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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그 두려움의 역사
하비 리벤스테인 지음, 김지향 옮김 / 지식트리(조선북스)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커피를 한 잔 마신다.커피를 마시면서 커피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떠올린다. 커피에 함유된 카페인은 심장발작, 두통, 소화시 질환, 궤양, 불면증, 고민증, 우울증 등 여러 질병의 원인이 된다는 말들이 머릿속을 떠다니지만, 이내 무시한다. 점심메뉴로 간만에 짜장면을 먹으러 직장동료들끼리 우르르 몰려간다. MBC다큐에서 한 백색공포편의 밀가루가 떠오른다. 밀가루의 맛을 내기 위해서 첨가하는 무수한 식품첨가물들, 한때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쓰레기 단무지라는 말도 있지만, 짜장면을 먹을 때 단무지는 필수다. 가끔 단무지에 고춧가루가 살짝 묻어 있는 걸 보면 , 이 단무지가 안전한 제품일까 싶지만, 그래도 눈 찔금 감고 먹는다. 이제 남은 것은 저녁 한끼, 식구들과 먹거리는 늘 고민거리이지만, 며칠 전 추석에 받은 한우세트를 처분하기 위해 삼일 째 쇠고기를 굽고 있다. 근데 또 석판에 지글지글 익어가는 고기를 보니, 쇠고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수천마리의 대장균이 확산된다는 보고와 방부 처리된 쇠고기를 먹고 수 백명이 대장균에 감염되었던 사건이 머릿속을 부유한다. 그래도 눈 질금 감고 먹는다. 먹어야 사니까.
이렇게 음식은 먹을 때마다 불안함을 동반한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도 있지만, 식품과 관련된 사건사고가 터질 때마다, 알고 먹어야 한다는 의식이 일기도 하지만, 그때뿐이다. 이런 공포속에서 문득 우리에게 음식이 공포의 존재가 된 것은 어느 시대부터일까? 인간의 가장 기초생활 중의 한가지 식食은 인류사에 빼놓을 수 없는 역사이다. 과거 콜롬비아가 고기를 절일 때 쓰는 향신료 후추를 구하기 위해 신대륙을 찾아 떠난 것처럼, 문명을 이루는 가장 기초요소는 또한 식食이다.
이 책 <음식 그 두려움의 역사>는 이런 음식을 자본주의 사회가 낳은 또 하나의 메커니즘으로 바라보았다. ‘현대 과학, 산업화, 세계화’가 합세하면서 만들어진 거대한 힘과 식품에 대한 공포를 중산층 삶의 필수 조건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미국인들의 개인주의 성향과 결합되었다. 저자 하비 리벤스타인은 식품에 대한 공포를 낳은 역사적 사실과 기록을 살펴보며 식품에 자본이 몰리게 되면서 점점 가중되어가는 먹거리의 공포를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는데, 메치니코프가 요구르트를 마시면 평균 140세까지 장수할 수 있다고 하지만 정작 본인은 70세에 죽었다. 게다가 대장의 불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사람의 몸에 불필요한 장기인 대장과 결장을 제거하는 실험을 하면서 자신은 대장과 결장을 제거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도 , 2차 세계 대전 당시 파리가 박테리아의 주범이 되면서 정부에서 대대적으로 ‘파리와의 전쟁’을 선포하지만 사실 이 박테리아는 근절시킬 수도 없고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박테리아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유해하지 않다는 것이다. 대대적으로 파리퇴치를 하면서 쏟아부은 살포제와 끈끈이 값 만해도 아마도 어마어마 할 것이다. 결국 파리퇴치로 돈을 번 사람은 따로 있다. 게다가 수많은 쇠고기 공포에도 미국인들의 변함없는 쇠고기 사랑, 쇠고기가 미국에서 충분히 식품안전에 위협적임에도 미국정부의 보호를 받고 있는 아이러니까지 적나라한 고발을 하고 있다.
미국인들에게는 ‘맛이 좋은 음식’과 건강에 좋은 음식은 별개‘라는 인식이 기저에 깔려 있다. 이는 20세기 영양학의 핵심메시지와도 일치하는 것이고, 이런 인식 때문에 많은 미국인들에게 쇠고기는 ’맛이 좋으면 더욱 경계해야 하는‘음식이었다.
이 책에서 다룬 내용은 미국 최고의 과학, 의학, 정부 전문가들의 든든한 후원을 등에 업고 공식적으로 확산돼 온 공포들이다. 최근 <독성프리>를 읽으면서 느낀 거지만, 우리에게 이제는 안전지대란 없는 것 같다. 저자가 슬프지만 정답은 없다고 명시하듯이 탄탄한 자금력과 과학적 권위를 부추기는 세력의 존재는 여전히 건실하다. 최근까지 나는 영양제를 복용하고 있었다. 비타민과 피로를 덜어주는 영양제들이었는데 이 책을 읽는 순간 모든 영양제 또한 끊어야 할 것 같다. 대기업에서 이제는 성매매와 카지노 사업까지 손을 대고 있다는 뉴스 보도를 보며,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 같지만 인간의 가장 기초요소인 먹거리 또한 안전하지 않다는 것은 시장만능주의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얼마나 뿌리깊게 사회에 자리잡아 있는지를 느끼기에는 충분하다. 한마디로 현사회는 돈이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책이다. 마이클 샌델이 시장논리가 사회모든 영역을 지배하고 있으며 시장만능주의에 경각심을 일깨워야한다고 주장한 것처럼, 이제는 자본주의에 대한 위기를 공적 담론으로 내세워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