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901 “사랑하지 말라?” (요일2:12-15) 503/524

 

 

 

요한일서의 핵심은, “하나님은 이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생명이시다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전체를 하나의 통으로 읽으면 이것이 자연스레 읽혀지지만, 굳이 그 구절을 밝혀야 한다는 유아기적 요구를 따르자면 우선 15절을 보세요. “하나님은 이시라하면서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하는 분명한 기록이 있습니다. 또한 48절에 의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라면서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예배 ,에 있습니다만, 우리 속에 미움, 시기, 질투, 정욕, 싸우는 마음, 당짓는 마음,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 염려하는 마음 등이 있어 단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하나님을 속상하게 함이 될 것입니다. 다음으로 520절을 보세요. “그는(하나님은)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니라다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생명이시다”, 생명은 생명인데 하나님은 영생이시다함을 우리에게 明記하여 주셨습니다. 영생이신 하나님께서 그 이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를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셨으니, 그것이 곧 복음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하나님 백성된 우리는 이 복된 소식을 전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며, 이 복음을 모르는 자들은 복음을 믿고 영접할 이유가 있는 것이니, 믿는 자는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 믿지 못하는 자들은 믿음을 사모하고 마음 문을 열어야 할 의무가 있다 하겠습니다.

 

빛이요 사랑이요 생명이신 하나님!

 

생각만 해도 희망이 솟고 소망이 넘치는 하나님의 이 위대하심 앞에 모인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절망치 않고, 혹여 낙심스러운 상황에서도 빛이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사랑 가운데 문제를 해결하려 할 뿐 아니라 생명의 주요 또한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 보는 믿음의 부요한 성도 되시기르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방금 여러분은 Amen하셨고, 저는 믿음의 주요 또한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 보자하는 히브리서 12:2 말씀을 드렸는 바, “생명의 주요 또한 또한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 보자하였는 바, 결국 생명은, 그 생명의 原人子이신 하나님, 우리에게 생명을 부여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존재 여부에 있다 할 것입니다.

 

최근 사회성의 동향이 애완동물大勢로 가고 있다 합니다. 물론 이는 아직 일반화 되진 않았으나, 사람에게 식상한 사람들은 애완동물에 정이 가다가, 거기에서도 싫어지면 식물로, 식물도 싫어지면 인형으로 인형마저 지루하면 그 대체물로 로봇을 찾는데, 로봇은 제 마음대로 조종하며 움직이게 하는 묘미가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8/31 오전 KBS1 R. 방송 중). 이러한 로봇도 통제 시스템상 바이러스나 오류 프로그램 등에 의해 한 번 감염되면 예측 불허의 상황이 발생되는 것을 알게 된다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이, 그 영혼에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빛이요, 사랑이신 하나님,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산다는 것은 복중의 복인 줄 믿으시고, 이 복된 삶을 증거함이 우리 생의 복된 가치인 줄 또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오늘 설교자는 이 빛과 사랑이시며 생명이신 하나님을 묵상하며 어찌 사랑하지 말라는 주제를 하는 것일까요? 애초 제목을 사랑하지 말라!” 한 것이 아닌, “사랑하지 말라?” 한 것은, 말 그대로 사랑하지 말 것이 있다하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하면 사랑을 떠올리고, 일반적으로는 사랑하라. 사랑하자. 사랑. 사랑등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근본 사랑이신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우리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에게 사랑해서는 안될 것, 사랑해서는 안될 일에 대해서도 분명히 말씀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설교자는 애초에 오늘 설교를 여호수아서를 증거하려는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양한 커뮤니티 중 금주 내용 같이 사랑해서는 안될 일들이 난무하고 있는 시대적 현실 속에서 과감히 주어진 주제를 택하였고 그 動機, 아직 面對面 해 보진 못하였으나 꾸준히 커뮤니티 활성화로써 메시지를 공유하는 한 커뮤니터의 메일 내용 때문이었습니다. 그 분은 지금 메일링 소스 제공과 유튜브를 통한 영상 사역 등으로 활동하며 농사와 기타 일상을 통한 복음전도자 역할을 수행 중인 未知人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핵심적인 내용은 얼마나 중요한 한 주간의 이 되었던지요. 더욱이 전국적으로 태풍 이상의 뉴스가 되고 있는반란이란 용어가 사용된 반란 모의 죄(반란 선동이든 모의든 이는 자유 대한을 전복하려는 초기 단계에 다름 없는 노릇입니다. 말을 너무 함부로 한 죄이기도 합니다)’ 관련 소식은, 그 진위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정말이지 사랑해서는 안 될, 아니 사랑하되 공의의 사랑으로 참 사랑이 이 겨레에는 急要되고 있구나 하는 가운데, 우리 자신이 이 위험하고도 혼란스런 시점에 어찌함으로 우리 자신을 지켜갈 것인가를 깊이 묵상하게 된 것입니다.

