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스트 고고! Just Go Go! 32 - 완결
라가와 마리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끝났다. 겨우 겨우 마무리를 보았다. 

예상가능한 결말로 달려갔지만, 그래도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었다. 

'성장을 보는것'은 만화의 좋은 소재이다. 

주인공의 성장을 보면서 나를 동일시하고 기쁨을 느끼기도 하고, 보는 내내 즐겁기때문이다. 

유명하게 오르내리는 말중에  내가 별로 동의하지 않는 말이 있는데 바로 이 말이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에게 못 이기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에게 못 이긴다.  

이 말을 내가 들었을때 정말로 모두 열심히 하던 일들을 내동댕이 치고싶은 분노를 느꼈다.

거북이처럼 노력하는 자를 천재는 마음만 먹으면 토끼처럼 훌쩍 뛰어넘는다. 

그리고 잘하는 것을 쉽게 하는 것이 당연하듯이,  

노력하는자가 피와 눈물과 땀으로 힘겹게 한걸음 한걸음 내디디면 

천재는 즐겁게 즐기면서 그 위치를 휙 넘어버릴수 있기때문에 

나는 간단하게 '노력하는 천재는 그 누구도 이길 수 없다'가 정답이라고 생각을 한다. 

바로 이데가 그런 경우이다. 

그는 즐기는 천재이다. 

그의 성장을 보는것은 그래서 편안하게 즐기면서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반면에 사세코나 루이의 경우는 즐기지못한 노력형 천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만화에서도 이들을 이기는 자가 없는 것으로 보아선, 

역시 위에 말한 말은 재능을 타고나지못한사람들에게 희망삼고 살라고 만든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뭏든 이들의 긴 여정은 모두모두 잘 마무리 되었다. 

이데의 성장을 보면서, 이데의 단순무식한 애정을 보면서 참으로 즐거웠다. 

그래도 이렇게 긴 작품은 나로선 참으로 힘겹다.  

이제 더 꽂아둘 책꽂이도 없는 상태라서 이 작가의 차기 작품은 구입하지 않을까 생각중이다.

현재 구입중인 스킵비트와 헌터헌터를 끝으로 장편엔 손내밀지 말아야지...하지만.. 

또 새로운 작품을 만나면 둘곳이 없다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또 구입하겠지? 후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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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애에게 받은 음악 2 - 완결
카츠타 번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시중에서 찾기도 어렵고해서 구입을 했습니다. 

누군가 이책에 대한 리뷰에 주인공을 '가난한 치아키'라고 평했는데, 

더욱더 궁금해 지더군요. 

그래서 제가 읽은 바로는 '가난한 치아키'는 절대 아닙니다. 후후~~ 

치아키처럼 까칠하지않고, 자신의 능력을 알고 고고하게 굴지도 않습니다. 

한마디로 태평하고 능력있으나 사고후 시골에서 피아노 선생을 하고 있는 평범한 남자입니다. 

그리고 주인공 여자애와 큰 나이차이지만 결혼을 하는데요, 

이 남자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업어주며 키웠는데 

나중에 둘이 결혼해서 또 아이를 낳고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업어주는 장면이 나와요. 

저는 딸을 키우는 입장이라 그런지 조금 이해되지도 않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마치 아버지와 딸이 결혼하는 꺼림칙한 느낌이랄까...- 그런식으로 전개가 되더군요. 

암튼 태평한 주인공에비해 개성있는 주변인물들이 나옵니다. 

그림체나 전개 방식이 깔끔한 느낌이 부족하달까요 전체적으로 산만한 느낌이어서 

읽을때 생각보다 집중력있게 보질 못하고 상당히 절절매면서 봤습니다. 

아이가 피아노전공을 목표로 하고 있어서 노다메나 기타 관련 일드나 책을 보여줬는데요 

이 책은 그중 정말 쓸모가 없을 듯 합니다. 

