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그러니 괜찮다고 아무리 말해 줘도 내 마음이 계속 자기가 나빴다고 칭얼거렸다. - P116
어디서 어떻게 울어야 할지 몰라 억지로 참고 있을 뿐, 나는 아까부터 소리 내 울고 싶었다. - P145
저는요, 돈이 없어서 뭘 못 하는 것도 화가 나는데요, 이런 게 더 미치겠어요. 내가 나를 자꾸 쪼그라들게 하는 거요. - P157
함께 살아남는 일이 이토록 어렵다면 그 많은 공부와 배움들이 다 무슨 소용일까요 / 작가의 말 - P169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서, 한동안 머물렀으니 슬슬 밖으로 나가야지 싶은데.
게으름과 귀찮음을 이겨내는게 왜이리 남일같은지.
뭐라도 읽어야지 싶어 가벼운 책들을 건드리고 있는데
예전같지 않게 글자들이 밖으로 튕겨나가는 느낌이랄까,
읽는건지, 보는건지 성의없이 책장만 넘기고
아는 얘기여서 새롭진 않겠지 싶어 읽기 시작한 책은 점점 마음을 건드리네.
그 시절의 나도 참 열심이었는데 싶어 괜히 짠하고.
모든 잡다한 일들을, 좋으니 나쁘니 따지고만 있을 수 없는 이미 일어난 모든 일들을 복작복작 포함한 하나의 우주를 만들어, 어느 틈엔가 유유히 흘러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곳에 있기를. - P98
비오는 여름의 풍경이 지금과 너무 겹쳐져 괜히 더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어째서, 이런 타이밍에 떠올리고 마는 책이 바나나씨의 책들이었는지 문득 얄궂다 싶다.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삶은 흘러간다. - P93
한여름의 한두 주일은 불가사의하다.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은 햇살 속에서, 많은 것들이 진전을 보이곤 한다. 사람의 마음과, 사건. 그러는 사이에도 가을은 칼을 갈고 있다. 시간이 지나지 않는다니, 그건 네 착각이지, 하는 식으로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싸늘한 바람이 불고 하늘이 높아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 P117
사람이란 좀 더 이상하고 너저분하고 끈적거리고 한심하고 고귀하고, 그러니까 무한한 단층을 지니고 있다고 줄곧 생각해 왔어. - P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