 

핵심적으로, 그러면 우리가 사랑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첫째, 입니다(52:3 a).

 

네가 선보다 악을 사랑하며 의를 말함보다 거짓을 사랑하는도다 (셀라)”

 

둘째, 거짓입니다(52:3f).

 

네가 선보다 악을 사랑하며 의를 말함보다 거짓을 사랑하는도다 (셀라)”

 

하나님은 거짓을 미워하십니다(21:8, 27, 22:15 / 지옥백성)

 

셋째, 異邦女人입니다(16:15).

 

여기서 이방여인이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정욕 우선, 애정 우선, 현실만족우선 등을 의미합니다. 삼손을 병들게 했던 들릴라의 경우가 그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이 내게 있지 아니하면서

당신이 어찌 나를 사랑한다 하느뇨 당신이 이 세번 나를 희롱하고

당신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있는 것을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넷째, 世上享樂입니다(7:18).

 

오라 우리가 아침까지 흡족하게 서로 사랑하며 사랑함으로 희락하자

 

밤을 새워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 추며 유흥하는 일들에 우리 젊은이들은 단호히 삼감이 있어야 할 것이고, 이러한 류의 사업은 사회적으로도 절제 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섯째, 賂物입니다(1:23).

 

네 방백들은 패역하여 도적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사례물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치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치 아니하는도다

 

오늘날 사회적으로 문제시 되고 있는 정치계 인사들의 배경에는 드러나지 않은 뇌물 문제가 깊이 부리 내려 있을 것입니다. 크게는 이런 문제들 외에도 작은 뇌물도 삼가는 사회가 Wellbeing State라 할 것입니다.

 

여섯째, 어그러진 길입니다렘14:10).

 

여호와께서 이 백성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그들이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그 발을 금하지 아니하므로 나 여호와가 그들을 받지 아니하고 이제

그들의 죄를 기억하고 그 죄를 벌하리라 하시고

 

일곱째, 입니다(딤전3:3, 6:10, 13:5).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딤전3:3)”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6:10)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13:5)”

 

돈을 좋아하지 않고 싫어하는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며, 그것은 지극히 정상적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돈을 사랑하기에 이를 정도로 이성을 잃으면, 여기서부터 불행이 시작 됩니다.

 

여덟째, 世上입니다(딤후4:10, 요일2:15).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요일2:15)”

 

세상에 대한 사랑 없이 어찌 하나님의 뜻을 이루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행하다가 낙심하여 다시 세상으로 나아 가는 일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아홉째, 不義의 삯입니다(벧후2:15-16).

 

“15 저희가 바른 길을 떠나 미혹하여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좇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16 자기의 불법을 인하여 책망을 받되

말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것을

금지하였느니라

 

거짓 선생들이 발람에 비유되고 있습니다(22:5-24:25). 발람은 선지자였으나 하나님의 뜻보다는 재물을 더 좋아하던 중 나귀에 의한 책망을 받습니다. 미친 발람의 수모는 거짓 선생들이 받을 몫이기도 합니다.

 

열째, 異邦神입니다(2:25).

