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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평전 - 조선 후기 민족 최고의 실천적 학자
박석무 지음 / 민음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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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생각의 결을 바르게 다듬는 시간 『다산 정약용 평전』,

박석무, 민음사, 2014. 4.

 

“슬픔은 짧고 기쁨은 길었다.”

 

다산 정약용의 평전을 읽는 시간은 나의 마음결을 고르게 하고, 생각의 결을 바르게 다듬는 시간이다. 다산은 75세의 인생을 회고하며 슬픔은 짧고 기쁨은 길었다.”라고 자신의 인생을 결론지었다. 평생을 다산 연구로 보내신 저자 박석무 선생님의 말씀처럼 “세월이 가면 갈수록 더 큰 위인, 현자(賢者)로 대접받는 다산의 인생으로 보면 그의 판단이 옳았다(620쪽)고 생각할 수 있다. 한 평생 세파에 시달렸음에도, 부조리하고 모순으로 가득 찬 세상을 품어낸 대가의 회고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을 모르겠다. 인간은 누구나 모순 덩어리다. 세상은 항상 부조리하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주어진 이번 생에서 우리가 선한 삶을 살아야 할 꽤 많은 명분이 있을 것이다. 다산의 삶과 철학을 읽는 것은 시공을 초월해서 어떻게 윤리적 삶을 완성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자문자답 할 수 있는 문을 열어준다. 생각을 정리하고, 불안한 삶을 지정시키기 위해서 상담 관련 책을 읽는 것보다 다산을 읽는 일이 내겐 훨씬 더 유용하다.

 

 

‘실천적’이라는 수식어가 정약용(1762~1836)에게 따라 붙는 것은 당연하다. 그의 성정(性情)과 능력을 제대로 인지한 정조(1752~1836)가 없었더라면 다산이 자평했듯 “게으른 천성대로 놀면서(33쪽) 한평생을 보냈을지도 모르겠다. 역사에 가정법이 있을 수 없지만, 정조가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정약용의 삶과 조선후기에 미칠 영향은 어떠했을까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정조와 함께했던 18년의 시간 동안 다산은 문리(文理)뿐 아니라 물리(物理)를 다루는 기술 관료로서 큰 역할을 해냈다. 그 시기 동안 다산은 한강에 배다리를 설치하고, 수원 화성을 축조하였다. 최고 권력자의 총애를 받았으나, 아첨하는 간신이 되지 않았다. 다산 없는 정조, 정조 없는 다산(287쪽)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그 임금에 그 신하였고, 신분과 계급을 초월한 벗이기도 했다. 정조는 다산에 대하여 “백가(百家)의 말을 두루 인증하여 그 출처가 무궁하니, 진실로 평소의 온축이 깊고 넓지 않았다면 어찌 이와 같이 대답할 수 있겠는가(17쪽)”라고 평하였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 박석무 선생님께서 다산에 대하여 정확하게 정리하고 분석하는 일이 누군가 해야 하는 어려운 일이었다고 하였으나, 독자로서 나는 박석무 선생님 이외에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다산을 읽고 해석하고 성찰하면서 서슬퍼런 80년대를 군부통치를 견뎌낼 수 있었으리라. 저자는 다산의 일생을 수학기, 사환기(벼슬하던 시기), 유배기, 정리기(고향 생활)로 나누어 연대기적으로 서술한다. 제 3의 객관적 시선에서 나오는 중립이 허구라는 입장에 서서 보면 저자의 다산 편향이 책이 담고 있는 본질을 훼손할 만큼 치명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산의 그 자체도 큰 의미가 있으나, 타락하고 부패한 현실에 대한 고민의 윤리학과 방법론으로 다산을 새롭게 읽는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와 다산과의 첫 만남을 주선한 것은 유홍준 선생님이셨다.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가 불을 지핀 남도 기행은 다산과의 포문이 열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유배지 해남, 강진을 떠도는 거리에서 길벗을 만나서, 18세기 학자를 현재로 불러와 자의적인 해석과 주석을 곁들이며 호기를 부리던 시절이 그립다. 그가 주장하는 토지 제도가 파격적이었기 때문에 나는 정약용 선생을 급진적 혁명가라고 여겼다. 다산을 이해하는 단초를 제공해주신 유홍준 선생님은 “다산에게 유배란 강요된 안식년”이라고 평하는 혹자들에게 『명작 순례』에서 다음과 같이 쐐기를 박았다. “그의 18년 귀양살이에는 비록 ‘강요된’이라는 단서를 붙인다 해도 감히 ‘안식년’이라는 단어를 쓸 수 없다.” 정약용 선생에게 ‘안식년’이란 표현은 어마어마한 상징적 폭력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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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취향이겠으나, 나는 다산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연암 박지원이 함께 떠오른다. 다산이 이성적이고 윤리적 규범의 실천가라면, 연암은 깨뜨릴 수 없는 천진과 해학으로 시대를 통찰한 18세기 학자다. 오래 전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읽으며 통곡했던 기억이 선연하다. 고전 평론가 고미숙 선생님이 재해석한『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은 웃음과 우정으로 노마드 하는 연암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시대적 조건이 확연하게 다른 이백 여 년을 건너 뛰어 연암의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살아가는 방식에 감동하며 저절로 눈물이 흘렀다. 유머와 인간에 대한 예의를 고수하며 진정한 호모 쿵푸스로 살아간 그가 온몸으로 절절하게 느껴졌다. 연암이 누나가 죽고 난 다음에 누나를 회고하는 글을 읽으면서 그의 성정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가세가 기울어 집안 식솔을 거느리고 화전민이 되어 떠나는 매형과 조카들을 보내면서 누나 시집가기 전날 밤을 떠올리는 연암에게서는 학자 이전에 사랑스런 어린 남동생의 모습 이외에 무엇도 느껴지지 않았다. 정약용 선생이 자신을 키워준 형수가 죽고 쓴 시에서도 이와 같은 성정이 전해진다.

