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불

 

오리지널 & 마음의 결론

 

 

전창수 지음

 

 

ps://cafe.daum.net/telesinda

철썩, 철써억

소년의 눈에 조금씩 눈물이 배기 시작했다. 한두번 맞는 것도 아닌데, 매번 맞을 때마다 소년은 알 수 없는 설움이 복받쳐 눈물을 흘리기 일쑤다. 소년의 아빠는 소년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할 때쯤에 회초리질을 비로소 멈춘다. 그에게 소년이 우는 것은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시는 싸움질 안 할 거지?”

.”

소년의 기계적인 답변이 이어졌다. 소년은 그러나 왜 싸우지 말라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서도 묻지 않았다. 소년이 라고 하는 순간, 매질은 멈추는데, ‘아니오라고 해서 화를 자초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소년은 낮의 그 녀석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 녀석을 알게 된 것은 올해가 처음이었다. 녀석의 이름은 준구. 나이에 걸맞지 않게 얼굴에 주름이 잔뜩 있어서 애할비라고 불리는데 그 녀석이 소년을 노약자라고 놀리는 것이다. 그래서, 소년은 내가 왜 노약자냐고 반문하자, 그 녀석이 너는 나보다 허약하잖아라는 것이다. 소년은 순간 우욱하는 느낌이 들어 그 녀석에게 주먹을 날렸따. 그리고 한바탕 벌어진 싸움은 양가의 부모를 모셔오게 되었고, 지금은 실업자인 소년의 아빠가 학교로 찾아오게된 것이다. 결국, 양쪽 다 3일간 화장실청소를 사이좋게 하는 가벼운 벌로 마무리되었지만, 소년에게는 화장실청소보단 아빠의 잔소리가 더 견디기 힘들었다. 오늘처럼, 회초리 몇 대로 끝나는 것은 차라리 다행이다. 아주 오래 전에, 처음으로 회초리를 맞던 날, 그 날 소년은 내가 왜 맞아야 되느냐며 반항한 적이 있다. 그러자, 소년의 아빠는 더 이상 때리지는 않고 밤새도록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그 이후, 소년은 더 이상 반항하지 않았다. 밤샘 고문을 견디느니, 차라리 몇 대 맞느네 거 더욱 편한 것이다.

 

철썩, 철써억.’

소녀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대나무의 곁가지에 실린 엄마의 손힘이 종아리 깊숙이 스며들었다. 아픔을 견디지 못해, 소년은 결국 주저앉고야 말았다. 그러나, 소년의 엄마는 냉정했다.

일어나, 얼른!”

소녀는 추스린 몸을 부여잡고 다시 일어났다.

휘리릭, 철썩!’

몇 대 째지?”

다섯 대 남았어요.”

소녀는 맞으면서 앞날이 너무 깜깜하다고 생각했다. 점수가 1점 떨어질 때마다 1. 만약, 더 이상 떨어질 점수가 없을 때까지 점수가 올라가면 그때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세상이 소녀를 증오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점수가 아예 0점까지 떨어지면 더 떨어질 점수가 없을 것 아니냐, 하는 생각을 하면서 정말, 세상 살 맛 안 난다는 비관을 했다.

아빠, 언제 들어오세요?”

아빠는 바쁘셔. 오늘 안 들어올거야. 먼저 들어가 자.”

딱딱한 엄마의 말투가 소녀의 마음 속으로 파고들었다. 아빠는 오늘도 들어오지 않으신단다. 아빠는 대체 무슨 일을 하시길래. 엄마는 그저 사업을 하신다는 말씀만 하시고 무슨 일을 하신다는 말씀은 없으시다. 엄마는 자라고 했지만, 자면 안 된다. 성적을 올리려면 최대한 조금만 자라고 했다. 그러나, 소녀는 성적을 정말 올리면 무엇이 좋은 건지 알 수 없었다. 무조건 성적을 올, 그러면 좋을 것이다, 라는 말씀만 하시고 무엇이 좋다는 것인지 아무 말씀도 없으시다. 소녀는 그래서, 공부를 할 때도 늘 망설여진다. 그저 맞기 싫어서 열심히 공부했지만, 이제 몇 번 맞다 보니 그것도 적응이 되어서 별로 아프지도 않다. 차라리, 맞는 게 더 편한 거 같다. 왜 해야되는지도 모르는 공부를 계속 하느니 말이다.

