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신의 오후]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독신의 오후 - 남자, 나이듦에 대하여
우에노 지즈코 지음, 오경순 옮김 / 현실문화 / 201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생활 밀착형 사회학 보고서 『독신의 오후』, 부제 : 남자, 나이듦에 대하여

우에노 지즈코 지음, 오경순 옮김,

 

우리는 누구나 독신으로 세상에 왔고, 단독자로 세상을 떠나야 한다. 한때 누구나 독신이었고, 원하든 부정하든 언젠가는 누구나 독신이 될 수 있는 운명에 처해있다. 과정이 무엇으로 채워지든 본질적인 인간 존재 조건의 평등함을 생각하면 인생을 메타적으로 바라볼 힘이 생긴다. 외국 영화에서나 흔히 볼 수 있었던 싱글 라이프가 흔한 삶이 되었다. 90년대 초반 방송국 PD들이 대가족으로 드라마를 만들면 배우 출연료가 너무 많이 나가서, 주인공 혼자 사는 드라마를 만든다고 농담처럼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이미 1인 가구의 증가는 하나의 사회 현상의 전조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독신 이야기는 ‘관계’에 관한 이야기가 된다. 어떻게 관계 맺고 정리하고 새로운 관계로 나아갈 것인지가 독신의 오후를 결정한다. 신간『독신의 오후』를 읽으면서 무수한 영화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나 또한 살아온 세월만큼, 많은 탄생과 죽음을 목도한다. 생각하지 못한 이유로 많은 지인들이 세상을 등졌고, 그들은 내게 인생교과서로 남아 있다. 종교, 성격, (정치적, 경제적) 조건에 따라서 불가피한 독신을 견뎌내는 힘과 방법에서 현격한 개인차가 존재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초기 작인 영화 ‘환상의 빛’(1995)은 남편이 자살한 원인을 모르는 채 남은 생을 살아가야 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감독은 소소한 일상에 포커스를 맞추고, 사사로운 개인적 경험이 차원 높은 세계와 마주할 수 있도록 여백을 만들어 간다. 혼자되었으나 또 다른 삶과 관계가 기다리고 있다. 단 과거 남편에 대한 기억과 상처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 한켠에 평생 머무르면서 환상의 빛이 된다.

 

허안화의 ‘심플 라이프’(2012)는 4대에 걸쳐 남의 집 일을 해주다가 요양원으로 옮겨가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심플하게 다루고 있다. 정결한 한 여성이 요양원이라는 낯선 공간과 그곳 사람들에게 적응해가는 과정 또한 하나의 삶으로 자리한다. 가족은 ‘피’가 아니라, ‘추억의 공유’라는 것을 재확인할 수 있는 영화다.

 

        

                            

          

『독신의 오후』는 그저 그런 자기계발서나 저자의 사적 경험을 주관적으로 늘어놓은 책이 아니다. 적어도 ‘생활밀착형 사회학 보고서’라는 것이 내 개인적인 평가다. 양적 자료와 데이터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지 않지만, 독신 남성이 증가하는 원인, 세태, 향후 진행 방향과 대안 제시에 대한 저자의 혜안에서 평생 사회학자로 살아온 내공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초고령화가 진행 중인 동아시아”라는 공통점을 가졌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결코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 경제의 호황이 끝났다는 점에서, 국가에 기대할 것이 별로 없는 신자유주의에서 개인의 ‘노후’는 각자의 책임으로 남는다.

 

 “남자의 ‘불편’과 여자의 ‘불안’의 결합” - 결혼의 변화

 

나의 전공은 ‘사회학’이고, 현재 독신이다. 다행히 경제적인 ‘불안’을 해결하는 수준의 업(業)이 있고, 결혼을 통해서 인간 존재의 근원적 외로움이 해결될 수 있다고 기대하지도 않는다. 미래학을 공부하면 할수록 적어도 향후 수십년의 삶이 ‘인간적’일 것이라는 희망도 없다. 삶을 최소화하고, 세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수준에서 민폐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산다. 페미니스트 작가 산드라 시스네로스의 『망고 스트리트』(2008.7)를 읽으면서 내가 왜 독신을 선택했는지 공감했다. 망고 스트리트의 나의 집은 한 여성이 오직 자신만을 위한 (심적, 물리적 공간으로서) ‘나의 집’을 꿈꾸게 한 유년의 공간이다. 우리에게 나만을 위한 실내화와 내가 어질러 놓은 상태 그대로 나를 기다리는 집이 필요하다. 엄마의 자궁과 같은 집이 필요했던 작가의 어린 시절이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부부가 함께 살아가는데 필요한 노력과 수양을 감히 짐작해보지만, 혼자 산다는 것 역시 끝없는 자기 수양과 성장을 요구한다. 독신은 “자기만의 시간”을 적절하게 활용하지 않으면 타인들의 일을 대신해주고 고민을 처리해주는 쓰레기통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직장, 가족의 시간이 아닌 나의 시간으로 부자라는 저자의 이야기에 동의한다. 싱글은 적절하게 시간 활용을 분산하는 것이 중요하다.

