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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은 2021년 6월 29일 대선출마선언을 했다. 그의 출마선언문엔 (문재인 정권이) "우리 헌법의 근간인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내려" 한다는 구절이 들어 있다. (문재인 정권에 대한 호불호 혹은 심판의지를 떠나) 나는 그가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차이에 너무 집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로 민주주의의 특정 성격을 강조할 수는 있겠지만 민주주의 대신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만을 강조하면서 반민주주의적 행태를 비판하는 건 정치적 운신의 폭을 크게 좁히는 결과를 야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은 출마선언문에서 스스로 "민주주의는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것이고 자유는 정부의 권력 한계를 그어주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자유가 빠진 민주주의는 진짜 민주주의가 아니고 독재요 전제"라고 규정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라는 용어에 이미 자유민주주의라는 개념이 포함돼 있다는 것 아닌가? 그러니 필요에 따라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를 강조해 쓰면 되는 것이고, 일상적으로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해 정치적 의지를 표현해도 아무 문제 없다고 본다. 내가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가 양립불가능한 적대적 개념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를 정리하면 이렇다.


1. 현행 헌법상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란 용어는 전문과 제4(평화통일)에 두 번 나온다. 그리고 '민주적 기본질서'란 용어는 제84(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에 한 번 나온다. 참고로 두 용어를 제외하고 '민주'란 용어가 사용된 경우는 모두 8번이다.

 

2. 관심 사안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1972(7차 개정) 유신헌법 전문에 처음 등장한다. 그리고 정당조항의 '민주적 기본질서'란 용어는 1960(3차 개정) 헌법에 처음 등장한다.

 

3. 따라서 만약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란 용어가 들어갔느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자본주의니 사회주의니 하는 식으로 대한민국체제를 구분한다면 유신헌법 이전 대한민국은 사회주의체제라는 말인데 이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4. 우리 헌법재판소는 국가보안법 제71항 및 5항의 한정헙헌 결정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그 기준을 제시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준다 함은 모든 폭력적 지배와 자의적 지배 즉 반국가단체의 일인독재 내지 일당독재를 배제하고 다수의 의사에 의한 국민의 자치, 자유·평등의 기본 원칙에 의한 법치주의적 통치질서의 유지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고,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기본적 인권의 존중, 권력분립, 의회제도, 복수정당제도, 선거제도,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골간으로 한 경제질서 및 사법권의 독립 등 우리의 내부 체제를 파괴·변혁시키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헌재 1990. 4. 2. 89헌가113 결정.)

 

 


5. 우리 헌법재판소의 판시 내용은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사회주의국가당사건(1952)과 독일공산당사건(1956)에서 표명한 독일기본법상 '자유민주적 기본질서=Freiheitliche demokratische Grundordnung'의 판시 내용과 기본적으로 큰 차이가 없지만, 경제적 내용이 포함된다. 참고로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어떠한 폭력적 지배나 자의적 지배도 배제하면서, 그때그때의 다수의사에 의한 국민의 자결 그리고 자유와 평등에 기초하는 법치국가적 지배질서를 나타내는 질서"이고, "이 질서의 기본적 원리에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것이 포함된다. , 기본법에 구체화되어 있는 인권, 특히 생명권 및 인격의 자유로운 발현권의 존중, 국민주권, 권력분립, 정부의 책임성, 행정의 합법률성, 법원의 독립, 복수정당제원리 및 합헌적으로 야당을 형성하여 활동하는 권리를 가지는 모든 정당에 대한 기회균등이다"고 판시한 바 있다.(BVerfGE 2, 1 (12f); 콘라드 헤세, 통일 독일헌법원론, 박영사, 2001, 83쪽 참조.)

 

6. 독일기본법상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란 표현은 제102, 112, 18, 212, 3(신설), 87a4, 911항 등에 나온다. 참고로 제20조에 "독일연방공화국은 민주적이고 사회적 연방 국가이다"고 하는 등 민주적이란 용어를 우리와 마찬가지로 함께 사용하고 있으므로 해석상 문제를 야기한다.