노다메의(애초 목적은 남자였지만 암튼) 피아노 실력을 늘리려고 고군분투하는 내용은 

아이에게도 꽤 귀감이 되는 부분이 있었지만 이 책은 그런면에선 '천재'타이틀 아래에 

너무 그냥 슬렁 슬렁 지나가 버렸네요.(작가가 과연 피아노를 칠줄 아는지 의심스럽습니다) 

그냥 피아노 얘기는 빼고 잔잔한 이야기가 보고 싶다면 보는것이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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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형제 3
츄야 코야마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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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는 우주를 사랑한다. 

그 넓음도 좋고 알수없는 신비로움도 좋다. 

그리고 어쩐지 한순간을 살다 스러질 내 모습도 우주에 겹쳐놓으면 안심이 된다. 

20대 디자이너인 여성이 스티븐호킹의 책을 갖고 다니면서 읽었다면 확실히 흔한일은 아니겠지. 

나는 아직도 궁금하고 신비하고 손에 잡히지 않는 우주를 사랑한다. 

남편은 그런 나를 이상하면서도 신기하다고 말을 한다. 우주는 허무하지 않느냐고 묻기도 한다. 

실존주의자이며 실리추구자인 남편은 내가 영 이상향을 꿈꾸는 철때기 주부로 보이나보다. 

그런데, 이 책을 만났다. 

가고 싶은 우주를 갈 수 없는(자꾸 찌질해지려는) 형과, 너무도 엘리트코스로 쭉쭉 나가주시는 동생, 

이 둘은 같은 것을 꿈꿔왔지만 다른 길을 가고 있었고, 다시 같은 길을 가려고 한다. 

이 과정이 상당히 흥미롭기도 하고  

일본작가 특유의 자세하고도 전문분야에 다가가려 노력한 흔적이 보여 새롭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우주과학자를 꿈꾸는 친구 딸에게 이 책을 죄 사서 선물을 했다. 

지금 그 딸과 아버지가 숨도 안쉬고 읽고 있다고 한다. 

내 친구는 워낙 만화를 안읽는 사람이라서 만화책을 선물받았다는 사실에 대하여 

 고마워해야 하는건지 혼란스러워하고있다. 후후후~~~ 

하지만 역시 우주는 사랑스럽다. 

그 허무함도 삶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동질감마저 느껴질 정도이다. 

우주를 늘 그리워하고 좋아하던 나에게 참으로 마음속으로 들어와 준 책이다. 

1권에서 설레였고, 2권이 살짝 늘어지는 기분이 들어 계속 구매해야하나 고민을 했고 

3권을 보니 역시 계속 사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4권이 너무 빨리 나와서 어리둥절하기는 한데, 아, 역시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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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르츠 바스켓 23 - 완결
타카야 나츠키 지음, 정은 옮김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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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후르츠 바스켓의 의미는 만화 중간에 나왔다.
과일바구니에 담길 수 없는 것을 갖고 불러주기만 기다린 토오루.
이 후르츠 바스켓은 연재 시작부터 끝이 보이지 않았기에(언제 12명이 다 나온단 말인가!)
구매를 좀 미뤘다가 나중에 구매했을 정도로 긴긴 여정이었다.
이 작품은 전반적으로 따뜻한 마음을 가진 토오루의 이야기이지만
일본작가의 작품이어서 정서가 다른건지
아니면 내 정신세계가 다른건지 몰입을 방해하는 몇몇 요소들이 있다.

우선, 늘 '적재적소'에 딱 듣고 싶은 말만 해주는 거의 신과같은 말솜씨가 거슬렸다.
10여편이 지난 뒤부터는 그런 토오루식 화법이 '짜고치는 고스톱'같아서
영 공감대가 형성이 되지 않았다.
그나마 한꺼번에 보면 괜찮은데,
연재당시 띄엄띄엄 한권씩 보다보니 더 그랬던듯 하다.

