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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전집 4 - 국가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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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국가... 딱 보는 순간.. 역시나 두껍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걸 언제 다 읽을까 부담이 되기도 했고, 과연 끝까지 읽을 수 있을꺼라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항상 두꺼운 고전은 중간에 그만두곤 하므로) 하지만 다행인 것은 역자가 천병희 선생님이라는 것이었다. 천병희 번역의 글은 다른 것들보다 읽기가 쉬운 편이라 꼬박꼬박 챙겨보는 편이기 때문에 이 책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덜고 읽기 시작했다.

 

그럼 플라톤은 누구인가? 간혹 친구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오늘날의 상황과는 맞지 않는 '옛날 사상가' 라고. 책이 참 어렵기만 하고. 시대 상황에 맞지 않는다고. 그러나 그건 플라톤에 대한 오해다. (아니 플라톤의 책을 성실하게 읽지 않은 이들의 오해인가?) 플라톤은 단순히 옛날 사상가라고 치부하기에는 혁신적이며, 플라톤의 <국가>에는 오늘날에도 배울 만한, 생각해 볼 만한, 어쩌면 논란이 될 만한 혁신적인 주장들이 담겨있다. 방대한 양을 다 다루기는 힘들기 때문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제 5권에 대해서만 논해보자.

 


너무나 혁신적인 <국가> - 제 5권. 남녀평등과 공유제

플라톤은 당시 사회적 관습에 반해 매우 혁신적인 구상을 했다. 당시 그리스 사회는 가부장제 사회로 여성의 지위가 매우 열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라톤은 남녀가 모든 일을 공동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놀라운 민주주의를 달성했던 그리스였지만, 여성에게는 아무런 권리도 없었는데, 플라톤은 이미 2500년 전에 강력하게 남녀평등을 설파한 것이다.

플라톤은 여자가 단지 남자보다 약간 약하다는 것 말고는 양자 간의 근본적인 성향의 차이는 없다고 주장한다. 통치하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여자이기 때문에 여자가 해야 하는 일이 있고, 남자이기 때문에 남자가 해야 하는 일은 없다. 오히려 여러 가지 성향들이 양자에 모두 비슷하게 흩어져 있어, 모든 일에 여자나 남자나 자신의 성향에 따라 관여할 뿐이다. 그러므로 남녀는 같은 일을 할 수 있고, 그에 따라 같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 때문에 플라톤은 남성은 물론이고 여성도 통치자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서로 다른 것을 '내 것'이라 부름으로써 나라를 분열시키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오히려 수호자들은 같은 것들을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고 같은 목표를 추구하며 되도록 고통과 기쁨을 공유하게 될테니 말일세.

그들은 몸 말고는 사유한 것이 없고 모든 것을 공유하는 까닭에 그들 사이에는 소송과 고소가 사실상 사라지지 않을까? 따라서 그들은 돈이나 자식이나 친족을 소유함으로써 발생하는 온갖 파쟁에서 벗어날 것이네. 또한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들에게 아첨하는 것, 빚을 갚지 못하는 것, 어떻게든 돈을 융통해서 가정을 꾸려나가는 온갖 어려움들을 겪지 않을 것이네. (p.293 ~p.295)

 

 또한 그는 이상국가에서는 모든 것이 공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부모와 자식 및 아내를 공유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유재산도 모두 포함된다. 모든 남자들과 모든 여자들은 서로 공유하게 되어 있고, 어떤 여자도 어떤 남자와 개인적으로 동거할 수 없다고 한다. 또한 그들은 아이들도 모두 공유하게 되어 있으며, 부모와 아이들이 서로 알아보지 못하게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이것은 단지 공동체의 갈등과 분열을 막기 위한 것이며 남녀의 무차별적인 성적 자유를 위한 것은 아니다. 위에서 보면, 플라톤은 공유제의 장점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처자공유와 사유재산 소유금지. 이 문제들에 대해서는 오늘날 논란의 여지가 많을 것이다. 나 역시 많은 부분을 생각 하게 된다. 하지만 사회 지배층에게 사유 재산을 허용하면 권력을 이용하여 부정부패를 저지를 수 있기 때문에, 진정 국가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조건으로 지배층의 사유 재산을 소유하지 말아야 한다는 플라톤의 제안은 정치인들이 권력을 이용해 사리 사욕을 채우거나 사회 지배층이 부당한 이익을 챙기는 오늘날, 여전히 유용해 보이지는 않는가?

