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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기담 - 고전이 감춰둔 은밀하고 오싹한 가족의 진실
유광수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공포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비영화는 꼭 본다. '절대 아무도 믿지 못한다'는 극한 상황의 설정과 간담이 서늘해지는 '공포의 극대화'가 주는 묘한 긴장감 때문이다. 어렸을 때 즐겨 보았던 ‘전설의 고향’ 프로그램은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에 즐겨 보았던 것 같은데 시간에 맞춰 볼 때마다 무서워서 이불을 둘러싸고 손으로 가리고도 다 보았던 기억이 있다. 여름만 되면 특집으로 방영되는 전설의 고향 애청자이다보니 언제나 단골로 등장하는 이야기는 외울 지경이 되었는데 전설의 고향 히로인은 당연히 구미호이다. 그 해 구미호 역을 한 여배우는 최고 여배우라는 공식이 성립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전설의 고향은 폐지되었지만, 여전히 회자되고 사랑받는 캐릭터 또한 구미호이다. 이렇게 이야기는 항상 우리 곁을 맴돈다. 그 이야기를 통해 삶을 성찰하기도 하고 이야기를 통해 감성을 자극받기도 하고, 이야기를 통해 경험하지 않은 것들을 경험하는 것처럼, 이야기는 간접경험을 하게 해주는 동시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이 책 《가족기담》은 그런 카타르시스를 통해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새겨보게 한다. 그러나, 이 책은 그냥 이야기책이 아니다. 동화 속 숨겨진 가족의 잔혹함에 대해서, 가부장적 사고에 대해서, 남성중심의 사회가 낳은 비극을 재현하고 있다.

 

<장화홍련전>에서 계모의 모함에 아무 의심 없이 장화를 죽이라고 명령하는 비정한 아버지 배 좌수. 그리고 장화를 따라 죽은 홍련. 장화와 홍련은 원통함에 밤마다 귀신으로 나타나 한을 풀어달라고 한다. 그러나, 죽는 것은 계모 허씨와 아들 장쇠일 뿐, 아버지 배 좌수는 새 장사를 가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이 이야기를 뒤집어 보자,

과년한 딸 둘을 시집보내지도 않고 데리고 있었던 아버지, 저자는 여기서 아버지의 학대가 있었을지도 모를 이야기와 죽은 전처의 재산이 많았다는 것에 기인하여 재산에 욕심을 내는 허씨의 속셈 뒤에 배좌수의 욕심도 읽어낸다. 따라서 허씨의 욕심을 이용하여 결국에는 자신의 실속을 차린 셈이 된 것이다. 결과론적으로는 배좌수의 뜻대로 된 셈이니까.

 

저자는 이렇게 우리가 익히 알고 이야기들을 뒤집고 뒤틀어보며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가족의 위기를 돌아보게 한다. 애지중지 키운 막내딸이 사람이 아닌 구미호였다는 사실을 지나친 편애로 알아보지 못하고 가족을 풍비박산 낸 부모를 통해 편애로 자식을 키우면 모든 것을 파멸시킨다는 교훈과 동시에 과잉된 사랑의 위험성을 말하고, <홍길동전>을 통해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의 위치를 적나라하게 확인시켜준다. 남성의 성욕배설의 도구로 삼았던 길동의 어머니 춘섬의 삶을 통해 당시 ‘아버지’ 중심의 가정이 얼마나 여성들에게 잔인한 것인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면에서 <춘향전>의 춘향이는 얼마나 현명하고 행운아였는지를..

 

또한 <흥부전>의 흥부를 현대의 시선으로 재조명해본다. 우스개소리로 요즘에는 자식이 많을수록 능력있다는 표현을 하는데, 자식 하나 키우기도 힘든 세상인지라 과거 줄줄이 낳아 키우던 시대와는 다르게 지금은 자식도 능력이 되지 않으면 키우기 힘든 세상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그래서 자식이 많다는 것을 한편으로는 자식 키울 능력이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능력은 없이 자식을 줄줄이 낳는다는 것이  예전에는 미덕이었지만, 지금 시대에는  한심하고 죄악시되는 시선으로 받아들인다. 또, 흥부가 과거에는 착하고 욕심많은 형의 피해자로 비춰지던 모습이 이제는 능력없고 한심한 가장의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고전이 말하는 진실들은 조금은 불편하다. 부모가 자식을 버리자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모습과 아버지가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아들의 손가락 두 개를 자른 이야기라든지, 여자가 큰소리를 낸다면 호통치는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모습, 부모를 잡아먹는 여우의 이야기라든지 하나같이 불편한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우리의 사회는 더 비정하다. 며칠 전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에서도 세상의 비정함을 인정하고 세상을 바라보면 오히려 한가닥의 희망이 차오른다고 하였던 말이 기억이 난다. 과거에는 우리를 위협하는 공포가 늘 도사리고 있었다. 전쟁이라든지, 국가의 폭력이라든지, 전염병이라든지 도처에 펼쳐지는 보이는 잔인함을 보며 긴장을 유지하며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긴장감으로 늘 안전에 대비해왔다. 그러나. 모든 외부의 위험이 사라진 지금 우리를 위협하는 것은 바로 ‘인간’이라는 사실을 확연히 느끼게 해주는 것 같다. 《가족 기담》은 현대인이 가족이라는 맹신과도 같은 광기 앞에서 가족 앞에서 조금은 냉정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하는 것 같다. 너무 잔인한 상상일지 모르지만, 우리 사회에 일어나는 범죄의 대부분이 가족에서 비롯되는 사건들인데다가 , 유아와 배우자, 또는 가족이 죽는 경우 1차 용의자는 가족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비정함을 인정하고 나면, 가족이라는 이유로 가해졌던 무차별한 폭력과 폭행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어쩌면  잔인할 지 모르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비정함을 볼 줄 알아야 하는 것도 하나의 지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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