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 혼자도 결혼도 아닌, 조립식 가족의 탄생
김하나.황선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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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카피라이터 김하나와 에디터 황선우가 함께 살면서 겪은 여러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쓴 에세이다. 그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함께 살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어떤 다툼과 논쟁과 삐짐과 화해가 있었는지 적나라하게(?) 말한다. 책을 읽다보면 혼자 살기, 함께 살기, 가족의 의미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해보게 한다.

2. 여전히 나는 혼자 먹는 밥이 맛있고 혼자 하는 여행의 간편한 기동력을 사랑한다. 그런 한편으로 또 믿게 되었다. 혼자 하는 모든 일은 기억이지만 같이 할 때는 추억이 된다는 이야기를. 감탄도 투덜거림도, 내적 독백으로 삼킬 만큼 삼켜본 뒤에는 입 밖에 내서 확인하고 싶어진다. _18쪽

3. 내 취향에는 김하나의 글이 더 재밌다. 황선우는 뭔가 착 가라앉은 분위기에서 현재 우리나라의 사회적 문제를 고발할 듯한 글을 쓴다면, 김하나는 문자 그대로 통통 튀는 탱탱볼 같은 느낌의 글을 써내려간다. 책에서 뇌리에 남는 에피소드를 딱 하나 고르라면, 김하나가 황선우의 집을 청소하는 '집요정 도비의 탄생' 장이다. 이 부분만큼은 정말 깔깔대며 읽었다. 더럽다는 묘사를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감탄하면서 말이다. 예를 들어서, 좀 길지만,

> 냉장고를 열면 항상 물건이 우수수 떨어졌다. 요즘 욜로(YOLO)라는 말들을 하는데, 황선우의 냉장고를 열어보면 안다. 이 사람은 진짜다! 진짜 순혈 욜로다. 다음에 냉장고를 열 스스로를 배려할 시간 따위는 없다. 인생은 짧고, 당신은 인생을 단 한 번 살 뿐이다. 문을 열고, 우유와 햄 사이에 2.5cm 정도의 틈이 보이면 맥주캔을 그 틈에 어떻게든 욱여넣고, 서둘러 문을 닫는다. 그러니 열 때마다 제대로 자리를 못 잡은 물건들이 우수수 떨어졌고 그건 그냥 냉장고를 열 때마다 벌어지는 자연스러운 의식 같은 것이었다. 허락을 받고 냉장고를 정리하자 저 안쪽에서 고급 브랜드의 리미티드 에디션 초콜릿이 한 상자 나왔다. 초콜릿을 좋아하는 나는 반색했지만 유통기한이 3년 정도 지나 있었다. 냉장고 얘기만으로도 이 글의 반 정도는 채울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냥 채소통에서 비닐봉지에 싸인 미끌미끌하고 거무죽죽한, 거대하고 신비로운 굴을 꺼내 버리는 것으로 냉장고 청소는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라고만 해두자. 그 굴은 언제 욜로의 성전에 들어가 지하 감옥에 감금되었는지 아무도 모를 양배추였다... (105쪽)

이 문단은 정말 무릎을 탁 치면서 읽었다니까.

4. 법이 정한 '정상 범주'의 가족이 아닌 다른 관계를 가진 이들은 각종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함께 사는 사람으로서 서로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의 범위도 좁은 편이란다. 결혼이 필수가 아닌 선택의 범주에 들면서 생활동반자법의 도입에 많이들 찬성하지만, 실질적으로 동반자의 범위를 어디까지 정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한참 의견이 엇갈렸다. 현실적인 문제가 되니 함부로 말할 수가 없구나. 이래서 입으로만 떠드는 나같은 인간은 몹쓸 놈이 되는 거야.

