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이 끝난 줄 알았는데, 달력을 보니 오늘 하루가 더 숨어있었다.


아그네스 발차가 부르는 [우리에게 더 좋은 날이 오겠지 / 우리에게 더 좋은 날이 되었네] 노래를 반복하여 듣는다 : Agnes Baltsa 'There will be better days, even for us'

노래 제목을 달리 보면 와 닿는 의미가 완전 다르다. 고통이 팬던트처럼 목에 걸려 있지 않도록 자신을 깨우치라는 가사가 있다. 


사진 시집, [아직 거기 있었구나]에서는 사진과 시가 각각 부족한 느낌을 떨칠 수 없다. 둘 다 있어 채워지고 보완되고 있지만, 책으로 내야 할 정도로 완벽하지는 않는 것 같다. 순전히 책 제목에 이끌려 펼쳤다. 


모르고 지나치는 것들, 늘상 있어 당연한 것들, 사라지지도 가버리지 않고 아직도 거기에 있는 것들이 마음을 헤집고 다닌다. 요즘 일은 금방 잊어버리는데, 예전 일은 오래도 남아 있다. 

산불로 모두 잃어버린 이재민들을 위해 기도하고 보탠다. 나비 효과를 믿어본다. 

3월 31일이 있었구나, 잘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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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거기 있었구나
김상 지음 / 지식과감성#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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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피우기

바람 한 줄기와
한때의 봄비
또 다른 날의
햇살 한 줌이면 됩니다. (27쪽)

우포

수억 년 전부터

해가 뜨고
해가 지고

거기 그대로 있었다. (48쪽)

섬 사이

섬과 섬 사이에
다리가 생기고 나서도
섬은
섬에 닿을 수 없다. (65쪽)

기다리기

희미하기 때문에
갈망하는 것이 있다
어쩌면
사랑도 그렇다

그 마음, 잔잔해지길 바랄 뿐이다. (103쪽)

많은 나에게

너의 몸을 좀 쉬게 해
(중략)

세상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고
또 아주 오래까지 있을 거야
그리고 하루는 그치지 않을 거야. (137쪽)

하루

행과 행 사이를
행간이라 부른다

행간에는 말로 하지 못하는
더 많은 말들이 숨어 있다

안녕이라는 말과
안녕이라는 말 사이에
하루가 있는 것처럼

그래서
말은 흔들려도
행간은 흔들리지 않는다. (158쪽)

중독

검은 표면이 아름답게 보였다
진주같이 반짝였다
세상의 모든 빛을 감출 수 있는 듯
어둠으로 가득했다. (200쪽)

벽들은 눈물의 색깔

벽이 색깔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을 뻔했습니다.
(중략)

오래된 벽돌에는 담쟁이가 자랍니다
벽이 흘린 눈물을 먹고 담쟁이가 커 가기 때문이지요
우는 이유에 대해서는 많은 생각을 해 보지는 않았습니다
아마도 사람들 사이의 경계를 지우고
이쪽저쪽을 갈라놓아야 하는
안쪽과 바깥쪽이라는 다름을 견뎌야 하는 벽이기에
눈물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
그 다름의 편견으로 담은 더 높아지고 견고해져서
담은 결코 넘어설 수 없는 벽이 되어 버리니까요
사실 눈물은 진실이 아니라 위장인지도 모릅니다
(생략)
(2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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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에 나오는 문장들을 모두 옮겨 적고 싶다.

첫 번째 문장만 적어본다.  

'나는 거의 팔십 년 간 글을 써 왔다. 처음엔 편지였고, 그 다음엔 시와 연설, 나중엔 이야기와 기사, 그리고 책이었으며, 이젠 짧은 글을 쓴다. 글쓰기 활동은 내게 꼭 필요한 것이었다. 그 활동 덕분에 나는 의미를 찾고, 계속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글쓰기는 더 깊고 더 일반적인 무언가에서 파생되는 것일 뿐이다. 그 무언가는 바로 우리가 언어 자체와 가지는 관계다. 이 짧은 글의 주제는 언어다(7쪽).'


존 버거는 '언어는 하나의 몸이며, 살아 있는 피조물이다(8쪽).이라고 말하면서, 우리가 보고 듣고 체험하는 언어적, 비언어적 부분을 텍스트로 끄집어 내어 알게 해 준다. 


존 버거는 채플린 몸짓, 사랑단풍나무, 새털, 다육식물, 나뭇잎, 바다로 가는 장어, 노래, 사진, 누군가의 대화, 그림, 정치가의 연설, 담론 등에서 한 번도 말해진 적 없는 언어로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우리의 페르소나를 벗게 만든다. 말이라고 다 동일하고, 진실의 말은 아니다. 어떤 이는 본인조차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이도 있으니...    


