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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스 하이에크 - 세계 경제와 정치 지형을 바꾼 세기의 대격돌
니컬러스 웝숏 지음, 김홍식 옮김 / 부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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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을 보이지 않는 손에 맡겨 둘 것인가? 아니면 정부가 개입해야 할 것인가? 이 질문은 지금도 유효한 화두다.

 

80여 년 전 케인스와 하이에크 이래 두 진영은 치열하게 논쟁해 왔다. 저자 니컬러스 웝숏은 두 경제학자의 대비를 통해 이 화두에 대해 나름대로의 답을 모색해 간다. 물론 그 최종적인 판단은 독자에게 달려 있다.

 

두 사람의 인상은 어땠을까?

케인스는 타인을 압도하는 풍모와 카리스마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 가령 198센티미터의 큰 키, 이튼 칼리지를 졸업한 명석한 두뇌, 움푹하게 들어간 훈훈한 느낌의 밤색 눈동자 그리고 감미로운 목소리, 남자든 여자든 케인스의 매력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이때 케인스의 나이는 30대 중반이었다.

 

한편 케인스의 강연은 유려한 언변과 기교를 동원해 상세하게 설명하고, 복잡한 이론을 일반인도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제시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하이에크 역시 키가 180센티미터가 넘고 콧수염을 길렀다. 하지만 그는 영어로 말하는 게 서툴렀고 오스트리아 식의 딱딱한 강세가 심했다. 저자 역시 어릴적 독일인 가정 교사에게 배웠던 케인스도 하이에크의 영어는 알아듣기 힘들었을 거라고 지적한다. 반면 하이에크는 케인스보다 열여섯 살이나 어렸다.

 

직장에서 일하다 보면 한 개인의 업무 능력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사람을 휘어잡는 그 무언가가 크게 작용할 때가 있다. 케인스에게는 바로 그 무언가가 있었던 셈이다.

 

두 사람의 정치적 입장은 어떠했을까?

초기에 케인스는 자유당 쪽이었다. 당시 자유당은 민주적인 방식으로 주요 산업의 공적 소유를 도입하고자 했던 사회민주주의와 자유  장을 신봉하고 현상 유지를 원하는 보수주의 사이에서 중도를 표방하는 진보적 정당이었다. 이에 반해 하이에크는 오히려 스스로 “ 이비언 사회주의자라 불리던 쪽” 라고 할 만큼 케인스보다 왼쪽에 있었다. 하지만 미제스를 만나면서 그의 입장은 바뀌기 시작했다.

 

케인스는 실업문제를 비롯해 민생을 좀 더 순탄하게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정부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반면, 하이에크는 시장은 인위적으로 바꾸기 어려운 자연적인 힘에 따라 작동하며, 따라서 정부가 시장에 간섭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라고 봤다.

 

 

자유방임주의와의 첫 격돌의 주자는 하이에크가 아닌 라이어널 로빈스였다. 케인스는 당시 영국 정부 경제자문회의 산하 경제학자위원장을 맡고 있었는데, 위원의 한 사람으로 로빈스를 지명한 것이다. 사실 로빈스는 케인스가 해결책으로 내놓은 모든 대안에 대해 시장이 자기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두라는 식으로 맞섰다. “두 사람 모두 성미도 급한 데다 다른 위원들이 식겁할 정도로 자기 성정을 한껏 분출했다.”

 

나는 이 대목을 보면서 마치 창조론(지적 설계)과 진화론의 격렬한 논쟁을 마주한 듯한 아찔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익히 알려져 있듯 케인스의 화폐론 등 경제론과 공황 극복을 위한 해법은 1929년 10월 미국의 경제 공황이 발생하면서부터 특히 각광받기 시작했다.

 

하이에크가 런던에서 네 차례 강연한 요지를 보면 그가 주장하는 자유시장론의 이론적 토대가 어떤 것이었는지 잘 파악할 수 있다. 가령 하이에크는 “최근 경기 침체의 해결책으로 소비자들에게 돈을 빌려 주는 방법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견해는 악영향을 미칠 것이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사용 가능한 모든 자원을 영구적으로 동원하려면 인위적 부양책을 쓸 게 아니라, 영구적 해결책이 스스로 자리 잡도록 시간을 주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이 속에 하이에크의 핵심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시장 스스로 조절할 수 있도록 정부는 개입하지 말고 지켜보라는 것이다.

 

여튼 로빈스는 서부의 총잡이와도 같은 하이에크의 등장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케인스와 제대로 대적할 수 있는 이론가가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후에 결별한다.

