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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22일, 대한민국 교육부 정책기획관 나향욱이 파면징계됐다. '개돼지'에 관한 철학적 담론을 '민중'에게 기념비적으로 제기하고, 얼떨결에 '살신성인'한 셈이다. 사실 이 이슈에 관한 논쟁은 아주 까마득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나향욱이 '기여'한 게 있다면 이 이슈를 '민중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부각시켰다는 것뿐이다. 나는 이 '개돼지론'의 역사가 철학 그 자체의 역사라고 확신한다.

 

이 세상은 어쩌다 인간/개돼지로 나뉘었을까? 인간의 일일까, 신의 뜻일까? 신의 뜻이 아니라 인간의 일이라고 설파한 사람이 있다. 헤라클레이토스다.

 

전쟁은 모든 것의 아버지이고, 모든 것의 왕이다. 그것이 어떤 이들은 신으로 또 어떤 이들은 인간으로 드러내며, 어떤 이들은 노예로 또 어떤 이들은 자유인으로 만든다. (249쪽.)

 

전쟁은 상호대립하는 두 인간집단이 상호의존하며 일체가 돼 적대적 모순을 극단적으로 폭발시키는 현상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인간/개돼지를 만들어내는 원리가 인간 외부에서 작동하는 신의 뜻이 아니라 인간간의 문제임을 설파한 것이다.

 

반면 소크라테스의 생각은 달랐다. 그의 관심은 개인의 영혼으로 향한다. 그것은 인간을 지배하는 지혜와 이성이며, 궁극적으로는 신으로 향한다. 그의 가장 유명한 경구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소크라테스: (...) 속 편한 친구, 부디 나의 말과 델피에 있는 글귀를 받아들여 자네 자신을 알도록 하게. (...) 자신을 알라고 명하는 자는 우리에게 혼을 알라고 시키는 걸세. (124b. 87~88쪽, 130e. 106쪽.)

 

위작논란이 있지만 소크라테스 주장의 일관성에 정확히 부합한다. 그런데 혼을 아는 것은 또 무엇인가? 현실적으로 개인의 처지에 따른 지혜와 이성을 초월하여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계급을 바라보는 소크라테스 다음과 같은 시선이 이어진다.

 

 

그러니까, 트라시마코스 선생, 그 밖의 다른 어떤 통솔(다스림: archē)을 맡은 사람이든, 그가 통솔자(다스리는 자)인 한은, 자신에게 편익이 되는 걸 생각하거나 지시하지 않고, 통솔(다스림)을 받는 쪽 그리고 자신이 일해 주게 되는 쪽에 편익이 되는 걸 생각하거나 지시하오. 또한 그가 말하는 모든 것도, 그가 행하는 모든 것도 그 쪽을 염두에 두고서 그 쪽에 편익이 되고 적절한 것을 염두에 두고서 말하고 행하오. (342e. 92~93쪽.)

 

소크라테스는 계급체제의 현실과 이상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1%가 99%를 위하고 있다는 논리다. 그러니 플라톤(이 전하는 소크라테스)의 다음과 같은 논리가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그건 성향에 있어서 제화공인 사람은 구두 만드는 일을 하되 다른 일은 결코 하지 않는 것이 옳고, 목공은 목공의 일을 하는 것이, 그리고 그 밖의 경우에도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하는 것이었네. (…) 그러니까 다시, ‘올바름을 생기게 함은 곧 혼에 있어서 여러 부분이 서로 지배하며 지배받는 관계를 성향에 따라확립함이요, 반면에 올바르지 못함을 생기게 함은 곧 서로 다스리며 다스림을 받는 관계를 성향에 어긋나게확립함이 아니겠는가? (443c. 307~308쪽, 444d. 310~311쪽.)

 

플라톤(이 전하는 소크라테스)식 지배/피지배체제의 핵심은 자신의 처지를 잘 아는 것이다. 1%는 1%의, 99%는 99%의 처지=이성=혼을. 하지만 이런 생각이 이상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분석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제화공의 성향을 타고 태어난 왕, 왕의 성향을 타고난 제화공을 어떻게 할 것이며, 누군가 그런 성향을 타고 태어났다고 누가 판단할 것인가?