특히, 드로잉으로 표현한, 자연의 외양들을 텍스트로 읽어 낸 점이 인상적이다.

또한 좌파든 우파든 정치인들의 의도도 알았다. 최근 산불로 피해 입은 지역에서 '사진 찍으로 왔제?'하는 주민의 말과 불편함 줄까 찾아 가지 못한 정치인이 진실되고, 본질적으로  for the people, by the people, of the people 정치를 하길 바래본다.

이러한 와중에도 존 버거는 시간은 선적인 것이 아니라 순환적인 것이며, 역사로부터 알 수 있는 텍스트들이 현재에 희망을 준다고 한다. 


요즘 대화할 때, 타인의 눈과 의도를 거쳐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 내가 본 사실을 정확하게 표현하려고 노력 중이다.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를 들어 보면 그 사람이 자라 온 환경, 부모, 배경 전체를 추측할 수 있다. 그래서 언어는 하나의 몸이 되며, 살아있는 피조물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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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
존 버거 지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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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진 언어는 하나의 몸이며, 살아있는 피조물이다. 피조물의 얼굴은 말이며, 신진대사는 언어학이다. 그리고 이 피조물의 집은 발화된 것일 뿐만 아니라, 발화되지 않은 것이기도 한다. (8쪽)

풀에서 나오자마자 그 잎을 그리기로 마음먹는다. 종이 한 장에 나무 전체와 가까이에서 본 나뭇잎 한 장을 함께 스케치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단풍나무의 유전자 코드에도 크게 어긋나지는 않을 거라고, 나는 계속 수영을 하며 속으로 혼잣말을 한다. 그건 일종의 사탕단풍나무의 텍스트가 되는 거라고. 그런 텍스트는 말없는 어떤 언어에 속한다. 우리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읽어 온 언어, 하지만 뭐라 이름 붙일 수 없는 언어 말이다. (54쪽)

노래에는 노래만의 또 다른 차원이 있다. 노래는 현재를 채우는 동시에 미래의 어딘가에 있는 청자의 귀에 닿기를 희망한다. 노래는 앞으로 다가간다. 이런 끈질긴 희망이 없다면 노래는 존재할 수 없는 거라고 나는 믿는다. 노래는 앞으로 다가간다. 빠르기, 박자, 반복음, 그렇게 반복되는 음악은 선적인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나 안식처를 구축한다. 그 안에서 미래와 현재, 그리고 과거가 서로를 위로하고, 자극하고, 비꼬기도 하고, 영감을 주기도 하는 그런 안식처 말이다. (73-74쪽)

최근에 프랑스 대통령이 텔레비전으로 중계된 기자회견에서 거의 세 시간 동안 국민을 상대로 연설하는 것을 들었다. 그의 담론은 대수학 같았다. 그러니까 논리적이고 인과관계가 정확했지만, 손에 잡히는 현실이나 삶의 경험과는 거의 연결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중략) 그런 그의 연설이 왜 공허했던 걸까. 왜 연설이 약어들만 모아 놓은 독백처럼 들렸을까. 그건 그가 역사에 대한 그 어떤 감각도 저버렸기 때문이며, 그 결과 장기적인 정치적 전망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말하자면 그가 하루하루 먹고 살고 있다. 그는 희망을 버렸다. 그래서 대수학이다. 희망이 정치적 어휘들을 낳는다. 희망이 없어지면 단어들도 없어진다. (87쪽)

오늘날 살아 있음, 혹은 무언가 되어 가고 있음을 산문으로 표현하거나 정리하는 일은 어렵다. 담론의 형식으로서 산문은 최소한, 확립된 의미의 연속성이 있을 때 가능하다. 산문은 주변의 서로 다른 관점이나 의견들 사이의 교환이며, 공통의, 설명적인 언어를 통해 표현된다. 그리고 그런 공통의 언어는 대부분의 공적 담론에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건 일시적이지만, 역사적이기도 한 상실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노래는 이러한 역사적 순간에 살아 있는 경험, 혹은 무언가 되어 가는 경험을 표현할 수 있다. 심지어 옛날 노래라고 해도 가능하다. 왜일까. 노래가 자족적이기 때문이며, 노래는 역사적 시간을 두 팔로 감싸 안기 때문이다. (88쪽)

우리는 그 그림 안에서 우리 자신을 알아본다. (중략) 이번 그림에는 열두 블록 정도 되는 지역을 덮고 있는 커다란 책이 그려져 있다. 책은 은빛 구름처럼 가볍게 빈민가 위를 떠다닌다. 나는 톰 웨이츠Tom Waits의 노래를 떠올린다.
모두들 동시에 말을 하지
누군가에게 힘든 시절이
누군가에겐 달콤한 시절이라고
거리에 피가 뿌려지는 때에도 누군가는 돈을 벌고 있겠지
모두들 동시에 말을 하지.
책 속의 페이지들은 그 아래 사람들의 삶들이 담긴 페이지들이다.
(중략)
색에 대해서도 꼭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중략) 한 조각의 파란 하늘, 아파트의 작은 발코니에 정성껏 내놓은 화분에서 핀 꽃들, 상점의 진열장에 걸린 밝은 색상의 옷가지들. 그림 속의 색들은 마치 야유하듯 웅얼웅얼 속삭인다. (100쪽)

