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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무엇인가 - 예일대 17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 삶을 위한 인문학 시리즈 1
셸리 케이건 지음, 박세연 옮김 / 엘도라도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항상 죽음을 생각한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듯 그런 죽음이 아니다. 내게는 죽음이 그닥 끔찍하게 느껴지지도 고통스러운 것도 아니다. 어쩌면 아직 죽음을 진지하게 사유할 정도로 죽음을 통한 상실을 맛보지 못한 탓도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지인들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삶에 더욱 초연해졌다고도 말 못한다. 그러나, 죽음이 자연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종종하곤 한다이 책은 셸리 케이건 교수가 1995년부터 예일대에서 진행해온 교양철학 정규강좌 ‘DEATH’를 새롭게 구성한 것으로, ‘죽음의 본질과 의 의미 그리고 생명의 존엄성을 고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화 데스티네이션을 보면 '죽을 운명은 거스를 수 없다'는 법칙 하에 살고자 발버둥치지만 무슨 수를 써서든 죽이고 마는 운명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느끼게 된다. 가혹하고도 잔인한 이 운명의 힘 앞에서 사람들은 모두 가혹하고도 잔인하게 죽음을 맞는다. 나는 그 영화가 처음에는 지나치게 공포감을 조성한다고 생각을 했더랬다. 하지만, 이후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어쩔 수 없는 힘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을 보며 현실이 오히려 잔인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우리에게는 이렇게 죽음이란 것은 어쩔 수 없는 힘, 바로 불가항력적인 힘인 것이다.

 

 

 

 

책의 전반부는 영혼, 죽음의 본질, 영생의 가능성에 관한 질문들을 그리고 그 다음으로 넘어가서는 죽음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작업이다. 저자는 죽음의 본질을 논하기 전에 더 우선적인 질문이 있다고 한다. 바로 인간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다. 인간은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 이 질문에 답은 단순히 인간은 피와 물과 뼈로 만들어졌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의 질문은 이런 육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진 근본적인 관념으로서의 형이상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형이상학적인 관점에서 정신이란 육체와는 다른 비물질적존재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비물질적 존재를 우리는 영혼이라고 한다

 

인간은 무엇인가?

저자는 이 질문에 대하여 두 가지 관점을 말하고 있는데 첫 번째 관점이 이원론[ Dualism , 二元論 ] 이다. 인간이 육체와 영혼이라고 하는 두 가지 기본적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영혼은 물질적인 존재인 육체와 정반대편에 서 있는 비물질적 존재로서 이원론적 관점의 핵심적인 개념이다.

 

두 번째 관점이 일원론 [ monism , 一元論 ] 이다. 이는 인간은 한 가지 기본 요소로만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런 두 번째 관점을 책에서는 물리주의 [ physicalism , 物理主義 ] 라고 부른다. 인간은 육체에 불과하며, 특정한 형태의 물질적존재라고 설명하기 때문이다.

 

영혼은 존재하는가?

우선 저자는 영혼의 존재를 믿는 이원론자들의 주장들 -1) 인간은 자유의지를 갖고 있다.2)결정론에 지배받는 존재는 자유의지를 가질 수 없다3)순수하게 물리적인 존재는 결정론의 지배를 받는다4)그러므로 인간은 순수하게 물리적인 존재가 아니다- 라는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며 오히려 물리주의자들의 주장이 더 설득력있다고 여러 가지 가설들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데카르트가 주장한 철학의 핵심이 육체와 정신이 서로 다른 존재라고 주장하며 정신은 육체와 다른, 육체를 초월한 존재라는 것은 틀린 주장이라 반박한다. 저자는 이제까지 영혼의 존재를 받아들일 만한 마땅한 근거를 찾지 못했다며 이원론을 거부하고 물리주의를 선택한다. 가장 대표적인 논증은 플라톤의 파이돈에서  플라톤은 물질적이고 감각적이며 개별적인 세계와 대비되는 비물질적이고 초월적이며 보편적인 실재, 이데아(idea)’를 제시했다. 플라톤에 따르면 영원하고 완벽하며 결코 변하지 않는 실체, 예컨대 절대적인 정의나 선, 아름다움 등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아닌 이데아에 존재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들을 현상계의 물질적 대상으로부터 인식한다. 비물질적이고 영원한 대상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비물질적이고 영원한 존재여야 한다. 우리는 이성을 통해 이데아를 인식할 수 있으므로 이성은 비물질적이고 영원한 존재다. 이성이 비물질적이라는 것은 곧 영혼이라는 의미다. 따라서 영혼은 영원히 존재한다는 것이 플라톤의 영혼불멸 논증 중 형상의 본질에 관한 주장이다. 이 논증은 영혼은 파괴되지 않는 순수하고 단순한 존재이기 때문에 소멸하지 않는다영혼의 단순성주장으로 이어지는데, 저자는 플라톤의 이데아에서  또한 치명적 오류를 찾아내며 영혼의 존재를 부정한다.  그러나, 나는 저자가 틀렸다고 생각하는 보편적인 사람측에 속한다. 저자는 영혼이 없기에 죽음만이 진정한 끝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것 또한 틀렸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며 그 존재의 증명은 우리에게 '마음'이라는 것으로 충분히 중명되지 않을까?

 

죽음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저자는  죽고 나면 삶이 가져다주는 모든 축복을 더 이상 누릴 수 없어서이며  살아있을 때 삶이 가져다주는 선물을 누릴 수 없기 때문에 죽음이 나쁜 것‘(박탈 이론deprivation account)’으로 느껴지지만, 오히려  10장에서는 영생이 결코 우리가 갈망할 가치 있는 삶이 아니며 결국은 악몽으로 끝날 것이기에 오히려 죽음이 있어 인간의 운명이 영생으로부터 도망갈 수 있는 탈출구와 같은 것이기에 좋은 것으로 규정한다. 이와 관련한 대표적 철학 이론인 쾌락주의(hedonism)’의 입장을 소개한 뒤, 로버트 노직(Robert Nozick)의 사고 실험인 경험 기계(experience machine)’를 예로 들어 쾌락이 본질적인 행복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삶의 가치는 삶 그 자체가 아니라 삶 속에 채워지는 내용물(contents)’에 달려 있다고 설명하면서 삶은 그릇(container)’이며 그 속에 채워지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의 총합을 통해 삶의 가치를 평가하는 그릇 이론(container theory)’에 관해 살피며 삶의 유한성을 슬퍼할 이유가 없다고 한다.

 

저자는 삶의 유한함으로 인해 지금의 삶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며 더 잘살아야한다고 한다. 우리가 죽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저자가 가지고 있는 관점이 지나치게 논리적일 뿐 영혼이 없는 사람과 대화를 나눈 기분이다. 그리고 이원론과 일원론에 대한 관점도 지나치게 형이상학적이며, 이원론과 일원론을 말함에 있어 데카르트와 물리주의의 비교는 잘못된 비교가 아닌가 한다. 관념의 차이인데 차라리 일원론의 스피노자의 철학과 비교대상을 삼았더라면 더 이해하기 쉬었을 터인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일원론과 물리주의와 연관성이 전혀 없어 읽으면서 자꾸 혼동이 왔다. 물리주의와 일원론은 근본적으로 다른 개념이라 일원론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상태에서 이원론의 관점을 영혼의 유무로  규정하여 논의한다는 것이 잘못 끼워진 단추를 채워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이제까지 삶에 치중하였던 것을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고 죽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테리 이글턴이 말하였듯이 죽음을 염두에 두는 한  현실을 긍정할 수 있는 삶이야 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삶의 자세이다.  죽음이야말로 인간을 가장 겸허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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