5. 평생을 약속하며 결혼이라는 단단한 구속으로 서로를 묶는 결정을 내리는 건 물론 아름다운 일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더라도 한 삶의 생애 주기에서 어떤 시절에 서로를 보살피며 의지가 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충분히 따뜻한 일 아닌가. 개인이 서로에게 기꺼이 그런 복지가 되려 한다면, 법과 제도가 거들어주어야 마땅하다. 이전과는 다른 모습의 다채로운 가족들이 더 튼튼하고 건강해질 때, 그 집합체인 사회에도 행복의 총합이 늘어날 것이다. _271쪽

6. 재밌게는 읽었는데, 혼자 사는 것도 좋고 여럿이 사는 것도 좋은데, 그래서 앞으로 미래의 변화될 가족 형태에 맞춰 법과 제도를 바꾸고 서로의 편견을 깨는 것도 좋은데, 이 책을 다시 읽으라면 글쎄요, 딱히. 재치와 위트도 잠시 뿐이었다. 뭐, 그래도 생활동반자법이라든가 변화하는 가족의 형태에 대해 한번이라도 환기하고 곱씹게 만들어주었으면 그것만으로도 이 책의 소임은 다 한 것 아닐까 싶다. 작가들도 뭐 거창한 주장을 하려고 책을 쓴 건 아닐테고 말이다.

7. 그나저나 망원동 아파트를 사기 위한 대출금을 2년만에 갚아버린 작가님들 존경합니다. 진심입니다. 역시 회사를 열심히 다니려면 대출로 돈 좀 땡겨야 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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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잊은 그대에게 - 공대생의 가슴을 울린 시 강의
정재찬 지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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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은 말합니다. 의술, 법률, 사업, 기술, 이 모두 고귀한 일이고 생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이지만, 시, 아름다움, 낭만, 사랑, 이런 것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이라고. _5쪽, 머리말

올해 들어 시집을 세 권이나 읽게 됐다. 대략 평생 읽은 시집의 30%를 반년 동안 읽은 것이다. 두둥. 시는 항상 어려워서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분야다. 단편 소설도 주제와 상징 찾기가 어려워서 헤매는데 그보다 짧은 시는 어련하랴... 박준의 시집을 읽고 뒤이어 허수경의 시를 읽고나니 웬걸, 너무 어려웠다. 책장에 쌓아둔 시집이 많은데 이렇게 가다가는 죽기 전까지 다 읽지 못할 판이다.

이런 시를 어떻게든 읽고 느껴보고 싶어서 감동적인(?) 시 강의로 유명한 책을 드디어 폈다. 사실 시 강의에 긍정적이지 않다. 우리가 수능 준비할 때 배웠던 주제, 심상과 다를 게 있을까? 그래봤자 이전의 해석과 조금 다른 해석을 내놓고 ‘시는 자기 마음으로 느끼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정답은 없습니다‘라고 하겠지.

책은 시를 해석하고 가르치려 한다기보다는, 글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하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비록 저자의 생각이 반영된 내용들이지만 시의 글줄과 단어가 이전과 확연히 다르게 다가왔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이다. 무한도전에서 시를 주제로 부른 노래를 떠올리며 그저 낭만적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시는

> 별 하나에 추억과
> 별 하나에 사랑과
> 별 하나에 쓸쓸함과
> 별 하나에 동경과
> 별 하나에 시와
>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
>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
> _ 윤동주, <별 헤는 밤> 중에서

‘어머니‘라는 단어를 말한 이후로 어조가 바뀌고 수다스럽다고 느껴질 정도로 말이 많아진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슬픔과 격정이 이토록 강하게 다가오는 시였구나, 새삼 깨닫는다. 학교에서는 일제 치하의 슬픔, 타향에서의 고독, 순수의 상징으로 배웠던 ‘별 헤는 밤‘이라는 시는, 새로운 해석을 읽은 후에 완전히 다르게 읽힌다. 책은 이처럼 여러모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게 만드는 힘을 길러준다.

무엇보다도 여태까지 구절로만 알거나 몰랐던 명시를 접할 수 있어서 좋다. 크게 난해하지도 않고 꽤나 유명한 시들이어서 책에 빠져들기 쉽다.