 

플라톤의 <국가>는 독자들에게 플라톤에 대한 오해를 푸는 책이자 무엇보다 읽어야 하는 의무만 있고 읽을 수 없는 고전을 읽을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이미 2500년 전에 생생하게 복지국가의 이념을 설파한 그가 놀라웠고, 대략 2500년 전 플라톤이 살던 시대와 현재는 다르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사회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변함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이 책은 오늘날 우리에게 올바름이란 무엇인지 끝없이 고민하게 만들고,  현대 사상가들에게 여전히 새로운 사유를 하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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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배꼽, 그리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문명의 배꼽, 그리스 - 인간의 탁월함, 그 근원을 찾아서 박경철 그리스 기행 1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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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배꼽, 그리스>는 그리스 여행기이다. 의과대학을 다니던 한 청년은 단골 책방의 서가를 둘러보다 <예수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다>라는 책에 시선이 꽂히고, 단숨에 그 책을 읽어내려간다.이름도 낯선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 그리스 작가의 책은 한 청년의 콩닥거리게 만들었다. 그 이후 20년이라는 시간은 훌쩍 지났고, 지천명의 나이가 되기 전에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나라 그리스를 속속 들여다보기 위해 그곳으로 떠난다. 이 책은 이십대의 청년이 가슴에 새긴 꿈을 나이 오십을 앞두고 실현한 여행의 기록이다.

 

그리스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필자의 말대로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떠오르는가? 그의 저서 그리스인 조르바가 한국에서 인기를 끌었기에 충분히 익숙해진 이름이 아닌가? 혹시 그리스 신화의 수 많은 신들이 떠오르는가? 그리스는 아름다운 신들과 수 많은 신화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아닌가? 요즘 신문에 자주 등장하는 외환위기로 국가 위기에 처한 그리스가 떠오르지는 않는가?

 

 

<박경철 그리스 기행 1>

 

여행의 출발지는 펠로폰네소스로 정했다. 바로 이곳 펠로폰네소스가 그리스 문명의 어머니이자 서구 문명의 자궁이기 때문이다. 익히 알려진 코린토스, 미케네, 올림피아, 스파르타 외에도 미스트라, 모넴바시아, 글라렌자, 에피다우로스 등 고대 그리스 문명의 씨앗들이 뿌려지고 싹튼 땅이 바로 펠로폰네소스이다. 우리는 흔히 그리스 하면 조건반사처럼 아테네를 떠올리며 동일시한다. 펠로폰네소스에서 싹튼 씨앗이 꽃을 피우고 열매 맺은 곳이 바로 아테네가 있는 아티카 지역이다. 그런 까닭에 그리스라는 미궁의 출발점은 펠로폰네소스여야 했다. (프롤로그 중에서)

 

이 책의 표지에는 '박경철 그리스 기행 1' 이라고 쓰여있다. 이 책은 시리즈이다. 그리스 전체를 횡단하며 발길 닿는 곳에서 시간의 강을 종단하는 이 여행은 펠로폰네소스에서 시작해 아테네가 속한 아티카, 그리스 북부 지역인 테살로니키 그리고 고대 그리스 권역을 아우르는 마그나 그라이키아 등으로 이어질 예정이며, 각각의 여행은 제1부 펠로폰네소스 편 세 권, 제2부 아티카 편 네 권, 제3부 테살로니키 편 한 권, 제4부 마그나 그라이키아 편 두 권 등 모두 열 권의 책으로 정리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 책에서 나는 문명과 역사를 다루되 여행기의 형식을 빌려 공간 이동을 이야기에 중심에 놓고자 한다. 즉 시간에 따른 공간 이동이 아니라 공간에 따른 시간 이동을 하는 셈이다. 굳이 공간에 따른 시간 이동을 취하려는 까닭은 연대기적 서술이 지루해서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서술이 공간이 담고 있는 풍부한 이야기를 놓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프롤로그 중에서)