 

내가 또 말하기를 네 발을 제어하여 벗은 발이 되게 말며 목을 갈하게

말라 하였으나 오직 너는 말하기를 아니라 이는 헛된 말이라 내가 이방

신을 사랑하였은즉 그를 따라 가겠노라 하도다

 

<>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근본 사랑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 성도가 서로 사랑하며 삶을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참된 하나님의 자녀는 사랑할 일 이면에 사랑하지 말아야 할 것도 있음은, 그것은 근본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 안에서 우리에게 일러 주신 것들임을 알아, 세속에 물들지 말고 근신하고 깨어 경성하며 승리롭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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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kma.go.kr/1116 를 통해 2013년 8월의 마지막 월요일 오후에 매미 소리 요란한 주변을 배경하여 아무래도 상황을 남겨야지 하는 마음에 급히 로긴하였답니다. 


할 일은 이 것 저 것 적지 않은데, 몸과 마음이 하나 되지 못하여 남겨지는 작업량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유엔 사무총장이신 반기문 총장께서 북한 방문의 의지를 보였다는 내용, 시리아가 화학 무기를 사용한데 대해 주변 3국연합으로 해당 거점을 공격할 예정이라는 내용, 일본의 방사능 오염도가 여간 아니지만 해당 정치지도자들의 쉬쉬 가운데 일본인들은 서서히 멸망 중이라는 우려의 내용, 대통령 박근혜 님의 다문화 여성들에게 받은 편지와 선물이 공식 포스팅 된 청와대의 포스팅 내용, 외교부와 KOICA 그리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함게 하시어 2015년...... 하는 내용 등, 사실상 다루고 아는체 하여도 하루가 부족할 내용들이 산적해 있지만, 블로거는 "A forest of garden"을 해석하고 Art deco에 시간을 소일 삼아 보냅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추구하는 행복과 단지 행복한 것들로부터 가금 멈추는 것도 좋은 일이다" 하는, 출처 모를 아트 데코 문자를 wall painting하며, 이 소중한 행복의 시간마저도 여식과 티격 태격하는 또 다른 행복의 시간을 보낼 뿐입니다. 어찌 보면 소모적이고, 어찌 보면 낭비적인 이 시간 보내기는 이해하기 힘든 에너지 충전의 시간이 되고 있지요.


David Gregory의 [Last Christian]은 올해 2월에 여식이 구한 책으로, 미국적 사유에서는 '극복 가능한 현실이야기'이지만, 우리 한반도 족속이 이 지경에 들어 간다면 도대체 어떤 일이 생길 것이가 하는 소설가적 의구심은 '그러므로' '절제, 절제, 절제'가 우리 겨레적으로 급요된다는 것을 거듭 확인하게 됩니다. 


절제 없는 야권의 일부 자기 욕심 넘치는 지도자들의 우월적 공명심으로 국가는 불요한 에너지가 소모적으로 새고 있고, 국모의 입장에서 애써 웃음 지으며 세일즈 외교라도 하여 국가적 경제 문제 해결에 나서려는 이 중요한 시기에, 여전히 미소년이 한류의 전형인양 착각하는 세류는 굳이 밤새워 기도할 이유를 내려 놓게 합니다. 


장정만 60만, 어림 잡아 200만의 백성을 광야로 인도하였던 모세는 40일, 40일 80 주야를 그 백성들을 위하여 식음을 전폐하고 기도하며 나침반과 같은 영적 지도 원리가 된 '십계명'을 매개하는 위대한 리더쉽을 발하였으나, 준비되지 않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스로 '급속히' 우상숭배하는 일을 마다 하지 않았으니, 오늘날 여성 대통령으로서 국가적 지도력을 발하려는 지도력 앞에서의 대국민적 준비됨은 어디까지 영글어 있는지 너 나 할 것 없이 자신을 돌아 보며 국민적 중량감을 느껴 보아야 하리란 생각입니다. 


이 포스팅이 누구에게, 어떤 경로를 통하여, 어떤 시각으로 읽혀질 것인가도 중요하겠으나, 포스팅을 읽은 후의 국가적 자기 절제와 애국적 자기 점검은 누구에게나 요청된다는 심정을 감추지 아니합니다. 필자 또한 그런 면에서 더 바삐 그리고 분주히 글잡이 역을 감당해야겠다 싶습니다. 


그만 마치려는 것을 아는지, 서론부에 적었던 소리의 주인공들이 다시 소리를 냅니다. 