 

7. 우리나라든 독일이든 헌법재판소의 해석상으로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란 관념은 파시즘일 수도 있고 공산주의일 수도 있는 전체주의체제에 대한 반대성격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는 과거 독일에서도 반파시즘보다는 반공을 위한 '투쟁(전투, 방어)적 민주주의'의 근거로 주로 활용돼 왔는데, 최근에는 극우정당인 국가민주당(NPD)을 겨냥한 2017년 개헌을 계기로 극우정당에 국고지원을 배제하는 근거로도 작동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이 관념이 반파시즘을 포함하기는커녕 파쇼정권에 의해 반공을 넘어 국가보안법을 매개로 정권유지 탄압수단으로 주로 남용돼 왔다.

 

8. 유의할 점은 '투쟁적 민주주의'의 근거조항이라고 할 수 있는 정당해산 조항에서 독일기본법 제212항은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를 침해, 폐지하거나 또는 독일 연방공화국의 존립을 위태롭게'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반해, 우리 헌법 제84항은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라고 하고 있다. 만약 '민주적'과 '자유민주적'이 그렇게 별스럽게 의미가 다르다고 강변한다면 오히려 우리 헌법이 독일기본법에 비해 훨씬 폭 넓게 정당에 대한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9. 개인적으로는 우리 헌법상 전문 및 평화통일을 위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란 표현과 정당해산 조항의 '민주적 기본질서'란 표현은 범주에 따른 강조의 차이라고 보여진다. 그 차이를 마치 양립불가능한 것처럼 주장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란 관념 외에 파시즘적 민주주의나 공산주의적 민주주의라는 관념도 인정하는 게 아닌가 의심한다. 말하자면 그런 민주주의(?)와 투쟁하기 위해 용어상 대비되는 자유민주주의란 관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체제는 민주주의 부정이 전제돼 있기 때문에(파시즘은 애초부터 민주주의 부정이념이며, 공산주의 이론상으로도 국가와 민주주의는 고사한다) '민주주의, 혹은 민주적 기본질서'란 용어로도 그런 체제와의 투쟁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10. 언젠가 개헌정국이 다시 돌아올 수도 있으니,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란 용어 자체가 양립불가능한 적대적 개념이란 관념은 정치적으로도 지양해둘 필요가 있다. 우리 헌법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든 '민주적 기본질서'든 범주에 따라 어떤 용어를 사용하든, 실제로 세상이 진보한다면 이 용어차이가 아니라 국민적 정치관념의 시대적 진보에 의존할 것이기 때문이다. 즉 정치가 퇴행하면 '민주적 기본질서'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든, 어떤 용어로도 얼마든지 탄압당할 수 있고, 진보하면 그 용어차이가 아무 장애도 아닐 것이다.


 


11. 결론적으로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는 개념적으로 양립불가능한 용어가 아니다. 특별히 우리 헌법이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할 땐 특정 범주에서의 민주주의를 강조하기 위해 자유라는 단어로 수식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 헌법이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양립시켜가며 대한민국체제를 규정하는 건 자가당착일 것이다. 나는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가 마치 양립불가능한 것처럼 대립하며 정치적 에너지를 낭비하는 건 부질없다고 본다. 그보다는 규범의 해석적 진보를 뒷받침하는 정치적 진보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게 훨씬 더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김욱, https://twitter.com/GhimWook, 2021. 0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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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 <개헌전쟁>을 다음 <맹자> 구절을 화두로 삼아 썼다.

 

자산이 정()나라의 정사를 다스릴 적에 자기가 타는 수레를 가지고 진수(溱水)와 유수(洧水)에서 사람들을 건네주었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은혜로우나 정치를 하는 법을 알지 못하였도다. 11월에 도강[徒杠: 사람이 다닐 다리]이 이루어지며 12월에 여량[輿梁: 수레가 다닐 다리]이 이루어지면 백성들이 물 건너는 것을 괴롭게 여기지 않는다.”

 

-맹자, 현토완역 맹자집주(전통문화연구회, 2011) 중에서

 

예나 지금이나 세상 사는 모습은 비슷하다. 오늘날에도 인간적인 자산을 옹호하고 알파고 같은 맹자를 요란하게 비난할 독자도 많을 것이다. 물론 다른 한편에서 자산을 비판한 맹자를 마음 속 깊이 지지할 독자도 많을 것이다. 나는 자산보다는 맹자를 지지하는 유권자가 압도적으로 더 많아져 세상에 다리를 놓기를 기대하며 이 책을 썼다.