 

구체적인 삶의 자취가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고 고스란히 묻어 있는 공간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그 중요성에 비해 공간은 지금까지 덜 주목받았던 게 사실이다. 실제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공간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건 만만한 일이 아니다. 하물며 수천 년의 역사를 거슬러 문명의 격랑이 파도쳤던 그리스의 경우라면 더더욱 쉽지 않다. 저자는 연대기의 틀을 고수할 경우 왕조나 지배 계급을 중심으로 한 주류의 이야기에 머물 수 있음을 경계한다. 역사에 명멸했던 그 모든 문명이 주류들의 몫이라 잘못 전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명의 배꼽을 찾아 떠나는 여행>

 

이 책은 다른 여행 가이드, 관광홍보 책자와는 조금 다르다. 여행기이라고는 하지만, 여행에 대한 직접적인 TIP과 가이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를 역사적, 철학적으로 조금 더 들여다 볼 수 있게 만든다. 읽으면서 당장 그리스로 떠나고 싶다며 여행을 꿈꾸기보다는, 문명의 그리스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다는, 공부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다. (다소 낯설고 밋밋하기도 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문명의 배꼽, 그리스>는 문학, 철학, 정치, 예술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보기 드문 ‘르네상스적 인간’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특유의 깊은 통찰과 사색의 흔적을 따라 한 여행기이다. 또한, 책에 나오는 해외 자료 등의 방대한 참고문헌에서 저자의 노고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혹시 그리스 여행을 하려 하는가? 그리스의 하늘과 바다가 하나의 쪽빛을 이루는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풍경을 보기 위해서? 그것도 좋기야 좋다. 하지만 그 풍경 뿐만 아니라, 문명의 배꼽 그리스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어떠한가? 

 

 

평생 동안 내가 간직했던 가장 큰 욕망들 가운데 하나는 여행이어서 - 미지의 나라들을 보고 만지며, 미지의 바다에서 헤엄치고, 지구를 돌면서 새로운 땅과 바다와 사람들을 보고 굶주린 듯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이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모든 사물을 보고, 천천히 오랫동안 시선을 던진 다음에 눈을 감고는, 그 풍요함이 저마다 조용히, 아니면 태풍처럼 내 마음속에서 침전하다가 마침내 오랜 세월을 걸쳐서 고운체로 걸러지게 하고, 모든 기쁨과 슬픔으로부터 본체를 짜내고 싶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 그리스 순례, 영혼의 자서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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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 - 왜 미국 민주주의는 나빠졌는가
매튜 A. 크렌슨 & 벤저민 긴스버그 지음, 서복경 옮김 / 후마니타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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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을 위하여 정치를 행하는 제도,

또는 그러한 정치를 지향하는 사상.

 

대한민국 헌법 제 1조에는 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라는 조항이 있다. 그만큼 민주주의라는 것은 한 국가의 이념이며, 국가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일테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미국 역시 민주주의 국가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그 민주주의의 이념이 점점 퇴색되어가고 있다.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는 왜 미국 민주주의는 나빠졌는지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하는 책이다. 그 중에 중요한 몇 가지만 설명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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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민주주의에서 개인민주주의로

 

대중민주주의 : 엘리트들이 정치의 장을 장악하기 위해 비 엘리트들을 동원하는 방식.

개인민주주의: 새로운 통치기술들이 대중을 사적시민들의 집단으로 해체시키고 개인화 하는 방식.