 

이상국가를 향한 이런 식의 대책없는 발언이야말로 현실을 합리화하는 지름길을 아주 쉽게 터준다. 그것이 현실 속에서 합리화될 때, 성향에 따른 1%의 지배인간이 99%의 피지배인간을 이성에 따라 먹여살려주겠다며, 1%의 인간이 99%의 인간을 개돼지 취급하며 착취하는 사회가 합리화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러므로 강단 있게 '이것 말고 뭣이 중헌디?'라고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1. 지배/피지배는 왜 일어나는가? 신의 뜻? 인간의 일?

2. 지배/피지배를 가르는 사유는 무엇인가? 인간적 성향? 사회구조?

3. 지배자는 피지배자를 위한 지배를 하는가 아니면 자신들을 위한 지배를 하는가? 양을 위한 목자? 목자를 위한 양?

4. 지배/피지배의 해결책은 무엇인가? 신분제강화? 계층이동과 세속적 지배통제 혹은 혁명?

 

삼척동자도 어렴풋이 답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철학사가  이런 손쉬운 문제를 둘러싸고 현학적으로 싸워온 역사라는 걸 알면 누구라도 철학에 대한 경외심이 웬만큼은 사라질 것이다. 바로 그때가 철학을 공부하기 가장 좋은 때일 것이다.

 

김욱, http://blog.aladin.co.kr/kimwook, 2016.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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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김형민(산하)이 역사책을 냈다는 소식을 듣고 조금 놀랐다. 뭐, 강단학자든 아마추어든 누구라도, 그리고 역사책이든 철학책이든 무슨 주제로든, 언론출판의 자유를 누릴 수는 있다. 단지 내가 그의 역사책 출간에 좀 놀랐던 건 '역사적 사실'을 대하는 그의 이데올로기적 편의성에 대한 사사로운 인상 때문이었다.

 

김형민은 올 초 자신의 블로그에 내 책 『아주 낯선 상식』에 대한 감상평을 올려 놓았다. 내 책에 대한 이런 저런 비판이야 이런 저런 독자의 어쩔 수 없는 생각의 차이려니 하며 그냥 듣고 흘릴 수도 있는 것이었다. 아니라는데 뭐 어쩌겠는가?

 

한데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내 책에 대한 인상평을 하는 것은 좀 꼴불견이었다. 들은 바 나름 이름 있는 작가고, 공공적 책임감도 가져야 할 직업인이 아니던가? 일단 김형민이 어떻게 보고 싶은 대로 역사를 보는지 설명하기 위해 나와 관련된 그의 블로그 글 중 핵심을 인용한다.

 

그[김욱]는 이렇게 표현하기도 한다. "나는 (80년 광주의) 발포 이전의 학살이 진압 과정에서 벌어진 우연한 잔혹 행위가 아니라 반란을 일으킨 영남패권 군부에 의한 의도적인 호남 양민 학살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금껏 하고 있다."

 

그런데 이 문장의 마침표를 찍자마자 그냥 의심을 확신으로 바꿔 버린다. "영남패권 군부가 호남 양민 학살을 통해 권력을 훔친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객관적 사실이다."

 

유감스럽지만 사실이 아니다. 공수부대의 배치는 전국적으로 이뤄졌고 광주에 투입된 7공수만 해도 1개 대대는 충남대를 맡고 있었다. 민간인들의 시위에 유사시 적의 심장부 타격이나 배후 교란을 위해 훈련받은 정예부대를 들이밀었던 것은 바로 7개월 전 부마항쟁 때 공수부대의 재미를 톡톡히 봤기 때문이다.

 

김형민(산하), http://nasanha.egloos.com/11201716, n.d.

 

김형민은 두 가지 거짓말로 내 주장을 우습게 만든 뒤, 자신의 주장을 정색하며 들이대고 있다. 그 거짓말 중 하나는 '역사적 거짓말'이고, 다른 하나는 내 저작에 대한 '편의적 거짓말'이다.