 

 

준구는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외식에 마냥 들떠 있었따. 준구의 아버지는 그런 그를 보고, 한 말씀 하신다.

인서가, 넌 언제 철들래? 싸움질 하지 말랬잖아.”

전 그냥 제이랑 친해지고 싶었을 뿐인데, 그 애가 갑자기 주먹을 날리잖아요.”

뭐라고 했길래?”

좀 놀려줬죠.”

친해지고 싶은데, 왜 놀려?‘

그냥, 나처럼 좀 늙어보이고 나보다 좀 약해 보이길래 노약자라고 놀린 것 뿐이에요. 그게 그렇게 잘못된 거에요?”

글쎄사람은 누구나 다 성격이 다른 거야. 다음부터는 그렇게 놀리지 마라. 사이좋게 지내구. 그 애, 나쁜 애 같아 보이지는 않는데, 너무 어두운 것 같다. 네가 잘 대해주렴.”

.”

준구는 그렇게 말하고 어느 덧 오늘은 뭘 시킬까, 하는 생각에 골몰해 있었다. 조금은 쪄 보이는 그의 몸뚱아리가 마냥 행복해 보였다.

 

 

2

 

소년은 계속해서 그의 주위를 맴도는 준구가 못마땅하게 여겨졌다. 더 이상, ‘노약자라고 놀리지는 않았지만, 은근히 소년의 비위를 상하게 했다. 점심식사 시간에도 준구는 소년의 앞에 앉는데, 소년은 준구가 게걸스럽밥 먹는 모습을 보면 밥맛이 뚝뚝 떨어지곤 했다. 소년은 그럴 때 자기가 먹을 것까지 준구에게 그냥 줘 버렸다. 그러면, 준구는 고맙다, 면서 좋아서 먹는데 소년에게는 그런 준구의 모습이 더욱 더 밉게만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하루는 앞에서 밥을 먹고 있는 준구의 얼굴에 식판을 던져 버렸다. 어이없어하는 준구의 얼굴에 소년은 주먹질을 하기 시작했다. 주위에서 애들이 말리고, 선생님까지 오셨지만 소년은 멈추지 않았다. 선생님의 완력에 의해 소년은 간신히 준구에게서 떨어졌지만, 준구의 얼굴은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그 날 일은 준구가 집에 알리지 말아 달라는 간곡한 부탁에 비밀로 붙여졌지만, 그 후에도 준구는 계속헤서 소년의 주위를 맴돌았다. 쉬는 시간이면 소년이 옆자리로 와서 머리를 푸욱 파묻고 단잠을 즐기는 소년의 등을 툭툭 건드리고 가곤 하는 것이다. 그러면 소년은 쓰윽 얼굴을 잠깐 들어보고 이내 다시 고개를 파묻었다. 그러면 준구는 또다시 소년의 등을 툭툭 건드린다. 소년은 더 이상 못참겠다는 듯, 또다시 준구에게 주먹을 들어 보이면 준구는 알았어, 알았어, 갈게하면서 얼굴에 웃음을 가득 띄우고 자기자리로 돌아가곤 하는 것이다. 소년은 이 귀찬한은 친구를 결국은 해결하지 못하고 드디어 초등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다.

 

졸업 축하한다, 와이어.”

아빠는 오늘도 못 오세요?”

그래, 아빠는 바빠서 오늘도 못 오셔. , 졸업식 날인데 활짝 웃어야지.”

소녀는 엄마의 강요에 못이겨 미소를 지어보이지만, 씁쓸한 미소를 견뎌내기 힘들어 소녀의 미소는 어색하기만 했다.

좀더 활짝 웃어보렴. 졸업하는데 좋지 않아? 이제 너도 어엿한 중학생이구나.”

연기를 한다는 것은 힘든 직업이다. 그러나 소녀는 엄마가 만족할만한 웃음을 활짝 지어 보였다.

그래, 그래야지.”