 

평범한 시민은 2백여 년이 넘도록 서구 정치 무대의 중요행위자 였다. 하지만 오늘날 서구 국가들은 평범한 시민들의 참여 없이도 군대를 모으고 세금을 걷고 정책을 집행하는 방법을 발견했다. 이런 근본적인 변화는 정치 엘리트들이 대중의 정치 참여에 의지하지 않고 권력을 유지하며 행사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p.9 서문)

 

오늘날의 정치엘리트들은 유권자 대중을 주변화 했고, 점차 법원과 관료들에 의존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 있다. 평범한 미국인들은 동원된 대중의 구성원으로서가 아니라 개인으로서 정부와 관계를 맺는 것이 표준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투표자 없는 선거

 

오늘날에는 19세기 방식과는 달리, 어떤 정당도 우권자 등록을 하지 않는 수천만의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미국인들을 동원하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오히려 많은 후보자들은 상대를 비방하고, 미등록 유권자들과 상대편 지지자들이 투표하러 가지 않도록 '네거티브' 캠페인을 벌여 의도적으로 투표율을 낮춘다. (p.97)

 

건국 초기 예외적일 만큼 인상적이었던 민주주의 발전과 19세기 중반 미국의 역동적인 정당 조직은 대통령 선거 캠페인에서 유권자의 70~ 80퍼센트를 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는 60년 이상 투표율이 하락했다. 투표는 시민 참여의 가장 일반적인 수단이며, 투표하는 유권자가 줄어든 것은 시민의 역할이 위축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정확한 징표다.

 

과세 : 자발적 순응에서 자동화로

 

매년 거두어 들이는 연방 조세 세입 2조 달러 가운데 절반 정도는 개인소득세에서 나온다. 그리고 총액의 대략 75% 정도를 차지하는 임금노동자 원천징수는 개별 납세자의 지지나 동의를 얻기 위한 어떠한 행위도 필요 없이 재무부로 들어간다. 납세자는 실제로 과세 요구에 저항할 기회가 없다. (p.74)

 

과세 역시 변해갔다. 정부는 수백만 시민으로부터 그들의 납세 의지와 무관하게 세입을 거두어들이고 있다. 9.11 테러 공격 이후에 재무부는 전쟁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전쟁 채권을 발행해 애국적 정서를 표출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해야 한다고 제안했지만, 부시 대통령은 국가를 위해 자신의 돈을 지출하고자 한다면 채권을 구입하는 것보다 쇼핑을 하는 것이 났다고 발언했다. 그것은 즉, 정부는 시민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시민들은 경제나 부양하고 방해되지 않게 얌전히 있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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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중을 재구성하고 되살려 내기 위한 설득력 있는 프로그램을 반전시키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시민과 그들의 정부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어떤 관계를 구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안이 나타나기 전에, 오늘날 시민권과 민주주의가 서 있는 위치를 좀 더 충분히 이해해야만 한다. (p.441)

 

이렇게 몇 가지를 살펴본 바, 미국 민주주의의 주권이 과연 국민에게 있는가? 독립혁명에서 그렇게 외친 '대표없이 과세없다'는 말의 의미는 이제 점점 퇴색되어 가고 있지는 않은가? 사실 시민권의 개인화는 현실적인 미덕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에게 공적 시민권의 쇠락은 여전히 민주주의 생명력이 심각하게 손상된 상태를 의미한다. 이제는 우리의 민주주의가 어느 위치에 서 있는가 고민 해 보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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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처럼 단단하게
옌롄커 지음, 문현선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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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난 중국문학에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는 편은 아니다. 내가 제대로 읽어 본 중국문학 이라고는 모옌의 개구리가 전부, 그것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기에 책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통과의례적으로 읽었던게다. 작가 옌롄커는 참으로 생소한 작가였다. 그의 <물처럼 단단하게>는 참으로 이해 안 가는 제목이었다. 

