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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처럼 생각하라 - 지구와 공존하는 방법
아르네 네스.존 시드 외 지음, 이한중 옮김, 데일런 퓨 삽화 / 소동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2012년 3월 19일 새벽 5시 30분 평화활동가들이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J화약 정문 앞에 차량과 함께 인간 띠를 이어서 해군과 삼성물산이 구럼비 발파를 위해 사용하는 화약의 이동을 막았다. 이들의 인간 띠는 비폭력 평화행동으로 서로의 손을 마주 잡고, 손과 손을 등산용 끈(자일)로 묶었으며, 팔과 팔 사이에 PVC 관을 끼웠다. 밖에서는 물리력으로 인간 띠를 함부로 해체하기 어렵다. 함부로 PVC 관을 깨려고 들었다가는 사람이 크게 다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귀포 경찰은 9시 30분부터 강제연행에 들어갔다. 인간 띠를 물리력으로 풀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서귀포경찰서 경비교통과장은 망치질로 PVC 관을 깨기 시작했다. 그래도 양심이 있었던지 망치질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도록 전경들을 불러 시야를 완전히 차단했으며, 기자들의 출입을 원천적으로 막았다. 완장과 기자증을 착용한 기자들의 멱살을 잡고, 현장에서 쫓아낸 것이다. 또한 인권감시를 위해 현장에 있던 민변 변호사의 접근 역시 막았다. 경찰의 망치질에 여성 활동가들은 고통을 호소하는 비명을 질렀다. 대다수의 활동가들이 손에 상처를 입었다. PVC 관을 깨뜨린 경찰은 가위로 손을 묶은 끈(자일)을 잘랐다. 경찰이 연행을 위해 사용한 도구들, 망치와 가위가 얼마나 위험한 흉기인지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결국 경찰은 활동가들을 모두 연행하고, 차량을 모두 견인했으며, 화약을 옮겼다. 그리고 그날도 구럼비 발파는 강행되었다.
그 자리에 녹색당 당원들도 여럿 있었다. 특히 녹색정치에 대한 열정으로 눈을 반짝이며 함께 대화를 나누곤 했던 한 여성 당원이 있었다. 그이의 연행 소식에 무척 마음이 아팠다. 혹시 망치질에 다친 것은 아닌지. 망치와 가위를 휘두른 경찰에 대한 분노와 함께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과 제발 다치지 않았기를 바라는 염려 등 복잡한 마음으로 강정마을 소식을 찾아보았다. 언론 사진을 통해 연행되기 전, 그이의 결의에 찬 눈빛을 보았다. 그 눈빛 덕분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그래, 그런 각오였다면 잘 버티고 있겠구나. 부디 몸도 마음도 다치지 않았기를 바랐다.
1970년 8월 26일 노르웨이에서는 댐 건설과 폭포 파괴에 반대하기 위해 마르달스폭포 정면 바위에 무려 300여명을 몸을 묶어 시위를 벌였다. 여기에는 심층생태학의 창시자라는 아르네 네스(Arne naess)라는 사람도 직접 참여했다. 이 사람은 우리에게는 비교적 낯선 사람이지만, 여러모로 무척 흥미로운 위인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레지스탕스로 활동하였으며, 27세에 오슬로 대학에서 최연소 철학교수가 되었고 스피노자 연구자로 이름을 알렸지만, 심각한 생태적 위기를 깨달은 후 교수직을 그만두고 직접 환경운동에 뛰어들었다. 후에 노르웨이 고산지대의 작은 오두막에서 평생을 보냈다.
최근 데이비드 로텐버그가 아르네 네스와의 대화를 엮은 『생각하는 것이 왜 고통스러운가요?』를 살펴보다가 어려워서 손을 놓고 있었는데, 또 다른 아르네 네스의 책을 만났다. 『산처럼 생각하라』는 아르네 네스, 존 시드, 조애나 메이시, 팻 플래밍 4명의 글과 데일런 퓨의 독특한 삽화를 엮은 책이다. 책을 딱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눈이 간 것은 제목이나 부제인 ‘지구와 공존하는 방법’보다 ‘산처럼 생각하고 인디언처럼 노래하라’는 문구였다. 조금 길더라도 이 문장을 제목으로 정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단순히 ‘산처럼 생각하라’는 말은 조금 어려운 느낌으로 남지만, 뒤에 ‘인디언처럼 노래하라’는 다소 서정적인 표현이 붙어줌으로써 훨씬 더 편안한 느낌으로 자리 잡으며, ‘인디언’이란 단어 덕분에 무엇을 말하려하는지도 더 쉽게 와 닿는다.
이 책은 말한다. 이 지구상의 만물은 모두 다 나름의 역사를 갖고 살아있으며, 모두 그 자체로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무엇 하나 마음대로 파괴하면 안 된다. 이 책의 3장에서는 만물협의회라는 행사를 진행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25명이 야생의 땅(아마도 숲이나 들판 같은 자연 상태라는 의미겠지)에서 인간이 생명의 그물에 속해있다는(번역에는 ‘묻혀있다’고 되어 있었으나 좀 더 자연스러운 단어로 바꿈) 사실을 깊이 의식하기 위한 연습들을 보여주는데, 이 과정이 무척 흥미롭다. 이들은 산이 되어 수백, 수천 년의 세월을 느껴보기도 하고, 들풀이 되었다가, 초록비둘기가 되었다가, 얼룩소가 되었다가 기러기가 되었다가 민달팽이가 되었다가, 이어서 캥거루, 이끼, 멧돼지, 병코돌고래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들은 차례로 인간에게 충고와 경고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열대우림은 자신이 1억3천만 살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신문지와 판자와 가구 때문에 나무들을 쓰러뜨리고, 도로를 뚫는 인간을 꾸짖는다. 그리고 주머니쥐와 병코돌고래와 이끼와 콘도르 등의 고통과 분노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리고 인간이 나서서 잘못을 인정한 후로는 갑자기 분위기가 바뀐다. 민달팽이가 인간에게 느리게 살기를 권하고, 물은 끈기와 유연한 태도를 권하고, 콘도르는 예민한 시력을 강조하고, 이끼는 아주 긴 시간에 걸친 인내심을 선사하겠다고 하고, 열대우림은 균형과 조화를 창조하는 힘을 주겠다고, 낙엽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해방시켜주겠다고 하는 등 인간을 위한 권유와 선물 공세가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만물이 인간에게 주는 축복을 받으며 만물협의회는 막을 내린다.
인간은 이 지구를 마음대로 휘두르는 지배자가 아니다. 인간은 강과 산과 바다와 새와 동물과 곤충과 풀과 나무와 함께 살아가는 자연의 일원이다. 인간이 오만함에서 벗어나 만물의 생명과 가치를 깨닫고 느끼는 순간, 발파로 괴로워하는 구럼비 바위의 비명소리를 듣게 되고, 4대강 개발로 파헤쳐진 강가 모래알의 외침을 듣게 되며, 골프장 공사 덕분에 사라진 야생화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게 되고, 송전탑 공사로 베어진 나무의 아픈 상처를 쓰다듬어 줄 수 있게 된다. 제발 인간들아, 산처럼 생각하고 인디언처럼 노래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