중학생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책임 하나를 더 진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구름은 바람이 가는 곳을 따라 평화롭게 흘러가고, 마음 속으로 스며드는 불안감을 어쩌지 못한 소녀의 눈썹이 가느다랗게 떨렸다.

 

 

 

 

<마음의 결론으로 이어짐>

 

 

 

 

 

꽃불마음의 결론편

 

 

, 문제에 대한 답이 있어야 한다는 건 생각하는 거야? 때로는 답 없는 문제도 있는 거 아닌가? 왜 살아야 돼? 그것에 대한 답이 있어? 삶에 결론과 결말이 있어? 죽음? 그것을 과연 결말이라 할 수 있을까? , 죽도록 그 일을 하고 싶었어.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정말 내가 아닌 것 같았어. 그래서, 부모님이 하자고 하는 것을 하지 않았어. 물론, 죽어라 반대하셨지. 하지만, 나는 그런 부모님들이 싫었어.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그분들을 위한 삶을 고집하는 것 같아서 정말 싫었어. 그분들은 항상 정답을 원해. 내가 아무리 싫다고 외쳐도 그분들은 항상 내게 답을 원해.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집을 나와야만 했고, 그분들과 연락도 하지 않았지. 인간은 누구나 자기 욕심을 채우며 살아가. 우리 부모님도 나도 예외는 아니야. 우리의 죄는 그저 행복해지기 위해 최선을 다해 싸운다는 것이야. , 싸워야만 하지. 하지만, 행복이 과연 거기에 있을까? 답은 없어. , 물음표일 뿐이야. 내가 죽도로 그 일을 하고 싶어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게 정말 내가 원하던 일이었나? 그저, 나 역시 부모에게 반기를 들기 위해서 그랬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내 인생을 망친 것은 누구 책임인가. 내 책임인가? 부모 책임인가? 거기에도 답은 없어. 우리를 만든 신이 있다면, 나는 그 신을 원망했지. 내 인생에 답을 찾게 해 달라고 기도했어. 하지만, 돌아온 것은 황폐한 침묵 뿐. 아무것도 내겐 남지 않았어. 그리고, 나는 더 이상 답을 구하지 않기로 했어. 모든 영화에는 결말이 있지. 하지만, 난 때론 결말이 없는 영화를 보는 것을 더 좋아하지. 결말이 없는 영화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한다지만, 나는 그 결말없는 영화를 봐도 생각 따위 더 이상 하지 않아. 그냥, 그 느낌을 가슴에 묻는 거야. 슬픔도 기쁨도 그냥 가슴으로 느끼고 살아가는 거지. 인생에는 시작도 끝도 없어. 죽어서 어디로 가는지 우리는 아무도 모르잖아? 누군가의 죽음이 슬픈 것은 우리가 살아있기 때문이야. 우리가 죽는다면, 그곳이 이 세상보다 더 좋은 곳일지 나쁜 곳일지 아무도 모르는 거야. 해답, 그따위 거 이제 찾지 마. 나도 더 이상은 찾지 않을 거니까.

 

 

그리고 소년은, 그리고 소녀는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거기에는 긴긴 인생길이 있었다. 거기로 떨어져야 할지 아니면 다시 계단으로 내려가야할지 결정을 못한 그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 멀리에서 햇빛이 올라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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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아들이나 딸이 잘못해도 때리면 안 되나요?

 

전창수 지음

 

 

질문 1) 때리는 당사자가 본인이 잘못했을 때는 어떻게 하나요?

 

때리는 사람이 본인이 잘못했을 때 본인을 때리시나요? 라는 질문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본인이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본인이 더 잘 안다는 의미이며, 다른 사람이 자신의 잘못 때문에 강제로 폭력을 가한다면, 반발심만 불러일으킨다는 의미입니다. , 아들이나 딸이 잘못해서 때린다면 반응은 두 가지입니다. 반발심이 생기거나, 그 안에 상처가 생기거나. 그 안에 생긴 상처는 본인이 모르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지금 당신이 부모님과 연락을 잘 하지 않는다면, 당신 안에 잠재되어 있는 상처를 보아줄 필요도 있습니다. 그 상처가 당신의 자식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까요.

 

 

2) 잘못한 것에 대한 판단은 누가 하나요?