> (시 해석에 대해) 시비가 해소되었는가? 아니면 거꾸로 이러한 해석에 도전과 반발심이 생기지 아니하는가? 그 어느 편이든 적어도 문학에 자명한 것이 없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깨닫게 되었는가? 상식이 뒤집히고 혼동이 되며, 그리하여 평면적으로 보였던 시가 3D 영화처럼 입체적으로 당신 앞에 다가서지는 아니하는가?
> 그렇다면 당신도 이미 사이와 차이를 따라 떠나는 이 즐거운 여행에 동행을 시작한 것이다. 이제 다시 시가 반가운 얼굴로 성큼 다가오기 시작할 것인즉, 그러니 그만 이 책을 덮고 부디 시집을 펼치시라. 시를 잊은 그대여. _298, 299쪽

책의 가장 마지막 문단처럼, 저자의 해석에 도전과 반발심을 느낀다면 그거 하나로도 충분한 것 같다. 각자마다 문학을 느끼는 감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글줄과 여백에서 무엇을 느껴보려고 노력하기, 그게 바로 시 읽기의 즐거움이 아닐까, 하고 크- 허세에 취해본다. 다음 읽을 시집은 윤동주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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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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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8)

1. 역시나 한번 읽어서는 그 진가를 제대로 알 수 없는 작가인 것 같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도 세 번을 읽고서야 그 재미를 알았는데, 오랜만에 새롭게 읽은 테드 창의 허들은 너무 높았다. 흔히들 SF 하면 떠올리는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와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펼치니 적응하기 힘들 수밖에.

2. 테드 창은 사건이나 인물을 극적이지 않고 건조하게 표현한다. 그의 작품은 하드 SF로 분류되곤 하는데, 이 장르는 기술이나 과학적으로 깊게 파고든다는 이야기지 건조한 표현과는 다르다. 그냥, 그의 문체가 그렇다고 봐야겠지.

3. 하드 SF를 읽으면서 가장 희열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은 자세한 설명에 있다. 대충 기술 용어 몇 가지 말하면서 퉁치는 게 아니라, 어떠한 기술의 원리를 자세하게 설명들음으로써 가까운 미래에 그 기술이 실재한다고 믿게 만든다.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은 평행우주를 소재로 다루는데, 두 페이지에 걸쳐 평행우주를 체험할 수 있는 원리를 상세히 설명한다. 이온이 어쩌고, 결맞음 중첩이 어쩌고 하면서 말이다. 상세한 설명이 싫다면 그냥 넘어가도 무방하지만 이런 서술까지 소화한다면 책이 더 흥미로워진다.

4. 그렇다고 제가 기술 변태라는 말은 아닙니다.

5. 테드 창의 이야기는 몇가지 갈래로 나뉜다. 첫째로, 통상적인 SF 이미지를 띄는 뭔가 기묘하고 뒤틀린 이야기. 이번 작품집에서는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이 이 분류에 속해 있다. 시간여행을 소재로 흥미롭게 이야기를 풀어가나 싶다가도, 이정도 이야기는 사실 다른 SF 소설이나 영화에서 많이 다룬 편이다. 이전 작품집의 ‘바빌론의 탑‘만큼 신선하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6. 두번째 갈래는, 우리에게 딜레마를 주는 기술이나 주제를 던지고 다양한 의견을 말하게 만드는 이야기다. 전작의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소고‘가 이 갈래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예를 들어, AR 글래스 같은 걸 끼면 모든 사람의 외모가 아름답게 보여 외모에 대한 차별이 사라질 것이다. 이와 동시에 우리는 외모라는 하나의 형질을 잃음으로써 개개인의 특수성이 사라져버리기도 한다. 도덕, 사회적 딜레마를 절묘하게 끌어들여 찬반 양쪽 진영의 의견에 모두 공감하게 만든다.

7. <숨>에서는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가 이 분류에 속하겠다. 이 단편에는 인공지능 펫이 등장한다. 이들의 지능은 발전할대로 발전해 말 그대로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수준까지 올라선다. 실재하는 반려동물과는 다르게 서로 대화가 가능하고 도덕적인 잣대까지 들이밀며 논쟁하는 존재를 두고, 우리는 그들을 개인의 소유물이나 하나의 생물학적 존재로서 취급해야 하는지 명쾌하게 판단할 수 없게 된다. 기술적 이야기가 들어가지만 관계와 희생이라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함으로써 이야기거리가 더욱 풍부해진다.

