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김형민(산하)이 역사책을 냈다는 소식을 듣고 조금 놀랐다. 뭐, 강단학자든 아마추어든 누구라도, 그리고 역사책이든 철학책이든 무슨 주제로든, 언론출판의 자유를 누릴 수는 있다. 단지 내가 그의 역사책 출간에 좀 놀랐던 건 '역사적 사실'을 대하는 그의 이데올로기적 편의성에 대한 사사로운 인상 때문이었다.

 

김형민은 올 초 자신의 블로그에 내 책 『아주 낯선 상식』에 대한 감상평을 올려 놓았다. 내 책에 대한 이런 저런 비판이야 이런 저런 독자의 어쩔 수 없는 생각의 차이려니 하며 그냥 듣고 흘릴 수도 있는 것이었다. 아니라는데 뭐 어쩌겠는가?

 

한데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내 책에 대한 인상평을 하는 것은 좀 꼴불견이었다. 들은 바 나름 이름 있는 작가고, 공공적 책임감도 가져야 할 직업인이 아니던가? 일단 김형민이 어떻게 보고 싶은 대로 역사를 보는지 설명하기 위해 나와 관련된 그의 블로그 글 중 핵심을 인용한다.

 

그[김욱]는 이렇게 표현하기도 한다. "나는 (80년 광주의) 발포 이전의 학살이 진압 과정에서 벌어진 우연한 잔혹 행위가 아니라 반란을 일으킨 영남패권 군부에 의한 의도적인 호남 양민 학살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금껏 하고 있다."

 

그런데 이 문장의 마침표를 찍자마자 그냥 의심을 확신으로 바꿔 버린다. "영남패권 군부가 호남 양민 학살을 통해 권력을 훔친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객관적 사실이다."

 

유감스럽지만 사실이 아니다. 공수부대의 배치는 전국적으로 이뤄졌고 광주에 투입된 7공수만 해도 1개 대대는 충남대를 맡고 있었다. 민간인들의 시위에 유사시 적의 심장부 타격이나 배후 교란을 위해 훈련받은 정예부대를 들이밀었던 것은 바로 7개월 전 부마항쟁 때 공수부대의 재미를 톡톡히 봤기 때문이다.

 

김형민(산하), http://nasanha.egloos.com/11201716, n.d.

 

김형민은 두 가지 거짓말로 내 주장을 우습게 만든 뒤, 자신의 주장을 정색하며 들이대고 있다. 그 거짓말 중 하나는 '역사적 거짓말'이고, 다른 하나는 내 저작에 대한 '편의적 거짓말'이다.

 

우선 그의 '역사적 거짓말'은 "공수부대의 배치는 전국적으로 이뤄졌고"라는 언명이다. 공수부대의 배치는 "전국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이 역사적 사실관계는 김형민보다는 아무래도 당시 반란을 직접 주도한 특전사령관 정호용이 더 잘 알 것이다. 정호용은 1988년 국회 광주특위 청문회에서 이렇게 증언했다.

 

김길홍: 「5·17」비상계엄전국확대 때 주요도시에 계엄군을 배치했고 공수부대도 광주 전주 서울에 배치한 게 사실인가.

정호용: 그렇다.

김길홍: 특전사병력을 각지에 배치한 경위와 이유는….

정호용: (…) 향토사단인 31, 35사단은 실제 움직이는 병력이 없었다. 광주에 가장 가깝게 있는 부대는 7공수밖에 없다. 다는 못 주고 2개 대대를 주었고 전주와 대전에 각각 1개 대대를 보냈다. 부산 대구 같은 곳은 해병사단의 지원을 받았다. (…)

 

(「정호용씨 "광주서 싹쓸이발언 한 적 없다"」, 『동아일보』, 1988년 12월 7일.)

 

 

공수부대는 서울, 대전, 전주, 광주에만 작전 배치됐다. 이 4개 도시를 "전국적"이라고 왜곡해서는 안 된다. 더군다나 그것도 어떤 '사태'가 먼저 일어난 다음, 그 사태를 진압하기 위해 공수부대가 광주로 몰려든 것이 아니다. 그들은 미리 어떤 '사태'를 예견한 것처럼 광주를 향해 몰려들어 진을 치고 대기하고 있었다. 역사적 사실관계를 대충 말하는 김형민과는 달리 그것을 밝히기 위해 거의 인생을 바친 김영택의 책을 인용한다.

 

3월부터 추진되어 온 시국수습방안 작성을 끝낸 신군부는 한미연합사의 동의하에 5·17 조치를 취하기 이전인 5월 8일부터 17일 사이에 공수부대와 해병대, 제20사단을 전국 각지에 다시 배치했다. 그 일환으로 전북 익산에 주둔하고 있던 제7공수여단은 5월 10일 오후 2시 56분 '학원소요에 대한 증원계획지시'를 받았다. 이 지시에는 공수부대 배치 지침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었다. 전북대(전주)에는 제7공수여단 제31대대, 충남대(대전)에는 제32대대, 전남대와 광주교대(광주)에는 제33대대, 조선대와 전남대 의대(광주)에는 제35대대 등 각 1개 대대씩 출동하도록 준비하라는 지시가 내려진 것이다. (국방부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12·12, 5·18 사건 조사결과보고서』, 2007, 63쪽; 김영택, 『5월 18일, 광주』, 역사공간, 2010, 242~243쪽.)