 

예를 들어, 성적이 떨어진 것 때문에 아이를 때렸다면, 과연 성적이 떨어진 것이 정말 잘못한 일인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듭니다. 성적이 떨어진 것이 아이가 잘못해서 그런 것인가요? 성적은 컨디션에 따라 떨어질 수도 있고, 또 아이가 기분이 좋고 컨디션이 좋아서 공부를 열심히 했다면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아이가 잘못한 것에 대한 판단은 우리가 할 수 없습니다. 그 판단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3) 예를 들어, 아들이나 딸이 물건을 훔쳤다. 어떻게 하시나요? 물건을 훔친 이유에 대해 물어 보시나요?

 

이 이야기는 저 유명한 장발장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아이가 물건을 훔친 이유가, 꼭 배고파서는 아니겠지만, 때때로 자신이 상처받았기 때문에 물건을 훔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이유에 대해서 물어보고 같이 애기하면서, 다시 물건을 훔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해서 대화로 풀어내야 합니다. 그냥, 무작정 혼내고 다그치고 야단치는 것은 아이를 마음의 어둠 속으로 몰고가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4) 본인이 잘못한 걸 아는데, 그러고도 맞는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요?

 

나는 이미 잘못했고, 나는 이미 반성을 했습니다. 그런데, 반성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너 잘못했으니까, 맞아야 돼, 이러고 때린다면? 저 같으면, 내가 반성했던 걸 되돌릴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엇나갈 것입니다. 왜냐하면,내가 반성한 것은 아무 소용 없는 것이었으니까요. 누군가가 나를 벌할 수는 없습니다.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며, 나의 죄를 벌할 수 있는 분도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아들이나 딸이 잘못했다고 물리적 폭력을 가하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행위입니다.

 

5) 아들이나 딸이 잘못하니까 때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아들이나 딸의 마음을 아는 걸까요?

 

아들이나 딸의 마음은 대화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폭력을 가했을 때, 그것이 비록 회초리로 때리는 것일지라도, 아이는 마음의 문을 닫게 되어 있습니다. 한번 닫힌 문은, 쉽게 열 수 없습니다. 그 마음음 평생 동안 열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마음의 닫힌 문이 있는 사람은 어둠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렇게 아들과 딸을 어둠 속으로 몰아 넣습니다. 회초리를 많이 맞은 사람일수록, 또한 폭력을 당한 적이 있는 적이 많은 사람일수록, 더 많이 힘든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부모한테서 받은 회초리질, 부모한테서 받은 폭력은 인생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 상처입니다. 그 마음의 상처로 부모와 단절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더 안 좋은 것은 이 단절된 삶이 지금의 자식에게까지 영향을 미쳐, 자식까지 어둠 속에 밀어넣고 자식에게 자살을 하고 싶게 만듭니다. 그렇게 자살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아집니다. 그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국가에서는 부모의 폭력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회초리도 허락하지 않습니다. 아주 좋은 정책입니다. 회초리짓 하나만 하지 않아도 세상은 바뀔 수 있습니다. 그렇게 세상이 하나씩 바뀌어 나가고, 좋은 세상이 되길 바랍니다.

 

더 이상 학생이라고 해서 맞지 않아도 되는 삶, 권력이 있는 누군가가 나한테 어떤 육체적인 기합이나 폭력을 가할까 봐, 걱정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모든 학생과 모든 가정이 행복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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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과연, 어른이 되면 독립을 해야 할까?

 

전창수 지음

 

 

예전에, 어떤 스님은 아이들은 고등학교 졸업, 대학교를 졸업하면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만 뒷바라지해야 한다고, 그 후에는 아이가 스스로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상담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이 말이 틀렸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뒷바라지하는 것이, 그냥 먹여주고 재워주고 입혀주는 일에만 몰두했다면, 그것은 뒷바라지를 한 것이 아닙니다. 그냥, 자식을 놓아두고 방치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은 너 알아서 해라, 난 신경 놓을 테니, 이것은 부모님으로 하는 뒷바라지가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부모님도 아이들도, 세상 사는 모든 사람이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뒷바라지란, 이 행복할 권리를 아이들에게 채워주는 것이고, 또한 부모 또한 행복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뒷바라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뒷바라지 하는데, 항상 괴롭기만 하고, 아이들을 미워한다면, 그것은 뒷바라지를 안 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차라리 그럴 바엔, 아이와 같이 얘기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논의하면서, 차라리 아이도 같이 돈을 벌자고 하십시오.