8. 이번 작품집에서 새롭게 발견한 마지막 갈래는 절망에 빠졌을지라도 끊임없이 진보하려는 존재의 아름다움을 담은 이야기다. 표제작인 ‘숨‘은 이 주제를 아주 잘 말한다. 작가는 멸망이 예견되어 있는 삶에서, 존재 자체가 멸망을 앞당기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끝없이 질문한다. (그렇다면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연장하기 위해 침묵한 채 남아 있는 편을 택해야 할까? 아니면 종말이 닥칠 때까지 계속 말을 해야 할까? _83쪽)

9. ‘옴팔로스‘는 신에 의해 삶의 목적이 정해진 세계에서 더이상 신의 존재가 무의미함을 깨달았을 때를 그린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좌절하겠지만, 작가는 삶의 무의미 속에서도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작품 내 화자는 여전히 신의 존재를 믿지만 자신의 행동과 존재 이유를 외부(신)가 아닌 내부(자기 자신)로 끌어들여 다시금 삶의 동기를 얻는다. 끝없이 돌고 도는 니체의 영원회귀의 삶에서 지지 않고 희망을 말하는 우리 존재와도 닮았다. 작가는 절망적이고 비관이 가득한 질문을 계속해서 던지지만 인간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는 로맨티스트이기도 하다.

10. 책을 재밌게 읽고도 이렇게 중언부언하는 거 보니 책의 1/3도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만큼 새롭고 재밌다. 2회차 읽어야겠다. 뭐, 이러고 또 한 2년 후에야 다시 펴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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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풀니스 -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
한스 로슬링.올라 로슬링.안나 로슬링 뢴룬드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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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8)

책을 펴서 몇 장 넘기면 퀴즈 13개가 나온다. 저작권 문제로 이를 모두 옮기지 못하지만, 퀴즈는 이런 식이다. 첫번째 문제. 오늘날 세계 모든 저소득 국가에서 초등학교를 나온 여성은 얼마나 될까? 20%, 40%, 60% 중에 하나를 골라보자. 아홉번째 문제. 오늘날 전 세계 1세 아동 중 어떤 질병이든 예방접종을 받은 비율은 몇 퍼센트일까? 20%, 50%, 80% 중에 답이 있다. 열두번째 문제. 세계 인구 중 어떤 식으로든 전기를 공급받는 비율은 몇 퍼센트일까? 역시 20%, 50%, 80% 중에 어떤 게 답일까?

나는 13문제 중 3개밖에 못 맞췄다. 보기가 3개여서 침팬지가 무작위로 찍어도 33%의 정답률이 나와야 하는데, 나는 침팬지보다 못한 것이다. 사실 함께 책을 읽은 이들 대부분 침팬지보다 정답률이 떨어졌다. 다행인 것은 선진국의 많은 이들이 비슷한 정답률을 보인다는 것이다.

책의 제목인 <팩트풀니스>를 번역해보자면 ‘사실충실성‘이란다. 흠, 이 단어도 영 이해하기 힘들다. 부족한 머리로 끙끙 앓으며 도출해낸 결과 팩트풀니스란 어떤 현상을 마주했을 때 그것을 왜곡되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분석하는 사고 도구이자 힘이다. 저자는 우리가 사회를 열 가지의 잘못된 본능을 장착한 채 바라본다고 말한다. 열 가지를 간략히 소개해보자면,

> 1. 간극 본능 - 현실은 극과 극으로 갈린다.
> 2. 부정 본능 - 세상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
> 3. 직선 본능 - 긍정이든 부정이든 도표의 선이 계속 직선으로 뻗어나갈 것이다.
> 4. 공포 본능 - 세상이 나쁜 일들은 다 내게 일어날 것만 같다.
> 5. 크기 본능 - 어떤 수치를 볼 때 비율이 아닌 크기만을 본다.
> 6. 일반화 본능 - 개념을 범주화시켜서 일반화를 시킨다.
> 7. 운명 본능 - 제 3세계의 저소득국가는 앞으로 성장하지 못할 것이고 선진국이 될 수 없다.
> 8. 단일 관점 본능 - 우리는 단순한 관점으로 통계와 세계를 본다.
> 9. 비난 본능 -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무조건 시스템이 아닌 개인의 문제로 치부한다.
> 10. 다급함 본능 - 다급한 나머지 잘못된 선택을 하곤 한다.

