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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닦고 스피노자 - 마음을 위로하는 에티카 새로 읽기
신승철 지음 / 동녘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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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내가 그래도 가장 좋아했던 말은 데카르트의 ‘나는 존재한다.고로 나는 생각한다.’ 였다. 최근 들어 이 데카르트의 철학이 오히려 우리 존재의 관념이나 존재자체를 얼마나 기계적인 사고로 바꾸어 놓았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철학서들을 접하고 있다. 아마도 이러한 위기의식은 인류 공동체의 종말론과 맞물려 우리의 존재론 자체의 회의가 일면서 시작된 문제가 아닐까한다. 브뤼노 나르노의 《과학인문학 편지》에서도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코기토)가 인간이라는 유일무이한 세계상만이 존재한다는 근대적 세계관으로 인해 오늘날의 생태 위기가 초래되었다며 우리는 생각한다(코기타무스)는 사고의 전환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과 같은 맥락의 접근이 아닐까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데카르트는 나와 세계를 분리하여 사고하는 이원론적 사유방법이고 스피노자는 나와 세계를 하나로 보고 있는 일원론의 사유방식으로 스피노자는 동양적인 철학방법이다. 데카르트는 세계의 중심에 내가 있다는 사유라고 한다면 스피노자는 세계를 작동하는 섭동의 원리중의 하나로 ‘나’가 작동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사유방식이 이 책의 가장 중요한 핵심 사유방식이다.)

 

들뢰즈는 스피노자를 철학자들의 예수라고 칭했다. 스피노자를 철학자 중에서도 가장 특이하게 보는 이유는 아마도 데카르트의 이원론이 서구 철학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부터 자연적으로 스피노자의 일원론은 배척을 받게 되었다. 스피노자가 주장했던 철학은 바로 데카르트가 권력체계의 중심부에서 이데올로기 역할을 수행한 데 반해, 스피노자는 개인의 자유를 주장하기 때문이다. 스피노자는  평생 개인의 자유를 위해 싸웠으며, 권력자들에 대한 반항을 멈추지 않았다. 《에티카》는 이러한 자유의 본성을 밝히고 자유를 위한 투쟁의 책이다.  이 책 《눈물 닦고 스피노자》는 매우 독특한 형식의 마음 치유서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가 지배하였던 이제까지 알고 있던 우리들의 존재 관념들을 깨며 스피노자가 추구하고자 했던 개인의 자유에 대한 관념을 새롭게 세워주는 동시에 《에티카》의 여러 아포리즘을 다양한 정신 질환의 해법과 대안으로 제시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진단해주는 독특한 철학서이다.

 

 

 

책은 스물여덟 살 백수 청년 김철수가  매일 밤 스피노자와 토론하는 형식의 대화체로 진행된다. 매일 매일 보이지 않는 미래의 불안감과 싸워야 했던 철수 앞에 튀어나온 스피노자와 매일 밤 자신이 고민하고 있던 사회의 문제를 질문하면 스피노자는 에티카의 구절로 해답을 찾아준다.  책에 나오는 현대인의 병은 이제는 흔한 병이 되어버린 우울증과 불안증, 게임 중독, 강박증, 집착증, 공황 장애, 조울증 , 피해망상 등의 병들에 관한 스피노자의 유쾌한 답변을 통해 과거 우리의 존재에만 집착하였던 데카르트의 사유의 형식이 아닌 관계 맺기에 주목한다. (이것은 과학인문학의 창시자 브뤼노 나르노의 ‘코기토’(나는 생각한다)에서는 아무것도 연역되지 않으며 ‘코기타무스’(우리는 생각한다)에서는 모든 것이 연역될 수 있다라는 설명과 같다.)

 

 

 

 

스피노자는 기존에 '나'가 중심이었던 삶을 '우리'라는 관계맺기에 주목하며 우리 삶은 외부에서 영향을 미치는 힘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가는지 그리고 현재 내 삶의 형태나 방식이 어떤 것인가에 달려있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고, 생명과 공존하며 , 자신의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삶은 세상에 보이지 않는 변화를 만든다. 이미 익숙해있던 것들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 것이다.  기존의 관계와는 다른 방식으로 사물을 바라보며  관계를 맺는 그 순간  존재했던 것은 새로운 흐름 형식을 띄게 된다. 불의 흐름, 물의 흐름, 음식의 흐름, 쓰레기의 흐름이 시작되고 새로운 정서를 발생시키는 삶의 내부를 바꾸는 새로운 실천과 약속의 장소가 되는 것이다. 결국, 세상은 초월적 원인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내재적인 자기원인에 의해 움직이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스피노자는 이런 현대인의 병들이 욕망을 인정하지 않는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며 욕망에 대해서도 자신의 욕망이 유한하다는 것, 즉 욕망의 유한함을 긍정하면서 공동체 속에서 기쁨을 찾아야 한다고 한다.  과거 데카르트의 사유방식으로는 현대인들의 아픔을 치유하지 못한다는 말과 같다. 지젝이 이제 우리는 공동의 것을 염려해야 하며 공동의 것을 위해 싸우라고 하는 말과도 어쩌면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가 아닌 우리 모두가 존재의 이유를 생각해야 할 때인 듯하다. 일생을 개인의 자유와 투쟁했던 스피노자를 통해 진정한 자유의 기쁨을 나누었으면 한다. 스피노자의 유명한 문구 "우리는 우리가 영원하다는 것을 느끼고 경험한다."처럼... 바로 우리모두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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