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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건축 중국건축 일본건축 - 동아시아 속 우리 건축 이야기
김동욱 지음 / 김영사 / 2015년 5월
평점 :
상보적이면서 독자적인 동북아 3국의 건축 이야기
『한국건축, 중국건축, 일본건축』, 김동욱 지음, 2015. 5. 김영사.
한번쯤 내 손으로 집을 짓고 싶은 생각을 한다. “울도 담도 쌓지 않은 그림 같은 집”. 내가 막연하게 꿈꾸는 소망이다. 미학적인 건축물을 보면 시선을 거두기가 어렵다. 언젠가 짓게 될 내 집에 대한 로망도 있고, 살림집을 닮은 카페에 가면, 스케치북에 엉성한 도면을 그려보기도 한다. 정(井) 자형으로 지어진 집의 마당에서 사계절을 느낄 수 있다면, 우울증이 깊어지지 않을 것도 같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고층아파트의 17층이다. 창 밖 세상과 분리된 느낌 탓인지, 여러 이유가 더 있기도 하지만, 이곳에서는 삶을 관망하듯 살게 된다. 김훈 선생께서 『자전거 여행』에서 “그 민짜 평면은 인간의 꿈이나 생활의 두께와 깊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한 생애의 수고를 다 바치지 않으면 이런 공간에서조차 살 수가 없다.” 하셨듯이, 공간은 생활 방식을 일정 정도 강제한다. 뿐만 아니라 평생의 수고를 집 한 채에 쏟아 붓는 강도 센 노동을 요구한다.
올 여름이 시작될 즈음, 지인께서 ‘내 손으로 내 집 짓기’ 60차시 연수를 함께하자 하셨다. 산책 길 마주치는 주택이 예사롭지 않던 차에 마음이 동했지만, 개인 사정상 함께하지는 못했다. 안부 차 연수 잘 받으시고 계신지 여쭈었더니, 연수를 받으면 받을수록 집 짓는 일을 포기하게 된다고 하신다. 집짓기가 낭만적인 일은 아닐 것이다. 오랜 시간 고민을 키우지 않는다면 십에 팔 할은 불만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저자는 한국 건축에 대한 신화를 극복하고자 이 책을 지필 하였음을 서두에 밝히고 있다. 세 국가의 건축을 비교함으로써 좀 더 객관적으로 한국 건축을 바라보려는 의도를 충분히 알 수 있다. 자문화 중심주의와 사대주의를 벗어나 자국의 문화를 바라보는 것에서 출발한다. 자랑할 가치가 있는 한국 건축의 장점, 그 이면에 가려져 있는 한계를 메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비교론적 관점을 유지하는 것은 당연하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면 모두 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 나무로 짓는 집의 이점
2. 부드러운 곡선의 미학, 지붕
3. 천변만화하는 목조건축의 백미, 공포와 화반
4. 고인돌에서 천상의 세계까지, 석조물
5. 구들과 확산과 좌식 생활
6. 바람이 불어오는 문, 창호
7. 휘황찬란한 아름다움, 채색과 조각의 세계
8. 엄정성과 역동성 사이, 공간 배치와 누각
건물의 재료, 지붕, 난방, 문, 누각, 공간 배치와 색채까지 다양한 분야에 대하여 세심하게 다루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책에서 언급된 건축에 대한 전문 지식을 통해서 건축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 전통 건축에 대한 무지를 통감하며 책을 읽었다. 석조 건물이 표현하지 못하는 나무의 부드럽고 섬세한 속성, 집의 대들보를 올리는 의식인 상량식, 넓은 공간을 만들지 못하지만, 기둥과 보에 의존한 동아시아 건축, 조망권을 확보한 중국 탑과 달리 상징으로 존재한 한국과 일본 탑, 3차원 곡선 지붕, 부드러운 처마를 고집하느라 변화에 뒤처진 조선, 임금 침전 위의 용마루 없는 지붕 등 건축의 변화 과정을 세세하게 다룬다.
세 나라의 건축이 시대에 따라 변화되어 가는 과정을 살펴보면, 한국의 건축은 단독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상호교류를 통해 이루어낸 동아시아 건축의 성취”다. 모든 문화가 그러하듯 건축도 돌고 돌아서 한국 환경에 맞게 발전하였다. 의자는 불교와 간다라 지역 문화를 혼합한 인도 불교가 중국에 들어오면 시작된 생활 문화다. 3세기경 의자에 앉은 부처 모습이 전파되면서 의자는 고구려, 백제, 신라를 거쳐 일본까지 전해졌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고사성어처럼, 전파된 문화는 토속 문화와 접촉하면서 취사선택되고,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낸다. 중국문화를 그대로 반복하지 않고, 한반도의 지리적 조건을 살리는 배치와 형태를 고집했다. 일본 역시 “편백나무 일종인 히노키”를 가지고 지붕을 덮었다.
저자는 한국 건축은 명의 건국과 함께 시작된 3국의 쇄국 정책이 19세기 까지 이어지면서 답습만 하게 되었다고 본다. 외부 자극 없이, 유교의 기술 천시 문화는 창의성을 사라지게 했다. 근검절약을 강조하는 유교 이념은 왕실 외의 화려한 건축을 기피했고, 정교함과 기술적 완성도는 떨어졌다. 그럼에도 조선 건축의 미덕은 건물을 독자적으로 짓지 않고,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추구했다는 점이다. 건축은 외부 공간으로 확장되었다.
