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게 손을 내민다. 덥석 잡으면 한많은 이야기 속에 내게 요구하는 것들이 계속 될까 두렵고, 손을 놓으면 그 슬픔이 내게로 와 나를 무겁게 할까 두렵다.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두려움 그 자체라고 누가 말했던가?
길을 모르면 길을 걷는 것이 두렵다. 지혜가 부족한 이는 두려움 속에 서 있다.
어떤 것이 유익함인지 잘 알지 못하겠다. 하지만 오늘은 듣는다. 누군가 운다. 내게 말한다. 나는 그분을 잘 모르지만 그분의 한이 풀어지기를 마음으로 빈다. 나도 따라 울 뻔한다. 울지 않고 듣는다. 나도 이렇게 한많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중일까?
이런 한많은 사연을 듣고 있노라면 한 인간의 생이 이다지도 슬픈가 싶다. 한을 풀어주기는커녕 이야기를 다 듣고 있는 것조차 만만치 않은데, 인류의 구원과 중생의 제도를 결심하는 분들은 또한 어떤 분들인가?
이웃이 슬픔 속에 있으면 내가 기쁘기는 어렵다. 그래서 지장보살은 지옥의 모든 중생이 지옥고를 벗어날 때 부처가 되겠다고 한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오늘 평온했지만 한참을 울었던 내 이웃은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내 평온 속으로 이웃을 머무르게 하지 못하고, 이웃의 울음 속으로 빠져 들었다. 내 평온은 그 정도였나 보다.
내 평온이 흘러넘쳐 이웃을 젖힐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지혜가 넘쳐 어떻게 하는 것이 이웃에게 유익한지 내가 잘 알고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