 

정말 뒷바라지란 부모가 행복한 뒷바라지이고, 또한 아이들이 성장해 나가면서, 아이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경제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문제에서도 뒷바라지를 하는 것입니다. 경제적으로는 아이들이 자립을 했는데, 심리적으로 불안해 한다면, 언젠가 이 아이는, 자살의 충동에 빠질 위험이 높습니다. 심리적으로 불안해 하는 자신의 자식이 있다면, 부모가 살아계시는 동안 평생동안 뒷바라지를 해야 합니다.

 

아이가 자립하기 원한다면, 그것은 아이가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란 의미가 됩니다. 대학교 가서, 또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아이가 바로 독립하고 싶다고 나가 버린다면, 그것은 아이와의 관계에서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이브를 창조하면서 행복하시길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모세에게는 자손이 번창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진짜 행복은 가족과 화목하게 지내고 또한, 가족이 같이 살 때가 진짜 행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가족간의 관계가 불안하고 심리적으로 안정이 들지 않기 때문에, 가족은 서로 떨어져 살게 됩니다.

 

물론, 직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지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경우에도 가족간의 간계가 화목하다면, 연락을 거의 매일 하고 지낼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가족간의 관계가 그다지 화목한 관계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결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지내야 할 경우라도, 매일 연락하는 것이 진짜 가족입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가족간의 관계가 화목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른이 되어 독립을 하고 안 하고는 정답의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인 문제에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글을 계속 씁니다. 저는 가족과의 관계가 불편했고, 여전히 불편한 사람이기에, 아예 연락을 안 하고 지내는 것이 마음 편한 사람이기에, 진짜로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결혼도 포기했고, 정상적인 직장도 포기했기에, 진짜 행복을 살아갈 수는 없는 아픔이 있습니다. 저는 이 아픔을 저의 글과 저의 텔레레터 능력으로 승화시키고 있습니다. 제가 하는 일들이 저의 아픔을 치유해 줍니다. 그래서 저는 이 아픔을 평생 치유해 나가야 합니다.

 

부모님을 여전히 원망하고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내 마음은 이미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은 여전히 부모님에게 가는 것을 꺼립니다. 정상적인 직장이 없기에, 또 마음이 채워지지 않기에, 결혼도 포기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와 같은 삶을 살지 말라고, 저와 같은 인생이 진짜 행복한 삶은 아니라고, 계속해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적어도, 저의 글을 보시는 분은 진짜 행복한 삶을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계속해서 글을 써 나갑니다.

 

저의 이 마음을 채워주는 유일한 방법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죽는 그날까지 제 마음을 채우는 신앙생활을 유지할 것입니다. 제가 힘들때마다, 제 마음에 어떤 힘듦 순간이 올라올 때마다, 내 마음을 채워주시는 예수님, 그 예수님을 오늘도 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예수님이 저를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채워지는 삶을 응원합니다. 진짜 행복한 삶을 살게 되시길 기도합니다. 의미 있고 진짜 훌륭한 삶을 사시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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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자로 자녀를 키운다는 것은

 

전창수 지음

 

 

많은 직분자, 목회자, 사역자분들께는 아주 중요한 과제가 하나 놓여 있습니다. 바로 자녀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자로 키우는 것이죠. 그러나,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자녀가 부모님의 뜻대로 마음대로 된다면 좋겠지만, 그것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바로 허점이 있습니다. 자녀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자로 키우기 위해 많은 부모들이 그렇게 키우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실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드리려고 이렇게 글을 시작합니다.

