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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붕괴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05년 11월
평점 :
1.
<총, 균, 쇠>로 유명한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문명 3부작의 두번째 편, <문명의 붕괴>입니다. <총, 균, 쇠>의 경우 서울대 학생들이 가장 많이 대출해 간 도서 1위로도 유명하기도 하고, 워낙 그 작품의 제목 자체가 가진 강렬한 느낌 때문에..... 정작 그 책을 읽은 사람은 많지 않아도 누구나 알고 있는 저술이기도 하지요.
문명 3부작의 시원인 <총, 균, 쇠>에서 문명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뤘다면 오늘 소개드릴 <문명의 붕괴>는 제목 그대로 그 문명이 붕괴될 수밖에 없던 근원을 탐구하는 책입니다. 그렇다면 왜 <총, 균, 쇠>가 아니라 <문명의 붕괴>를 소개하느냐.
단순합니다. 더 좋았어요. 전작은 아이디어가 가지는 탁월함에서 톡톡 튀는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면 오늘 소개드릴 책은 묵직하고 담백한 편입니다. 그럼에도 훌륭한 번역과 유려한 통찰이 더욱 잘 드러나는 걸출한 작품이랄까...
2.
주석을 제외하면 책은 730여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책입니다. 한 호흡으로 읽을 수 있는 종류의 책은 아니에요. 그렇다고 발췌독을 하기에는 서사마저 훌륭한 작품이라 역시 정공법으로 차근차근 읽어나가는 맛이 있는 책입니다. 역시나 이번 작품도 탁월한 프롤로그로 시작합니다. 두 목장 이야기라는 제목이 붙었군요. 그러니까 헐스 목장과 가르다르 목장이 소개되고 있는데 왜 두 목장 중 하나는 지금까지도 활기찬 모습을 가질 수 있었고 나머지 한 목장은 이미 500년 전에 버려진 목장이 되었을까, 그 이유를 간략하게 서술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문명에 대입하는 방식으로 큰 울림을 주며 책의 포문을 열게 되는데요. 이런 식의 확장은 제러드 다이아몬드 특유의 탁월함이기도 하고 그것들이 매번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쓰이는 걸 볼 때마다 감탄을 감추기 힘들어요.
책을 이루는 페이지와 대조적으로 구성은 단순합니다. 총 4개의 주제로 나뉘어요. 1부는 몬태나의 현실, 2부는 과거 사회의 붕괴, 3부는 현대 사회의 위기, 4부는 지구의 미래를 위하여....그러니까 연대순으로 글이 진행되는데 거기서 차근차근 설득력을 얻어서 결과물을 응집해내는 저자의 단단함이 돋보입니다.각 부는 평균적으로 4장 정도의 소주제로 나뉘게 되는어 총 16장을 이룹니다. 그러니까 각 장마다 가지고 있는 컨텐츠의 밀도고 굉장히 높아요. 저자가 평생을 바쳐 얻어 온 사료들을 이 3부작에 때려 부었으니 그럴 수밖에....
3.
“유럽이 그린란드에 수출한 물질적 상품만큼 중요한 것은 기독교인이자 유럽인이라는 정체성, 그 심리적 수출품이었다. 여기에서 그린란드 사람들이 그린란드의 환경에 완벽하게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붕괴라는 비극을 맞게 된 이유가 찾아지는 듯하다....중략...
이쯤에서 우리는 다시 궁금증을 갖게 된다. 그린란드 사람들이 청동종의 수입을 줄이고 연장을 만들 수 있는 철을 더 많이 수입했더라면, 이누이트족의 공격에 방어할 수 있는 무기를 수입했더라면, 위기를 맞았을 때 이누이트족의 고기와 교환할 수 있는 상품을 수입했더라면 더 나은 삶을 살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린란드 사람들이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던 문화적 유산은 고려하지 않은 채 그들에게 닥친 비극만을 두고 이런 의문을 품는 것이다....-p345“
그러니까 그린란드 사람들은 유럽인이라는 본인들의 정체성 못지 않게, 기독교인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려고 애썼습니다. 청동 촛대, 금반지, 청동으로 된 종 등을 수입한 것이 대표적인 증거가 되겠지요. 그 외에도 교회의 건축양식이랄지, 상당히 다양한 부분에서 저자는 적확한 증거를 제시하고 그것들이 왜 문명의 붕괴로 이어지는지 설명하게 됩니다. 그들의 생존에 도움이 되었을 생활 방식의 파격적인 변화를 거부할 수밖에 없었던 문화적인 배경을요.
이 대목은 2부 8장에 수록된 '노르웨이령 그린란드의 종말'의 일부입니다. 이처럼 흥미로운 서술과 적확한 사료들을 바탕으로 '과거 사회의 붕괴'라는 한 부를 소개하는 것입니다. <총, 균, 쇠>에서 특히 세균과 관련된 이야기들에서 많은 사람들이 묘한 재미를 느끼게 되듯이, 이번 작품에서도 2부에 관해서는 날아다니는 제러드 다이아몬드를 확인하게 됩니다.
3부에서는 이 흥미로운 서술의 시점만 현재로 옮겨와 도미니카 공화국이랄지, 르완다, 중국, 오스트레일리아를 다루면서 이어지게 됩니다. 그러니까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저술들은 처음에 예열단계만 거치면 점차 재밌어지는 거예요. 그리고 4부, 지구의 미래에 이르면 장엄하고 장중한 마무리를 맞게 되는데 학계에서도 상당한 함의를 가지게 만들어주는 책입니다. 그 두께에서부터 비장함이 보이잖아요.
결국 미래학이라는 것도 과거에 대한 치밀한 분석에서부터 시작될 수 없는 것이며 혹은 과거를 들여다보는 사람에게 있어서도 현재와 미래는 역시 과거를 이루는 어떤 것으로 작용하는 것이니까요. 문명과 관련해서 거대한 담론을 가장 손실없이 들여다 볼 수 있는 유일한 시리즈가 아닐까...많은 분들께 일독을 권하며 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