글짓는 동안 함께 있어 준 매미야,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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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694836430530323&set=a.694836183863681.1073741932.164375563576415&type=1&the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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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ory.aladin.co.kr/sarang01/29747?link=http%3A%2F%2Fblog.aladin.co.kr%2Fgagofa%2F4004541


夏 가는 소리 2010을 그려낸지가 몇 시간 전이더니 오늘에는 2013의 夏 가는 소리 세게 되었다. 10년도 夏以風景이 上의 그것이라면 13년도 秋前光景은 下에 다름 없는 노릇이다. 


http://inews.seoul.go.kr/hsn/program/cTalk/cTalk_mainlist_view.jsp?menuID=001016002&boardID=182624&category1=NC7&category2=NC7_4¤tPage=1&sCtalkCategoryID=&sOrder=new


참 我 원 참.

허참 씨는 요즘도 보지 못하였다. 

어디 아프시기라도 한겐가 젊은 아(이)들에게 자리를 내 주기라도 한겐가 이도 저도 아니면 블로거가 치워 버린  오랜 TV의 반항인가......! 영 볼 수가 없다. 참 나 원 참~


도무지 독자 제위로서는 '이 놈의 창작 블로거는 무엘 말하려고 하는겐지' 궁금해 한다면, 이로써 본 창작물은 단기 속성으로 자극적 글짓기로 돈 냥이나 만지는 호사가들에 비하데 없는 행복이 되려니.


13년도 夏도 그리 간다. 그리고 머잖아 남녘에서 기름 값이나 하는 이름 가진 이의 세레나데가 범상찮은 한반도의 기상이 노골적 기사화 되는 날도 오리. 


개똥철학 수학공식에 의하면, 

오리의 리는 두음법칙에 준하는 이라 할때,

51에서 ㄹ 빼면 오이. 

오이=ㄹ 빠진 오1. 

오1의 1은 숫자로 분장한 오이


∴ 오리=오일




불면지간의 친애하는 페친 오일 그의 애잔한 삶이 넉넉히 2해되는 13년도의 夏 가는 소리는 그의 페부킹 한 유튜브 포스팅 http://www.youtube.com/watch?v=QkmIqtYHSAU&feature=youtu.be 과 함께 오늘 gagofa의 요릿감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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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에는 遺憾과 有感이 있어 감정의 표현을 구체화 하는 글짓기입니다. 

네2버에서는 정기적으로 알람을 해 놓고는 자의든 타의든 글짓는 이들로 하여금 게으르지 말고 글짓고 놀기에 충실하게 하기로 참 좋다 여겨 스맡폰도 사용하는 배부른 글쟁이 흉내를 내게 된 고로 얼른 메모리 해 놓은 상태입니다. 


그리고는 울린 꼬글기는! 


무어라 글짓기 할 계제階梯가 아니 되기로  "꼬글기-1"이라 쓰고 "꼬박 꼬박 글쓰기의 첫 번째 글짓기"로 '나홀로 이해하기'에 대신합니다. 


http://blog.naver.com/gjhp3/140194462522 와 함께 할 생각입니다. 

네2버 로고가 변화하듯( http://cafe.naver.com/voda/2344 ), 글짓기의 글놀이도 그 형식과 내용의 파격은 변할 수 밖에없고 변해야 할 듯 합니다. 


읽을 줄 아는 글읽거(?!)들은 본 블로깅 포스트를 은근 방문하고파 하리란 생각도 혼자 해 봅니다. 


이해가 도저히 안되는 독자라면, 겸손히 혹은 솔직히 "이게 대체 무슨 뜻이래유?" 하고 問하는 文章家의 기본을 떠올릴 것이란 소견입니다. 


"껍데기는 가라" 하고 외쳤던 시대의 풍운아도 조용히 잠들고 그를 추모하는 그의 생가터도 신식으로 바뀌어 방문객을 기다리는 지금! 


'변화'는 불가피 하되 '아름다운  변모와 변화'로써 글 좋아 하는 사람들 가슴에 은근한 만족과 풍성을 안겨 주어야 할 일입니다. 


