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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와 하녀 -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마이너리티의 철학
고병권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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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살다보면, 깨달음이 너무 늦게 도착할 때가 있다. 이상은의 노랫가사처럼 지나고 나서야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젊음이었고 사랑이었다. 삶이라는 것이 딱 그렇다. 그때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후회가 뒤통수를 치는 횟수가 많아지는 것이 인지상정의 인생인지도. 어쩌면 인생에 완벽함을 기대하는 것은 오만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먹고 사는 일에 급급하여 늘 쫓기듯 살면서 에서 찾아오는 후회와 함께 찾아오는 깨달음이란 놈 앞에 자유로운 적은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철학과 관련된 책들을 읽으면 항상 현실의 문제가 도드라져 보여 마음이 차분해지게 되는 것 같다. 거리의 철학자라 불리는 고병권은 <철학자와 하녀>에서 우리처럼 가난한 사람이 철학을 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철학은 지옥에서 도망치지 않고 또 거기서 낙담하지 않고, 지옥을 생존조건으로 삼아 거기서도 좋은 삶을 꾸리려는 자의 것이다.” 라고. 지옥 같은 삶에서 필요한 것이 정말 철학일까?

 

철학자가 하늘의 별만 보고 가다가 우물에 빠졌다. 별을 보느라 바로 앞의 우물을 보지 못한 철학자를 보며 하녀는 비웃는다. 세상의 모든 지식를 가졌을지라도 당장 자기 앞에 있는 우물을 보지 못하는 철학자가 어떻게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단 말인가? 세상의 모든 지식을 안다 할지라도, 눈 앞의 장애물을 보지 못하는 지식은 필요없는 지식 즉, 죽은 지식이라 할 수 있다. 반대로 하녀의 비웃음과는 달리 철학자는 그런 하녀가 더 한심해 보일 수도 있다. 먼 하늘의 별이 품고 있는 지식의 원천을 알리 없는 무식한 하녀가 삶의 원대한 뜻을 어찌 알까싶기도 하다. 하녀는 눈 앞의 우물(실존)보다 무한 정신세계(현학적 유희)를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테니까. 이렇게 시작된 철학자와 하녀의 동상이몽으로 '철학' 에 대한 명쾌한 정의를 들을 수 있게 된다. 가난한 사람에게 현학적 허세와 비현실적 몽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철학이 현실에서 실용가능한 지혜로서 통용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일상에서의 철학', '가난한 이들이 껴안을 수 있는 철학','다르게 느끼고 생각하고 사는 것'이 바로 철학이라한다.

 

나는 철학이 박식함에 있지 않고 일깨움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 삶에서 불가능과 무능력, 궁핍과 빈곤을 양산하고 규정하는 모든 조건에 맞서 분투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철학은 다르게 느끼는 것이고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며 결국 다르게 사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가난한 이들이 껴안을 수 있는 철학이며, 가난한 이들이 철학자에게 선사하는 철학에 대한 좋은 정의라고 생각한다.

 

니체가 어지러운 세상에 자발적으로 살아가길 원했던 것처럼 , 참된 철학은 현실이 중단된 곳, 즉 누구도 뛰어들고 싶지 않아 하는 지옥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라고 하는 저자. 저자는 이러한 현실, 이 지옥이라 불리우는 현실에서 도피처로서의 학문이 아닌 지옥같은 세상에서 필요한 철학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한다. 척박한 삶에서 건져올리는 철학 한 줄이야말로 참된 공부이며 진리에 이르는 방법이라 한다.

 

공부란 자신이 가진 미약한 것에서 시작해서 계속해서 앎을 생산하고 더 나아가는 것이지, 어떤 방법을 알아내서 단번에 도달하게 되는 게 아니다. 진리에 이르는 방법은 따로 없고 진리가 가는 길이 진리의 방법이다. 그리고 공부란 그 길을 스스로 내면서 나아가는 일이다..

 

저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나도 모르게 내면에 고착되어 왔던 프레임의 세계가 너무 강해 '다름'에 대해서 생각해 본적이 없다는 것을. 저자의 말처럼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철학이라지만, 내면이 견고해지지 않으면, 삶에서 '다름'을 추구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인문학이 점차 현학적이 되어버리면서 터져나오기 시작한 인문학의 위기설 가운데 사회학을 전공한 인문학자 고병권의 《철학자와 하녀》는 현학적 유희나 비현실적인 몽상이 아닌, 삶에서의 리얼리티가 바탕이 되는 '앎'의 철학을 말한다. 철학의 뿌리는 바로 이러한 '현실'의 리얼리티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삶' 그자체이다. 아무리 밤하늘의 별이 아름답다 한들 당장 먹고 살 빵과 물이 없다면 삶은 영속되지 않을 것이고, 빵과 물이 있다해도 별의 아름다움을 헤아릴 줄 모른다면 영혼 없는 삶을 영위하는 것과 다를바 없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삶에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천착하고 관조할 줄 아는 삶을 최고의 삶이라 했듯이 삶에 대해 다르게 생각할 줄 아는 것이야말로 좋은 삶을 향한 철학적 추구이다. 삶의 리얼리티야말로 우리가 회복해야 할 인문학의 정신일테니까...... 아. 이제야 알겠다. 삶에서 깨달음이 너무 늦게 도착한 것이 아니라, 내가 애써 외면해 왔던 것이라는 걸.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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