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또 속았구나... 그렇구나...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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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 폈습니다.
그렇게 재밌다는데... 이거 번역 실화입니까.
온갖 수동형 번역에 것 투성이, 한숨 나오는 문장구조...
주인공이 집사여서 수동형으로 쓰나요?
유서 깊은 집에서 일하던 인물이라 문장이 이렇게 고색창연한 말투인가요?
원서 문체가 원래 이런가요?
하긴 그런 거 다 고려하고 번역하셔겠죠?
가독성 진짜 꽝인데...
누가 제 생각이 잘못 됐다고 말해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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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11-12 2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을 읽어보고 번역에 대한 의견을 밝힐께요. ^^

양손잡이 2017-11-13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기대랄게용 ㅎㅎㅎ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 은희경 (문학동네, 1998)


한국 소설은 쉬이 손이 가지 않는다. 특유의 우울함 때문이다. 뭐만 하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인양 세상을 비관하기 일쑤다. 개중에 서사에 힘이 없는 작품은 정말 정이 가지 않는다. 한국 문단 특유의 순수문학을 향한 집념이 싫었다. 무슨무슨 문학상 수상작을 보면 이런 경우가 더러 있었다. 덧붙여 문장이 좋다고 꼽히는 작가도 잘 읽지 않았는데, 문장의 정갈함을 가꾸는 데 너무 치중한 나머지 그것만이 장점으로 보이는 이가 여럿 있기 때문이었다.


은희경도 그런 이미지였다. 내 비루한 독서력을 가리고자 하는 변명 같지만 말이다. 전에 <소년을 위로해줘>를 얼마 읽지 못하고 바로 덮어버렸다. 그래서 이번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는 첫 페이지를 넘기기가 정말 힘들었다. 은.희.경. 작가 이름 세 글자가 주는 압박감이 너무 컸다. 게다가 20년 된 작품이라니, 너무 오래된 작품 아닌가.


그래도 읽어야겠지. 목욕재계를 하고 조용한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여태까지 가졌던 은희경의 이름이 주는 무게감이 완벽한 오해였음을 깨달았다. ‘은희경 = 문장’이라는 등식이 머리에 가득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물론 어른의 사랑(…)이 소재가 흥미로워 더 잘 읽은 면도 있지만.


주인공 강진희는 애인을 여럿 둔다. 하나는 당연한 비극이 예정되어 있고, 둘은 그중 하나를 선택하면 그때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이유로 세 명의 애인을 선호한다. 애인이 셋 정도는 되어야 사랑에 대한 냉소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하는 그에게, 사랑은 상대에게 목매다는 일이 아니다.


그녀가 여러 명의 애인을 만나는 건 단순히 바람둥이인 까닭은 아니다. 외로워서도 아니다. 그녀에게 애인은 외로움의 해소와 아무 관계가 없다. 애인 관계란 미래에 대한 부담이 없고 언제라도 원할 때에 자기의 감정을 철회할 수 있는 매력적인 관계다. 일대 일로 맺는 사랑의 감정이 때로는, 아니 대개 서로에게 폭력이 되고는 한다. 상대를 소유하고 통제하려는 순간 관계는 사랑이 아니라 서로를 독차지하고픈 욕망으로 전락하고 만다.


진희와 관계를 맺는 세 명의 남자는 그녀가 사랑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뚜렷이 나타낸다. 상현은 과거에 결혼했지만 상처만 가득 준 인물이다. 그녀가 사랑에 대한 신뢰를 잃는 순간이었다. 진희가 가진 여러 명의 애인은 상현이 만든 상처를 덮기 위한 미봉책이다. 현석은 현재 진희가 가장 사랑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는 인물이다. 진희는 현석과 만날 때 가장 진지해진다. 하지만 현석이 청혼을 하자 그녀는 거절한다. 현석과의 관계를 무겁게 하지 않기 위해서다. 마지막으로 종태와의 관계는 즐거움과 가벼움이 공존한다. 여기에 진지함이란 없다. 가장 유희적인 관계라고 할까. 과거의 상처를 감추기 위해 유희만이 가득한 가벼운 관계다. 종태가 사랑한다 말하는 것은 단 한순간도 진지하게 들리지 않는다.


서로와의 관계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지는 것은 사랑할 때 누구나 겪는 자기최면이라고 끝까지 주장하는 진희는 어떤 사랑으로 그 끝을 맺을까. 후반부에 진희는 사랑을 얻기 위해 한숨짓고, 얻은 다음에는 믿지 못해 조바심을 내고, 결국에는 그것을 잃어버릴까봐 스스로 피폐해지는 과민한 기질을 가진 것 같다고 고백한다. 그렇다고 진희가 불쌍한 인물인가? 글쎄, 행복과 불행은 타자의 위치에서 판단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단순히 이야기를 들었다고 행불행을 가를 수 없다.


