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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파 마피아
토마스 키스트너 지음, 김희상 옮김 / 돌베개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제프 블라터의 철권 통치, 『피파 마피아』,

토마스 키스트너 지음, 김희상 옮김, 돌베개, 2014.7.

 

EBS 지식채널e '축구공 경제‘를 보면 축구공의 경제 속에 감추어져 있는 불법 아동 노동에 대하여 알 수 있다. 최첨단 과학으로 진화하고 있는 축구공은 100% 수공업 결정체다. 그라운드를 누비는 축구공의 70% 이상을 인도와 파키스탄의 값싼 노동력으로 생산하고 있다. FIFA는 축구공 생산 노동이 강요적이거나 구속적이지 않을 것을 표명하지만, 거대스포츠 기업 아디다스의 천문학적 수익, 황금발의 스타들 뒤에는 10만원 넘는 공을 만들기 위해서 하루 150원을 받는 아동 노동이 존재한다. 축구공을 한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 하루 8시간씩 축구공을 바느질한다. 이 정도가 내가 『피파 마피아』를 읽기 전에 축구에 대하여 알고 있는 일면이다.

 

나는 운동에 유난히 관심 없는 십대를 보냈다. 선생님이 공을 가져오라고 하셨는데, 배구공과 농구공도 구분을 못해서 한참 망설였던 부끄러운 기억도 새삼 떠오른다. 양궁을 한번 해보겠느냐는 체육 선생님 말씀에 정중히 거절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공부’를 잘하는 것이 최고라는 세상의 기준을 내 가치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운동은 다른 세계 이야기였을 뿐, 나의 운동에 대한 무지함은 장애가 되지도 않았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 대한 방송과 사람들의 흥분에도 축구에 관심이 없었다. 한국과 폴란드전, 미국전은 보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직장에서 포르투갈 전을 볼 수 있도록 일찍 퇴근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TV로 포르투갈전을 보면서 완전히 축구에 빠져들었다. 축구는 그냥 경기가 아니라, 일상의 따분함을 한 순간 사라지게 만들었다. “축구공 하나로 세계가 하나가 된다.”는 말을 실감했다. 이전 경기를 다시 찾아보았고, 실시간으로 보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스페인전은 길거리 응원까지 나갔다. 그때는 4강전을 보러 일본에 가겠다는 사람들의 심정이 이해되기도 했다. 축구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말처럼 한동안 경기를 보면서 해석하기 위한 노력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현욱의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에서 익힌 유럽 축구의 구도가 여전히 내가 아는 축구 상식의 전부다.

 

『피파 마피아』는 이전과 전혀 다른 의미에서 월드컵과 축구를 바라볼 수 있는 객관적 사실을 담고 있다. 스포츠 정치 분야의 탐사 전문 기자인 토마스 키스트너가 20년 동안 파고들었던 피파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겨 있다. 피파의 역사라기 보다는 범죄의 역사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축구는 오락이 아니라 거대 산업으로, 제프 블라터를 중심으로 하는 피파 수뇌부는 개최국이 마지막 4강에 들어갈 수 있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스포츠의 자율성은 국가의 사법권이 미치지 못하는 방패막이가 되어 준다(48쪽). 토마스 키스트너가 파헤치는 국제스포츠계의 행태는 완전히 범죄 그 자체다. 피파는 “모든 것을 지배하지만 어떤 것도 책임지지 않는 단 한명의 보스가 지배하는” 마피아 조직이다. 저자는 이 험난한 탐사 취재를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축구가 스포츠의 본질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간절한 바람 때문이다. 수조 원이 공익이라는 미명아래 제프 블라터 패밀리의 주머니에 들어가고 있다.

   

수많은 경기 중에서 왜 유독 축구가 전 세계를 하나로 응집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느낄때가 많다. 축구를 보도하는 기자조차도 객관적인 스탠스를 유지하지 못하고, 축구 팬으로서 경기를 바라보고, 촬영 기술은 엄청나게 발전하여 그들이 흘리는 땀방울 하나하나까지도 슬로우 모션으로 담아내면서 시청자의 심장을 딱딱하게 만들었다가 뜨겁게 달구기를 반복한다. 그 과정에 축구가 생산하는 경제적 이익이 유통되는 방식에 문제의식을 느끼는 사람은 드물다. 사실 월드컵 대진표를 보다 보면 축구는 실력이 아니라 ‘대진 운’이라는 생각이 들때도 많다. 개최국은 대진에서도 항상 유리한 입장을 취해 왔고, 심판 역시 홈그라운드에 노골적으로 유리한 판단을 할 때가 많이 있었다.

 

저자가 한국어판 서문에서 하고 있는 이야기는 2014브라질 월드컵을 보면서 나 역시 공감하는 바다. 축구가 브라질 경기(經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모르겠으나, 실제의 삶이 더 소중하다고 이야기한다.

 

“가난한 브라질 대중은 그 어마어마한 세금이 다른 곳에 쓰이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학교, 병원, 대중교통에! 축구가 끝나고 진짜 인생이 펼쳐지는 곳이면 어디나 그 돈이 필요했습니다. 진짜 인생, 정작 소중히 지켜야 할 가치, 이는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이렇게 마피아가 움직이고, 영상을 연출하는 탁월한 전문가들이 작정하고 덤빈다면 축구뿐 아니라 어떤 경기도 정치적으로 움직일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든다. 어디 FIFA만이 마피아들의 온상이겠는가. 돈과 권력을 얻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라도 가능한 일이라는 점이 두려운 것이다. 마피아를 연상하게 하는 조직범죄의 진행과정을 우리도 현재 목도하고 있다. ‘인간이 만들어낸 세계의 허약함’(433쪽)은 늘 사건이 터진 이후에야 우리 시야 안으로 들어온다. 우리가 실제 봐야할 세계는 프레임에 갇힌 사각의 경기장이 아닐지도 모른다. 공 하나에 얽혀있는 무수한 권력 비리를 눈감는다면 축구는 우리의 도덕과 가치를 잠재우는 아편이 될 것이다.

 

내가 자주 가는 미술관 앞에는 푸른 잔디가 깔린 축구장이 있다. 토요일 오후 유소년 축구단의 연습이 한창이다. 축구 꿈나무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축구 연습 하는 것을 보니, 피파 마피아의 얼굴들이 오버랩되어 마음이 복잡해진다. 부디 이 아이들이 축구 선수가 되든, 축구 팬으로 남든 - 스포츠 본질인 경기 과정을 즐길 수 있을 만큼 - 조금이라도 정직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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