그리고, 어찌되었건 12지들은 굉장히 유능한 사람들이다.
인물이 좋은것은 기본이고(따라서 인기폭발이다), 공부를 잘하거나, 운동을 잘하거나 돈이많다.
물론 그에 상응하는 가슴아픔이 다들 내재해 있지만
오로지 그들은 문제의 해결을 '구원받는것'으로만 몰고 간 점이다.
그 구원의 원천이 토오루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저 듣고 싶은 말한마디 해주고 엄마같은 역할을 해준다해서 모든 문제가 사라질까?
아이를 키우고 여러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는 나로서는
'그건 아니지'라고 말하고 싶다.
특히나 이놈의 '구원'타령이 한꺼번에 '그남자 그여자의 사정'과 맞물려
같은 시기에 '후르츠바스켓'까지 두 타령을 듣게 되었으니
'일본인은 남이 구원해주지 못하면 사람구실하기 힘든가?'
하는 다소 이상한 생각까지 떠오를 지경이었다.
물론 이부분에서 구원타령은 '그남자 그여자'쪽이 더 억지스럽다.
후르바는 이 점에서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해 '부모같지 않은 부모' 잔치를 마련했다.
여기에 나온 대부분의 부모가 정말 이상한 사람들이다.
주인공이 갖고 있는 아픔을 함께 하는건 부모가 더 크지 않을까?
심지어 선천적인 질병이든 후천적인 질병이든 너무 힘들고 가망이 없어
다들 포기하라고 해도 미련스럽게 아이들 더 껴안아보는게 부모심정이 아니던가.
(그건 우리나라만의 정서는 아니지않겠는가....)
내 아이가 고양이로 변한다해서 내아이를 때리고 내버릴 수는 없기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사랑받는 이유는 '소재의 독특함'을 들고 싶다.
12지 소재도 그렇고, 제목인 후르츠바스켓 게임도 그렇다.
그리고 묘하게 환타지와 학원물을 넘나들고 있지만,
충실하게 순정만화의 기본 구도를 지키고 있다.
모든 멋진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을 사랑하며,
여자 주인공은 외면적으로 장점이라곤 하나도 없지만,
알수없는 신의 말솜씨와 측정할 수 없는 따뜻함으로 무장하고 있다.

그리고 억지스러운 악역 캐릭터들이 속속 등장하지만
이 작품의 기본 구도는 어디까지나 따뜻한 인간미를 바탕에 두고 있기때문에
읽는 내내 '잘 될거야'하는 안도감이 함께 하고 있고,
토오루는 그 바램대로 침착하게 주인공의 역할을 해내갔다.

다시 읽다보니 이 책의 단점에 대해서만 구구절절 논한것 같은데
시작 초기의 기대감에 갈수록 못미치는 전개방식에 다소 실망감이있어 그런점이 있다.
내내 호감을 표시하던 유키가 갑자기 엄마에 대한 사랑이라며
신사답게 물러서 준 것도 좀 공감대 형성이 어려웠고
그 무서운 본가의 아키토가 토오루의 '친구합시다'에 스르르 무너지는 점도
급하게 마무리한 감이 없잖아 있기 때문이다.

다만, 12지에 고양이가 낄 수 없던 이유는 내 나름대로의 해석이 있다.
12지는 매우 상징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12지를 만들 때 고양이와 호랑이가 함께 있으면 그림상 식별이 어렵다.
그래서 인간과 친근하지만 호랑이가 들어가고 고양이가 빠지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이 모든 점을 고려하더라도 이 작품은 전권 소장하고 있을 정도로
괜찮은 작품이다.
아마 외전이 나오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그건 마무리 부분이 다소 급한 감이 있었고
아무래도 부족한 부분이 자꾸 생각나기 때문이다.

마음의 상처는 치유하기 어렵다.
그건 자꾸 다른 것들로 채워나가고, 본인이 이겨나가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누구나 토오루가 필요하다.
하지만, 토오루를 기다리기 보다는 내가 누군가의 토오루가 되어줄 수 있다면,
그건 또 그 나름대로 성공한 삶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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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츠바랑! 1
아즈마 키요히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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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츠바랑'이라는 제목이 너무 어려워서 무슨뜻인가 궁금했었다.
책을 펼쳐보니, 아하~ 'with요츠바' 혹은 '요츠바와 함께' 이런 의미였다.
요츠바는 아주 귀여운 아이이다. 아울러 그 어색한 말투가 웃음이 터져나오게 한다.
그런데 자꾸 내 아이를 떠올리는 뭔가가 있다. 그게 뭘까, 그게 뭘까....
남다른 애정으로 이 책을 한권 한권 사모은 배경에는 이러한 궁금증이 함께있었다.

