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보이는 A와 B의 가상 대화다. A는 자신이 민주주의자라고 생각하고 있고, B는 A가 민주주의자가 아니라고 의심하고 있다. 그런데 A의 발언은 어디선가 들어봤음직할 수도 있다. 아니, 틀림없이 들어봤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지루하게 듣게 될 것이다. 심지어 A가 아니라 바로 당신이 그 발언의 주인공일 수도 있다. 어쩌면 그 주인공은 수나라 병사만큼이나 아주 많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세상의 정의가 숫자로 결판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A: 호남은 더불어민주당의 친노 문재인을 지지해야 해.

B: 왜?

A: 그러지 않으면 고립되잖아!

B: 누가 고립시키는데?

A: 그거야…, 새누리당 아니겠어?

B: 새누리당? 그니까 영남이 새누리당을 지지하고, 그 새누리당은 호남을 고립시키고?

A: 상식 아냐?

B: 근데, 왜 새누리당이 호남을 고립시키지?

A: 아놔, 스스로 고립을 선택하니까 고립시키는 거지.

B: 그럼 정의당을 선택한 고양과 창원은 새누리당이 더 고립시키는 건가?

A: 그건 아니쥐.

B: 왜?

A: 거긴 호남이 아니잖아.

B: 그럼 영남이 지지하는 새누리당은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는 지역(인)이 호남일 때만 고립시킨다는 거지?

A: 말하자면 그런 셈이지.

B: 그건 영남파시즘, 최소한 영남패권주의잖아?

A: 그렇게 불편한 이름을 붙이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꼭 그렇게 불러야겠냐?

B: 근데 노무현(이데올로기)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영남패권주의는 없는 거잖아? 지역주의는 영호남 둘 다, 아니 영호남 정치인들이 둘 다 실체도 없는 걸 그저 표 얻으려고 떠들어대는 바람에 생긴 병패라며? 그 이름조차 역겨운 '지역주의 양비론'이 네 자랑스런 신조 아니었어? 그래서 영남패권주의라는 말은 듣기조차 싫어하잖아?

A: 그거야 그렇지….

B: 근데 왜 영남이 고립시키고, 호남은 고립당한다고 말하는 거지? 그렇게 영남이 가해자고 호남은 피해자인 영남패권주의 역사는 없었다며?

A: 그거슨…. 좋아, 원한다면 영남패권주의 역사가 있다 치자.

B: 치자고? 그럼 니들도 호남과 더불어 민주주의를 위해 반영남패권주의 투쟁을 해야겠네?

A: 그건 정말 아니쥐.

B: 응? 아니라고? 영남패권주의 역사가 있다며? 니들 더불어민주주의자 아니었어?

A: 그렇게 하면 영남에서 표가 나오겠냐?

B: 아, 그래서 위선적으로 선거를 치르자? 호남을 향해서는 '선거 전엔 호남몰표를 겁박하고, 선거 후엔 지역주의를 비난하고'? 영남을 향해서는 '선거 전엔 영남패권주의 없다하고, 선거 후엔 물량공세로 유혹하고'?

A: 아, 구태스럽게 지역 좀 따지지 마라니까! 그러니까 니가 나처럼 멋있다는 얘길 못 듣는 거야. 소수지역 호남 정치인은 대선에 나와서도 안 되고, 찍어서도 안 된다니까.

B: 그니까, 소수지역 호남은 지역 따지지 말고 영남후보만 지지하라고? 그런 반민주주의가 멋있다고?

A: 계속 그렇게 지역 따질래?

B: 그게 아니라 능력 따지고 싶은데, 영남후보만 지지하라고 하니까 그렇지.

A: 아, 문재인을 자꾸 영남후보, 영남후보, 거리지 마라니까.

B: 저런, 호남 등등의 정치인은 지역 정치인이지만, 영남 정치인만은 영남 정치인이 아니라 그냥 대한민국 정치인이라는 얘기 아냐? 맞지?

A: 아놔, 진짜 말이 안 통하네.

B: 그게 아니라, 말이 너무 잘 통하는 거 아냐?

A: 아 됐고, 그래서 살아있는 부처 같은 친노 문재인이 감히 싫다고?!

B: 니가 호남사람이면, 아니 호남사람이 아니라도 그런 식이면, 니 우상이 산 부처든, 죽은 부처든 감히 좋겠냐!?

 

 ⓒ 이철수 www.mokp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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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욱, http://blog.aladin.co.kr/kimwook, 2016.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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