우리 건물에서 가장 중요한 장인의 노력이 깃 든 ‘누각’
특히 누각에 대한 설명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컵의 용도는 컵에 달려 있지 않다. 무엇으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침실, 식당, 거실, 화장실이 분리된 서양 건축과 달리, 우리는 한 공간을 변형시켜 가며 침실로, 식당으로, 거실로, (때로는 화장실로까지) 사용한다. “소리를 통하여 듣는 것은 소리 없음에서 듣는 것만 같지 못하며, 형체를 통하여 즐기는 것은 형체 없음에서 즐기는 것만 같지 못하다(서경덕, 줄 없는 거문고에 새긴 글 中). 누각은 용법이 한정된 건축물이 아니었다.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무한의 용도를 만들어냈다. 마당이라고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축제의 장소이고, 모임의 장소이고, 사색의 장소이고, 자연과 조우로 이끄는 공간이다. 계절이 스치고 지나가며 방랑객의 발길을 이끌었을 것이다.
왜소해진 조선 건축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곳이 누각이다.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는 공간으로 마을의 가장 전망 좋은 곳에 누각이 자리 잡았다. 창덕궁의 주합루, 부석사의 안양루, 창녕 관룡사의 원음각 등은 우리의 심신을 맑게 하는 절경을 자랑한다. 규격화되고 정확하게 계산된 아폴론의 시선으로 잡히지 않는 공간, 누각에서는 넘치는 생명력을 품고 있는 디오니소스가 느껴진다. 천명의 사람에게 천 가지 모습을 보여준다.
온돌은 우리나라를 거쳐 일본으로 넘어갔으나, 온화한 기후 조건 때문에 곧 사라졌다. 습기를 잡는 것만으로 온돌을 구들을 유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내 개인적인 견해로는 지진이 많은 일본에서는 돌을 얹는 견고한 건축은 어려웠을 법도 하다. 한국에서는 12세기가 되면 전면 온돌로 발전한다. 아궁이까지 온돌은 한국 일반 주택의 중요한 특징이 되었다. 온돌은 좌식 생활 중심의 생활 패턴을 만든다. 의자와 침대가 사라지고 좌선을 하게 된다. 겨울밤 한 장의 이불에 발을 넣고 앉아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한국만의 문화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온돌 덕분이었다. 온돌에는 상하 신분 구분이 없는 한국의 보편 문화로 자리 잡았다.
한국 건축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문살과 창호다. 전북 부안 개암사를 특별히 사랑하는 것은 주변의 산세와 가까운 바다도 좋지만, 창살 때문이었다. 얼마 전 가보았더니 십년 전의 아름다운 길과 문창이 모두 바뀌어 있었다. 새로운 것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과거의 그곳 문창살은 어떤 예술 작품보다 아름답고 소박했다. 절을 미학적으로 장식하는 방점이었다. 그 아름다운 문살을 덮고 있는 창호는 바깥 세계와 적절한 경계를 이루었다. 부담스럽지 않은 빛과 소리를 흡수했다. 건축학적 관점에서 보면 덜 실용적일지 몰라도, 나 어릴 적 가을이면 겨울을 위해 두텁게 붙이는 창호에 마른 꽃잎 끼워 넣던 운치가 생각난다.
건설신화를 써내려갔던 개발 부흥의 시대가 종착역에 다다른 지금, 우리는 다시 (폐쇄적인 유교 문화 속에서 건축이 쇠퇴했던) 조선 건축에서 영감을 얻어야 할지도 모른다. 저성장(또는 마이너스 성장) 시대에는 욕망의 사이즈를 줄이고, 공간의 경계를 없애 함께 살아가는 방법만큼 경제적인 것도 없다. 집도, 건물도 소유가 아니라, 공유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건축가 ‘정기용’ 선생님의 집에 대한 사유가 내 집에도 담기면 좋겠다. 공공건축물은 아닐지라도, 주변과 조화를 이루며 눈에 띄지 않고 모나지 않기를 바란다.
이 책에 남긴 아쉬움 하나.
평생 우리 건축을 연구한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우리 건축을 바로 보기 위한 노력에 존경을 표한다. 단 한. 중. 일. 건축의 비교를 통해서 상보적이고 독자적인 각 국가의 건축을 알 수 있었으나, 건축물과 연결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너무 없다. 각 나라마다 처한 역사적 상황과 지리적 여건에 따라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면, 그 과정 속에서 살아가는 다수의 삶은 어떠했는지를 역동적으로 엮어졌으면 좋았을 것이다. 삶이 배제된 건축 이야기가 건조하게 다가온다. 건축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가 희미하다. 또한 건축을 매개한 저자의 역사관, 동북아의 지정학적 관계, 또는 현재와 과거를 연결 지어 보려는 노력이 더해졌으면 좋았을 것이다. 과하게 객관적인 사실에 치중하다 보니, 건축을 바라보는 저자의 사유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건축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되, 그 건축에 대한 가치는 저자의 세계관에서 나올 것이다. 거시와 미시를 함께 엮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