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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치킨전 - 백숙에서 치킨으로, 한국을 지배한 닭 이야기 ㅣ 따비 음식학 1
정은정 지음 / 따비 / 2014년 7월
평점 :
추억을 호출하는 『대한민국 치킨 展』 정은정, 따비, 2014. 7.
지난 봄, 아는 지인이 키우던 닭을 조류독감으로 모두 매장했을 때도, 우리 집 닭장 속의 암탉들은 살아남았다. 아는 분에게 분양받은 오골계 병아리 열 댓 마리 중 몇 마리는 마당에서 개에게 잡혀 먹었지만, 나머지는 부모님의 보살핌에서 무럭무럭 잘 자라서 유정 란을 매일매일 생산했다. 그중 몇 마리는 지난여름 복날을 피해가지 못했다. 그리고 현재 다섯 마리가 닭장을 지키고 있다. 일 년 동안 우리 집 마당에 가축 냄새가 진동하고 있지만, 한울타리에 여러 생명체가 함께 지내면서, 농촌에서 산다는 것에 대해서 알게 모르게 배우는 바가 컸다.
『대한민국 치킨 展』을 읽는 시간은 유쾌했다. 수준 높은 지식이 주는 무게와 앎의 통찰 때문에 마음 살을 앓기 보다는 ‘맞아, 맞아’의 공감을 던지며 함께 수다 떠는 기분으로 책에 붙어 읽었다. (사실 나이를 먹으면, 무지에 대한 통찰, 다름에 대한 각성 보다는 맞장구치며 공감하고 싶은 때가 훨씬 더 많기는 하다.) 번역체도 아니고, 낯선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며, ‘별에서 온 그대’의 연인 천송이가 사랑한 ‘치킨의 미시사’였으니 몰입은 기본이었고, 간간히 웃을 수 있는 포인트도 가득했다. (가령 저자가 다루고 있는 것은 ‘프라이드 치킨’이 아니라, ‘후라이드 치킨’이라는 것 등등) 한동안 거리의 치킨집이 눈에 들어왔고, 엘리베이터의 치킨 냄새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나는 6학년이 될 때까지 면단위 시골에서 살았다. 이후 부모님의 교육열 덕분에 도청소재지인 전주로 전학을 갔다. 자녀 셋을 자취방(집이 아니라, 방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수가 없다.)에 두고, 시골로 내려가시는 부모님은 가장 큰 서점인 홍지서림에서 책을 사주셨다. (‘책’이 귀한 물건이던 그 시절에는 서점 자체도 하나의 브랜드인지라, 서점 마크가 곳곳에 찍혀있는 포장지로 책표지를 싸주는 것이 서점의 기본적인 서비스였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낡아버린 포장지를 버릴 때, 책은 온전히 나의 것이 될 수 있었다. 이런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면, 이제 당신은 중년이다.) 정신의 일용할 양식 옆 가게는 몸을 살찌우는 영양 식당, ‘영진 통닭’과 ‘꼬꾜 통닭’이 있었다. 전기 그릴에서 회전하며 기름을 뚝뚝 떨어뜨리는 닭에서 풍기는 고소한 냄새는 ‘촌년’이 지금까지 맡아보지 못한 냄새였다. 미끄러운 촉감이 싫어 벗겨먹던 껍질조차 바삭거렸던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부모님은 둘 중 더 유명한 ‘꼬꾜 통닭’에서 닭을 사주시려고 했으나, 나는 끝까지 ‘영진 통닭’을 고집했다. (촌년의 눈에는 ‘꼬꾜’가 ‘도꾜’로 읽혔던 게다. 일본인이 하거나, 일본을 좋아하는 가게라고 추측했으니, 민족주의의 강한 신념을 가진 열 세 살의 선택은 확고했다.) 이후에 서점을 드나들며 내가 상호를 잘못 읽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수년 동안 ‘꼬꾜 통닭’은 우리 가족의 만남의 장소였다. 엄마는 아빠가 어디에서 월 30만원만 벌어 와도 너희랑 살고 싶다고 했다. (지나고 보니, 그 당시 30만원은 “제조업 노동자”의 한 달 월급이었다.^^) 한 달 동안 만나지 못한 엄마와 치킨과 칼국수를 먹고 난 후, 터미널에서 헤어지는 시간은, 지금 떠올려 봐도 명치끝이 저릿하다.
이 책은 이렇게 나의 ‘치킨’에 얽힌 무수한 추억을 끝없이 호명한다. 또한 ‘먹기’가 함축하는 의미와 문화에 대해서도 성찰하게 한다. “음식을 먹는 것은 문화를 소비하는 일이다.-45쪽) 살아서 무엇을 입에 넣어야 하는 것이 치욕이라고 느꼈던 경험도 떠올리게 한다. (대구 지하철 폭발로 고등학교 아들을 잃었던 어느 엄마가 인터뷰한 기사를 읽었던 적이 있다. 아들이 죽은 것도 슬펐지만, 자식이 죽었는데도 밥을 먹는 자신이 더 견딜 수 없었다고 한다. 시장에서 반찬거리를 사면, 뒤에서 누군가 수군거리는 것만 같았다고 한다. 그래도 살겠다고 밥을 먹는 자신이 벌레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니 김영오씨를 비롯한 세월 호 가족의 단식은 (단식이 정치인들 때문에 많이 퇴색되었긴 하지만) 억울함을 호소하는 최후의 순수한 수단일 것이다.
OECD 국가 중에서 자영업 비율이 지나치게 높은 나라, 미국 자영업자 한 사람이 버는 영역에서 네 명이 치열하게 돈을 벌어야 하는 나라, 군인 수만큼의 미용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살고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적은 퇴직금으로 몸뚱이 하나로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의 생존 장이 치킨가게다. 『대한민국 치킨 展』은 치킨의 성분, 역사, 한국인의 취향, 산업 구조까지 전방위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이 리뷰에서 그것을 언급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치킨과 연관한 콩기름, 콘기름, 맥주까지 분석의 대상이다. 저자의 이야기를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왜 소비를 이념으로 해야하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렇다고 이 책에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차기 연구와 연구자를 위한 참조로써 훌륭한 자료집이라는 생각과 함께, 조금 더 일관된 문제의식이 필요했다고 본다. 뒷장으로 넘어갈수록 동어 반복의 느낌이 읽기의 맥을 떨어뜨린다. 치맥이 떡볶이와 튀김, 라면과 단무지처럼 환상적인 음식 궁합 속에 숨겨져 있는 자본의 논리에 집중했어도 기막한 이야기가 구성되었을 것이다. 완전 독점의 맥주와 완전 경쟁의 치킨이 만난 절묘한 결합 속에서 드러나는 자본주의의 생리를 부록으로 처리하기엔 할 이야기가 많은 듯하다.
사족 하나. 김수영의 시와 비평서를 읽었음에도, 그가 양계를 통해 생계를 꾸렸다는 사실은 미처 알지 못했다. 글밭 일구어 글로 밥 만드는 삶을 꿈꾸는 대부분의 예비 문학가들에게 글쓰기의 권력에서 자유롭기 위해서 다른 생계수단을 찾았다는 사실에서 여러 생각들이 오간다. 어쩌면 서평과 영화평을 쓰는 우리의 유희가 그에 기인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읽고, 쓰고, 그것이 삶과 결합하는 과정에서 호모쿵푸스가 되는 것, 이 책은 덤으로 그것까지 재고(再考)하게 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