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노무현은 1988년(제13대) 국회의원에 당선됨으로써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따라서 그가 정치인으로서 1987년의 김대중 대선 독자출마에 대해 찬반의견을 표명할 기회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정치인으로서 1990년의 김영삼 3당합당은 직접 반대했다. 이후 그는 이른바 '꼬마민주당'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양김청산'의 확장판인 '3김청산'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신념을 분명히 한다.
'양김(3김)청산론'은 김대중의 대선 독자출마와 김영삼의 3당합당이 모두 잘못이라는 생각에 근거한다. 그리고 그 근원에는 영남의 패권주의와 호남의 지역적 저항이 모두 잘못이라는 '지역주의 양비론'이 자리잡고 있다. 엄격히 말한다면 '지역주의 양비론' 자체가 이미 영남패권주의에 투항하는 생각이기도 하다.
그런데 근대 민주화 역사 속에서 가해세력과 피해세력을 동렬에 놓고 둘 다 잘못이라고 평가하는 양비론 이데올로기를 추앙하면서 이에 이의를 제기하는 피해세력을 핍박하는 이른바 민주·개혁세력이 작금의 우리나라 말고 또 있었을까? 그것이 민주고, 그것이 개혁이라면 정말이지 역겨운 일이다. 하지만 관대하게 말하자면 그나마 이 수준의 양비론엔 아직 영남패권주의에 대한 부정적 의식도 한편에 자리잡고 있다고 할 수는 있다.
그런 양비론자 노무현이 1997년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의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한다.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대선 막바지에 김원기 대표를 비롯해 통추의 대부분은 김대중 후보를 지지하며 국민회의에 입당했다. 그들이 주창했던 '3김시대 청산과 지역주의 타파'라는 목적과는 다소 동떨어진 결정이었다. 당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국민회의에 결합했던 노무현은 그와 같은 결정에 대해 "조금 부끄럽고 민망하다. 솔직히 현실정치에서 살아 남아 잘 해보고 싶다"며 계면쩍은 고백을 털어놓기도 했다."(<오마이뉴스>, 2003년 1월 11일.)
노무현의 "조금 부끄럽고 민망하다"는 말은 무슨 의미였을까? 통상적이라면 자신이 지금까지 신념으로 삼던 '양비론'을 접고 그 한쪽 당사자인 김대중당에 입당한 것이 "조금 부끄럽고 민망하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누가 이 말을 '지금은 내가 신념을 감추고 김대중당에 입당하지만 언젠가 때가 오면 반드시 내 신념을 드러내고 양비론을 실천하겠다'는 의미로 이해하겠는가?
하지만 노무현의 숨은 뜻은 후자였다. 그는 호남몰표에 힘입어 대통령에 당선되고 기회를 잡자 온갖 역경을 헤치고 기어이 열린우리당을 창당한다. 열린우리당 창당은 자신을 대통령선거 후보로 공천해준 새천년민주당에 대한 정통성·정당성을 부정하는 근대 정당사에 유례를 찾기 힘든 기행이었다.
정확히 사실을 말하자면, 노무현은 직접적이라기보다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새천년민주당의 정통성·정당성을 부정했다. 심지어 그는 신당창당에 개입하지 않았다고까지 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말보다 행동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열린우리당의 창당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신당추진세력의 이데올로기가 '사실'로써 아주 중요해진다. 그들은 분명한 '용어'로 새천년민주당의 정통성·정당성을 부정했다. 그 논란의 와중에 나온 대표적인 한 가지 발언 사례만 상기시키자면, 유시민은 정확히 이렇게 표현했다.
"개혁신당은 민주당에서 무엇을 가져가야 하겠습니까? ‘법통’이 아닙니다. 국고보조금도 아닙니다. 민주당에서 가져가야 할 것은 ‘법통’이나 국고보조금이 아니라 민주당의 자유주의적 정치개혁 노선과 대북평화 정책, 그리고 참여형 정당에 공감하는 민주당 소속의 정치인과 당원들이라고 저의[sic는] 확신합니다."(<오마이뉴스>, 2003년 5월 16일.)