 

<물처럼 단단하게>는 출판되자 마자 '적색(혁명)과 황색(성)의 금기를 모두 어겼다'라며 중국 최고 상부기관으로부터 '지명' 당했습니다. 모두들 합창하는데 혼자만 솔직하고 개성있는 목소리를 내려 한다면, 남들이 잊어주기 바라는 민족적 아픔에 피가 뚝뚝 떨어지는 기억에 쐐기를 밖으려 한다면, 모두들 엄숙한 데, 불손하게 굴려 가려 한다면, 가령 뭇 신들 앞에서 혼자 춤춘다면,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게 당연한 일이지요. (p.9)

 

책을 넘기자 마자 나온 서문이었다. 나는 적색과 황색의 금기에 그저 빨려들었다. 폭풍처럼 쏟아내는 주인공 가오아이쥔의 독백과도 같은 소설, '문화대혁명' 시기, 이념적 대립이 첨예했던 시기에 농민의 아들 가오아이쥔과 그의 전우이자 불륜의 연인 훙메이의 혁명을 둘러싼 광기의 사랑 이야기를 거침없이 읽었다. 혁명과 함께 시작된 그들의 사랑은 '광기'와 같았다.

 

사랑의 거목이 웅장한 것은 혁명이 비료이고 감정이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그물코와 같고 혁명은 벼리와 같지요. 벼리를 집어 올리면 그물로는 저절로 열리는 법입니다. 사랑 때문에 저희 혁명이 한 없이 강해지고 의지가 더욱 굳어졌습니다. 혁명 때문에 저희 사랑이 진실해지고 죽을 때까지 변치 않을 사랑이 영원해졌습니다. 서로 도와 혁명하여 혁명의 의미가 빛을 발하고 천년만년 비추며 영원히 사방으로 퍼지는 것입니다. (p.621)

 

낮에는 뜨거운 혁명의 언어, 밤에는 부드러운 사랑의 밀어.. 그들은 지하 땅굴에서 그렇게 서로의 몸을 탐닉하며 그렇게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 라디오에 뜨거운 혁명의 노래가 나올 때에 그들의 뜨거운 피는 더욱 솟구쳤고, 그들이 혁명에 성공할 때에 서로에 대한 육체적 욕망은 더욱 강해졌다. 그들은 사랑을 혁명으로, 혁명을 사랑으로 만들어갔다.

 

그들의 혁명과 사랑은 지상세계에서 허용될 수 없었고, 지하땅굴, 지하세계에서만이 그들의 혁명과 사랑은 지속되었다. 그들의 지하세계가 발각되었을 때, 그들의 혁명 역시 끝이 난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끝나지 않는다.그들은 심판대에서 죽기 직전까지 서로 입을 맞추고, 격동적인 사랑을 느낀다. 죽는 순간까지 그들은 입술이 찰싹 맞붙은 채...

 

사람이 죽는 일은 항상 있지만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기러기 털보다 가볍다. 혁명이 아직 성공하지 않았으니 동지들이여 계속 노력하기를! 안녕 혁명! 안녕히 레이턴 스튜어트!

 

<물처럼 단단하게>는 '적색(혁명)과 황색(성)의 금기를 모두 어긴 작품이었고, 민족적 아픔에 피가 뚝뚝 떨어지는 기억에 쐐기를 박은 작품이자, 아침 햇살이 가득한 산 속에서 수 많은 새가 지저귈 때, 어울어지지 못하는 고독한 울음 소리를 내는 필연적 운명의 소설이었다. 이 혁명과 사랑을 다룬 작가 옌롄커의 시선 역시 너무나 날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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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프레임 - 마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이택광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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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프레임]의 프롤로그는 이렇다. 마녀 사냥에 대한 역사나 마녀가 보이는 특징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마녀를 만들어내는 원리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이 책을 시작했다. 마녀사냥이라는 역사적 사건 자체에 대한 규명보다는 그것을 가능하게 한 원인을 해명하기 위해 집필했다. 나는 마녀를 만들어내는 원리 다시 말해서 마녀 프레임에 대한 분석을 하고자 했다.