자연의 외먕들을 텍스트로 ‘읽어내는‘일이 가능할까. 그 작업에서 신비스러운 면은 하나도 없었다. 그건 어떤 에너지가 지닌 서로 다른 리듬과 형태에 반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몸의 활동이었다. 나는 그 리듬과 형태들이,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닌 어떤 언어로 씌어진 텍스트라고 상상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 텍스트의 흔적을 쫓는 동안 나는 내가 그리는 대상과 한 몸이 되었고, 그것들이 씌어진 언어, 한계도 없고, 알 수도 없는 그 모국어와 하나가 되었다. (104쪽)

좌파든 우파든 정치인들은 마치 현재 상황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듯 계속 논쟁하고, 투표하고, 해결책을 의결한다. 그리고 그 결과, 그들이 하는 담론은 공허하거나 보잘것없는 일들에 관한 것들뿐이다. 그들이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나 용어들-이를테면 테러리즘, 민주주의, 유연성 같은 말들-은 그 어떤 의미도 담고 있지 않다. (중략) 헛소리들. 지금 우리에게 폭탄처럼 퍼부어지는 정보의 또 다른 장은 전세계에서 일어나는 화려하고, 충격적이고, 폭력적인 사건들이 차지하고 있다. (중략) 그 사건들은 이야기가 아니라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 사건들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현실을 일깨워 준다. 그것들은 삶의 위험요소를 보란 듯이 제시한다. 여기에 미디어가 세상을 전달하고 분류할 때 사용하는 언어가 더해진다.(중략) 그 언어는 모든 것을 ‘계량화‘하고 본질, 혹은 질적인 면에 대해서는 좀처럼 언급하지 않는다. (105-107쪽)

그런 식으로 공식적으로 말해지는 것들, 그리고 그것들이 말해지는 방식이 시민들로 하여금 일종의 기억상실에 빠져들도록 부추긴다. 경험이 지워지고 있다. 과거와 미래라는 지평선도 희미해지고 있다. 우리로 하여금 끝없이 불확실한 현재에만 살게 하려는 조건들이 갖추어져 있다. 망각 상태의 시민으로 축소된 것이다. 그러는 동안 우리 주변의 지구는 과열되고 있다. 전 지구의 부가 점점 더 소수의 사람들에게 집중되고 있는 사이, 다수는 못 먹거나 정크 푸드에 의존하거나 굶주리고 있다. 수백만 명의 살마들이 아주 빈약한 생존의 희망을 품은 채 이민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작업장의 환경으 점점 더 비인간적으로 되어 가고 있다. (108-1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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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 표지, 제목에 끌려 구매한 책, '글 쓰는 여자의 공간'은 여성 작가 35인이 어디에서 어떤 상황과 조건에서 글을 썼는지 소개하는 글이다. 여자로서 소설을 쓴다는 것도 여의치 않았던, 동행자 없이는 외출도 할 수 없었던 시대 등, 대체로 악 조건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쓴, 이제껏 읽은 그녀들의 글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녀들이 글을 쓰는 목적과 공간은 다양하다. 그녀들이 글을 쓴 공간은 어디든 간에, 치열한 삶의 공간이자 치유하는 곳이었다.   

동양인은 없었다. 아직도 동양에서 글쓰기가 서양보다 어렵다는 이야기인가... 한강이 있었더라면,,, 아쉬웠다. 

저자의 바램처럼 작가에게 친숙함을 느끼고 나아가 그녀들의 글을 읽고 싶은 충동은 생겼다. 추 후 읽기 위해, 몇몇 낯선 작가들의 작품도 메모했다.

어린 시절, 앉은뱅이 책상에서 책 읽고 공부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시 쓴다고 원고지와 고군분투했던 기억까지,,, 요즘은 침대 프레임에 기대어 책 읽는 게 마냥 좋다.

나이 들어 좋은 점은 몸과 마음이 가는 대로 산다는 거다. 자고 싶을 때 잠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나고, 책 읽고 싶으면, 책 읽으면 된다. 이 책을 보든, 읽기 싫으면 덮으면 된다. 그녀들이 그리 힘겹게 쓴 글을 이리 싶게 읽어도 되나, 싶지만.

35인 각자의 이야기를 짧게 나마 쓰고 싶지만, 책 속에 밑줄 긋기로만 남겨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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