 자신의 시계 뒤에 새겨져 있는 숫자, 284와 220과의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일깨워 줄 때 어떤 수와 수 사이의 관계가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깨닫고 내가 받은 감동이란.......

(어떤 관계인지는 밝히지 않는다. 책 읽는 재미가 확 떨어질 수 있으니까.)


박사가 ‘나’의 열 살 난 아들을 처음 만나 머리 위가 평평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 말 - “너는 루트다. 어떤 숫자든 꺼려하지 않고 자기 안에 보듬는 실로 관대한 기호, 루트야.”

- 을 통해서는 그렇게 싫어하기만 했던 기호중의 하나에 불과하던 루트가 그렇게 따스하게 다가올 수가 없었다.


박사의 양복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메모지가 클립으로 여기저기 고정되어 있다. 80분밖에 지속되지 않는 자신의 기억력을 보충하기 위해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하나하나 적어서 달아놓는 것이다.  무엇보다 잘 보이는 곳에는 다 닳아빠져 너덜너덜해진 메모지가 붙어있다.

“내 기억은 80분밖에 지속되지 않는다.” 아침마다 잠에서 깨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곳에 있는 그 메모를 읽고 절망에 흐느끼는 박사의 모습은 얼마나 안타까운지.......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면 읽을 것이 없어질 테니 여기서 그만.

한 마디만 더 하자면, ‘나’와 그 아들 루트와 박사 세 사람이 어떻게 이런 제약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우정을 쌓아 가는지 꼭 읽고 확인해 보시라는 것.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이에스 IS 1 - 남자도 여자도 아닌 성
로쿠하나 치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5년 7월
평점 :
품절


그 동안 바빠서 통 보지 못했던 책들을 이제 열심히 보리라 다짐하고, 오랫만에 본 책들 중 하나.

전에 4권까지 보고 이제 5권을 봤는데, 새삼 소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IS란 Intersexual의 약자로, 이 책의 부제인 '남자도 여자도 아닌 성'이란 말을 보면 대충은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중성(中性), 간성(間性), 혹은 양성구유 등 여러 가지 말로도 불리우고 있는, 남자라고도 여자라고도 할 수 없는 성의 형태.  

IS에도 여러 가지 형태가 있는데, 외성기는 둘다 가지고 있으면서 외모는 남자나 여자 어느 한 쪽에 가까운 경우가 있고 외성기는 어느 한 쪽을 가지고 있지만 몸속에 정소나 난소를 가지고 있어서 외모와 다른 2차 성징을 보이는 경우도 있고,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대부분의 IS들은 태어났을 때 부모가 어느 한 쪽의 성을 선택해서 나머지 성의 성기를 제거하는 수술을 하고 IS임을 비밀로 하고 키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때로는 자라면서 선택받지 못한 성의 특징이 강하게 나타나서 성호르몬제를 평생 투여해야 하기도 하고....

 쉬쉬하는 분위기여서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지만 IS는 200명에 한 명꼴로 태어난다고 하니 사실은 굉장히 많은 수의 사람들이 IS라는 것이 된다. (이 부분에서 많이 놀랐다. 정말 영화나 소설에서나 등장하는 줄 알았고 아주 극소수만이 존재할거라 생각했는데)

 주인공 하루는 IS이다. 당연히 부모는 당황하고 슬퍼하지만 IS인 하루의 존재 자체를 긍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하고 하루를 IS 자체로 숨김없이 키우기로 한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하루는 IS입니다"라고 당당히 밝히고 그대로 인정해 주기를 요구한다. 당연히 어려움도 많고 주위의 시선에 힘들어 하기도 하지만 가족들 모두가 하나가 되어 하루를 지키고 밝게 키운다.  하루는 어려서는 보통 남자아이 같아서 남자친구들과 축구도 하고 스스로도 남자라고 생각하고 자라지만 사춘기가 되면서 생리를 하는 등 여성의 특징을 보이기 시작한다.  호적을 여자로 정리하고 여학생으로 중학생이 되지만 스스로는 여자인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주위 친구들에게도 IS임을 밝히고 현실과 맞서 나가는데 대부분이 이상한 눈으로 보고 혹은 어떻게 대해야 할지 당황스러워서 피해버리기도 하지만 IS인 하루를 인정하고 격려해 주는 친구도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한다.  때로는 울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하고 방황하기도 하지만 힘써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하루......

