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그 나름 애정이 있었던 것이 분명한, 그러다가 한동안 무시(?)했던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을, 아들-딸의 입장이 아닌, 아버지-어머니의 입장에서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아들-딸의 역할에 덧붙여, 아버지-어머니의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정황이 됐기 때문에, 오랫동안 던져두었던 이 소설을 다시 꺼냈다고 해야 하나. 암튼.

 

 

 

 

 

 

 

 

 

 

 

 

 

 

 

옛날에는 거의 전적으로 바자로프의 입장에서 읽었던 것 같다. 그의 성격, 사상, 반항, 사랑, 실연, 환멸, 죽음 등등. 어쩌면, 당시로선 너무 촌스럽게(!!!), 궁상과 청승의 복합체처럼 여겨졌고 그래서 애써 보지 않으려 덮어두었던 아버지-어머니의 모습이 새롭게 보인다. 가령, 3년(?)만에 고향집을, 부모집을 찾아왔다가 고작 사흘을 머물고 매몰차게 떠나는 아들을 보낸 다음, 부모는 이런 대화를 주고 받는다.

 

우릴 버렸어. 우리와 있는 게 답답했던 거야. 이젠 혼자야. 이 손가락처럼 혼자 남았어!”그는 몇 번이나 되뇌었고, 그때마다 집게손가락만 편 한쪽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때 아리나 블라시예브나가 다가와 백발이 성성한 자기 머리를 하얗게 센 남편의 머리에 가져다 대면서 말했다.

바샤, 어쩔 수 없어요! 그애는 매처럼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가지만, 우리는 한 구멍 속에 난 버섯처럼 나란히 앉아서 꼼짝하지 않지요. 나만은 영원히 당신 곁에 있을 거예요. 당신도 그럴 테지요.”(215-16)

 

그리고,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기도 한데, 바자로프가 죽은 다음, 먼저 보낸 아들의 무덤을 찾아 돌보고 또 흐느끼는 노부부의 모습. 뭐, 여기는 옛날에도 눈시울을 적시며 읽었던 것 같기도 하다. 

 

비교적 최근에 알게 된 것인데, 투르게네프 산문시 <거지>(1878)와 윤동주의 <투르게네프의 언덕>(1939년 9월)이 아주 놀라운(!) 대비를 이룬다. 전자는 기본적으로 조화, 상생, 화해, 형제애 등을 역설한다. 어쩜, 모순의 해결이, 이리도 쉬운가! 무척 훈훈한 분위기이다. 한 번 보시라. 번역은 내가 했다.

 

나는 거리를 걷고 있었다… 늙어빠진 노인 거지 때문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충혈되고 눈물이 고인 두 눈, 푸르스름한 입술, 거칠거칠한 누더기, 불결한 상처…. 오, 가난이 이 불행한 존재를 얼마나 추하게 갉아먹었는가!

그는 나에게 팅팅 부은 불그스름하고 더러운 손을 내밀었다. 그는 신음했다, 웅얼대며 도움을 청했다.

나는 호주머니를 온통 뒤지기 시작했다…. 지갑도, 시계도 없다, 손수건도 없다….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거지는 기다리고 있었다… 앞으로 내민 그의 손이 힘없이 흔들리며 떨리고 있었다.

당황한, 곤혹스러워진 나는 떨고 있는 그 더러운 손을 꼭 잡았다….

―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형제. 가진 것이 하나도 없구먼, 그래.

거지는 충혈된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 시퍼런 입술에는 미소를 머금었다. 그는 싸늘해진 내 손가락을 꼭 쥐었다.

― 뭐가 어때서요, 형제. ― 그가 우물거렸다. ― 이만 해도 고마워요. 이것도 적선인걸요, 형제."

나는 나 역시 나의 형제로부터 적선을 받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반면, 윤동주는 우리가 익히 아는, 학사모를 쓴 은은한 미소의 꽃미남의 느낌에 찬물을 확~ 끼얹듯 너무도 냉소적이고 복잡하고 꼬여 있다. 늙은 거지는 소년 거지로, 더욱이 세 명으로 바뀌어 있고, 상황도 정반대. 즉, 아무것도 주고받지 않았음에도 쉽사리 화해에 도달하는 투르게네프-인텔리겐치아와 민중에 비해, 윤동주의 시 속에서는 모든 것이 있음에도 소통은 처절하게 결렬된다. 있어도 주지 못하고(줘야 되나, 주는 게 낫나, 줄 수 있나 등등), 또, 아무것도 없음에도 딱히 뭘 받으려 하지도 않는 거지 소년 셋. 새삼스레, 니가 정말 시인이구나!, 하는 감탄을 내질러본다. 과연 '수치'의 시인.  하여간 놀랍다! 

 

 

 

나는 고갯길을 넘고 있었다……. / 그때 세 少年(소년) 거지가 나를 지나쳤다.

  

첫째 아이는 잔등에 바구니를 둘러메고, / 바구니 속에는 사이다 병, 간즈메통, 쇳조각,

 

헌 양말 짝 等(등) 廢物(폐물)이 가득하였다. / 둘째 아이도 그러하였다. / 셋째 아이도 그러하였다.

 

텁수룩한 머리털, 시커먼 얼굴에 눈물 고인 充血(충혈)된 눈, / 色(색) 잃어 푸르스름한 입술,

너덜너덜한 襤褸(남루), 찢겨진 맨발. / 아─

얼마나 무서운 가난이 이 어린 少年(소년)들을 삼키었느냐! / 나는 惻隱(측은)한 마음이 움직이었다.

 

나는 호주머니를 뒤지었다. / 두툼한 지갑, 時計(시계), 손수건…… 있을 건 죄다 있었다.

그러나 무턱대고 이것들을 내줄 勇氣(용기)는 없었다. / 손으로 만지작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多情(다정)스레 이야기나 하리라 하고 "얘들아." 불러보았다.

첫째 아이가 充血(충혈)된 눈으로 흘끔 돌아다볼 뿐이었다.

둘째 아이도 그러할 뿐이었다. / 셋째 아이도 그러할 뿐이었다.

 

그리고는 너는 相關(상관)없다는 듯이

自己(자기)네끼리 소곤소곤 이야기하면서 고개로 넘어갔다.

언덕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짙어가는 黃昏(황혼)이 밀려들 뿐 ―

 

 

다시 앞으로. 비도 주룩주룩 내리니, 눅눅한 소설이 나쁘지 않다. 고전은 고전인지라, 도키, 톨스토이, 투르-프로 이루어진 트로이카는 이미 망가진 것 같지만,  <아버지와 아들>은 여전히 일독의 가치가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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