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처럼 단단하게
옌롄커 지음, 문현선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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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난 중국문학에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는 편은 아니다. 내가 제대로 읽어 본 중국문학 이라고는 모옌의 개구리가 전부, 그것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기에 책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통과의례적으로 읽었던게다. 작가 옌롄커는 참으로 생소한 작가였다. 그의 <물처럼 단단하게>는 참으로 이해 안 가는 제목이었다. 

 

<물처럼 단단하게>는 출판되자 마자 '적색(혁명)과 황색(성)의 금기를 모두 어겼다'라며 중국 최고 상부기관으로부터 '지명' 당했습니다. 모두들 합창하는데 혼자만 솔직하고 개성있는 목소리를 내려 한다면, 남들이 잊어주기 바라는 민족적 아픔에 피가 뚝뚝 떨어지는 기억에 쐐기를 밖으려 한다면, 모두들 엄숙한 데, 불손하게 굴려 가려 한다면, 가령 뭇 신들 앞에서 혼자 춤춘다면,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게 당연한 일이지요. (p.9)

 

책을 넘기자 마자 나온 서문이었다. 나는 적색과 황색의 금기에 그저 빨려들었다. 폭풍처럼 쏟아내는 주인공 가오아이쥔의 독백과도 같은 소설, '문화대혁명' 시기, 이념적 대립이 첨예했던 시기에 농민의 아들 가오아이쥔과 그의 전우이자 불륜의 연인 훙메이의 혁명을 둘러싼 광기의 사랑 이야기를 거침없이 읽었다. 혁명과 함께 시작된 그들의 사랑은 '광기'와 같았다.

 

사랑의 거목이 웅장한 것은 혁명이 비료이고 감정이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그물코와 같고 혁명은 벼리와 같지요. 벼리를 집어 올리면 그물로는 저절로 열리는 법입니다. 사랑 때문에 저희 혁명이 한 없이 강해지고 의지가 더욱 굳어졌습니다. 혁명 때문에 저희 사랑이 진실해지고 죽을 때까지 변치 않을 사랑이 영원해졌습니다. 서로 도와 혁명하여 혁명의 의미가 빛을 발하고 천년만년 비추며 영원히 사방으로 퍼지는 것입니다. (p.621)

 

낮에는 뜨거운 혁명의 언어, 밤에는 부드러운 사랑의 밀어.. 그들은 지하 땅굴에서 그렇게 서로의 몸을 탐닉하며 그렇게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 라디오에 뜨거운 혁명의 노래가 나올 때에 그들의 뜨거운 피는 더욱 솟구쳤고, 그들이 혁명에 성공할 때에 서로에 대한 육체적 욕망은 더욱 강해졌다. 그들은 사랑을 혁명으로, 혁명을 사랑으로 만들어갔다.

 

그들의 혁명과 사랑은 지상세계에서 허용될 수 없었고, 지하땅굴, 지하세계에서만이 그들의 혁명과 사랑은 지속되었다. 그들의 지하세계가 발각되었을 때, 그들의 혁명 역시 끝이 난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끝나지 않는다.그들은 심판대에서 죽기 직전까지 서로 입을 맞추고, 격동적인 사랑을 느낀다. 죽는 순간까지 그들은 입술이 찰싹 맞붙은 채...

 

사람이 죽는 일은 항상 있지만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기러기 털보다 가볍다. 혁명이 아직 성공하지 않았으니 동지들이여 계속 노력하기를! 안녕 혁명! 안녕히 레이턴 스튜어트!

 

<물처럼 단단하게>는 '적색(혁명)과 황색(성)의 금기를 모두 어긴 작품이었고, 민족적 아픔에 피가 뚝뚝 떨어지는 기억에 쐐기를 박은 작품이자, 아침 햇살이 가득한 산 속에서 수 많은 새가 지저귈 때, 어울어지지 못하는 고독한 울음 소리를 내는 필연적 운명의 소설이었다. 이 혁명과 사랑을 다룬 작가 옌롄커의 시선 역시 너무나 날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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