 이 이야기는 IS에 대한 홍보만화도 아니고 딱딱한 설명을 늘어놓는 만화도 아니다.  단지 하루와 하루 가족들이 어떻게 주어진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힘써 살아가는지 보여주는 휴먼드라마라고나 할까? 

 그림은 절대 내 취향이 아닌데 무거운 주제를 과장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담담히 보여주는 솜씨가 빼어난 책인 것 같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이렇게 다양한 주제의 만화를 접할 수 있다는 것이 언제나 놀라울 뿐이다. 

하루는 IS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괴물 보듯 하거나 신기해 하거나 불쾌해 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그때를 위해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하루 화이팅!

힘내라, 세상의 많은 하루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우타노 쇼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다른 분들의 리뷰를 보며 어떤 반전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나름대로 정신 바짝 차리고 읽었는데, 결국 막판엔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허 참....

사실 속았다긴 해도 작가가 속였다고는 할수없고 "단지 말하지 않았을 뿐" 이고 내가 멋대로 그렇게 생각해 버린 것이지만, 그렇게 만든 작가의 솜씨가 놀라운 것이다.

그리고 읽으면서도 그랬지만 결말부분을 보며 그 때문에 더욱 주인공의 매력에 풍덩 빠져버리고 말았다. 

처음엔 500여페이지의 분량과 미스테리라기엔 너무나 서정적인 제목에 어딘가 불안감을 느끼며 시작된 나의 책 읽기는 딱 이틀만에 흐뭇한 마음으로 끝을 맺었다.  때론 이런 나쁜 놈들! 하며 치를 떨고, 때론 불안해 하고 때론 갸웃거리며 행복했던 이틀....

다시 알라딘에 들어와 우타노 쇼고의 다른 작품을 찾았는데 나오는 것은 <벚꽃지는...> 뿐..... 서운타.

빨리 다른 작품을 읽을 수 있기를.....

사족인데, 내가 봄에 가장 좋아하는 것은 바로 벚꽃 지는걸 바라보는 것이다.

너무나 아름다왔던 모습 그대로 눈처럼 흩날리는걸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두근하다..... 정말 사족이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ING 핑 - 열망하고, 움켜잡고, 유영하라!
스튜어트 에이버리 골드 지음, 유영만 옮김 / 웅진윙스 / 2006년 1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옛날 어딘가의 연못에 살던 한 개구리의 이야기이다.


점프하는 것을 너무나 좋아했던 개구리 핑은 연못이 점점 말라가는데도 여전히 만족하고 살고 있는 다른 생물들과 달리 꿈-더 나은 삶을 향한 열망을 지닌 개구리였다.  일찍이 갈매기 조나단이 그랬던 것처럼.


마침내 연못물이 모두 말라버렸을 때, 핑은 미지의 길에 도전할 것을 선택하고 점프하고, 점프하고, 점프한다.  


그러다가 기를 쓰고 점프해도 넘어설 수 없는 나무장벽을 만나고 계속되는 실패에 절망하고 주저앉는다. 

바로 그 때 핑의 인생에서 (개구리생에서?) 가장 중요한 길잡이가 되어준 늙은 부엉이의 목소리를 통해 무언가 ‘되기(be)' 위해서는 반드시 무언가를 ’해야(do)‘ 한다는 것을 배우고 끊임없이 점프한 끝에 그 장벽을 넘어서게 된다.


이후 핑은 부엉이를 스승(mentor)으로 삼아 훈련하고, 불확실성과 싸우고, 비전을 보며 도전해 황제의 정원으로 가기위해 누구도 건너지 못한 철썩강을 건너려 한다.