 

 

‘독신’에 대한 편견은 내 주변 곳곳에서 나타난다. 같은 학문을 공부해도, 살아온 이력은 학문의 영역에 그대로 반영된다.

 

사례 1.회식

 

모두 무난한 결혼으로 중산층에 진입한 대학원생들(모두 여성이었음), 나만 독신.

 

그녀들 중 한 분이 말씀하셨다.

   그녀 : “나는 노처녀들이 영양제 챙겨 먹는 걸 보면,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심이 느껴진다. 아이를 낳아보지 않은 노처녀는

             좋은 선생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해.”

그 이야기를 그냥 흘려들을 수 없는 독신녀 (나)

    나 : “좋은 교사가 될 수 있는 독립변인이 어디 ‘결혼’ 하나인가요? 신념, 성격, 교육제도, 교육과정, 사회적 조건 등등

           많은 것들이 영향을 미치죠. 저는 가족주의가 이타심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시 그분들의 공격

  그녀 : “저거 봐. 별거 아닌 걸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걸 보면... 노처녀는 어쩔 수 없어.”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예민하고 까다로운 독신녀들에게 정 떨어졌던 각자의 경험을 일반화했을 뿐, 그녀들에게 악의는 없었다.

 

사례2. 신입생 환영회

 

겸양지덕을 겸비한 듯한 외양을 갖춘 중년의 대학원 신입생. 서로 알아가자는 의미의 Q&A 시간, 내 차례가 되었다.

    나 : “결혼 안하셨죠?”

    신입 : “어머. 제가 그렇게 능력 없어 보이세요? 저 꽤 괜찮은 남자랑 살아요.”

    나 : “네에. 저는 능력 있어 보이셔서 결혼 안하셨냐고 물었어요. 제가 결혼 안했거든요.”

 

이렇게 적고 보니 나도 만만찮게 따지기 좋아하고, 지기주장 굽히지 않는 ‘독신’임에 틀림없다.

 

사례3. 나의 지인(知人)들

 

    지인 : “뭐하나 부족한 게 없는데, 왜 결혼을 못하냐? 결혼만 하면 딱 좋을텐데.”

    나 : 나의 삶은 결혼하는 순간 180도 달라져. 이건 결혼을 안했기 때문에 가능한 삶이야.

   

이 사례들을 나열한 까닭은 결혼 유무 보다 자신의 가치관에 따른 자기 배려의 윤리를 실현하는 삶을 사는 것, 조건을 해석하고 대응하는 ‘태도’가 중요함을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조건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의 선택지는 ‘어떻게 반응’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 책은 다양한 사례를 통해서 남성 독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고,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최선의 매뉴얼을 제공한다. 다소 저자의 주관이 개입되어 있으나, 저자의 진정성은 후기에 적힌 다음 이야기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여성은 결코 냉담하지도 매몰차지도 않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아내에게서는 “자, 당신 홀로 남겨두고 가지만 안심하고 떠나요.”라는 말을 들었으면 좋겠고, 이혼한 전처에게서도 “당신 낯짝 따위 두 번 다시 보고 싶지도 않아.” 같은 미움 대신에 “아이들 아버지로서 좋은 관계를 이어나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으면 싶다. ‘노처녀들’ 앞에도 매력 있는 남성들이 많이 나타나주었으면 좋겠다,“(295쪽)

 

‘독신 삶’의 질에는 철저히 남녀 차이가 존재한다. 결혼 이주여성의 증가가 그 예가 될 것이다. 여성 중에는 선택적 독신이 제법 존재하지만, 남성중에는 불가피한 독신이 훨씬 많다. 불가피한 독신이라 할지라도 행복을 유보할 수는 없다.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한 노력과 태도가 필요할 것이다. 『독신의 오후』는 그러한 고민을 풀어가기에 적절한 교재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