 

이 책은 끊임없이 독자의 평화로운 사고체계를 괴롭힐 것이다. '뭣이 중한가?!' 추운 한겨울에도 누구나 스스로의 힘으로 물을 건널 수 있게 한때 힘들여 놓은 다리가 중한가, 아니면 힘 있는 사람 수레에 편승해 그저 오늘이 어제처럼 한두 번 편하게 물을 건널 수 있는 행운이 중한가? 소수자·약자도 자신들에 합당한 정치적 지분을 보장받는 민주주의가 중한가, 아니면 패권적 대통령 권력에 편승해 한때 특혜를 누리는 게 중한가?

 

나는 우리 모두 그 답을 이미 알고 있다고 믿는다. 그 답을 현실 속에서 실천하지 못하는 건 우리의 탐욕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나눠먹기' 보다는 '혼자 먹기'를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투쟁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민주주의를 지지할 이유가 없다.

 

이제 우리나라는 '대통령을 내 손으로'라는 절차적 민주주의 시대를 넘어서 '나눠먹기'가 보장되는 실질적 민주주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경제적 나눠먹기'를 위해서는 '정치적 나눠먹기'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 실질적 민주주의를 쟁취해야 한다.

 

한데 그런 미래로의 진보를 가로막는 세력이 있다. 나는 내일의 평등한 시대정신에 반하는 어제의 반민주 패권세력과 싸울 것이다. 심지어 '나눠먹기'가 아니라 '혼자 먹기'가 민주주의라고 강변하는 세력도 있다. 나는 그들 '이데올로기 청부업자들'과도 싸울 것이다. 이 책이 바로 그 싸움의 무기다. 이제 싸우는 일만 남았다. 모두들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에 함께 동참하시기를….

 

김욱, http://blog.aladin.co.kr/kimwook/, 2017.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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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전인 11월 25일, 나는 CMB광주방송 특집토론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주제: 촛불민심, 호남의 비전은?

녹화일시: 2016년 11월 25일(금).

방송일시: 2016년 11월 30일(수).

 

https://www.youtube.com/watch?v=f2jnG-eTisc

 

탄핵 전인 11월 25일, 문재인은 대학생과의 시국대화에서 이런 발언을 했다.

 

[문재인은] "헌법에 손 볼 대목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이 정국이 다 끝난 후에나 논의할 문제"라며 "가장 정정당당한 방법은 다음 대선 출마 후보들이 개헌과제들을 공약하고 그래서 선택받는 후보가 다음 정권초기에 개헌을 해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고 올바른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시기에 개헌을 이야기하면서 제왕적 대통령제가 이번 사태의 근본이라고 이야기하는데 헌법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겨난 건가"라며 "헌법에 무슨 죄가 있나. 헌법은 피해자"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2016년 11월 25일.

 

 

나는 <아주 낯선 선택>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아주 낯선 상식에서 밝힌 대로 새누리당(계열)은 수십 년간 정당지지율을 훨씬 웃도는 의석점유율로 대한민국의 다른 정파를 지배해왔다. 대통령선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따라서 나는 그 권력의 내용을 따지기 전에 그 권력 자체의 민주적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 우리가 지배당하는 영남패권은 헌법이 반민주적 제도 실행을 방조해서 생겨난 괴물일 뿐이다. 306쪽.

 

헌법엔 죄가 없다고? 아무리 독재자여도 우리 독재자면 좋다’, 아무리 사기꾼이어도 우리 사기꾼이면 좋다’, 아무리 바보여도 우리 바보면 좋다’는 망국적 탐욕이 진짜로 현실화되는 메커니즘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나라가 이 지경이 됐는데도, 눈 앞의 대권욕에만 눈이 멀어 그저 지지율 이점을 이용한 조기 대선 외에는 아무 생각도 없는 사람이라면 그는 한 나라의 지도자 자격이 없다!