그의 생애 최고의 점프를 해서 막 철썩강을 건너는데 성공하려는 순간, 스승 부엉이는 매의 발톱에 채여가고, 그에 대한 충격으로 핑은 급류에 휘말린다.

죽음을 맞기 몇 초 전, 부엉이가 했던 말이 환청처럼 떠오르고 - “그냥 너 있는 그대로, 마치 물이 된 것처럼.......” - 핑은 그 말대로 물의 흐름에 자신을 맡긴다.


핑은 철썩강을 건너는데 성공했을까?


황제의 정원에 다다랐을까?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한 신문기사를 소개한다.

중국의 ‘황제의 정원’ 내 녹지에 형성되어 있는 오래된 습지대에서 막강한 뒷다리힘과 점프능력을 가진 새로운 개구리 종이(한 마리뿐 이지만) 발견되었다는 내용의......


어떤가?

감동적이지?


하지만 나란 인간은 어딘가 단단히 꼬인게 틀림없어 많은 사람을 감동의 도가니에 빠뜨렸다는, 요즘 내내 베스트셀러 순위 윗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 책에서 그렇게 큰 감동을 받지 못한 것이다. 우째....


가장 큰 이유는, 이 책이 서문에서부터 설교하려든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도 감동 운운하며 쓴 리뷰들이 많아서 음, 한 번 읽어볼까? 하고 시작하자마자, 당신은 ~십니까? 지금 당장 ~ 하십시오! ~하지 마십시오. ~이어야 합니다!  같은 조의 말들이 줄줄이 이어지자 내 이마에 힘줄이 팍! 돋으면서 머릿속에서는 짜증,짜증,하고 불이 깜빡이기 시작한 것이다.


핑의 이야기 역시 담담하게 한 개구리의 여정을 이야기해 주는 분위기였다면 차라리 더 풍성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을텐데,(나도 느낄줄 안다고요!) 사이사이 감동받고 느끼고 결단하길 촉구하고 강요하는 인상의 구구절절한 설명이라니.....

그래, 딱 그 분위기야!  교회에서 부흥회하면서 한마디하고 믿습니까? 한마디하고 믿으시면 아멘하십시오! 하는 그 분위기......

그런 느낌을 받자마자 또 빠직! 하고 머릿속에서 불꽃이 튀는 것이다.


이러니 난 무지 꼬인 인간이 분명하지.


거기다 220여 페이지의 책이 181페이지에서 내용이 끝나는데, 나머지는 도대체 뭔가 했더니 그 핑의 여정을 처음부터 다시 정리하고 친절하게 도표로 그리기까지 하고 거기다 당신은 지금 ~ 하고 있는가? 식의 질문들까지 이어지는 부록이라니......


게다가 영 맛없는 그 글투는...... (참고로, 난 김탁환 씨의 소설들이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그 글 자체가 너무나 맛이 있어서 즐겨 먹는다.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 같은 책을 밤참으로 드셔 보시는게 어떨지?)


이 책을 읽고 감동의 물결에 휩싸인 분 들이 태클을 걸어와도 할 수없다.

난,

이렇게 배배 꼬인 인간이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필라멘트 Filament - 유키 우루시바라 작품집
우루시바라 유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음... 뭐라 말해야 할까....?

너무나 오랫동안 글을 안 쓰며 살아놔서.....

잘 표현하지는 못하겠지만, 여러 영혼들이 ---- 때로는 죽은 자가, 때로는 살았으나 꿈의 세계에 갇혀 있는 자가, 또 때로는 삶과 죽음 사이에서 헤매이는 자들이 ---- 나오고, 그들을 바라보거나 감싸거나 손잡아주는 이들이 나온다. 그 이야기들은 너무나 쓸쓸하고 아릿한 아픔이 있지만, 유키 우루시바라의 연필 데생같은 그림들은 거칠면서 따뜻하고, 이 책의 내러티브는 한 번 목청높이지 않고 조근조근하다.

그냥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난 이 책이 정말 좋다, 고 말할 수밖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51 | 5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