 

우선 그의 '역사적 거짓말'은 "공수부대의 배치는 전국적으로 이뤄졌고"라는 언명이다. 공수부대의 배치는 "전국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이 역사적 사실관계는 김형민보다는 아무래도 당시 반란을 직접 주도한 특전사령관 정호용이 더 잘 알 것이다. 정호용은 1988년 국회 광주특위 청문회에서 이렇게 증언했다.

 

김길홍: 「5·17」비상계엄전국확대 때 주요도시에 계엄군을 배치했고 공수부대도 광주 전주 서울에 배치한 게 사실인가.

정호용: 그렇다.

김길홍: 특전사병력을 각지에 배치한 경위와 이유는….

정호용: (…) 향토사단인 31, 35사단은 실제 움직이는 병력이 없었다. 광주에 가장 가깝게 있는 부대는 7공수밖에 없다. 다는 못 주고 2개 대대를 주었고 전주와 대전에 각각 1개 대대를 보냈다. 부산 대구 같은 곳은 해병사단의 지원을 받았다. (…)

 

(「정호용씨 "광주서 싹쓸이발언 한 적 없다"」, 『동아일보』, 1988년 12월 7일.)

 

 

공수부대는 서울, 대전, 전주, 광주에만 작전 배치됐다. 이 4개 도시를 "전국적"이라고 왜곡해서는 안 된다. 더군다나 그것도 어떤 '사태'가 먼저 일어난 다음, 그 사태를 진압하기 위해 공수부대가 광주로 몰려든 것이 아니다. 그들은 미리 어떤 '사태'를 예견한 것처럼 광주를 향해 몰려들어 진을 치고 대기하고 있었다. 역사적 사실관계를 대충 말하는 김형민과는 달리 그것을 밝히기 위해 거의 인생을 바친 김영택의 책을 인용한다.

 

3월부터 추진되어 온 시국수습방안 작성을 끝낸 신군부는 한미연합사의 동의하에 5·17 조치를 취하기 이전인 5월 8일부터 17일 사이에 공수부대와 해병대, 제20사단을 전국 각지에 다시 배치했다. 그 일환으로 전북 익산에 주둔하고 있던 제7공수여단은 5월 10일 오후 2시 56분 '학원소요에 대한 증원계획지시'를 받았다. 이 지시에는 공수부대 배치 지침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었다. 전북대(전주)에는 제7공수여단 제31대대, 충남대(대전)에는 제32대대, 전남대와 광주교대(광주)에는 제33대대, 조선대와 전남대 의대(광주)에는 제35대대 등 각 1개 대대씩 출동하도록 준비하라는 지시가 내려진 것이다. (국방부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12·12, 5·18 사건 조사결과보고서』, 2007, 63쪽; 김영택, 『5월 18일, 광주』, 역사공간, 2010, 242~243쪽.)

 

다음 기회에, 특전사령관 정호용과 제11공수여단장 최웅이 몇 날 몇 시에 어떤 대화를 나눈 뒤, 서울 동국대학교에 주둔하고 있던 제11공수여단이 즉각 광주로 파병됐는지 자세히 다룰 것이다. 나는 이들이 나눈 대화시간과 예견능력이 '광주학살'의 고의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역사적 단서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공수부대가 부마항쟁에도 동원됐고, 광주항쟁에도 동원됐다는 인터넷 검색수준의 단순한 사실 나열이 아니다. 문제는 김영삼의 의원직 제명과 부마항쟁, 그리고 김대중의 체포와 광주항쟁의 '지역적' 연관성이다. 그 인과관계에 대한 맥락을 놓치면 그저 대충 자기 이데올로기적 틀에 맞춰 역사를 넘겨짚는 것으로 만족하게 될 것이다.

 

김형민은 (많은 친노들이 그러하듯이) 지역(적 콤플렉스)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런 자신의 이데올로기에 맞춰 역사적 탈출구를 찾는다. 김형민의 '편의적 역사관'이 어떤 결론에 다다르는지 살펴보자.