 

탄핵소추는 이루어졌다. 이제 대한민국은 현행 '반민주적인 영남패권주의 선거제도'를 악용하려는 당리당략적 세력과 모든 소수정당에도 정당한 지분을 보장하는 '민주적인 정당명부식 비례대표 선거제도'를 정당하게 쟁취하려는 세력 간의 '민주/반민주' 투쟁을 보게 될 것이다.

 

김욱, http://blog.aladin.co.kr/kimwook/, 2016.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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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문재인은 백만 한 번째로 촛불시위 구호에 동참한다고 대국민 기자회견까지 자청했다. 그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이런 발언을 했다.

 

분명하고 단호한 입장표명을 요구하는 일부의 비판까지 감수했습니다. 이는 오로지 국정혼란을 최소화하려는 충정 때문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퇴로를 열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이러한 저와 우리 당의 충정을 끝내 외면했습니다. (…)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대통령이 조건 없는 퇴진을 선언할 때까지, 저는 국민과 함께 전국적인 퇴진운동에 나서겠습니다. 모든 야당과 시민사회, 지역까지 함께 하는 비상기구를 통해 머리를 맞대고 퇴진운동의 전 국민적 확산을 논의하고 추진해 나가겠습니다. <뉴스1>, 2016년 11월 15일.

 

누구의 눈에도 번쩍 띄는 한 대목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퇴로를 열어주고 싶었습니다"는 문구다. 문재인이 생각하는 박근혜의 '퇴로'는 어떤 것일까? 그냥 곱게 물러나는 것? 그런 거라면 백만 촛불시위대가 이미 목이 터져라 외쳤던 것 아닌가? 그런 거라면 자신이 아니더라도 백만 촛불시위대가 이미 퇴로를 열어준 것 아닌가? 문재인이 생각했던 다른 '퇴로'가 없다면 이 표현은 자신이 '촛불 기회주의자'라는 것 이상의 아무 의미도 없다.

 

문재인이 기자회견을 한 11월 15일 그 시각 직전까지, 그에게는 '사과→거국중립내각' 이상의 의견이 없었다. 그러다 청와대와의 내통을 의심케 하는 추미애의 '양자회담' 행보가 격렬한 지탄을 받고, 문재인은 화들짝 놀란 사람처럼 곧바로 '비상기구를 통한 전국적인 퇴진운동'을 선언한 것이다. 말하자면 기자회견 직전까지 그가 박근혜에게 열어주고자 했던 '퇴로'는 '거국중립내각'으로 읽힐 뿐이다.

 

그런데 문재인의 '촛불 기회주의'는 더 큰 문제가 있다. 문재인은 하야까지도 스스로 결단하지 못해서 탄핵의 절차까지 밟게 만든다면 그야말로 나쁜 대통령이 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국민들이 아무리 하야를 요구해도 대통령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강제적으로 하야시킬 방법은 없기에 탄핵은 마지막 법적인 수단으로 남는다. 탄핵은 그런 단계에 가서 논의해야 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이 주장이 무슨 의미인지 문재인은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일까?

 

우리 역사상, (다른 나라의 민주화 역사로 범위를 넓혀도 마찬가지다) 반민주적 권력이 평화적 시위를 통해 곱게 물러난 적은 없다. 1987년의 6·10? 그 항쟁의 격렬함 속에서도 전두환은 건재했다. 국민은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을 뿐이다. 1980년의 5·18? 광주시민들은 학살을 당한 후 목숨을 바쳐 끝까지 항쟁했지만 호남만 오히려 고립됐다.

 

단군 이래, 우리들 백성이 민의(봉기)를 결집해 권력을 타도한 건 딱 한 번뿐이다. 1960년 4·19다. 그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4·19는 115∼180여명의 사망자와 277∼600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하고서야 이뤄낸 혁명적 사건이다.

 

만약 문재인이 평화적인 촛불만으로 박근혜를 끌어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우리 역사상 단 한번도 일어난 적이 없는 일을 가능하다고 보는 셈이다. 뭐, 좋다. 그런 꿈을 꿀 수는 있다. 하지만 나는 박근혜가 아름다운 촛불의 바다를 보고 '아, 내가 잘못했네∼' 하면서 '영세교'적 양심의 가책을 받아 곱게 물러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더불어민주당 대표 추미애도 같은 생각인지 모른다. 그녀가 괜히 '계엄령' 운운했겠는가?

