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쓸 수 없기에 쓰는 글

여행을 다녀오고 책을 읽고 신문을 보고 텔레비전을 봐도 글을 쓸 수 없다. 글이 쓸 수 없어서 이 글을 쓴다. 연휵 끝나는 마지막 날 저녁이 다음날 출근길보다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도 같은 이치겠지. 마음은 시간보다 더 예민한 동물이다.

글은 공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날아가는 공을 낚아채는 것, 이성복 시인은 시에 대해, 쓰지 않으면 허위이고 쓰면 불가능해지는 것을 쓴다고 하셨지만 내 글은 쓸 수록 허구에 같힌 진실에 가까워진다. 

한 글자가 다음 글자를 토하고, 한 행이 다음 행을 밀어내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나는 자꾸 뒤로 걷고 있다. 거제 몽돌해변에서 돌무지 사이로 튀기는 파도의 물줄기처럼 내 옷깃 적시는 놈도 있겠지. 반반한 돌을 골라 앉아 기다린다. 

아침일찍 문 연 커피가게에 매일 똑같은 시간에 문을 열며 "따뜻한 아메리카노요!"소리치는 단골처럼 내 가게에도 단골이 생기겠지. 쿠폰도 마구 찍어줘야겠다. 쿠폰 10개 모이면 글 하나 공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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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 시인과 함께 한 시간

(와우북페스티벌을 다녀와서 151001 p.7:30,서교예술센터)






1. 홍대로 가는 길은 숨이 찼다. 인천에서 출발한 515-1번 버스는 배차시간때문인지 내가 탄 이후에도 시동을 끈 채 한참 잠을 잤다. 내달리라치면 신호가 발목을 붙잡고, 발목이 느슨하면 사람이 오르락내리락 발걸음을 옮겼다. 지하철 메뉴판에는 분명 1,000원인데 어느새 500원 올라버린 와플을 우걱우걱 씹으며 지하철에 올랐다. 용산행 급행절차는 헐떡이는 심장의 두근거림을 아는 듯 역 하나 둘 뛰어넘으면서 속도를 냈다. 신도림역은 언제나처럼 붐볐고, 홍대앞 9번출구를 나서자 벌써부터 음악소리가 들렸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에 출판사 이름을 메단 부스는 스산했고, 책도 사람도 없었다. 초행이라 길을 이동파출소에서 길을 물어 골목어귀에 있는 서교예술센터에 도착했다. 예전 대학로 '벙커1'을 방문했을때처럼 아지트같았다. 

철제의자는 가지런히 줄을 섰고, 양가엔 편안한 쇼파도 있었다. 쇼파 한켠을 차지하고 기다렸다. 기다림은 설렘으로, 설렘은 충만함으로 변하길 바랐다.




2. '글쓰기 글램핑'이라 이름붙인 강연의 모토는 '자화상, 아이처럼 내가 나를 신나게 골똘히 들여다 보기'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철 지난 유행가사가 귓가를 멤돌고, 뭐 있겠어, 라는 자조가 귀를 간질렀다.

'이원'시인이 중앙에 등장했다. 시인을 이렇게 가까이서 본 것은 처음이라 사막에서 태어난 아이가 눈 오는 바닷가를 처음 본 것 처럼 낯설고 설렜다. 

시인은 큰 주제 2개를 제시했다.



1) 창의적(인문적)글쓰기

2) 자화상



'창의적, 인문적이란 말이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는데요. 저는 인문적 글쓰기란 표면과 안을 동시에 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겉과 속의 공존을 인정데서 출발하는 것이죠. 흔히들 글쓰기는 내면, 안만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표면도 중요해요.'





 '마음속에 (질문)이 없으면 보이는 것이 너무 많다'

( )에 무엇을 채울까 물어보셨다. 


'관심, 편견...'

답은 없고 질문이 남았다. 질문이 답이 되고 답이 질문이었다.




강연은 이렇듯 (    )라는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방식이었다.


'집없는 아이의 집' '사순절(성동혁)'의 시와 화가들의 자화상은 목적지에 도착하는 동안 잠시 정차하는 간이역이었다.




3. '내가 나에게 보내는 인사'라는 글쓰기 시간과 발표시간을 가졌다.