 

[부마항쟁 때] 1공수와 3공수부대가 투입됐다. 그들은 광주에서와 똑같은 만행을 저질렀고 그런 폭력을 경험한 바 없는 시위대는 기가 꺾였다. 그 시점에서, 박정희가 죽었다. (…) 부산에서 했던 것처럼 본때를 보여 주면 잠잠해지리라 여긴 탓이었다. 다른 지역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하더라도 비슷한 행동을 했을 거라는 건 짐작으로도 알 수 있었다. (…) 만약 광주 시민들마저 부마항쟁에서처럼 듣도 보도 못한 정예부대의 폭행에 기가 질려 어마, 무시라하고 물러섰다면, 그래서 피도 고통도 없이전두환이 권좌에 순조롭게 앉아 해먹을 것 다 해 먹었다면, 우리는 그 후로 검은 베레모의 출동을 자주 목격해야 했을 것이다([산하칼럼]1980520, 역사의 빚 계산기, 딴지일보, 2015521.)

 

김형민(산하)은 "그들[공수부대]은 [부마에서도] 광주에서와 똑같은 만행을 저질렀고"라고 말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여기서 자세한 얘길 할 순 없지만) 공수부대가 광주와 부마에서 자행한 일을 "똑같은 만행"이라고 기술하는 건 의도된 역사 왜곡이다.

 

김형민의 관점을 일관되게 유지하면 '공수부대의 광주에서의 만행은 1979년에 부마에서 이미 한 차례 있었고, 1980년엔 어느 지역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는데, 광주의 저항만이 특별했다는 의미가 된다.

 

내가 지키고 싶은 역사는 다르다. 공수부대의 광주만행은 광주라는 지역적 특수성이 원인이 돼 특별히 자행된 의도적 살육만행이었다. 5·18은 어디서나 일어(났거나)날 수 있었던 '일반적 만행'과 '특별한 저항'이 상승작용을 해서 벌어진 우연적 사태(이른바 '과잉진압')가 결코 아니다.

 

그것은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천인공노할 '광주학살' 만행이 특정 시점(1980년 5월 18일 오후 4시, 김영택, 259쪽)을 기점으로 의도적으로 자행된 이후, 그 참상을 딛고 시작된 '특별한 저항'이었다. 내가 5·18을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의도된 광주학살'이라고 규정하는 이유는 광주에서 벌어진 5월 18일 오후 4시 이전과 이후 사태를 구별하기 때문이다.

 

역사책을 쓰려고 생각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이런 역사적 사실관계를 냉정히 직시하고 시기적·지역적·양상적인 특별한 인과관계를 논리적으로 물어야 한다. 그런 이후에 사태의 진실에 대한 최소한의 어떤 영감이 떠오르기를 바라야 할 것이다. 하긴 아예 둔감해서 잘 모르겠거나, 그 역사책의 목표가 오직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취향을 장식하는 데 있는 것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계속하자. 김형민은 영남파쇼군부세력에 대해 무슨 연민이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김형민은 그들이 영남파쇼군부세력이 아니라고 부정하기 위해 내 저작 내용을 '편의적 거짓말'로 전한다.

 

김형민은 내가 "(80년 광주의) 발포 이전의 학살이 진압 과정에서 벌어진 우연한 잔혹 행위가 아니라 반란을 일으킨 영남패권 군부에 의한 의도적인 호남 양민 학살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금껏 하고 있다"는 "문장의 마침표를 찍자마자 그냥 의심을 확신으로 바꿔 버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거짓말이다.

 

그 문장의 마침표와 김형민이 우스꽝스럽게 바로 연결시켜 인용한 "영남패권 군부가 호남 양민 학살을 통해 권력을 훔친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객관적 사실이다"는 문장 사이에는 "말이 의심이지 의심이랄 것도 없다. 있었던 사실만을 놓고 말하자"는 두 문장이 더 들어 있다.

 

그리고 그 "있었던 사실"에 1997년 4월 17일, 반란군들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확정판결에 관한 주석을 붙였다. 나는 이 주석에서 그 반란군 15명 중 12명이 영남출신(한 명은 출신 미상)이며, 하나회의 비밀규약엔 "회원 다수는 영남 출신이 점한다"는 항목이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근거로 "영남패권 군부가 호남 양민 학살을 통해 권력을 훔친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객관적 사실이다"고 표현한 것이다.