 

다음 기회에, 특전사령관 정호용과 제11공수여단장 최웅이 몇 날 몇 시에 어떤 대화를 나눈 뒤, 서울 동국대학교에 주둔하고 있던 제11공수여단이 즉각 광주로 파병됐는지 자세히 다룰 것이다. 나는 이들이 나눈 대화시간과 예견능력이 '광주학살'의 고의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역사적 단서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공수부대가 부마항쟁에도 동원됐고, 광주항쟁에도 동원됐다는 인터넷 검색수준의 단순한 사실 나열이 아니다. 문제는 김영삼의 의원직 제명과 부마항쟁, 그리고 김대중의 체포와 광주항쟁의 '지역적' 연관성이다. 그 인과관계에 대한 맥락을 놓치면 그저 대충 자기 이데올로기적 틀에 맞춰 역사를 넘겨짚는 것으로 만족하게 될 것이다.

 

김형민은 (많은 친노들이 그러하듯이) 지역(적 콤플렉스)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런 자신의 이데올로기에 맞춰 역사적 탈출구를 찾는다. 김형민의 '편의적 역사관'이 어떤 결론에 다다르는지 살펴보자.

 

[부마항쟁 때] 1공수와 3공수부대가 투입됐다. 그들은 광주에서와 똑같은 만행을 저질렀고 그런 폭력을 경험한 바 없는 시위대는 기가 꺾였다. 그 시점에서, 박정희가 죽었다. (…) 부산에서 했던 것처럼 본때를 보여 주면 잠잠해지리라 여긴 탓이었다. 다른 지역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하더라도 비슷한 행동을 했을 거라는 건 짐작으로도 알 수 있었다. (…) 만약 광주 시민들마저 부마항쟁에서처럼 듣도 보도 못한 정예부대의 폭행에 기가 질려 어마, 무시라하고 물러섰다면, 그래서 피도 고통도 없이전두환이 권좌에 순조롭게 앉아 해먹을 것 다 해 먹었다면, 우리는 그 후로 검은 베레모의 출동을 자주 목격해야 했을 것이다([산하칼럼]1980520, 역사의 빚 계산기, 딴지일보, 2015521.)

 

김형민(산하)은 "그들[공수부대]은 [부마에서도] 광주에서와 똑같은 만행을 저질렀고"라고 말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여기서 자세한 얘길 할 순 없지만) 공수부대가 광주와 부마에서 자행한 일을 "똑같은 만행"이라고 기술하는 건 의도된 역사 왜곡이다.

 

김형민의 관점을 일관되게 유지하면 '공수부대의 광주에서의 만행은 1979년에 부마에서 이미 한 차례 있었고, 1980년엔 어느 지역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는데, 광주의 저항만이 특별했다는 의미가 된다.

 

내가 지키고 싶은 역사는 다르다. 공수부대의 광주만행은 광주라는 지역적 특수성이 원인이 돼 특별히 자행된 의도적 살육만행이었다. 5·18은 어디서나 일어(났거나)날 수 있었던 '일반적 만행'과 '특별한 저항'이 상승작용을 해서 벌어진 우연적 사태(이른바 '과잉진압')가 결코 아니다.

 

그것은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천인공노할 '광주학살' 만행이 특정 시점(1980년 5월 18일 오후 4시, 김영택, 259쪽)을 기점으로 의도적으로 자행된 이후, 그 참상을 딛고 시작된 '특별한 저항'이었다. 내가 5·18을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의도된 광주학살'이라고 규정하는 이유는 광주에서 벌어진 5월 18일 오후 4시 이전과 이후 사태를 구별하기 때문이다.

 

역사책을 쓰려고 생각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이런 역사적 사실관계를 냉정히 직시하고 시기적·지역적·양상적인 특별한 인과관계를 논리적으로 물어야 한다. 그런 이후에 사태의 진실에 대한 최소한의 어떤 영감이 떠오르기를 바라야 할 것이다. 하긴 아예 둔감해서 잘 모르겠거나, 그 역사책의 목표가 오직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취향을 장식하는 데 있는 것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계속하자. 김형민은 영남파쇼군부세력에 대해 무슨 연민이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김형민은 그들이 영남파쇼군부세력이 아니라고 부정하기 위해 내 저작 내용을 '편의적 거짓말'로 전한다.

 

김형민은 내가 "(80년 광주의) 발포 이전의 학살이 진압 과정에서 벌어진 우연한 잔혹 행위가 아니라 반란을 일으킨 영남패권 군부에 의한 의도적인 호남 양민 학살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금껏 하고 있다"는 "문장의 마침표를 찍자마자 그냥 의심을 확신으로 바꿔 버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거짓말이다.

