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 카를로 로벨리의 존재론적 물리학 여행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정훈 옮김, 이중원 감수 / 쌤앤파커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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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날 스켑틱이나 읽다가 정말 오랜만에 편 과학 대중서다. <코스모스>는 뭔가 클래식한 분위기의 책이어서 깊게 생각하면서 읽지는 않았는데, 10년 전 읽은 <엘러건트 유니버스> 이후로 간만에 머리 쓰면서 페이지를 넘겼다.


과학서적이어서 요약하기에는 내용이 너무 방대하고, 평가를 하기에는 이해가 어려워 다 관두고, 저자는 간단히 말하면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해오던 공간과 시간의 개념을 완전히 부숴버린다. 그에 따르면 공간은 최소 영역이 존재한다! 공간은 공간 그 자체가 아니라 최소 단위를 가지는 공간의 '양자'로 치환되는 셈이다. 공간은 알갱이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 길이는 무려 1센티미터의 10억분의 1의 10억분의 1의 10억분의 1의 백만분의 1이라고 한다(10^-33센티미터). 저자가 든 예시를 보자.


호두를 우리가 볼 수 있는 우주 전체만큼 크게 만든다고 해도 플랑크 길이는 여전히 보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엄청나게 확대된 뒤에도 처음의 호두보다 백만 배나 더 작습니다.


와우... 우리의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어떻게 보면 '없다'고 할 수 있는 길이다. 물리적 공간은 양자끼리의 관계의 망이 끊임없이 몰려드는 결과로 생겨난 조직이다. 공간은 불연속적인 구조를 가진다. 이 개념을 가지고 아킬레우스와 거북이의 달리기 시합을 보면, 우리가 수학 시간에 배웠던 풀이가 어그러진다. 무한급수의 계산법을 이용해 제논의 역설을 논파했는데, 공간을 무한히 나눌 수 없고 최소단위의 '양자'가 존재한다면 이 계산은 무한이 아니라 유한의 덧셈이 된다.


시간은... 공간의 양자가 이어지는 링크에서 만들어진 거품의 흔적이라고 한다(사실 시간 부분은 제대로 이해를 못했다). '진짜' 시간 t를 측정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존재한다고 **가정하면** 자연을 이해하고 기술하는 데에 아주 효과적인 도식을 만들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시간'이란 개념을 자연히 익혀왔다. 골때리는 게, 양자역학의 기본 방정식을 보면 시간 변수 t가 들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시간의 흐름은 세계, 즉 공간 양자에 내재되어 있고, 양자 사건들 사이의 관계로부터 시간이 태어자는 것이다! 으아아! (그런 점에서 저자는 시간은 인류의 무지의 결과라고 말한다)


이 이론으로 기술되는 세계는 우리가 익숙한 세계와는 아주 다릅니다. 세계를 ‘담고’ 있는 공간은 더 이상 없습니다. 사건들이 ‘그것에 따라’ 발생하는 시간도 더 이상 없습니다. 공간의 양자들과 물질들이 서로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기본적인 과정이 존재할 뿐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연속적인 공간과 시간이라는 가상은 이러한 기본적인 과정들이 무리지어 있는 것을 멀리서 흐릿하게 보고 있는 결과입니다. 투명하고 잔잔한 산정 호수가 무수한 작은 물 분자들의 빠른 춤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처럼 말이죠.


내 머리 안에 최신 과학 이론은 초끈이론인데, 저자는 자신이 주장하는 루프양자중력이론의 대안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끈이론이라고 말한다. 사실 현재로서는 루프양자중력이 완전히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과학이론은 언제나 현재를 합리적으로 말해주는 것뿐이지, 온 세상의 진리를 담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루프양자중력이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모순되는 부분을 상쇄시켜준다니, 지금으로는 최선의 이론이겠다.