프롬프트에 한 장의 사진이 걸렸다. 기차가 지나간 철로에 한 두명 사람이 보이고 사방은 어둡다. 사진에 대한 설명이 밑에 나왔다



1)'(배)를 놓치고, (기차)에서 내린다. 그리하여 (인생)을 바꾼다.'

2) 밖의 내가 안의 나에게 처음으로 건네는 말 적기



3분정도 시간이 주어졌다. 채 20명이 안되었기 때문에 특별히 돌아가면 한 사람씩 자신의 글을 발표했다. 꿈을 놓치고 일에 내린 사람, 혼기를 놓치고 웨딩카에서 내렸다는 남자, 일을 놓치고 자유에서 내린 사람들이 한 데 모였다.



나의 차례가 왔다.


'겨울비를 놓치고, 봄눈에서 내린다. 그리하여 얼굴을 바꾼다.'






20대는 겨울비를 맞아 추웠지만 날이 풀리면서 내 인생에도 봄볕이 비춘 시기가 있다. 눈이 녹는건 슬프지만 봄이 왔기에 좋다. 봄이 오면 싹이 트고, 여름이 되면 꽃이 피고, 가을이 되면 열매를 맺는다. 다시 겨울이 온다. 내 얼굴도 계절에 따라 변하지 않는듯하지만 변한다. 김경주 시인의 시집 제목처럼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 되고 싶다. 




시인은 내 말을 듣고 흐느낌이 느껴진다고 했다. 

인생과 일생에는 진폭이 있다. 진폭의 고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각자에게 맞는 주파수가 있다고 믿는다. 이리저리 버튼을 돌려가며 자신만의 주파수를 맞추는 일이 바로 자화상을 그리는 일이다.




와우 북 페스티벌의 첫째날은 그렇게 끝났다. 나는 오늘도 홍대로 간다. 그리고 모레도.




#와우북페스티벌 #이원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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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읽기와 세로읽기(문득 든 잡념)



옛날 책들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책장을 넘기고, 또한 한 행을 세로로 읽어나가는 방식으로 편찬되었다. 근대에 접어들면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넘기고, 한 행도 좌에서 우로 수평적으로 읽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문득 왜 이런 차이가 발생했고, 차이의 의미는 무엇일까 궁금하다. 

최근에는 절충적으로 융합되는 듯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신문기사나 잡지를 휴대전화로 읽게 되면서 수평적으로 읽어 나가되 스크롤은 아래로 내린다. 절충형은 또 어떤 의미일까? 절충적으로 읽는 방식은 가로읽기와 세로읽기가 합쳐진 형태인데 십자가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체조에 '링' 종목이 있는데 가장 고통스러운 자세 중의 하나가 십자버티기다. 양팔은 링을 잡고 다리는 붙인 채 공중에서 몇 초를 버텨야 한다. 군대 훈련소에서 곧잘 시키는 '온몸비틀기'도 머리와 등을 바닥에 대고 다리를 모으고 좌우로 흔들어야 한다. 

절충은 정반합 형태의 이상향이 아닌 고통이다.

‪#‎읽기‬ ‪#‎십자버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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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수구초심, 나는 죽으려면 한참 멀었는데 자꾸 고향이 그립다. 그런데 '고향'이 어딘지 모르겠다. 출생지 부산, 초중고등학교를 창원에서, 대학은 서울에서, 직장은 부천에서 보내왔다. 추석같은 명절엔 합천에 있는 할머니댁에서 사촌 누나, 동생들과 냇가에서 고동을 잡고, 산에서 알밤을 주웠다.

내 고향은 어디인가? '전설의 고향'처럼 설화나 판타지의 장소인가? 
돌아가고 싶어도, 아득한 그리움으로 뿌옇게 흩뿌려진 고향은 여전히 안개 속에서 제 모습을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다.

나중에 내가 여우가 되었을때 어디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죽을까? 
고향을 찾아 안개속을 헤멘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32&aid=0002637157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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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거나 잘 모르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주제가 술과 자연스레 넘어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술 좋아하세요? 주량이 어떻게 되세요?’ 사람들의 대답도 제각각입니다.

1. 술은 잘 못하는데, 술자리 분위기는 좋아해요
2. 그냥 소주 1병 정도. 분위기 맞추는 정도에요
3. 저는 술 먹으면 얼굴이 빨개지고 졸려요.