 

그 문장의 마침표와 김형민이 우스꽝스럽게 바로 연결시켜 인용한 "영남패권 군부가 호남 양민 학살을 통해 권력을 훔친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객관적 사실이다"는 문장 사이에는 "말이 의심이지 의심이랄 것도 없다. 있었던 사실만을 놓고 말하자"는 두 문장이 더 들어 있다.

 

그리고 그 "있었던 사실"에 1997년 4월 17일, 반란군들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확정판결에 관한 주석을 붙였다. 나는 이 주석에서 그 반란군 15명 중 12명이 영남출신(한 명은 출신 미상)이며, 하나회의 비밀규약엔 "회원 다수는 영남 출신이 점한다"는 항목이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근거로 "영남패권 군부가 호남 양민 학살을 통해 권력을 훔친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객관적 사실이다"고 표현한 것이다.

 

이런 역사적 사실 앞에서 그렇게 말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역사적 진실을 은폐하는 진정한 역사왜곡 아닌가? 김형민은 도대체 누구를, 그리고 뭘 위해서 그러고 있는가!

 

 

나는 지금까지, 어떤 지면에서, 어떤 주제를 다루든, 이 세상이 지역모순이라는 단일모순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취지로 주장한 적이 없다. 나는 줄곧 "지역과 계층, 이중모순을 인정하자"(『인물과 사상 28』, 개마고원, 2003, 128~156쪽)는 취지로 주장했다. 그리고 (당연히) 그 외에도 많은 부수적 모순이 존재한다고 인정했다.

 

내가 특별히 한국 현대사에서 영남패권주의의 압도적인 적폐와 우선적 해결을 강조하는 건 그것이 지금도 여전히 계층·계급 모순의 발현을 질식시키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한데 김형민은 "이 책[『아주 낯선 상식』]에서 주장하는 바 이 모든 것이 '영남패권주의'의 결과"라고 표현한다. 그는 나를 무슨 교조적인 유일사상을 주장하는 꼴통처럼 변신시켰다. 나를 그렇게 변신시켜야 나를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틀에 맞춰 비판하는 게 편하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분명히 말한다. 나를 그렇게 만든 건 내가 아니라 김형민의 상투적인 비판 무능력일 뿐이다.

 

김형민이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영남패권주의의 역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 아무래도 좋다. 누가 말리겠는가? 심지어 그는 "대한민국을 더 큰 나라로 만들 수 있냐 [않]냐는 우선 영남패권주의를 타파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는 내 결론적 주장이 맘에 안든다고 "책을 집어던질 수밖에 없었다"고 감정적 난폭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나는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맹종하는 세력들(민주/반민주, 개혁/반개혁, 진보/보수 세력을 가리지 않는다)의 그와 유사한 감정적 난폭성을 수도 없이 보고 있다. 그러니 김형민의 그런 행동은 특별히 놀랄 일도 아니다. 나는 그의 감정적 난폭성이 조금 염려는 되지만 그냥 상투적인 당위적 혈기에서 그런 것이려니 이해한다.

 

나의 관대함을 자랑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한 가지 더 추가해 이해하겠다. 김형민은 나의 독일식 비례대표 내각제(김형민은 그냥 '내각제'라고 인용했지만 그냥 내각제와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있다. 공부하기 바란다) 주장도 "권력 운영 체제를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는 착각도 참으로 순결하"다고 비아냥거리는데, 다 좋다. (참고로 나를 반대하는 '친노'도 보통은 나의 '영남패권주의' 주장은 맘에 안들지만 '독일식 비례배대표 내각제' 주장에는 동의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김형민의 다음과 같은 언설체계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우선 김형민은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영남패권주의 역사가 아니다'는 자신의 한결같은 기득 이데올로기의 틀을 충성스럽게 유지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그는 "영남패권 군부가 호남 양민 학살을 통해 권력을 훔친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객관적 사실이다"는 내 주장까지 아니라고 부정한다. 이런 태도의 결과는 무엇일까?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면서까지 영남파쇼군부의 주장을 편드는 일이 되고 말 뿐이다.

 

김형민이 아닌 누구라도 자신의 기득 이데올로기만을 유지하기 위해 '있는 그대로의 사실'에 눈을 감는다면 불가피하게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거짓 인용을 하고 싶은 강렬한 유혹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다 결국엔 맘에 들지 않는 책이 아니라 심지어 역사적 진실을 던져버릴 수밖에 없는 경지에 도달할 지도 모른다. 그러고 싶은가?!

 

나는 김형민이 그런 나쁜 유혹에서 벗어나, 영남패권주의 없는 새나라의 훌륭한 역사 저술가, 착한 PD가 되기를 바란다.

 

김욱, http://blog.aladin.co.kr/kimwook, 2016. 6. 2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