 

그러므로 문재인의 주장이 그나마 의미가 있으려면, '이제는 본격적으로 저항권을 행사하자'는 주장으로 해석해야 한다. 만약 그의 주장이 '저항권'이 아니라면 이미 충분히 결집되고 표현된 국민적 의사를 다시 집회결사의 자유를 수단으로 계속 끝없이 소모적으로 확인해가자는 의미밖에 없다. 설마 이것을 무슨 새로운 대안이라고 내세우진 않았을 것이다.

 

자, 이제 행간의 의미를 감안해 문재인의 주장을 저항권이라고 순리적으로 해석하면 무슨 말이 되는가? 그렇게 되면 그의 주장은 다소간 폭력적일 수밖에 없는 저항권을 먼저 행사하고, 안되면 헌법이 보장하는 평화적인 방법인 탄핵을 하자는 의미다. 이것이야말로 순서가 뒤바뀐 모험주의다. 즉 '촛불 기회주의자의 모험주의적 발상'이다!

 

어떤 경우에도 저항권은 최초의 수단이 아니라 최후의 수단이다. 그것이 거쳐야 할 과정이 다소간 폭력적이고, 가져올 결과가 준혁명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미 충분히 '나쁜 대통령'인 박근혜는 탄핵부터 시도해야 한다. 이 탄핵과정을 통해서 새누리당을 와해시켜야 한다. 박근혜와 새누리당의 정통성에 미련 있는 자들을 새누리당과 함께 고사시켜야 한다. 폭력적 저항권이 아닌 지금까지의 평화적 촛불만으로도 그들에게 그런 압력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데는 충분하다고 본다.

 

탄핵이 안 되면 어떡하냐고? 헌법개정권력으로 박근혜를 퇴진시키면 된다. 그것도 안 되면 어떡하냐고? 그땐 최후의 수단인 저항권을 행사하면 된다. 그것도 안 되면 어떡하냐고? 최후의 수단이 안 되면 다른 방법은 없다. 그래서 모든 것을 걸고 싸울 수밖에 없고, 이 나라에 크나큰 부담을 주는 저항권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은 다소간 폭력적이 될 수밖에 없는 최후의 수단인 저항권을 먼저 동원하고, 안 되면 평화적인 탄핵을 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 도착적 주장을 통해 그가 얻고자 하는 게 도대체 뭔가? 지금까지 더불어민주당 추미애와 문재인의 행보는 박근혜의 하야와 사후보장, 대선을 위한 친문내각과 새누리당의 건재를 이용한 대선승리 전략만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케 한다. 단순한 촛불 기회주의자의 모험주의적 발상도 부족해 넌센스와 현상유지적 정략까지 보태진 셈이다.

 

나는 짧게는 29년, 길게는 55년만에 찾아온 이 혁명적 기회를 단순히 대통령 선거 몇 개월 빨리 치르는 것으로 허망하게 마무리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 역사적 기회를 지난 수십 년 영남패권주의의 유산을 청산하고, 정계개편과 개헌을 통해 민주 국민의 의지를 제도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기회로 승화시키기를 바란다. 그리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저 현상유지적 대통령 권력만을 탐하는 촛불 기회주의 세력의 모험주의적 정략에 휘둘리지만 않는다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

 

김욱, http://blog.aladin.co.kr/kimwook/, 2016.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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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역대급 '국민바보' 캐릭터는 거의 코미디계에서 배출했다. 예컨대 배삼룡, 이주일, 심형래, 이창훈 등이 그들이다. 기억에 남는 코미디계 외의 인물로는 <여로>의 장욱제 정도가 있다.

 

그런데 바야흐로 이들 막강 '국민바보' 캐릭터 아성에 도전하는 인물이 혜성처럼 등장했다. 대한민국 대통령 박근혜다. <뉴시스>는  그 '국민바보 박근혜'의 화려한 등장을 이렇게 보도했다. 두 눈을 씻거나 비빈 후 읽어보기를 권장한다.

