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한 우주보다 거대한 우주선보다 고도의 과학기술보다 더 위대한 건 바로 인간의 내면이다. 영화 《퍼스트맨》에서의 닐 암스트롱의 달 탐사는 딸 카렌과 수많은 동료들의 죽음을 관통하는(극복하는) 여정이다. 달 표면에 도착해 우주선 문을 여는 바로 그 짧은 순간(장면)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고요하고 적막한 달의 대지 앞에서 주인공 닐은 한동안 묵직한 침묵으로 일관한다. 이 찰나의 순간은 가장 조용한 외연이었지만 가장 많은 것을 담아낸 내면이었다.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이다.

   《퍼스트맨》은 달과 우주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닐 암스트롱에게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닐은 영화에서 명징한 한 인간으로서 직립해 있다. 미국의 영웅이자 애국심의 표상이 아니다. 60년대의 시대정신도 아니다. 달에 성조기를 꼽는 장면도 등장하지 않는다. 한 인간의 꿈, 상실, 고독, 집념, 용기, 회복 등의 숭고한 디테일이 데이미언 셔젤의 뛰어난 연출과 라이언 고슬링(닐 암스트롱 역)의 절제 있는 연기로 발산되어 러닝타임 2시간 21분을 가득 채웠다. 인간 닐의 내면은 우주선보다 높았고 달보다 신비했다. 우주보다 인간이었다.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인간의 삶은 바로 이곳ㅡ현실 지구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많은 인간들이 별과 달의 삶을 갈망하며 엄연한 일상의 편린에 주목하지 않는다. 과학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사유체계는 멀고 크고 추상적인 것에 보다 집중하는 경향을 띤다. '모호함'과 '거대 담론', '판타지'와 '애매성'이라는 현대 세계의 주요한 특징은 '진짜 나'와 '명확한 내 것'을 주목하지 않게 했다. 그러면서 인간은 인간 이상을 지향했고 결국 인간 이하가 됐다. 현대사의 비극은 대부분 여기에 연원해 있다.

   영화에서 닐은 말한다.
 "어떤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보는 시각은 달라집니다." 명대사다. 지구에서 하늘을 보는 것과 우주선에서 우주를 보는 것, 그리고 달에서 지구를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감상이다. 어떤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관찰자의 시각과 철학은 완벽히 달라진다. 관찰자의 입력이 달라지는 것 이상으로 세계를 향한 출력도 변화한다. '입장 차이'는 인간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신과 우주도 함께 공유하는 것이다. 다만 인간은 그 성질의 일부만을 알뿐이다. 결국 차원의 문제다. 그렇기에 닐의 명대사는 우리에게 간절히 긴요하다.

   우주를 배경으로 했던 근래의 몇몇 영화들과 비교되는 것 같다. 내 견해를 말하겠다. 《인터스텔라》가 광활한 우주와 대자연, 복잡한 물리학의 공식을 전면에 배치했다면,  《그래비티》가 적막한 우주를 떠도는 한 인간의 사투를 거대한 영상미로 발산했다면, 《마션》이 모험에 기반을 둔 영화적 재미와 지적인 즐거움을 포인트로 삼았다면, 《퍼스트맨》은 인간의 실존이 곧 또 하나의 우주라는 깨달음을 고요하고 차분한 방식으로 추적하는 작품이다. 영화적 소재와 색깔은 다르지만 인간 천착의 실재성과 공감성 면에서 나는 앞선 세 영화보다 더 잘 만들어졌다고 평가한다. 걸작이다.

   아폴로 11호에 올라타는 삶. 그것은 달에 가는 과정이기에 앞서 내 가족을 사랑하고 내 건강을 챙기며 주변 이웃을 돌아보는 삶이어야 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본질적으로 그 둘은 '같은 삶'일지도 모른다. 오래간만에 수준 있는 영화를 만났다. 잘 만들어진 영화 한 편 덕에 기분 좋은 일상을 보낸다.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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