 

이런 역사적 사실 앞에서 그렇게 말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역사적 진실을 은폐하는 진정한 역사왜곡 아닌가? 김형민은 도대체 누구를, 그리고 뭘 위해서 그러고 있는가!

 

 

나는 지금까지, 어떤 지면에서, 어떤 주제를 다루든, 이 세상이 지역모순이라는 단일모순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취지로 주장한 적이 없다. 나는 줄곧 "지역과 계층, 이중모순을 인정하자"(『인물과 사상 28』, 개마고원, 2003, 128~156쪽)는 취지로 주장했다. 그리고 (당연히) 그 외에도 많은 부수적 모순이 존재한다고 인정했다.

 

내가 특별히 한국 현대사에서 영남패권주의의 압도적인 적폐와 우선적 해결을 강조하는 건 그것이 지금도 여전히 계층·계급 모순의 발현을 질식시키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한데 김형민은 "이 책[『아주 낯선 상식』]에서 주장하는 바 이 모든 것이 '영남패권주의'의 결과"라고 표현한다. 그는 나를 무슨 교조적인 유일사상을 주장하는 꼴통처럼 변신시켰다. 나를 그렇게 변신시켜야 나를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틀에 맞춰 비판하는 게 편하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분명히 말한다. 나를 그렇게 만든 건 내가 아니라 김형민의 상투적인 비판 무능력일 뿐이다.

 

김형민이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영남패권주의의 역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 아무래도 좋다. 누가 말리겠는가? 심지어 그는 "대한민국을 더 큰 나라로 만들 수 있냐 [않]냐는 우선 영남패권주의를 타파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는 내 결론적 주장이 맘에 안든다고 "책을 집어던질 수밖에 없었다"고 감정적 난폭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나는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맹종하는 세력들(민주/반민주, 개혁/반개혁, 진보/보수 세력을 가리지 않는다)의 그와 유사한 감정적 난폭성을 수도 없이 보고 있다. 그러니 김형민의 그런 행동은 특별히 놀랄 일도 아니다. 나는 그의 감정적 난폭성이 조금 염려는 되지만 그냥 상투적인 당위적 혈기에서 그런 것이려니 이해한다.

 

나의 관대함을 자랑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한 가지 더 추가해 이해하겠다. 김형민은 나의 독일식 비례대표 내각제(김형민은 그냥 '내각제'라고 인용했지만 그냥 내각제와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있다. 공부하기 바란다) 주장도 "권력 운영 체제를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는 착각도 참으로 순결하"다고 비아냥거리는데, 다 좋다. (참고로 나를 반대하는 '친노'도 보통은 나의 '영남패권주의' 주장은 맘에 안들지만 '독일식 비례배대표 내각제' 주장에는 동의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김형민의 다음과 같은 언설체계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우선 김형민은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영남패권주의 역사가 아니다'는 자신의 한결같은 기득 이데올로기의 틀을 충성스럽게 유지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그는 "영남패권 군부가 호남 양민 학살을 통해 권력을 훔친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객관적 사실이다"는 내 주장까지 아니라고 부정한다. 이런 태도의 결과는 무엇일까?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면서까지 영남파쇼군부의 주장을 편드는 일이 되고 말 뿐이다.

 

김형민이 아닌 누구라도 자신의 기득 이데올로기만을 유지하기 위해 '있는 그대로의 사실'에 눈을 감는다면 불가피하게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거짓 인용을 하고 싶은 강렬한 유혹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다 결국엔 맘에 들지 않는 책이 아니라 심지어 역사적 진실을 던져버릴 수밖에 없는 경지에 도달할 지도 모른다. 그러고 싶은가?!

 

나는 김형민이 그런 나쁜 유혹에서 벗어나, 영남패권주의 없는 새나라의 훌륭한 역사 저술가, 착한 PD가 되기를 바란다.

 

김욱, http://blog.aladin.co.kr/kimwook, 2016.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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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시니스트(김선웅)는 <시사인> 만화가다. 그는 그림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특정 저서에 대한 비판을 만화로 표현하는 경우도 있는 듯하다. 예컨대 인터넷 <시사인> (제441호, 2016년 2월 29일)의 <아주 쉬운 상식>이 그런 경우로 보인다. 그가 내 책 <아주 낯선 상식>을 직접 거명하며 이 만화를 그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명백히 내 책의 주장을 비판 조로 패러디한 것으로 보인다.