당신의 安居에는 비가 오고 있나요? 블로거의 寓居에는 단발적 집중 호우가 한차례 시원히 내린 끝입니다. 매미가 우는 걸로 보아선 이제 그만인 듯 싶은데, 기나긴 장마로 예에 지나는 여름이라지만, 오랜만에 시원스런 비 구경에 좀 더 왔으면 하는 쓸데 없는 욕심도 부려 보았지요.


잘 사세요들. '雪國列車' 꼴 나는 지구촌동네 만들려는 사람이 주변에 보이면 (속된 말로)아직 내 주시구요. 그(녀)는 천하에 몹쓸,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고등 지식동물로 인간을 인간되게 하는 창조주의 섭리를 어기는 악의 잔재에 다름 없을테니까요. 촛불 드는 일 또한 변화에 적응 못하는 크로마뇽인이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또는 네안데르탈인급 個體라 여기고 가까이 함을 저어할 일입니다. 그래도 이런 '유감'이 아니다 싶으면, 과감히 초 들고 성문 어귀마다 달려 가서 더울 댄 땀 흘리고, 추울 땐 오들 오들 떨든가요.나븐 몇 몇 제 욕심쟁이들의 판단 착오에 휘둘려 애매한 이상주의의 도구화 되어 맹목적으로 대중 집화 자리에 드나 드는 일들을 미화 하는 어긋난 글짓기에도 흥미를 갖고 드나드시든가요. 결국은  후회겠지요만.


글잡이는 글 쓰다 보면 주절 주절 한도 끝도 없지요. 그만 함이 좋으리라 여겨 '이제 그만~~~~' 하던 오래 전 유아용 TV 프로그램을 떠올리며 止作합니다.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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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8 18: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디어 사계절의 봄은 오는가를 묻는 것은 본 테마의 질문이라기보다는 논지를 끌어 가려는 의미 전달책 이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는, 본 저자가 구어체로 썼다가 문어체로 썼다가, 존칭어로 쓰다가 일반 대화체로 쓰는 등 저자 마음껏 손 가는대로 글 쓰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노릇이다. 이를 무슨 국어문법적 잣대로 잘했느니 못했느니, 국어 교육이 잘 되었느니 못되었느니 한다는 것은 배부른, 글읽기 좋아 시간을 하릴 없이 보내는 사람들의 무책임하고도 무감각한 비판 일색의 저급한 촌평에 지나지 않을터이다. 


"희한한 계절을 보내고 맞이하다~"는 소재 또한 그러하다. 빌 고어 부통령의 정치계를 떠난 환경운동을 굳이 거론하지 않을지라도 작금 우리 지구촌동네가 전 지구적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으로써의 결과들 가운데 하나가 이상 기온이고, 그 이상 현상이 벌써 수년째 희한한 노릇을 하고 있다는 일상의 되뇌임을 갖고 무어라 왈가왈부하는 자들이 있다면, 그(녀)는 그만 읽어 아래의 글들을 수치스럽게 하지 말라.


희한한 계절을 보내고 맞이 하는 오늘은 2013년 하고도 06월 06일.


우리 대통령의 롱 스커트가 다소 걸음에 있어 부자연스러워 보인 현충일 행사였지만, 예의 그 차분하고도 침착하며 우아한 연설 솜씨는 그 모든 것들을 일거에 해소시켰다. 우리네 체형 자체가 잘빠졌다고 표현되는 사양의 각선미 좋은 여성들과는 별반 다르니 그녀들에 어지 비하리요마는, 희한한 계절 6월의 현충일은 하도 희한하여 부채질 않는 청중이 없는 대통령의 연설 앞에서의 모습은 또 얼마나 희한했던지!


이러나 저러나 희한한 계절을 보내는 오늘 현충일은 한여름 무더위로 온 땅을 달구고 있으며 현각 13:21을 지나니, 이번 포스팅도 읽기에 따라 '무슨 글을 쓰려는가?' 묻기에 충분하리란 소견이다. 


사계절에 서는 느낌의 글이란 것이 그렇고 그런 것을 아는 독자라면, 그래도 다음 번엔 괜찮은 글 있겠지 하며 기대로 기다리시리라! 


그나 저나 내 친히 썼던 명가의 교훈 요약글 10회 이상 분량은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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