분명 저자가 이 책은 동료 물리학자들이 모두 동의하는 확실한 사실들에 관한 책이 아니라고 말했듯이, 몇십 년이 지나면 분명 반박당하고 다른 이론이 튀어나올 것이다. 저자가 틀렸다 해도,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이 없지만,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여행은 항상 즐거울 것이다. 한 달 꼬박 걸려 읽었지만 그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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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엠 그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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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어퍼 이스트사이드
티에리 코엔 지음, 박아르마 옮김 / 희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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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심으로, 올해 읽은 소설 중 최악이다. 어쩌면 성인이 된 후에까지도.

2. 함께 읽는 책으로 선정되지 않았다면 이런 류의 책은 절대 펴지 않았을텐데. 가끔 페이지터너를 읽어서 스트레스를 풀 필요는 있지만, 적어도 페이지터너라면 <마션>만큼 읽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3. 이 책은 정말 쉽게 읽힌다. 스토리도 볼 거 없고, 인물은 매력이라곤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스토리? 주인공이 미쳤다고 눈가림하는 설정은 아주 진부하고 주변에서 계속 언급되는 인물이 범인일 가능성은 아주 적다. 그러므로 범인은 완전한 타인인데... 이런, 범인이 밝혀지니 웬걸, 너무 허무하다. 주인공과의 접점이 이렇게 적다니! 이딴식으로 악역을 소개하다니! 게다가 마지막에 범인을 낚는 저급한 속임수까지, 정말 어마어마한 소설이다.

4. 상업적이 아니라 문학적으로 성공하고 싶은 작가의 마음은 옮긴이의 말에서만 언뜻 볼 수 있었고, 소설 본문에서는 전혀 알 수 없다. 행간에서 작가의 고뇌와 성공의 의미를 읽어낸 사람은... 정말 칭찬해주고 싶다. 통찰력이 대단한 사람이야.

5.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궁금하지 않고, 스릴도 서스펜스도 없는, 절대 읽어서는 안될 소설이라고 단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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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선물 -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개정판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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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읽었던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의 주인공 진희가 왜 그런 어른이 되었는지, 어릴 적의 진희와 주변 인물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보다 훨씬 이야기가 풍부해서 좋았다.


진희는 어린 나이에 비해 조숙하다. 똑똑하고 남(특히 장군이... 불쌍한 우리 장군이)를 이용할 줄 안다. 특히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를 분리해 세상과 거리를 두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한다.


이는 이모(영옥)과는 반대다. 진희와 영옥은 거울에 비친 것마냥 정반대의 인물이다. 영옥은 진희보다 나이가 열 살이나 많으면서 때로는 진희보다 어린 듯한 느낌을 준다. 엄마(진희의 할머니)에게 자주 어리광피우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철없는 행동을 많이 하지만 자기 마음 가는대로 사는 게 진희보다 정감이 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진희가 허석을 대하며 허둥대는 모습은 소설에서 쉬이 볼 수 없는 진희의 부끄러운(?) 장면이기에 인간미가 느껴지기도 한다. 영옥은 이형렬과의 이별, 경자의 죽음을 겪으면서 한단계 성숙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한편 아쉬운 마음도 든다.


90년대에 쓰인 작품이어서 그런지 여자 팔자가 아주 난리났다. 진희의 삼촌은 소설 내에서 얼마 등장하지도 않는데 할머니는 자나깨나 아들 생각뿐이다. 광진테라 아줌마는 아주 못돼처먹은데다 한량노릇 하는 남편을 제발로 떠났음에도, 자식 생각과 남편이 보인 잠깐의 호의에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만다. 과거의 시대풍토가 그랬음에 어쩔 수 없는 인물과 묘사여서 어쩔 수 없겠지만 말이다. 게다가 소설 마지막에 뜬금없이 등장한 아버지는 겨우 두 쪽의 비중이지만 진희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셈이다. 이런 시간과 공간에서 자란 진희가 나이를 먹고 남성편력을 가진 것도 일견 이해는 간다. 