 

이보다 더 극적인 것은 베버리지 보고서로 유명한 윌리엄 베버리지의 입장 선회다. 가령 베버리지는 케인스를 무척 싫어했지만, 나중에는 “일자리를 찾는 모든 노동력을 고용할 수 있도록 수요를 창출하는 궁극적 책임은 국가가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목에 대한 이야기는 중반을 넘어서 언급된다.

 

내가 보기에 하이에크의 자유시장론에서 다루는 경제학은 사실 직면한 경제 현황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룬다. 그 내면에 흐르는 본질은 보지 않거나 일부러 폐기하려는 것 같다. 가령 미국 대공황의 원인을 “사업가들이 너무 많은 돈을 너무 많은 금리에 빌려 손실이 나는 사업에 투자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은 나 역시 아연실색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손실이 나지 않는 사업에 투자하지 못한 이유'를 밝혀야 하는 것이다. 1929년 대공황은 과잉 투자와 과잉 생산으로 인해 적절한 소비 시장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이의 경험으로 미 정부는 제2차 대전 이후 유럽 경제를 부흥시키기 위해 대대적인 원조계획을 마련한다. 세계은행, 국제개발부흥은행(IBRD) 그리고 마셜 플랜 등이 이 목적으로 생겨난 것들이다.

 

한때 모든 걸 다 아는 듯하던 케인스 파 경제학자들은 1970년대 닥친, 물가 상승과 실업이 동시 출현하는 스태그플레이션 탓에 위기에 봉착한다. 그들은 실업률과 물가가 동시에 오를 수는 없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새로운 이론을 정립해야 했다. 하이에크와 뜻을 같이 하는 - 개인주의의 장점을 높이 평가하고 국가 권력을 경계하던 밀턴 프리드먼은 “스태그플레이션은 케인스주의의 종말을 맞았다”고 즐거워했다.

 

케인스의 제자들은 스태그플레이션 이후 제대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을 제때 내놓은 데 실패한 반면에, 하이에크와 그 동맹군들은 맹렬히 반격하기 시작했다. 정치적으로 레이건과 대처가 이들의 입장을 지지하면서 수용했다.

 

사실 정치는 자신들의 성향을 반영해 줄 수 있는 경제이론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정치 권력은 진보와 보수가 교대로 출범하면서 서로의 장단점을 적용하며 보완적으로 작동해 왔다.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경제 이론 역시 마찬가지 운명이었다.

 

1970년대 잠시 케인스주의가 주춤하긴 했지만, 2007~2008년 금융위기를 맞아 부시와 오바마 행정부가 내놓은 긴급 처방은 철저하게 케인스의 처방에 따른 것이었다. 정부가 행동에 나서지 않고 시장의 자율에 맡겨 두기에는 너무나 위험해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 사이 클린턴과 깅리치에 의한 제3의 길과 같은 변주가 나올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저자는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케인스는 이 싸움에서 약간 상처를 입기는 했지만, 80여 년 세월 중 꽤 오랜 시간이 그가 승리하는 양상으로 흘렀다. 하지만 결정적인 승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중략)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중요한 차이 중 하나는 경제를 잘 파악하려면 위에서 아래를 봐야 하느냐, 아래에서 위를 봐야 하느냐 하는 문제였는데, 이 점에서 보자면 케인스는 계속 상승세를 그려 왔다. 큰 그림을 보자는 케인스의 접근은 오늘날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 505~506쪽

하이에크는 공산권의 붕괴를 기뻐하고 축하했지만, 경제 계획이 광범위하게 도입됐다는 점에서 케인스에게 패했다고 느꼈다. - 507쪽

저자는 “2007~2008년 금융 위기 때 케인스주의의 부활에 반대하는 사람은 한 동안 거의 보이지 않았다”고 평하면서, “하이에크적 해법에 따라 시장이 자기 갈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는 사람은 더더욱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책은 ‘감사의 글’과 참고문헌 등을 빼면 520쪽에 이른다. 저자는 꼼꼼하고 치밀하게 고증과 사료에 의거하여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입장을 추적한다. 사실 저자 자신의 입장을 개진하는 것 조차 조심스럽다. 이런 맥락에서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려는 저자의 노력을 높이 사고 싶다.

 

나 역시 두 진영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고 싶은 생각 보다는 시대의 상황에 조응하며 흥망성쇠의 부침을 해온 경제 이론을 지켜보면서 한 생명의 일대기 같은 역동성을 느낄 수 있었다. 생명이 끊임없이 주변 환경에 맞춰 진화하면서 생존력을 높여 왔듯이 경제 이론 역시 그렇게 진화하면서 우리의 경제적인 삶을 더 진화시켜 나갈 것으로 기대한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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