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못남도 믿을 건가

 

전창수 지음

 

 

여행은 설레는 일이다. 장거리여행이든, 단거리여행이든, 근거리여행이든. 아주 가까운 곳에 공원이나 도서관을 가는 것. 새로운 어떤 곳을 간다는 것은 항상 설레는 일이다.

 

어릴 때는 그렇게 가지 않았지만, 내 젊은 날에는 항상 새로운 곳을 찾아다녔던 기억이 있다. 때로는 문인들이 모이는 회관에 갔고, 어느 시절에는 락카페를 자주 다니던 적도 있었다. 돈이 넉넉지 않아, 내가 내는 돈은 거의 없었고, 또 싸구려 락카페와 무료로 참여할 수 있는 회관을 찾아다녔었다. 그렇게 내 못난 인생은 시작되었다.

 

내 젊은 날의 경험들은 비록 싸구려였지만, 그만큼 소중했다. 지금도 돈이 별로 없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그 시절에도 돈이 별로 없었다. 그럼에도 내일을 걱정하면서 하루하루 간신히 버티어낼 수 있었다는 건, 지금 생각하면 놀랍고 신기한 일이었다. 그렇게 쌓인 경험들이 하나하나 쌓여, 오늘날 나의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누구든 못난 구석이 있다. 그리고, 누구든 못난 시절도 있다. 그리고 또한 누군가는 못난이로 평생을 살아가기도 한다. 우리의 못남은 그렇게 믿음이 생긴다. 나의 못남 덕분에 누군가는 덕을 본다는 사실. 내가 못난 사람이라는 사실 덕분에 누군가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믿음.

 

나는 그렇기에 못난이의 여행을 계획한다. 나의 못난이 여행이 길고 지루한 인생에서 특별한 재미를 선물하게 되기를 바라고, 또한 어떤 이에게는 인생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나는 그래서, 못난 여행기를 기록하려고 한다. 비록, 돈이 많지 않아서 장거리여행이나 비싼 여행은 하지 못하지만, 매일이 다른 삶, 매일이 다른 곳을 향하는 특별한 마음들을 선물하려고 한다.

 

때로는 나의 못남도 믿어보자. 그리고 우리 모두 못난 사람이더라도, 그 못난 사람 모두를 믿어보자. 그렇게 믿어보다 보면, 인생은 새로워질 것이다. 어느 누구도 잘난 구석만 있는 사람은 없다. 누구에게나 못난 구석은 있으며, 그 못난 구석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삶의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나는 잘난 구석이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나는 못난 능력들 덕분에 특별한 삶을 살고 있다. 이 특별한 삶이 사람들의 못남에 희망이 되기를. 그 희망이 사람들의 삶에 깊은 마음의 울림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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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을 이용하는데

 

전창수 지음

 

도서관을 이용하다 보면, 괜히 씩씩거리는 사람이 있다. 옆에서 책 넘기는 소리만 들려도 씩씩거리는 사람. 약간의 소리에도 민감한 이분들. 과연, 이분들에게 공부가 의미가 있을까? 이분들은 어디엘 가도 뭐든지 민감하여, 어디에서도 씩씩거리고 있을 것이다. 도서관은 공부하는 장소라서, 조용하여야 하는 것은 맞지만, 책장 넘기는 소리, 필기 넘기는 소리, 그리고 사람들의 숨소리가 어울러지는 소리. 그런 것들이 오히려 분위기를 살리고, 공부하는 의욕이 생기게 하는 곳이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그저 적막한 공간을 원한다면, 도서관에 오지 말아야 한다. 도서관에서 들리는 적당한 소음은 공부의 능력향상을 위해 오히려 필요하다. 물론, 열람실 안에서의 잡담, 그리고 지나친 소음은 삼가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공부를 하는데, 책장 넘기는 소리를 신경써야 하고, 필기하는 소리를 신경써야 하고, 그저, 숨쉬는 소리조차 신경 써야 한다면, 도서관을 어떻게 가겠는가?

 

그리고 또 있다. 열람실에서 공부를 하고, 또한 자료실에서 책을 읽다 보면, 쉴 공간이 필요하다. 쉬는 공간에서는 적당히 대화도 하기도 하고, 전화도 하면서 마음의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다. 음료수를 마시기도 하고, 먹을 걸 먹기도 하면서 마음의 틈새를 갖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도서관은 이런 틈새들이 너무도 없다. 이런 틈새의 시간을 갖는 휴식공간이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도서관 관계자분들이 모르는 것 같다. 요즘은 도서관마다 휴식공간이 너무 없어서 도서관에 가는 것이 너무 힘들다. 휴식을 위해서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버거운 일이다.