소설을 다 읽고서 아무렇지도 않게 자라온 내 어린 시절을 대입해본다. 내가 진희처럼 빨리 성숙했다면 과거의 기억을 어떻게 회상할까? 그 과거를 토대로 나는 어떤 부류의 인간이 됐을까? 기억도 나지 않는 어머니의 죽음, 어른들의 비밀과 부정, 사랑과 이별, 그리고 죽음까지, 소설이 보여주는 여러 에피소드는 분명 일반적이지만 독자 개개인에게는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모두들 다른 기억을 가지고 소회도 다르겠지. 문학이 주는 힘이다. 여러 사람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나저나, 제목은 왜 새의 선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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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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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아무 영양가 없는 잡담을 해봅시다.


1. 작년에 '소설가들이 꼽은 2017년 최고의 소설'이라는 수식어를 단 <바깥은 여름>(이하 여름)을 한 해 건너 드디어 읽었다. 여름이라는 화사한 계절, 그에 어울리는 파란색의 예쁜 표지까지, 작가의 전작 <두근두근 내 인생>(이하 내 인생)에 비추어보면 통통 튀는 소설일 것 같은데 막상 책을 읽은 사람들은 우울의 끝판왕이라고 한다. 그러니 어찌 기대를 안할 수 있겠어?


2. 많은 이들에게 찬사를 받고 많이 읽히는 김애란 작가지만, 아직 그의 작품을 2편밖에 읽지 않고 평가도 극을 달린다. 첫 작품집 <달려아, 아비>는 재밌게 읽었는데 김애란을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들어준 <내 인생>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2013 이상문학상 수상작 단편 '침묵의 미래'는 정말... 당시에는 최악이었다. 2012년 수상작들은 다들 좋아서 기대하며 읽었건만, 내게 '침묵의 미래'는 관념소설이라는 생각만 들게 했다.


3. 1호 2불호. 덕분에 그 좋다던 <비행운>도, <침이 고인다>도 모두 책만 사놓고 손도 안댔다. 사실 <여름>도 순위권에 없다가 어쩔 수 없이 읽어야 하는 처지에 놓여서 펴게 되었다. 뭐, 덕분에 좋은 책 읽었다. 다른 사람들이 극찬했을 때 읽었으면 함께 이야기하고 많은 의견을 나눴을텐데 조금 아쉽다. 부족한 내 안목을 탓하는 수밖에 없겠지.


4. 흠, 그런데 첫 작품 '입동'을 읽는데 어디서 읽은 느낌이다. 두번째 '노찬성과 에반'... 어라 이것도? '침묵의 미래'야 이상문학상 수상집에서 읽었다지만 다섯번째 작품 '풍경의 쓸모'도 익숙하다. 작년에 이 책을 읽었던가?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봐도 이 책을 편 일이 없는데? 책 가장 뒷편에 작품 발표 지면을 보니 알겠다. 창비와 릿터, 현대문학 잡지에서 읽었구나. 나도 저 당시에는(2014년) 충실히 살았구나, 새삼 내가 낯설어진다.


5. 대부분의 일반문학이 그러듯, <여름> 안이 작품들은 모두 상실을 다룬다. 상실에 주는 공허와 슬픔, 그것을 수용하는 태도(수긍하거나, 부정하거나)를 보여준다. 절대 <내 인생>을 생각하며 읽으면 안되겠다. 물론 <내 인생>도 상실을 직접적으로 다루지만 <여름>보다 훨씬 긍정적인 에너지를 내뿜는다.