 

참모진이 없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파격적' 조치들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배후설'도 분분하다.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이 의지했던 최순실씨가 없는 상황에서 '왕실장'으로 통했던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박 대통령의 뒤에서 이번 사태 수습을 위한 훈수를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뉴시스>, 2016년 11월 6일.

 

좀 심하지 않은가!? 그러니까 <뉴시스> 기사인즉슨 대한민국 대통령 박근혜는 "참모진"이나 "배후"가 없이는 "'파격적' 조치들"을 내놓을 능력이 절대로 없는 '바보'사람이라는 말 아닌가? 말을 조금 바꾸면, <뉴시스>는 박근혜가 최순실도 없는 상태에서 이런 조치들을 잇달아 내놓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미스터리란 것 아닌가? 이쯤 되면 가히 모두가 인정하는 역대급 '국민바보'의 탄생이라고 할만 하다.

 

그런데 박근혜 '국민바보'가 지난 역대급 '국민바보'와 다른 점이 한 가지 있다. 그건 지난 역대급 '국민바보'는 모두 설정된 캐릭터였는데 박근혜의 경우는 설정이 아니라 실제상황이라는 사실이다. 그것도 '대통령자리에 공주처럼 앉아 있는 국민바보'라는 실제상황!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상식에 따라 말해보자. 애초에 그런 말 못할 '불쌍한 사정'이 있었다면 그 국가기밀이 누설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해 적들이 알지 못하게 했어야 했다. 한데 불행하게도 대한민국의 가장 중요한 국가기밀이 불과 며칠 사이에, 미처 손쓸 틈도 없이 순식간에 대부분 들통나버렸다. 그나마 청와대로서는 아직 '7시간 동안'의 국가기밀이 드러나지 않은 정도를 다행으로 여길만 하다. 어쨌거나 이제 사후조치도 할 수가 없다. 이를 대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프레시안> (2016년 11월 5일)은 지난 주말 5일 시위에서 "박근혜는 병원으로"라는 구호가 등장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박근혜가 단순히 '사이비종교'에 빠진 상태라면 병원이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 난처한 문제는 박근혜의 경우 '자신이 사이비종교에 빠지지 않았다고 믿는 국민바보'라는 사실이다.

 

나는 '바보'를 병원에서 고칠 수 있다는 말을 아직 못들었다. 따라서 박근혜는 병원으로 가더라도 '자신이 사이비종교에 빠졌다고 인정하는 국민바보' 정도의 상태로 퇴원할 가능성이 절대적으로 높다. 따라서 병원은 완전한 해결책이라고 할 수가 없다.

 

 

혹시 감옥은 '바보'를 위한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다소 모호하긴 한데 이런 경우가 다반사로 있긴 하다. 자신의 죄가 뭔지를 모르는 '보통바보'들도 감옥에 보내질 것같은 법정상황에 직면하면 마치 해탈한 사람들처럼 갑자기 머리가 맑아져 자신의 죄를 순순히 인정하고 눈물로 뉘우치는 경우다. 그런 걸 감안하면 감옥은 '국민바보'를 '보통바보' 정도로 만드는 상당한 효과가 있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종합하면 '박근혜문제'를 완전히는 몰라도 그럭저럭이라도 일단 해결하기 위해서는 병원과 감옥 둘 다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단 돌팔이와 떡검이 아닌 훌륭한 명의와 영혼을 가진 검사부터 우선 구해야 한다는 어려운 전제가 있다. 과연 이것이 가능할까?

 

대한민국에 정확한 '사망진단'도 못하는 돌팔이만 있는 건 아닐 것이다. 훌륭한 명의도 잘 찾으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고 본다. 한데 영혼을 가진 검사는? 그런 검사를 구하는 건 쓰레기통에서 산삼을 찾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본다. 그러니 대한민국은 우선 영혼을 가진 검사부터 만들어가야 한다. 이번 주말 12일에 광화문에 모이는 국민들이라면 우선 그런 특별한 검사를 만들어갈 능력이 있지 않을까 싶다. 기대된다.

 

김욱, http://blog.aladin.co.kr/kimwook/, 2016.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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