 

신문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신문을 보라고 설치한다는 건, 적당한 소음을 허용한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신문을 볼 때, 종잇장을 넘기는 소리들은 생각보다 크다. 그렇기에, 신문을 보는 공간이 있는 시설에는 조용히라는 푯말이 붙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해서는 신문을 마음껏 볼 수가 없다. 신문실을 따로 설치하든지, 신문실을 휴게실에 설치하든지 해야 한다. 도서관에서 신문을 볼 수 있어서 너무도 좋다. 그러나, 그런 좋은 시설 뒤에 있는 안이한 그림. 그 그림들이 너무 아쉽다.

 

도서관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 중에 너무 지나친 조용함을 강조한다는 사실. 하지만, 그래서 이용자는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 그 사실을 알아야 한다. 도서관에서는 지나친 정숙을 강조해서는 안 된다. 적당한 소음과 함께 어우러지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도서관은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공간이 되어야 하고, 그렇기에 적당한 소음은 필요하다. 적당한 소음이 있을 때, 도서관은 더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다. 지나치게 조용한 분위기는 사람을 숨이 막히게 한다. 그 숨막힘 때문에 도서관 이용을 주저하게 된다. 지나치게 조용한 분위기를 원한다면 집에서 공부하는 것이 낫다. 아니면, 독서실을 가는 것이 낫다. 또는, 사무실을 얻는 방법도 있다.

 

도서관이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적당한 소음과 함께 사람들이 어우러질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지나친 소음은 허용할 수 없겠지만, 적당한 소음을 통해서 도서관이 숨막히지 않는 좋은 독서의 공간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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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넥트꿈을 꾸면

 

전창수 지음

 

 

가끔, 우리들은 기이한 현상을 겪는다. 단아가 보는 세상은 분명 그 기이한 현상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단아가 찾아낸 세상은 때로는 끔찍하고 때로는 힘겹고 때로는 무섭기도 하지만, 그 속에서 찾아낸 따뜻함과 사랑. 그 사랑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한번 생각해보자. 다른 사람 누군가가 내 꿈에 접속을 해온다면? 그래서, 내 꿈을 다른 사람이 볼 수 있다면? 그것은 신기하고 기이한 경험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오싹한 경험일 수도 있다. 내가 감추고 싶은 비밀을 누군가가 몰래 훔쳐본다고 생각한다면, 그 경험은 신기한 경험이기 이전에, 끔찍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단아의 상황은 그래서 위태롭다. 오감까지도 동기화되는 단아의 상황들은 그래서 더 위태롭고 절실하지만, 그래서 꿈속의 누군가와 소녀를 찾아내는과정은 더 고단하기만 하다. 이 고단하기만 인생 속에서 단아는 그래도 마음의 어딘가에 짠함을 느끼겠지.

 

우리 삶에는 알 수 없는 기이한 일들이 수없이 존재한다. 때로는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걸 믿지 않는 사람들도 많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기이하고 신기한 일들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모르고 있던 사람들은 알게 되는 순간 놀랄 것이다.

 

단아가 겪어낸 그 커넥트들이 오늘의 사람을 사는 현실에서 더 절실해지길 바란다. 더 절실해져서 삶을 바라보길 바란다. 오늘 바라보는 삶들이 내일로 가길 바란다. 내일로 가서, 더 상쾌하고 후련한 오늘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커넥트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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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로 조선을 꿈꾸다 - 정조의 리더십과 무예도보통지
최형국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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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로 조선을 꿈꾸다 마음의 정신

 

전창수 지음

 

 

우리나라에서 정조는 아마 가장 극과 극의 평가를 받는 대표적인 인물일 것이다. 정조의 시대는 화려했고, 그나마 조선시대 중에서는 화창한 중흥기를 이룬 시기였다. 하지만, 문제는 정조가 너무나 잘 났었다는 사실에 있다. 정조 사후, 조선시대는 급격히 기울어지기 시작했으며, 정조의 시대에는 비록, 정조의 뛰어난 정치능력 덕분에 중흥기를 이루었다 하지만, 정조는 후대를 대비하지 못하였다. , 정조는 현실적인 부분, 지금 닥친 위기나 정세에든 밝았지만, 정조의 생각들은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정조에게서 배울 게 있을 것이다. 정조는 무예가 뛰어난 사람이다. 무예가 뛰어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무예도보통지. 무예로 정신을 가다듬고 무예로 사람을 익히고 무예로 정세를 읽은 삶의 시작. 무예로 조선을 꿈꾼 정조의 시대는 그렇게 강력한 국가가 되었고, 조선시대 중에서는 가장 잘 사는 시대였다.