 

 

누군가 글로 내 주장을 반박하면 나도 글로 반박하면 된다. 한데 만화가가 만화로 내 주장을 반박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략 난감한 일이다. 만화가가 아닌 나는 그림을 그려 그의 반박에 대응할 수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어쨌든 그의 그림 속 글을 바로잡는 일뿐이다.

 

그런데 굽시니스트(김선웅)는 패러디한 만화에서 심각한 인격적 문제를 노출시키고 있다. 그는 (자신이 그러는 것이 아니라) 영남에서 호남을 '홍어'라고 비하한다는 것을 핑계삼아 만화 속에서 호남을 마음 놓고 '홍어'라고 지칭하고 있다. 이런 비하적 용어('홍어'뿐만 아니라 예컨대 과메기, 원숭이, 낙타, 니그로, 조센징 등 유사한 용어는 아주 많다)를 한두 컷도 아니고 전체적인 기조 속에서 키워드로 활용하고 있다면 상식적으로 좀 문제가 있지 않은가?

 

그나마 거기까진 변명이 가능하다. 그런데 중간의 한 컷에서는 호남인(대변자)이 "으음… 호남의 자원으로 영남 짝뚱 홍어들이 저리 나대는 건 좀 거시기한데… 누가 저런 끔찍한 혼종을 만들어냈단 말인가…!"라고 탄식하는 글을 적어 놓고 있다. 내 상식으론 호남인이 호남인 스스로를 '홍어'라고 비하하는 경우는 없다. 더군다나 "끔찍한 혼종"이라니?! 이는 명백히 굽시니스트(김선웅)의 인종주의적 자의식의 발로다.

 

그의 "끔찍한 혼종"이라는 표현은 얼핏 <아주 낯선 상식>이 무슨 인종주의적 영남배척을 주장하는 것처럼 오해를 야기시킨다. 이는 명백한 모함이다. 아니 개인적 모함 여부를 떠나 어떻게 이런 인종주의적 발상으로 그림을 그릴 생각을 하는가? 나는 굽시니스트(김선웅)뿐만 아니라 그에게 지면을 줘 활약케 하는 <시사인>도 이런 식의 인종주의적 표현에 대해 함께 책임지고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굽시니스트(김선웅)의 수준에서 이해한 <아주 낯선 상식>의 주제는 그야말로 가관이다. 그는 <아주 낯선 상식>의 주장을 기껏 "호남당 잡아먹은 영남놈들 극혐!!! 저기 붙어먹은 호남놈들은 배신자다! No more 퍼주기!!" 하면서 기관총을 갈기는 수준이다. 그리고는 "영남 스파이들을 제거했습니다!"라고 환호한다. 그의 눈에는 "이것이 [<아주 낯선 상식>이 주장한] 영패주의 척결!"인 것이다. 내 상식으로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정파적 이해력이다.

 

글이 아닌 만화를 글로만 설명하며 반박하려니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나 서로 답답한 노릇이다. 어쩔 수 없이 나도 굽시니스트(김선웅)가 패러디한 <아주 쉬운 상식> 속 만화 그림을 재활용해 다시 패러디로 돌려주려 한다. 그래서 그가 지어내고, <시사인>이 널리 퍼뜨린 명백한 왜곡과 모함을 바로잡고자 한다. 다음이 내가 <아주 낯선 상식>에서 담아내려 했던 왜곡 없는 주장이다.

 

김욱, http://blog.aladin.co.kr/kimwook/, 2016.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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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노무현은 1988년(제13대) 국회의원에 당선됨으로써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따라서 그가 정치인으로서 1987년의 김대중 대선 독자출마에 대해 찬반의견을 표명할 기회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정치인으로서 1990년의 김영삼 3당합당은 직접 반대했다. 이후 그는 이른바 '꼬마민주당'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양김청산'의 확장판인 '3김청산'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신념을 분명히 한다.

