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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셀로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3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01년 9월
평점 :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셀로』제목을 『이야고』로 바꾸었다면 (주인공을 바꾸면 당
연히 바뀔 테지만)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읽는 내내 나의 관심은 이야고라는 인물에
머물었다. 그가 여자였다면 굉장히 팜므파탈적인 그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요즘 셰
익스피어를 다시 읽고 있는데 『햄릿』의 대사가 주옥같고 광기에 차있다면 이 책에서
는 이야고라는 인물의 내면이 그야말로 관심거리로 떠오른다.
한마디로 간교한 이야고라고 요약할 수 있겠는데 권력에 눈이 먼 그의 모습을 보니 예나 지금이나 권
력을 쫓는 사람은 영혼 밑바닥에 검게 그을린 흔적이 강하게 찍혀있다고 생각된다. 탁하고 두터운 연기
가 머리까지 차고 올라가 도저히 인간적이라고 볼 수 없을 만큼의 생각과 행동을 하니 말이다. 그래서
가엾은 사람이다.
오,
지금은 당신이 잘 조율된 악기와 같지만
난 줄을 풀어 그 음악을 망칠 테다,
내 아무리 정직해도 말이다.
- 71쪽, 2막 1장中 이야고.
오셀로를 향해 방백 하는 이야고의 위 대사를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온 신경을 집중해 원하는 것을 성
취하려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보통 잘 조율된 악기는 잘 쓰이면 약이지만 그만큼 망칠 수 있는 틈새
도 많다는 뜻이다. 악마 같은 간교함을 갖고 있지만 누구도 이야고를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도 사
건의 진행을 빠르게 이끌어 간다. 그 누구보다 친절하고 공정해 보이는 그를 누가 의심했겠는가. 그의
모든 대사는 철저하게 계산되었고 상대의 심리를 잘 파악하여 적재적소에 일침을 가한다. 심리전에서
허물어지기 시작하는 사람은 이성적 사고가 마비됨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야고가 좀 더 화통하
고 덕이 있었다면 분명 이로운 전략가가 되었겠지만 아니라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그는 마음에 갇힌 괴
물을 풀어주는 간수처럼 보인다. 가끔은 그가 싸이코로도 생각되었다. 대개 마음에 결핍된 것이 많으면
이유 없는 의심증은 눈덩이처럼 커지는데 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욕망이 그를
비정상적이게 만든 것 같다. 권력도 그렇고 내 생각에는 그는 성불구였을지도 모르겠다. 분명 그도 데
스데모나를 사랑했다. 그러나 그가 원한 궁극적인 것은 그녀가 아니라 권력뿐이었다. 권력과 함께 그녀
를 가지지 않은 이유는 그녀를 얻게 되어도 결국 사랑의 의식을 행할 수 없음 때문이 아닐까. 물론 지극
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런 것을 보면 이야고는 그야말로 못된 천하의 악당이지만 한 치의 오차도 없
는 악은 아니고 약간의 소심함을 가진 악인이라고 느껴졌다.
그에 반해 대조되는 캐릭터로 데스데모나를 들 수 있겠다. 그가 마음대로 주무르는 로데리고나 오셀로
와는 달리 그녀는 시종일관 성자의 이미지를 유지한다. 물론 나이가 어린 데스데모나는 투정도 부리지
만 끝까지 순백의 이미지를 지킨다. 그래서 마음이 새까만 이야고는 그녀를 좋아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녀만은 마음대로 조정할 수도 없었으니 말이다.
한마디로 이야고의 밥이었던 유약한 로데리고의 상황을 나타내는 말도 기억에 남는다.
난 이번 사냥에서 뛰지도 못하고 그저 무리나 채워
주려고 따라다니는 개와 같은 신세지 뭐야.
- 93~94쪽, 2막 3장中 로데리고.
적절한 비유에 웃음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오셀로. 그는 사랑에 미쳐 눈먼 바보가 된다. 사랑이 깊으면
그만인데 깊지 않아도 될 질투마저 깊었기에 비극을 맞는다. 전투에서는 용맹한 장군일지 모르나 사랑
에 서툰 그는, 이야고가 울타리를 걷자 자신의 마음에서 괴물을 탈출시키고 쑥대밭을 만된다. 질투에
눈먼 오셀로의 대사를 옮겨본다.
이건 이유가 있단다, 이유가 있단다 내 영혼아,
저 순결한 별들에게 밝히진 않겠지만
이건 이유가 있단다. 그래도 난 피를 흘리거나
눈보다 더 희고 설화 석고 묘상(墓像)처럼
매그러운 그 살결에 상처를 내진 않으리라.
그래도 그녀는 죽어야 해, 안 그러면
더 많은 남자를 배신할 테니까.
- 180~181쪽, 5막 2장中 오셀로.
더 많은 남자를 배신한다고 말했지만 사실 오셀로의 속마음은 그것이 아님이 너무도 자명하다. 못난 사
람 같으니라고! 언어를 자유자재로 재치있게 주무르는 셰익스피어의 능력이 주는 감미로움이 황홀하나
또 시대상을 잘 표현한 모습도 즐겁지만 까만 무어인 오셀로가 까만 마음의 이야고에게 노예로 전락하
는 모습에서 극도의 위험을 느꼈다. 그 이유는 지금도 그 누군가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다른 이의 마음을
이용해서 노예로 부리며 그 노예는 그에게 저당잡힌 삶을 살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은 생각만으로 끔찍
하다. 예전에는 오셀로를 읽고 검은 무어인 오셀로와 눈처럼 순결한 데스데모나 정도를 생각했는데 이
토록 시선이 이야고에 꽂히게 될 줄 몰랐다.
등장인물들을 보면 한결같이 드는 생각이 있다. 모두 무언가를 노리는 굶주린 우리들의 모습을 가졌다
는 사실이다. 사랑에 눈이 먼, 권력에 굶주린, 질투에 눈이 먼, 그리고 그 욕망은 끝이 없고 채우기 어렵
다. 현시대의 수많은 이야고와 오셀로에게 경종을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