 

그렇게 잘 사는 시대였기에, 오히려 사람들은 후손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정조의 리더십은 분명 배울 만하고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것이 많다. 무예로 조선을 꿈꾸다에서 나오는 무예에 관한 정조시대의 기록들은 그렇게 정조의 통치철학에 기초하고 있다고 해도 될 듯 하다.

 

강력한 국가, 그리고 뛰어난 리더십, 그리고 뛰어난 정치성과. 그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중에 올 사람들, 나중에 살 사람들이 지금처럼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저, 지금 현대의 정세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면, 우리의 후손들은 어떤 위기에 직면할지 모른다.

 

정조의 리더십에서 배울 수 있는 것. 그것은 정조가 무예로 단련한 것도 또한 정신수양의 한 과정이었으며, 또한 그 무예로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수단이엇다는 것. 그리고 그 무예의 리더십을 통해 현실을 극복해 나갔다는 것. 그러나, 정조에게서 남는 아쉬움. 후손들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 그 사실을 기억하며, 오늘의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아주길 바란다.

 

오늘만 생각하는 어제가 아니라, 내일도 생각하는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오늘은 즐겁게 즐기며 살아가지만, 내일도 생각하는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우리 시대의 미래는 더 밝아지고, 우리 시대의 미래 사람들은 더 많이 밝아졌으면 좋겠다. 그 시대의 행복을 위해 오늘 작은 글을 또 내보낸다. 오늘도 내일을 생각하는 오늘의 글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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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오바마 자기만의 빛 - 어둠의 시간을 밝히는 인생의 도구들
미셸 오바마 지음, 이다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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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오바마 자기만의 빛 내 안의 빛들

 

전창수 지음

 

물론, 나도 안다. 나의 아빠도 엄마도 나름대로 나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하지만, 그것 이전에 나에게 먼저 온 것은 아빠가 나에게 준 상처였고, 그 상처들을 이야기해야만 내 인생이 풀릴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계속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최선을 다했다는 이유만으로는 내 상처가 치유되지 않음도 안다. 어떤 부분에서 상처를 받았는지, 또 지금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부모님들이 알고 있어야, 자식과의 관계가 회복되기 시작한다.

 

자기만의 빛은 미셸 오바마가 쓴 자서전 같은 에세이다. 여기서 드러내고 싶은 말은 불안하고 불완전한 삶 속에서 빛을 찾아가는 일이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그 최선을 다한 것이 실제로는 불안한 삶이고, 불완전한 의미이고, 힘겨운 삶이 되었을 때, 사람은 너무도 큰 괴로움에 처하게 된다.

 

그 괴로움들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어떤 지점은 자기만의 빛을 찾아갈 때있다. 나에게도 분명 내게 비추는 빛이 있었을 것이고 그 빛을 찾아가고 있을 때 내 삶은 비로소 나아지기 시작했다. 우리 안의 빛이 있을 때, 그 빛은 어딘가에서 힘을 발휘하면서, 그 빛을 향해 나아가도록 우리를 안내한다. 그 빛이 우리를 살맛나게 한다.

 

그 빛의 어딘가에서 엄마의 모습도 있을 것이고, 아빠의 모습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최선을 다했고, 누군가는 그 최선을 다한 것 때문에 오히려 더 힘들어하기도 한다. 자기 안의 빛이 사라져 있을 때, 엉뚱한 방향을 향하고 있을 때 그렇다.

 

우리네 아빠에게도 우리네 엄마에게도 또 우리네 동생에게도 우리네 형이나 오빠에게도 우리네 누나나 언니에게도 또 이웃사촌에게도 자만하는 순간은 분명 있었을 것이고, 그리고 그 자만을 거쳐오면서 반성하는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나의 엄마 아빠도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누구에게 있는 빛의 길이며, 그 빛의 길이 있을 때, 비로소 사람은 성장한다.

 

그리고 그 빛으로 가는 길은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 순간순간들이 쌓이고 쌓여서 오늘의 글을 쓰고 있다. 오늘의 글을 쓰는 이 순간들이 모여 나의 빛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래서 그 빛으로 나아간다. 그 빛으로 나아가는 길이 어렵지 않지만, 조금은 힘겹고, 두렵지는 않지만, 조금은 불안불안하다. 오늘도 그렇게 빛의 길을 찾아가고 있다. 그 빛의 길을 찾아가는 길에 나를 안내하는 안내자, 그 빛이 나의 길을 걸어가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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