 

'양김(3김)청산론'은 김대중의 대선 독자출마와 김영삼의 3당합당이 모두 잘못이라는 생각에 근거한다. 그리고 그 근원에는 영남의 패권주의와 호남의 지역적 저항이 모두 잘못이라는 '지역주의 양비론'이 자리잡고 있다. 엄격히 말한다면 '지역주의 양비론' 자체가 이미 영남패권주의에 투항하는 생각이기도 하다.

 

그런데 근대 민주화 역사 속에서 가해세력과 피해세력을 동렬에 놓고 둘 다 잘못이라고 평가하는 양비론 이데올로기를 추앙하면서 이에 이의를 제기하는 피해세력을 핍박하는 이른바 민주·개혁세력이 작금의 우리나라 말고 또 있었을까? 그것이 민주고, 그것이 개혁이라면 정말이지 역겨운 일이다. 하지만 관대하게 말하자면 그나마 이 수준의 양비론엔 아직 영남패권주의에 대한 부정적 의식도 한편에 자리잡고 있다고 할 수는 있다.

 

그런 양비론자 노무현이 1997년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의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한다.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대선 막바지에 김원기 대표를 비롯해 통추의 대부분은 김대중 후보를 지지하며 국민회의에 입당했다. 그들이 주창했던 '3김시대 청산과 지역주의 타파'라는 목적과는 다소 동떨어진 결정이었다. 당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국민회의에 결합했던 노무현은 그와 같은 결정에 대해 "조금 부끄럽고 민망하다. 솔직히 현실정치에서 살아 남아 잘 해보고 싶다"며 계면쩍은 고백을 털어놓기도 했다."(<오마이뉴스>, 2003년 1월 11일.)

 

노무현의 "조금 부끄럽고 민망하다"는 말은 무슨 의미였을까? 통상적이라면 자신이 지금까지 신념으로 삼던 '양비론'을 접고 그 한쪽 당사자인 김대중당에 입당한 것이 "조금 부끄럽고 민망하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누가 이 말을 '지금은 내가 신념을 감추고 김대중당에 입당하지만 언젠가 때가 오면 반드시 내 신념을 드러내고 양비론을 실천하겠다'는 의미로 이해하겠는가?

 

하지만 노무현의 숨은 뜻은 후자였다. 그는 호남몰표에 힘입어 대통령에 당선되고 기회를 잡자 온갖 역경을 헤치고 기어이 열린우리당을 창당한다. 열린우리당 창당은 자신을 대통령선거 후보로 공천해준 새천년민주당에 대한 정통성·정당성을 부정하는 근대 정당사에 유례를 찾기 힘든 기행이었다.

 

정확히 사실을 말하자면, 노무현은 직접적이라기보다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새천년민주당의 정통성·정당성을 부정했다. 심지어 그는 신당창당에 개입하지 않았다고까지 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말보다 행동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열린우리당의 창당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신당추진세력의 이데올로기가 '사실'로써 아주 중요해진다. 그들은 분명한 '용어'로 새천년민주당의 정통성·정당성을 부정했다. 그 논란의 와중에 나온 대표적인 한 가지 발언 사례만 상기시키자면, 유시민은 정확히 이렇게 표현했다.

 

"개혁신당은 민주당에서 무엇을 가져가야 하겠습니까? ‘법통이 아닙니다. 국고보조금도 아닙니다. 민주당에서 가져가야 할 것은 법통이나 국고보조금이 아니라 민주당의 자유주의적 정치개혁 노선과 대북평화 정책, 그리고 참여형 정당에 공감하는 민주당 소속의 정치인과 당원들이라고 저의[sic] 확신합니다."(<오마이뉴스>, 2003516.)

 

그래도 여기까진 아직 한나라당을 부정하는 일면이 있는 양비론이다. 이후 노무현은 열린우리당 창당의 후속 작업인 개헌과 독일식 선거법 개정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한나라당에 정권이양 수준의 대연정을 제안한다. 이에 대한 헌법적 문제는 차치하고, 우리의 주제에만 한정한다면 그는 이 대연정 제안을 통해 한나라당의 정통성·정당성을 승인하자고 국민들에게 이렇게 호소한다.