​저는 술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술을 잘 먹고, 술자리에도 끝까지 남아 어울리고 싶은데 그렇지 못합니다. 소주 한 잔만 먹어도 얼굴이 시뻘게 지면서 급격히 졸음이 몰려 옵니다. 몸이 술을 이겨내지 못하는 것이죠. 

​흔히 ‘남자들은 사회생활을 하려면 술 좀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술자리에서 자연스레 어울리면서 업무와 관련된 얘기도 나누고 사람들 뒷담화도 하면서 끈끈한 우정을 쌓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어제 잘 들어가셨죠? 점심때 해장 하셔야죠!!’ 
이 모든 상황이 저의 로망입니다. 

​저를 처음 보거나 잘 모르는 사람들은 열에 아홉은 제가 술 잘먹게 생겼다고 말합니다.
‘술 잘먹게 생긴게 어떻게 생긴겁니까?’ ‘너 같이 생긴거!’

​그렇습니다. 제 얼굴은 술꾼으로 강하게 추정받나 봅니다. 처음 뵙거나 한참 연배가 높은 분들이 주시는 술을 거절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느 순간 ‘술을 못하는 사람이다’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 순간이 옵니다. 

발령받은지 얼마 안되서 과장님이 주시는 술을 마셨습니다. 얼굴이 시뻘게져서 과장님 앞에서 잤더니, 사람들이 술을 권하지는 않습니다. 요즘 직장 분위기가 ‘술 권하는 사회’에서 ‘저녁이 있는 삶’으로 바뀌고 있는 것을 몸소 느낍니다. 원했든 원치 않았든 저는 술 못하는 사람으로 각인되었지요.

‘술을 못하는 것’ 자체로 아쉬움도 있지만 장점도 있습니다. 저녁시간에 제가 읽고 싶은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기타를 칠 수 있습니다. 숙취가 없으니 지각할 일도 없습니다. 자연히 생활이 규칙적입니다. 항상 6시에서 6시 반경에 일어나서 라디오를 듣고 7시 40분쯤 밥을 먹고 8시쯤 커피를 들고 회사에 도착합니다. 9시까지 신문을 보거나 책을 읽습니다. 매일매일 하다보니 어느새 습관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저는 ‘양심적 음주거부자’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 - 가짜팔로 하는 포옹을 읽고(150919)


나는 자칭 양심적 음주거부자다. 내가 먼저 술자리 제의하거나 주도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술 마시는 모임에서 맥주 한 두잔, 소맥 한 잔 정도 마신다. 사회생활에서 술잔에 담긴 술은 그냥 술이 아니다.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다는 글자를 담은 편지다. 나도 정성스레 편지를 써 모르던 사람, 알고 지내지만 서먹한 사람에게 편지 한 장 건네고 싶다. 하지만 편지 쓴 후의 어지러움과 졸림의 고통이 편지를 쓰는 즐거움보다 커서 자꾸 미루고 피하게 된다. 술 잘먹게 생긴 사람이 술 못 먹는 고통은 술 좋아하는 사람이 술 못 먹는 고통만큼 크다.


단편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의 규호는 옛 애인 정윤과 오랜만에 만나 술을 마시면서 알콜 중독자 모임에서 만난 '피존씨'에 대해 말한다. 동대문 근처에서 옷가게를 하는 피존은 이혼남이고 몸집이 커서 닫히지 않는 셔츠 단추까지도 꼭 채워야 한다. 창문과 모든 문을 닫아야 직성이 풀린다. 


'술은 물보다 강합니다. 물은 몸에 에너지를 주지만, 적당한 술은 우리의 몸에 초능력을 줍니다.'(109쪽)



규호는 피존의 언행을 술자리에서 담담하게 풀어낸다. 풀어냈을 뿐 피존이 닫는 문과 채우는 셔츠단추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깊이 관여하고 있지는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김승옥의 '1964년 겨울'에 만나 여관방에 묵는 남자들처럼. 공감없는 동정이 바로 가짜팔로 하는 포옹이 아닐까. 매일 마주하는 사람과 사물에 대해 가짜 얼굴로 웃음짓는 것은 아닌지, 다음에는 술의 힘을 빌어서라도 내가 만나는 사람과 마주치는 사물을 진짜팔로 하는 포옹을 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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