 

과연, 무슨 이것이 무슨 말일까요? 그리 어려운 개념이 아닙니다. 자녀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자로 키운다. 이 말 자체에 어폐가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자가 어떤 자인지요? 과연, 하나님께서 부모님이 생각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자녀가 어떤 사람이다, 라고 규정을 해 놓으셨는지요? 결코,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규정해 놓으시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알기로, 성경에 나오는 내용을 토대로 하면, 자식은 부모님을 공경해야 하지만, 부모도 반드시 자녀들을 존중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부모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한다는 것은 자녀를 부모님께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자로 키우라는 뜻이 아닙니다. 자녀는 하나님께 맡기시라는 말씀입니다. 자녀가 자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돌보실 터이니, 부모님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자로 키우는 것의 첫째 조건은 자녀의 의견을 존중하고, 자녀가 하고 싶어하는 것, 자녀가 하고 싶어하는 말을 존중하고 같이 대화를 통해 서로의 의견을 주고 받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뜻이 자녀에게 스미는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육아의 핵심은 존중입니다. 그리고, 대화의 바탕도 존중입니다. 또한, 사람관계의 바탕도 존중입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것. 가족관계 또한 마찬가집니다. 내 자식이니까 내 맘대로 내 뜻대로 해도 돼, 내 가족이니까, 내 말을 잘 들어야 잘 될 거야, 가 아니라, 새로 태어난 생명체니까, 나와는 다르게 태어난 하나의 또 다른 성격이 있는 사람이니까, 나와는 분명히 다른 생각을 가졌을 거고, 다르게 살게 될 거야, 이 아이에겐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를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나와 다른 인격체로서 존중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뜻도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존중받은 사람은 결코 다른 사람을 해하는 일을 행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는 걸 느끼기에, 자신이 존중받았기에, 자신의 존재가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렇게 소중한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힌다면, 다른 사람은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얼마나 힘들까에 대해 자연스럽게 공감하게 됩니다. 이렇게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이 늘어날수록 사회는 점점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어갑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자로 자녀를 키우는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 뜻의 전부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기를 원하며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억지로 울면서 살아가는 삶은 진짜 삶이 아니란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 진짜 행복을 꿈꾸시기를 바랍니다. 그 진짜 행복 속에서 진짜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게 되기를 하늘 높이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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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지혜 - 내 삶의 기준이 되는 8가지 심리학
김경일 지음 / 포레스트북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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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지혜

 

- 전창수 지음

 

사람에겐 지혜가 필요하다. 생활에서, 일에서, 또 인간관계에서. 이 책은 사람에게 필요한 다양한 지혜들을 에피소드와 또 저자의 경험들을 통해서 재미있고 수필같이 풀어낸 책이다.

사람의 관계는 때로는 어려움에 부닥친다. 그리고 생활과 일에서 부닥치는 문제들은 많다. 사람에게는 용서를 할 필요도 있고, 또한 일을 할 필요도 있고, 그리고 때로는 죽음을 준비하기 위한 지혜도 필요하다.

그렇다면, 과연 나에게는 어떤 지혜가 필요한 걸까? 많은 세월을 지났고, 많은 글을 썼지만, 나는 여전히 거기에 대한 해답은 찾지 못했다.

나의 글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본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나의 신앙적 에피소드와 신앙과 영성에 대한 글 덕분에, 거의 대부분의 목사님들이 내가 그분들의 설교를 듣는 것에 대해서 부담스러워하신다. 그래서, 나는 예배를 가는 것도 그다지 쉬운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라 하지만, 예배를 진행하고 주최하는 사람은 목사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나 혼자 따로 예배를 드려야 하는 처지다. 이때는 어떤 지혜가 필요한 걸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내린 결론은, 아무 곳에도 해답은 없다는 것이다. 마음의 지혜를 얻고자 하였으나, 나를 만족시키지는 못하였다. 물론, 이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책이다. 그리고, 그만큼 에피소드들이 재미있고 의미있다. 그래서, 생활의 지혜, 일의 지혜, 죽음에 대한 지혜에 대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책이 안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책은 아주 좋은 책이다.

 

그러나, 내가 찾고자 하는 것을 못 찾았다. 나는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일까. 나는 어떤 신앙생활을 하여야 하는 것일까. 나는 어떤 곳을 향하여 가야 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이 나올 때까지 끊임없이 사색은 계속될 것이다. 이제 나에 대한 상담을 스스로 해야 할 때다. 나에겐 지혜가 필요하다.

 

- 포레스트북스에서 도서를 증정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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