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문학전공자로서 오랫동안 강의를 해 오면서 '문학과 윤리' 역시 많이 다루어온 주제였다. 소위 '정치범'인 도-키를 전공한 만큼 '문학과 정치(혁명)' 만큼이나 많이 얘기했던 것 같다. 교양 수업이라면 주로 수업 말미, 나보코프를 다룰 때다. 문학과 정치는 아무래도, 파스테르나크, 솔제니친, 불가코프 등  소비에트 소설을 읽을 때 얘기된다.

 

 

 

 

 

 

 

 

 

 

 

 

 

 

 

 

 

 

 

 

 

 

 

 

 

 

 

오랜만에 여러 권을 가져와 봤는데, 그 이유는 이렇다.  원래 나보코프는 대단히 지적이고 문학적인(!) 작가인데, 유독 <롤리타>가 문제적, 선정적이다. 이 소설 때문에 그는 응당 적잖은 스캔들에 휩싸였다. 얼핏 기억나는 에피소드로는, 당시 그가 일했던 학교(콘웰 대학이었나?)의 학부모들이 저런 놈한테 아이들을 맡길 수 없다고, 저런 놈한테 배우도록 할 수 없다고 항의한 것이다. 얼핏 보면 <롤리타>는 소아성애를 다룬 소설이고, 자세히 봐도 물론 그런 요소가 없지 않다, 아니 출발점이기도 하다. 자, 이런 문제적인 소설을 쓸 때 작가에게 요구되는 가장 근본적인 자질은 무엇일까.

 

아, 물론, 문학적 재능이다. 그야 말해서 뭐하나. 하지만 소재와, 그와 맞물려 스토리의 전개가 그그렇다 보니, 이런 경우는 작가는 그 무엇보다도 윤리에 대한 의식이 있어야 한다. 심지어, 더더욱 윤리적이어야 한다. 수업에서도 몇 차례 강조했거니와, 이건 러시아의 귀족작가이자 극히 지적인 작가였던 나보코프만이 감당할 수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소아성애를 다룸에 있어 도덕성과 품격이 빠진다면, 그것은 그냥 포르노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덧붙여, 작가 자신의 전기. 그는 말하자면 정말 깨끗한(^^;;) 작가였다. 평생 공부하고 강의하고 소설 쓴 작가, 남는(?) 시간에는 테니스 치고 나비(인시류) 채집하러 다닌 학자였다. 이런 말하면 그렇지만, 사생활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비슷하게, 도-키. 존 쿳시(쿠체)의 소설에서는 도-키를 괴상히 병리적인 사람으로 그렸는데(그래서 그 소설이 싫었던 기억이 있는데), 실제 도-키는 우리가 흔히 갖는 몇몇 약점(자존심 강하고 발끈하고 속되고 등) 외에 큰 문제는 없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그의 소설 속에서 암시, 때로는 묘사되는 성도착증은 전혀(!) 없었다.(그런 걸로 알려져 있다.) 소설 속에서는 가령 <악령>에서는 미성년자 강간, <미성년>에서는 비행청소년들 사이에서 약간의(?) 동성애 등이 나온다.

 

 

 

 

 

 

 

 

 

 

 

 

 

 

최근 '미투'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다른 분야는 잘 모르지만, 문학(예술) 쪽은 참담하기 그지 없었다. 사실 어떤 대목은 새로울 게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는 것이 더 참담하다. 한데, 놀라운 것은 엄연한 범죄인 행위들이 '문학-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미화, 권장된다는 것이다. (아주 오래 전 이십대 초반, '너 소설 쓴다며? 소설 쓰려면 여러 남자랑 자 봐야 되는 거 아냐?' 라고 묻던 어떤 남자-아저씨를 떠올리게 한다. 이런 경우도 똑같은데, 아, 내가 행실이 옳지 못했구나, 만만하게 보였구나, 하는 자책 같은 것이 따른다.) 특히 이들은 '퇴폐-타락'을, 가령 보들레르나 툴루즈 로트렉의 경우 같은 미적 개념('데카당스')이 아니라, 현실 속의 도덕적 행위에 갖다 붙이는 것이다. 강조하건대, 문학을 한다면 더 윤리적이지는 못할지언정 최소한 그것에 대한 더 민감한 자의식을 갖고 있어야지, 그걸 오히려 활용하려 든다면, 정녕 너무 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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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 초중반, 옛 남자 친구가 시인 지망생이어서 현대시를 많이 읽었다. 그 중 한 권. 내용은 거의 떠오르지 않지만 '막연한 기대와 몽상에 대한 반역'이라는 제목만으로도 이미 역사가 된 이십대가 고스란히 소환되는 듯하다. 그렇기에 더더욱 최근 그의 모습을 보기가 참...ㅠ.ㅠ 

 

 

 

 

 

 

 

 

 

 

 

 

 

 

 

덧붙여, 김기덕. 그의 영화를 아주 좋아하지는 않았어도(우선은 <나쁜 남자>를 비롯해 보고 있자면 너무 힘드니까) 홍상수 감독과 더불어, 우리 영화계에 참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해왔는데, 넘 슬프다...ㅠ.ㅠ (언젠가 동생이 가족 행사차 모호텔에 있다가 마침 부국제(?) 때문에 그곳에 와 있던 김기덕 감독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온 기억이 있다. 정말 '가문의 영광'이라고 생각했는데, 쩝.) 혹자들은 '맨날 그런 영화가 찍으니까~~'이라고 말하던데, 그럼에도, 나는 저 나보코프나 도-키의 경우처럼 생각해왔다. 문학(영화도 마찬가지리라) 속 세계가, 작가의 사생활의 반영은 결코 아니란 말이다! 오히려 우리 내면의 암흑을,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조건화하여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 천재 아니다. 그리고 어떤 천재성도 기본적인 윤리를 뚫고 나가 존재하지는 않는다. '남에게 피해주는 행동 하지 않기'는 초등생에게만 요구되는 덕목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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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페딘1T 2018-04-06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