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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너 매드 픽션 클럽
헤르만 코흐 지음, 강명순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히가시노 게이고의 《호숫가 살인 사건》은 호숫가 별장에서 벌어진 의문의 살인 사건을 두고 펼쳐지는 심리스릴러입니다.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어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킨 작품인데요. '살인'보다는 살인을 '은폐하려는 부모의 심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자식 사랑에 눈먼 부모들의 비이성적인 태도를 지켜보는 독자(혹은 관객) 도덕과 본능의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가족이기주의와 지나친 교육열에 사로잡힌 추악한 욕망에 이성적 잣대를 들이대다가도 자식의 허물을 덮어주고 보호하려는 부모의 본능 앞에서 마음이 허물어지는 것입니다. 어려워요. 불편하고요.

 

    자식이 저지른 살인을 은폐하고 정당화하는 부모의 심리가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디너》는 《호숫가 살인 사건》과 맥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호숫가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호숫가 살인 사건》과 마찬가지로 《디너》는 네덜란드의 한 고급 레스토랑을 중심 공간으로 설정하고 있는데요. 도입부는 매우 단조롭습니다. 메인요리를 기다리며 와인을 곁들인 전채 요리를 즐기는 가족에게서 살인이나 폭력의 전조 같은 것은 느낄 수 없지요. 형식적인 안부와 가벼운 수다. 일상적인 불만과 불안. 화목하지 않지만 심각한 불화를 안고 있지도 않은, 평범하다고 할 수도 있을 가족의 저녁 식사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데요. 슬슬 지루해진다 싶을 때쯤 뭔가 께름한 분위기가 뒤통수를 간질입니다. 지금 내 목구멍을 넘어가는 이것의 정체는 뭘까. 아무 생각 없이 씹어 넘기던 음식을 두고 돌연 의구심에 사로잡히는 기분이랄까요.

 

     그럼 이제 인류 역사에서 일어난 모든 전쟁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생각해 보자. 이때 전 특별히 2차 세계대전이라고 못 박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2차 세계대전을 하나의 사례로 언급했을 뿐입니다. 일단 그것부터 시작해 보자는 의미 정도였지요. 죽든지 살든지 너희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천 명 혹은 만 명 정도 되는 희생자들을 생각해 보자. 통계적으로 따져볼 때 비록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죽은 사람들 전부가 착한 사람이었을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만약 그렇다면 못된 사람들의 이름이 무고한 희생자의 명단에 올라가 있는 것은 정말 천부당만부당한 일이 아니겠느냐. 그런 사람의 이름까지 전쟁 기념비에 새겨져 있다면, 그것만큼 불공평한 일은 없지 않을까?" (본문 중에서)

 

 

    어느 밤, 파티에 가기 위해 현금인출기를 찾은 열다섯 살 소년들 앞에 "더러운" 장애물이 등장합니다. 악취를 풍기며 잠들어 있는 노숙자가 현금인출기 입구를 가로막고 있어요. 술기운에 젖어 격앙된 소년들은 그 더러운 장애물을 처치해 버립니다. 표면적으로 평범해 보이는 이들의 저녁 식사에는 단 하나의 목적이 숨겨져 있습니다. 술김에 노숙자를 살해한 아이(들)의 "미래"를 지켜주는 것. 《호숫가 살인 사건》의 부모들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살인을 '은폐'하는 데 합세하지요. 반면《디너》의 부모들은 의견이 갈립니다. 한 편에서는 아이들이 저지른 살인을 은폐하는 것이, 다른 한 편에서는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최선이라고 주장하지요. 비밀을 공유하는 이들 가족의 대립 구도는 팽팽한 긴장감을 형성합니다.

 

     "살인이라니요?" 끌레르가 외쳤다. "그게 정말 살인인가요? (...) 정말이지 '살인'이라는 표현은 핵심에서 한 걸음 벗어난 거라고 생각해요. 아니, 한 걸음이 아니라 열 걸음쯤 벗어난 거예요."

    "그럼 끌레르 당신은 그걸 어떻게 부르겠소?"

    "불운이죠." 끌레르가 말했다. "온갖 재수 없는 상황들이 얽히고설키면서 만들어낸 불운이요. 제정신 박힌 사람이라면 그 두 아이가 그날 저녁 노숙하는 여자를 살해할 의도를 갖고 밖으로 나갔다고 주장할 수 없을 거예요." (본문 중에서)

      

 

    다소 산만하다 느낄 수 있는 구성 역시 긴장감을 고조시키면서 이야기에 활기를 더하고 있어요. 저녁 식사 장면과 과거 정황들이 교차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요. 차차 드러나는 살인 사건의 진상과 그 배후에 가려진 인물들의 비밀을은 선과 악, 이성과 감정, 도덕과 사랑 같은 근원적인 질문들을 던지고 있습니다.

 

      "아빠?"

    "응?"

    "정말 그 아저씨를 때릴 작정이었어? 자전거펌프로?"

    이미 열쇠를 현관문에 꽂은 상태였지만 난 다시 미헬 앞에 웅크리고 앉았다. "내 말 잘 들어, 미헬." 내가 말했다. "그 아저씨는 신사가 아니야. 그냥 쓰레기 같은 작자야. 축구하는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는 인간쓰레기일 뿐이지. 아빠가 정말로 자전거펌프로 그 녀석의 머리통을 갈기려고 했느냐 안 했느냐는 중요하지 않아. 충분히 그럴 만한 상황이었으니까." (본문 중에서)

 

 

    소년들의 아버지인 세르게와 파울. 보여주는 삶에 길들여진 위선적인 세르게와 반사회적 인격장애가 있는 파울의 대립은 이야기 전반에 걸쳐 무게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특히 파울과 아들 미헬 사이에 형성된 공모자적 유대는 소설의 압권이라 할 수 있는데요. 섬세하게 묘사되는 파울과 미헬의 관계는 살인의 필연성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맹목적인 부모의 비뚤어진 자식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호숫가 살인 사건》에 반해 《디너》는 보다 광범위한 접근을 하고 있습니다. 입양이나 인종차별 등 다양한 사회문제들도 등장하는데요.《디너》는 이 골치 아픈 재료들을 은근한 유머와 버무려 솜씨좋게 요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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