이란다. 이 본능에 따라서 우리는 어떠한 사건이나 사회현상을 맞딱뜨렸을 때 더 좋은 판단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세계는 단순히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으로 나뉘지 않는다(간극 본능). 우리가 생각한 양극단 사이에는 수많은 점들이 있는 것이다. 극과 극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면 편견에 빠져 옳은 판단을 하기 어렵다. 또한 세상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나아지고 있다(부정 본능). 지난 20년간 세계 인구에서 극빈층 비율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언론이나 방송에서 보여주는 자극적인 방송을 보면 비율이 더 늘었을 거라고 생각되지만 사실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고 한다. 신기하지 않은가?

저자는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잘못된 본능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고 말한다. 학생뿐만 아니라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층까지 말이다. 사회지도층과 사업가가 세계를 잘못된 방식으로 인식한다면 사회와 조직의 문제를 두고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저자가 사실충실성을 강조하는 이유다.

사실충실성에서 중요한 것은 데이터와 통계에 주목해 세계를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포 본능 장에서 저자는 자연재해(총사망자의 0.1%), 항공기 사고(0.001%), 살인(0.7%), 방사성물질 유출(0%), 테러(0.05%) 같은 끔찍한 사건을 다룬다. 연간 총사망자의 1%를 넘는 경우는 없지만 언론은 이를 집중적으로 다뤄 우리의 공포를 자극한다. 물론 사망률이 낮더라도 더 줄이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사망률이 더 높은 기초 위생 분야에서 우리의 관심을 덜어냄으로써 하나의 사회적 발전을 저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통계에는 함정이 있다. 모 기업의 임직원 연봉 평균이 1억이란다. 하지만 다수를 차지하는 이들의 연봉은 이보다 터무니없이 낮다. 높은 연봉을 받는 임원이 포함되어 있어 평균값이 생각하는 것보다 높은 것이다. 이 경우에는 중앙에 위치한 중앙값을 말해야만 한다. 또한 두 집단의 평균값이 동일해도 산포를 고려하지 않으면 집단 사이의 실질적인 차이점을 비교할 수 없다. 몇 년 전 논란이 되었던 대한민국 가임기 지도처럼, 데이터는 사실이지만 통계는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입맛대로 가공되고 만다. 저자가 말한대로 객관적인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보려면 좋은 통계와 나쁜 통계를 구별할 능력도 갖춰야만 한다.

저자가 말하는 ‘객관적‘ 지표에도 함정이 있다. 수치와 도표로 세상을 바라보자는 말은, 자칫 효율을 중시한 나머지 소수의 의견이 묵살되는 현상으로 변질될 수 있다. 공리주의의 함정에 빠져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식으로 흘를 수도 있다. 저자는 ‘수치 없이 세계를 이해할 수 없지만, 수치만으로 세계를 이해할 수도 없다.‘고 말했지만 효율성의 함정에서 빠져나가려면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통계를 보면 세상은 오로지 나빠지는 것이 아니라 폭이 좁더라도 좋아지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좋아진다는 의미이지 차별과 불합리가 아예 없다는 뜻이 아니다. 전세계에 만연한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상황이 나쁠 수도 있고 동시에 좋을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서 세상을, 좁게는 나라는 개인과 주변의 작은 사회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기르려고 힘써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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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이유 - 김영하 산문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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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6)

1. 유일하게 전작을 읽은 작가인데 이상하게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실망하게 되는 작가, 김영하. 직전에 읽은 소설 <빛의 제국>을 구시대적이고 뻔한 소설이라 평할 정도였다. 그래도 산문 삼부작 중 <보다>는 나름 재밌게 읽어서(비록 씨네21에 연재된 글이 대부분이어서 아쉬웠지만) 이번 산문집 <여행의 이유>는 꽤나 기대했다. 게다가 ‘알쓸신잡’에서 보여준 여행을 대하는 태도는 기대감을 더 크게 해주었다.