 

#. 마녀사냥은 왜 시작된 것일까?

 

유럽의 마녀사냥은 가톨릭 교회의 권위에 심대한 도전 있던 시기에 발생했다. 체제에 위기 국면이 오면 언제나 이념으로 똘똘 뭉친 결사체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반대로 말하면 근본주의 창궐은 특정체제에 위기가 닥쳤음을 반영하는 증상이라고 볼 수 있다. (p.21)

 

중세인들에게 세계는 신의 섭리에 따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움직이는 시계톱니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중세 위계 구조가 무너졌다. 중세의 기독교적 가치관이 무너지자 가톨릭 도미니크회는 마녀를 악마화했다.마녀 이야기들은 예수 그리스도 이야기와 정확히 반대를 이룬다.

 

 

#. 인쇄술의 발달과 임상 의학의 탄생.

 

이러한 믿음을 확산하고 더욱 강화한 것은 인쇄술의 발달이었다. 책이 보급되며 마녀에 대한 지식은 확산되었고, 이렇게 마녀에 대한 지식을 보유함으로써 사람들은 더욱 확신을 갖고 마녀사냥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었다.

 

이 시대에 요술을 부렸다고 고발된 피고의 80%가 여성이었다. 그런 여성들은 조산부나 기도사로서 일반 대중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여성이 마녀로 많이 고발된 것은 조산부나 기도사들이 교구 사제의 라이벌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p.80)

 

또한 정치적으로 자기조직화를 통해 권력을 강화한 의사집단이 자체적인 교육과 면허체계를 만들어 세력화를 시도했고, 인쇄술의 발달로 의학 지식이 대중화되면서 다양한 의료 시술 행위가 범람하기 시작하자 이를 규제하고 표준을 제정하기 위해 외과의 집단이 결집되는 과정에서 '마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들이 생겨났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렇듯, '마녀'와 전혀 연관성이 없어보이는 것들이 '마녀'를 만들어 내는데 많은 역할을 했다.

 

 

#. 마녀 프레임의 유령

 

마녀사낭은 도덕의 붕괴라는 원인보다 세계와 주체 간 관계에서 발생한 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하나의 상징행위였다. 마녀는 영향력 있는 여성에 대한 집단적 테러였다. 여성이 가진 권력이 확대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동시에 공동체 위기를 여성에게 떠 넘길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여성의 권력은 기독교적인 패러다임에 수렴되지 않는 이교적인 것이었다. (p.112)   

 

합리성은 종종 비합리성을 옹호하기 위해 동원된다. 마녀사냥에서 작동한 논리 구조를 그대로 재현하는데 자신들이 이해할 수 있는 사실들만을 취사선택해서 합리적으로 재구성한다. 마녀사냥에는 사상적으로 서로 다른 노선을 걷는 특정 집단을 말살해버리려는 의식이 내재해 있다.

 

근대의 출현은 마녀를 다른방식으로 규정했을 뿐이다. 마녀는 언제든 공동체 위기에 처하면 호출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누구라도 공동체가 필요로할 때 마녀가 될수 있는 조건이아말로 근대 사회가 갖는 특징일지도 모른다. 이런 마녀라는 기표는 어떤 내용으로도 채워 질 수 있는 텅 빈 형식으로 우리 곁을 배회하고 있다. (p.160)

 

타블로를 둘러싼 학력위조 논란에서 알 수 있듯이, '인터넷 마녀사냥'에서 처럼 우리가 언제든 불특정 다수에게 공격받는 마녀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인종 청소냐 빨갱이 사냥으로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유령처럼 현신하는 마녀프레임의 토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에 인식에는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공동체가 마녀를 필요로 할 때 어떠한 마녀를 만들 것인가? 과연 다음 타켓은 누가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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