요츠바가 남같지 않은 이유. 그건 요츠바의 언어선택과 말투이다.
요츠바의 말투는 자연스럽지 않고 단어 나열이 되어 뭔가가 어색하다.
그 이유는 곧 밝혀졌는데, 요츠바는 외국에서 아빠가 데려와 딸처럼 키우는 아이이다.
그래서 말이 서툴지만 아주 밝고 귀엽다.
그리고 그 어색해서 재미있는 그 말투는 우리 아이의 어린시절을 생각나게 한다.
이런 아이가 주변에 있었던 것일까?
이 작가의 관찰력일까 상상력일까 몰라도 정말 기가막힌 대사 선택에 놀라웠다.

우리 아이는 어려서 유아영어를 했다.
영재가 아닌이상 언어지연과 문제점이 필수로 따라붙는것은 당연지사인지,
우리 아이는 큰 언어혼란을 겪으며 우리말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했다.
그 과도기에 힘들게 서있던 우리 아이의 말투가 꼭 요츠바의 말투와 닮아있다.
그 시절은 내게도 아이에게도 힘든 시절이었지만,
서툰 말투를 힘겹게 내뱉는 아이는
누가 뭐래도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딸아이였다.
내 딸아이 같은 요츠바, 그런 점이 요츠바를 더욱 사랑스럽게 해준다.

이 책은 전작인 아즈망가대왕과는 분위기나 느낌이 매우 다르다.
아즈망가 대왕도 사랑스러운 소녀시절로 가득했지만-어디가 사랑스러워! 할 정도로
열혈 개그소녀들이지만 말이다- 이 요츠바도 아주 사랑스러운 어린이의 향내가 가득하다.
아이가 없는 사람들은 이 만화가 어떻게 보일까?
만화적인 느낌의 어린이 요츠바의 개그만화처럼 보일까?
이젠 한 아이의 엄마이다보니 문득 궁금해진다.

내가 보는 요츠바는, 엄마로써 바라보는 어린이 요츠바는
밝고 명랑하고 귀여우며 아주 사랑스러운 어린이이다.
만화적인 아이가 아니라 실제로 있는 내 딸아이를 닮았기에 더욱 사랑스럽다.

이 만화에서 아즈망가의 향내를 찾으려 한다면 뭔가 아쉬울 듯 하다.
이 만화는 아즈망가에 비해 좀 더 잔잔하며, 좀 더 부드럽다.
4컷 만화가 가지는 강렬한 인상이나 재미있는 요소에 비해,
이 만화는 드라마처럼 순서에따라 천천히 전개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즈마 키요히코의 개그 정신은 살아있다.
여전히 작가의 센스 100%로 요츠바를 따라 웃음보따리를 짊어지고 따라가게 된다. 

한 때 만화가를 해보겠답시고 꿈꾸던 나로서는,
작가의 따라갈 수 없는 센스를 만나면 말 할 수 없는 감정에 빠지곤 한다.
'내가 이 길로 들어서지 않은게 다행이구나...'하는 마음과
'나라면 과연 이렇게 끌어갈 수 있었을 것인가?'하는 작가적 시점에서 작품을 보기도 한다.
그런 관점에서 요츠바와 옆집 세자매, 그리고 아빠친구 점보까지
등장인물이나 주인공의 상황에서 내려다 볼 때
이 작품은 딱히 생각나는 별다른 에피소드가 없어보이는데도
늘 재미있고 맛깔나게 이끌어가는 작가의 역량이 놀라울 뿐이다.
보면 볼 수록 사람사는 맛이 새록 새록 묻어나는 이 만화는,
순정만화라고 전체적으로 통칭하던 한 덩어리에서 벗어나서,
개그순정만화라고 칭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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