 

"[한나라]당의 역사성과 정통성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대타협의 결단으로 극복하자는 것입니다."(<프레시안>, 2005728.)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호남이 90% 지지를 하며 지켰던 새정치민주당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헌신짝 버리듯 부정하며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던 노무현이 영남이 패권적으로 지지한 한나라당의 역사성과 정통성에 대해서는 아무 조건 없이 승인을 하자는 의미다. 노무현은 한나라당에 역사적 사과 따위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다시 말을 바꾸면 이것은 이제 문자 그대로 '지역주의 양비론'이 아닌 '영남패권주의에의 투항'을 의미하는 것이다.

 

노무현의 영남패권주의에의 투항은 이데올로기적 극단까지 나아간다. 그는 '새정치민주당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부정한 열린우리당'과 '아무 조건 없이 그 역사성과 정통성을 인정하고 싶은 한나라당'과의 양대산맥론으로 최종적인 투항을 한다.

 

"정치가 제대로 된다면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양대산맥이 계속 유지돼 가야 한다."(<연합뉴스>, 2006년 8월 27일.)

 

다시 첫번째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우리는 어떤 특정 인간의 정체성을 이데올로기로 규정할 수 있을까? 예컨대 '노무현 이데올로기'라는 표현으로 노무현을 규정할 수 있을까? 온갖 잡다한 모순적 사고로 가득찬 보통 사람의 정체성을 이데올로기로 규정하는 건 당연히 힘들 것이다. 하지만 정치인 노무현은 가능하다고 본다. 노무현은 자신의 정치인으로서의 의미를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저도 대통령으로서 여러 가지 정치적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 제가 내걸었던 가장 중요한 정치적 목표가 지역구도의 해소였다. 어떻게 보면 제가 정치를 한 가장 중요한 목표가 우리 정치에 있어서의 지역구도 해소였다고 말할 수 있다. 또 어떻게 보면 제가 그런 목표를 내걸었기 때문에 이번에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번 국민들의 선택에 대해서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그러나 결국 지역주의에 가담하지 않고 지역주의에 맞서왔던 정치인에 대한 신뢰나 지지의 표현으로 저는 그렇게 생각한다. 실제로 그것말고 제가 특별히 다른 후보들보다 더 잘난 데가 없지 않나. 저는 그렇게 지금까지 믿고 있다."(인터넷 <한겨레>, 2003년 9월 17일.)

 

이쯤되면 우리가 노무현 이데올로기를 (자신의 지역에 대한 관념이 무엇이든) 지역문제와 연관해 생각하는 것이 무리는 아니라고 본다. 그래서 나는 노무현 이데올로기를 간단히 이렇게 정의했다.

 

"노무현 이데올로기는 영남 패권주의에 투항한 지역주의 양비론이다."(<프레시안>, 2016년 2월 17일.)

 

나는 현실적으로 발현되는 노무현 이데올로기는 좀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노무현 이데올로기란, 허구적 지역주의현실 속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대통령 선거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영남에서 득표력이 있는 영남후보를 내세워 호남몰표로 뒷받침해야 하고, 그렇게 당선된 영남 대통령은 민주성지호남의 정신적 양해 속에서 세속적인 영남을 물질적으로 유혹해 지역주의를 구조적으로 타파해야 한다는 '은폐된 투항적 영남패권주의'에 입각한 위선적 정치공학이다."(<아주 낯선 상식>, 개마고원, 2016, 35쪽.)

 

노무현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도 없이 '영남패권주의에 투항한 지역주의 양비론' 이데올로기를 실천하고 지키기 위해 애를 썼고, 친노는 지금도 그 과거사와 이데올로기를 추앙·추종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위와 같은 이유로, 즉 호남의 반영남패권주의 민주주의 투쟁사를 모욕하고 영남패권주의에 투항한 이유로, '노무현 죽음의 충격과 새누리당에 대한 공포'를 배경 삼아 시대를 지배하는 노무현 이데올로기의 역사적 궤멸을 추구한다.

 

김욱, http://blog.aladin.co.kr/kimwook/, 2016.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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