은희경은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라는 가사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서로가 마지막 사랑이라는 확신을 할 수 없으니, 지금의 상대와 춤을 즐기는 것이 마지막 춤을 추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사랑하는 그 순간을 즐기면 언젠가 빛나리라. 보편적인 문장이면서도 진희의 과거와 사랑 방식이 엮이면서 복합적인 이야기가 되었다. 매력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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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의 샛별로 떠오르는 아작 새 책이 나왔다. 브레드버리 단편집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새 책이라니, 빠르네.
바스라그 연대기는 총 3부작으로 이번에 두 권으로 출간된 건 1부 ‘페르디도 거리의 기차역‘이다. 차이나 미에빌 신작인가?? 하다가 제목이 하 수상해서 골똘히 생각해보니... 이번에 출간됐던 <퍼디도 스트리트 정거장>을 조금 다르게 반역해서 내놓는 거구나! 에헿. 전에 한 작가쌤에게 받았던 퍼디도 스트리트 정거장을 이번 기회에 ‘새 책‘으로 읽어야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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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7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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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야기는 한 병원에서 시작한다. 경찰인 뤄샤오밍은 한 살인 사건의 용의자 다섯을 병실에 불러모은다. 병실에는 뤄샤오밍의 스승이자 간암 말기 환자인 관전둬가 혼수상태로 누워 있다. 뤄샤오밍은 관전둬의 머리에 머리띠를 씌운다. 머리띠는 관전둬의 뇌파를 읽어 Yes와 No의 간단한 의사표현을 할 수 있게 만든다. 뤄샤오밍은 살인 사건에 대해 말하고 관전둬에게 질문하면서 범인을 찾는다.


명색이 추리소설인데 사건을 해결하는 관전둬는 혼수상태고 뤄샤오밍은 지위에 맞지 않게 사건에서 많은 것을 놓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스무고개하듯 질문을 던지고 뇌파를 읽으면서 사건을 해결하는 전개는, 기존 추리소설에서 보여주지 않은 새로운 양상이라기보다는 다소 뜬금없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예상 외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독자의 뒷통수를 여러번 친다. 뤄샤오밍의 이야기에 홀리는 순간, 우리는 작가 찬호께이에게 말려든다.


<1367>은 여섯 편의 이야기로 이뤄진 소설이다. 각 이야기마다 독립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소설집으로 생각해도 좋겠다. 모두 기승전결이 탄탄해 완성도가 높고 (반전이 있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강력한 스포일러지만) 반전 또한 기가막히다. 추리소설의 전형적인 단점 - 작가와 독자가 증거를 100% 공유하지 않는다는 점은 피하지 못하지만, 작가는 이야기에서 서술한 모든 소재를 철저히 이용해 독자를 납득시킨다. 범인을 찾는 과정의 즐거움과 뒤로 갈수록 점점 다른 사건으로 변모하는 점이 매력적이다. 사건을 파헤치고 생각치도 못한 뒷처리까지 완벽하게 하는 관전둬의 치밀함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구성 또한 특이하다. 소설집이라 하면 각각의 이야기는 완전히 독립적이거나 순차적인 시간대를 갖기 마련이다. <1367>은 2013년부터 1967년의 사건까지 시간의 역순으로 전개된다.(1367은 처음과 마지막 장의 년도에서 따왔다) 역행하는 시간대는 뒤로 갈수록 관전둬의 과거와 뤄샤오밍의 성장을 보여준다. 거기에 각 시간대는 저마다 의미를 가진다. 60년대의 좌파혁명, 70년대의 염정공서(당시 경찰 내부의 부패를 조사하던 기관), 90년대의 홍콩 주권 반환까지, 작가는 홍콩의 역사를 이야기의 배경과 디테일을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데 사용한다. 이런 면에서 <1367>은 사회파 추리소설의 면모를 띈다.


마지막 6장은 다른 장과 달리 1인치의 화자가 등장한다. 전체 이야기 중 전개의 힘은 다소 느슨한 편이다. 하지만 이조차 작가가 노린 점이리라. 화자인 ‘나’가 누구인지 밝혀지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고 다시 책의 맨 앞을 펼칠 수밖에 없다. 6장은 독립적인 여섯 편의 이야기를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역행하는 시간대 구성은 단순히 흥미를 일으키기 위함이 아니라 소설 전체에 숨을 불어넣기 위한 작가의 철저한 계산이라고 볼 수 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불편한 지점은 관전둬(와 그의 수제자 뤄샤오밍)의 다크 히어로적인 면모다. 그들은 범인을 잡기 위해 어떤 행위도 마다하지 않는다. 거짓말과 협박은 기본이고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사건을 ‘일부러’ 만들기도 한다. 함정수사는 불법이 아닌가 싶다가도 시민을 지키고 더 큰 악을 처단하기키기 위해서 저 정도 거짓말은 눈감고 완벽하게 선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라는 불온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마지막 장은 큰 의미를 가진다. 관전둬가 불법적인 행동까지 하면서 시민을 보호하려고 하는 계기를 보여준다. 단순히 말을 잘 듣는 조직원으로 살 것인가, 더욱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살 것인가. 관전둬는 이 사건을 통해 한층 성장한다. 동시에 작가는 선과 악은 한끗 차이라고 말한다. ‘나’의 이름이 밝혀지는 순간, 하나의 단순한 선택이 인생의 무한한 가지를 만들어 전혀 다른 세계를 창조하는 인생의 아이러니를 몸소 체험할 것이다.


아주 기막힌 소설이다. 650여 쪽임에도 아주 재밌게 읽힌다. 각 시간대를 설명하고 묘사하는 데 문장을 꽤나 할애했지만 거슬리는 수준은 아니다. 인물, 사건, 구성, 사건, 메세지까지 모든 면에서 뛰어나다. 감히 올해의 추리소설로 칭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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