 

시어머니 섬기기 쉽지 않나니 / 계모인 시어머니는 더욱 어렵네

시아버지 섬기기 쉽지 않나니 / 아내 없는 시아버지는 더욱 어렵네

시동생 보살피기 쉽지 않나니 / 어머니 없는 시동생은 더욱 어렵네

이런 모든 일 유감없이 잘했으니 / 이게 바로 형수의 너그러움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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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배교(背敎)가 다산 비판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지만, 언행일치를 한평생 실천한 다산이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서 배교했을 거라고 판단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한때 천주교를 사모한 것도 사실이고, 순교한 정약종과 달리 - 정약전과 함께 천주교를 신앙이 아닌 - 서양의 학문 영역으로 연구하게 된 것 또한 사실일 것이다. 퇴계의 학설이 옳다고 주장하는 남인이었던 정약용이 율곡의 학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단호히 언급한 것을 볼 때, 거짓된 것을 사실인 것으로 우회하여 피할 성품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 해답은 다산이 남긴 오백여 권의 저서와 다산의 삶의 궤적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천주교야 말로 대공지정하고 지극히 진실한 도리(316쪽)”라고 주장하며 순교한 형 정약종, 학문적으로 뜻을 같이했으나, 귀양살이 낸 그리워만 하다 만나지 못하고 사별한 형 정약전에 대한 정약용의 형제지정을 가늠할 길이 없다. 다산은 “골육이 서로 싸워 자기 몸과 이름을 보존한 것과, 순순하게 받아들여 엎어지고 뒤집혀서라도 천륜에 부끄럼 없게 했음이 어찌 같을 것인가. 뒷세상에 그 마음을 알아줄 사람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319쪽)”고 회고했다. 형과 뜻을 같이 할 수 없었던 회한과 슬픔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지금 뒷세상에서 그의 선택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지만, 다산의 선택이 목숨을 연명하기 위한 불가항력의 자의적 선택이라고 쉽게 판단할 수 없는 것은 그가 남긴 무수한 글을 통해서 판단해야 할 것이다.

 

위대한 인물의 등장은 시대에 빚지는 부분이 상당히 크다. 시대의 질적 변화의 지점을 선점한 자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한다. 반면 예기치 않은 돌출로 혜성처럼 등장하는 위대한 위인도 있다. 나는 다산이 후자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시대보다 너무 빨리 당도한 천재, 그 시대의 지배적인 패러다임으로 포섭될 수 없었던 사람이기에 우리는 시대를 초월하여 다산을 읽고 공부해야 한다. 세상의 부패와 부조리를 맞서 자신의 규칙으로 자기 윤리를 실천하려는 모든 사람에게 다산은 영원한 큰 스승임에 틀림없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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