6. 몇 작품에 대한 간단히 소회를 나눠보자. '입동'은 한 부부가 갑작스럽게 아이를 잃은 이야기다. 부부는 이 슬픔을 견디다가 집안의 더러워진 벽을 새로 도배하기로 마음먹는다. 슬픔과 더러움 - 슬픔의 극복과 도배를 통한 깨끗함은 아주 단순하면서 명쾌한 대비다. 여기서 끝났다면 별거 아닌 글이 되었겠지만, 부부가 도배를 하다가 벽에 그려진 아이의 낙서를 보는 순간 조금 새로운 국면에 도달한다. 잘 보이지 않는 벽 아래편에 그려진 아이의 낙서처럼, 슬픔은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있으면서 지워지지 않는다. 새로운 도배지을 벽에 붙이듯이 슬픔은 덧씌워질뿐 우리의 기저에는 여전히 남아 있다.


7. 노찬성과 에반. 초등학생 찬성이 버려진 개(에반)을 키우는 이야기이다. '노찬성과 에반'에서는 상실의 슬픔을 아는 찬성의 할머니와 상실의 개념을 모르는 찬성의 대비가 눈에 띈다. 에반이 나이가 들어 시름시름 앓을 때, 찬성은 돈이 없어 치료를 해주지 못하고 안락사를 시키기 위해 알바를 하며 돈을 번다. 이 이야기를 듣고는 같이 알바일을 하는 중학생은 찬성을 또라이 취급을 한다. 그래, 보통의 관점이라면 에반을 치료해줘야겠지만, 찬성은 에반의 아픔에 진정으로 공감한 것은 아닐까? 에반을 위해 자신의 개념 안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을 해주려고 노력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진정한 공감과 진정한 용서란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8. 침묵의 미래. 5년 전에 관념소설이라고 단정짓고 재미없다, 라고 평을 내렸는데... 지금 읽으니까 정말 좋다. '소수언어박물관'이라는 곳에서 사라져가는 언어를 보존하고 연구한다. 그 연구가 단순히 학술적이지 않고, 실제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유리 안에 전시하고 관람객이 오면 자신의 언어로 연기하듯 인사하는 식이다. 단편의 화자는 이제 막 소멸된(?) 언어(??)로, 언어의 존재와 소멸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를 생각해 볼만하다. 이 단편에서도 대비가 빛을 발한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천여 개의 언어지만 아이의 울음소리는 모든 인간이 단번에 이해할 수 있는 언어라는 뜻깊은 대비는, 같은 언어를 쓰지만 따로국밥처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마음 깊숙한 곳에는 연민과 공감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5년 전에는 왜 이 작품을 그렇게 형편없다고 평했는지 모르겠다...


9.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세월호를 연상시키는 단편이다. 상실을 마주하는 태도를 너무나도 서글프게, 동시에 연민 있게 그린다. 학생을 위해 목숨을 바친 남편을 그리워하는 화자(아내)는 계속해서 딱지가 생기는 생채기에 괴로워한다. 주변 사람들은 남편을 애도하고 학생을 원망한다. 이 사람들 사이에서 학생의 누나가 쓴 편지를 읽고서 화자는 울면서 남편의 용기와 희생에 끝내 눈물을 흘린다. 단편 안에서 아내는 주로 시리에게 질문을 하는데, 시리와 편지는 같은 텍스트이면서도 상반된 메세지를 전한다. 전자는 짜여진 알고리즘에 의해 대답을 해 화자가 원하는 답변을 주지 않는다.(화자가 답 자체를 원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반면 후자는 사람(학생이 누나)이 직접 써 진심과 공감이 담겨 있다. 시리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편지는 사라지는 인간적인 정과 감정교감을 뜻한다고 하면, 우리 인간이 잃어가고, 끝까지 지켜내야 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10. 단편 소설은 정말 어렵다. 장편에 비해 불친절하고 까딱 잘못 읽으면 작가가 숨겨놓은 의미를 놓치기 일쑤, 거기에 오해까지 더해지면 큰일이다. 그래서 모든 소설은 두 번 이상 읽어서 의미를 깊게 파악하고 싶은데 읽을 책은 많고 욕심은 크고 시간은 없으니 이정도로 만족...할리가 없잖아! 나도 더 똑똑해지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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