2. 여행 에세이 붐을 부른 책이 몇 있는데, 그중 하나가 김병률 시인의 <끌림>이다. 여행지에서 느낀 감정을 호들갑떨지 않고 시인답게 차분하고 단정하게 읊조린다. 직업과 일을 대하는 태도과 과거와 확연히 달라진 요즘, 여행 에세이의 유행은 사그러들지 않는다. 여행지에서 있었던 온갖 일을 유쾌하게 풀어놓으며 방구석에서 온세계를 여행하는 느낌을 들게 해준다니까.

3. 그런 면에서 <여행의 이유>는 여타 여행 에세이와는 완전히 다른 책이다. 이전의 에세이들은 일상에서 벗어난 곳에서 벌어진 일들을 풀어놓고 거기에서 얻은 약간의 사유를 말했다. 반면 <여행의 이유>는 작가 본인의 여행 이야기보다 여행의 본질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여행을 하는가, 새로운 경험은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곱씹게 만드는 내용으로 차 있다.

4.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 고통은 수시로 사람들이 사는 장소와 연관되고, 그래서 그들은 여행의 필요성을 느끼는데, 그것은 행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다. _65쪽, 데이비드 실즈의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에서 재인용

여행을 떠나서 숙소의 새하얀 침구류를 보면 마음에 위안을 받는다. 깔끔하고 새로운 것에서 안정감을 받기도 하겠지만, 일상과 완전히 분리된 다른 공간에 있다는 것을 각인시켜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행을 떠남으로써 일상에서 분리되는 게 아니라, 온갖 상처와 슬픔, 회한이 가득 투영된 일상의 공간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는 다소 전도적인 상상을 해볼 수 있다.

5. 여행의 본질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작가는 ‘알쓸신잡’에서의 경험을 말한다. 여행지에서 돌아다닌 건 자신과 다른 출연자지만 총체적으로 여행을 한 사람은 결국 시청자다. 방송 출연자 각자는 자신이 경험한 일만 기억하지만, 일관된 맥락으로 편집된 방송을 본 시청자가 온전한 여행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믿을만한 정보원을 통해 여행을 대신하는 탈여행이다. 비경험의 대가(?) 피에르 바야르는 이렇게 말한다.

> 자기 속에 타자의 관점을 지니는 것, 그 대상이 장소일 경우 그것은 전통적으로 여행과 결합된 경험 - 전능의 환상 속에서 미지의 세계를 지배하고자 하는 - 에 대립되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정신을 풍요롭게 해주는 이 경험을 우리는 탈여행이라 명명할 수 있을 터. _ 114쪽, 피에르 바야르의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에서 재인용

작가는 여행은 여행자 본인의 경험으로만 완성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타인의 경험담과 온갖 정보를 통해서 하나의 맥락으로 갖춰지는 법인 셈이다. 온갖 정보가 넘치는 세상에서 여행 정보서와 에세이가 아직 사라지지 않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작가가 여행 에세이를 또 내고 싶다는 욕심이 투영된 것은 아닐까? (농담)

6. 오디세오스가 키클롭스에게 관종짓하는 내용과 여행자의 자기정체성을 연결짓는 부분은 꽤나 감탄했다. <보다>처럼 재치넘치는 크로스오버였다. 하지만 책의 모든 핵심 메세지들이 어디서 들어본 이야기다. 작가가 말빨이 좋아도 조금 식상한 편이다. 물론 새로운 메세지를 던져야만 좋은 책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 고루함을 깰만한 번뜩임이 있어야 한다. 아쉽게도 <여행의 이유>에는 이 번뜩임 보이지 않았다. 200쪽 중에 갈무리할만한 문장이 한 줄도 없다는 것이 방증이다.

7. 만약 내가 여행을 좋아한다면 충분히 의미 있는 책이 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든다. 아무 생각없이 비행기를 타고 사진을 찍던 경험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다소 자기계발스럽고 뻔한 메세지지만, 일상에서 소소한 일을 발견하고 나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도 하나의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8. 오랜만에 피에르 바야르의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희안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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