그래도 여기까진 아직 한나라당을 부정하는 일면이 있는 양비론이다. 이후 노무현은 열린우리당 창당의 후속 작업인 개헌과 독일식 선거법 개정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한나라당에 정권이양 수준의 대연정을 제안한다. 이에 대한 헌법적 문제는 차치하고, 우리의 주제에만 한정한다면 그는 이 대연정 제안을 통해 한나라당의 정통성·정당성을 승인하자고 국민들에게 이렇게 호소한다.
"[한나라]당의 역사성과 정통성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대타협의 결단으로 극복하자는 것입니다."(<프레시안>, 2005년 7월 28일.)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호남이 90% 지지를 하며 지켰던 새정치민주당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헌신짝 버리듯 부정하며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던 노무현이 영남이 패권적으로 지지한 한나라당의 역사성과 정통성에 대해서는 아무 조건 없이 승인을 하자는 의미다. 노무현은 한나라당에 역사적 사과 따위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다시 말을 바꾸면 이것은 이제 문자 그대로 '지역주의 양비론'이 아닌 '영남패권주의에의 투항'을 의미하는 것이다.
노무현의 영남패권주의에의 투항은 이데올로기적 극단까지 나아간다. 그는 '새정치민주당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부정한 열린우리당'과 '아무 조건 없이 그 역사성과 정통성을 인정하고 싶은 한나라당'과의 양대산맥론으로 최종적인 투항을 한다.
"정치가 제대로 된다면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양대산맥이 계속 유지돼 가야 한다."(<연합뉴스>, 2006년 8월 27일.)
다시 첫번째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우리는 어떤 특정 인간의 정체성을 이데올로기로 규정할 수 있을까? 예컨대 '노무현 이데올로기'라는 표현으로 노무현을 규정할 수 있을까? 온갖 잡다한 모순적 사고로 가득찬 보통 사람의 정체성을 이데올로기로 규정하는 건 당연히 힘들 것이다. 하지만 정치인 노무현은 가능하다고 본다. 노무현은 자신의 정치인으로서의 의미를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저도 대통령으로서 여러 가지 정치적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 제가 내걸었던 가장 중요한 정치적 목표가 지역구도의 해소였다. 어떻게 보면 제가 정치를 한 가장 중요한 목표가 우리 정치에 있어서의 지역구도 해소였다고 말할 수 있다. 또 어떻게 보면 제가 그런 목표를 내걸었기 때문에 이번에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번 국민들의 선택에 대해서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그러나 결국 지역주의에 가담하지 않고 지역주의에 맞서왔던 정치인에 대한 신뢰나 지지의 표현으로 저는 그렇게 생각한다. 실제로 그것말고 제가 특별히 다른 후보들보다 더 잘난 데가 없지 않나. 저는 그렇게 지금까지 믿고 있다."(인터넷 <한겨레>, 2003년 9월 17일.)
이쯤되면 우리가 노무현 이데올로기를 (자신의 지역에 대한 관념이 무엇이든) 지역문제와 연관해 생각하는 것이 무리는 아니라고 본다. 그래서 나는 노무현 이데올로기를 간단히 이렇게 정의했다.
"노무현 이데올로기는 영남 패권주의에 투항한 지역주의 양비론이다."(<프레시안>, 2016년 2월 17일.)
나는 현실적으로 발현되는 노무현 이데올로기는 좀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노무현 이데올로기란, ‘허구적 지역주의’ 현실 속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대통령 선거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영남에서 득표력이 있는 영남후보를 내세워 호남몰표로 뒷받침해야 하고, 그렇게 당선된 영남 대통령은 ‘민주성지’ 호남의 정신적 양해 속에서 세속적인 영남을 물질적으로 유혹해 지역주의를 구조적으로 타파해야 한다는 '은폐된 투항적 영남패권주의'에 입각한 위선적 정치공학이다."(<아주 낯선 상식>, 개마고원, 2016, 35쪽.)
노무현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도 없이 '영남패권주의에 투항한 지역주의 양비론' 이데올로기를 실천하고 지키기 위해 애를 썼고, 친노는 지금도 그 과거사와 이데올로기를 추앙·추종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위와 같은 이유로, 즉 호남의 반영남패권주의 민주주의 투쟁사를 모욕하고 영남패권주의에 투항한 이유로, '노무현 죽음의 충격과 새누리당에 대한 공포'를 배경 삼아 시대를 지배하는 노무현 이데올로기의 역사적 궤멸을 추구한다.
김욱, http://blog.aladin.co.kr/kimwook/, 2016. 3.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