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범들의 도시]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공범들의 도시 - 한국적 범죄의 탄생에서 집단 진실 은폐까지 가려진 공모자들
표창원.지승호 지음 / 김영사 / 201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승호가 묻고, 표창원이 답하다.

한국적 범죄의 탄생에서 집단 진실 은폐까지 가려진 공모자들

『공범들의 도시』 표창원·지승호 지음, 김영사, 2013. 10.

 

민주적 기본 질서가 무너진 정치 상황은 개인의 삶과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이고, 저출산 고령화는 아직 구체적인 현실의 문제로 다가오지 않는다. 각자가 일상에서 누리는 평온함은 한동안 계속될 것처럼 느껴진다. 국정원 선거 개입 의혹은 증거 인멸, 기밀 유출, 수사팀 징계로 이어지면서 진실에서 멀어지고 있다. NLL 포기 발언과 관련한 대화록은 국제 사회에서 전무후무하게 전문이 공개되었고, 종국에는 실종되기에 이르렀다. “덕 본 것이 없다.”, “의혹 살 일 없었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언급으로 이 사건들은 매듭지어질듯하다.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국회의원의 종북 발언 사태는 헌정 이래 초유의 정당해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아파트 값을 떠받치고 있는 정부 정책이 전세 값 폭등과 월세 붐으로 이어져도 사람들은 다시 아파트 값이 오를 것이라는 희망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그러한 방식으로 삶은 지속되는 모양이다. 외부적 조건에서 비켜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평온함은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지만, 개인의 삶과 구조적 조건이 무관하지 않음을 곧 알게 될 것이다.

 

한국 사회를 가로 막는 이분법적 논리

 

범죄 가해자와 피해자에 우파와 좌파가 따로 없듯이 진실을 보려는 것과 이념은 별개의 문제임에도 이분법적 논리가 민주주의를 가로 막고 있다. 진실에 접근하려는 개개인의 노력이 없다면 우리 사회는 구조적으로 보수화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형성하고 있다. 6.25 전쟁 이후 출생한 baby boomer가 인구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구조와 지역감정이 팽배한 상황은 진보가 추구하는 소중한 이념들이 제 역할을 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초·중·고등학교를 모두 서울에서 나온 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선산이 전북에 있다는 이유로, 국정원 사태의 진실을 말하는 권은희 수사과장은 전남 광주 출신이라는 이유로 사건의 본질은 희석된다. 출신 지역이 그 사람의 실체적 이미지를 형성한다. 어느 지역 출신인지의 검열 속에서 진실에 닿으려는 노력은 더 이상 의미 없는 일이 되어 버린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은 언론을 통해서 취사선택되고 프레임이 짜진다. 언론이 호불호에 따라서 실체적 이미지를 획득한다. 공중파 3사가 제 역할을 못하는 사이에 그나마 볼만한 뉴스는 종합편성 JTBC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오간다. 욕하면서 보는 막장 드라마가 프레임 시간대를 장악하고, 볼만한 드라마는 케이블 TV에서 간간히 찾아볼 수 있는 수준이다. 스마트해지고, 채널 선택 폭은 상상 이상으로 많아졌으나, 사람의 의식과 언론 민주화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아직도 지식인이 분노할 수 있고, 정치인이 국회에서 소리 내어 세상에 쓴 소리를 할 수 있다면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2013 대선 스타로 등장한 ‘표창원’ 전 경찰대학 교수는 진보와 보수의 이분법에 비켜나 진실 앞에 침묵하기를 거부하는 ‘양심’으로 온전히 우리 앞에 존재를 드러냈다. 인터뷰어 지승호가 “지난번 선거를 통해 얻은 선물”이라고 표현했을 만큼 표창원은 “보수의 품격, 사회의 품격, 경찰의 품격”을 갖춘 표창원은 좌우를 가로질러 ‘진실’에 접근하려는 지식인이며 실천가다. 극우꼴통은 있어서 품격을 갖춘 보수를 만나본 적이 없는 우리에게 진정한 보수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전작(前作)들이 그러했듯 표창원의 글은 독자로 하여금 한숨을 곁들인 공감과 지지를 불러 일으킨다. 시민의 눈과 귀가 막혔고, 발언조차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용을 쓰고 일어서야 할 때임을 확신에 찬 음성으로 이야기는 듯하다. 『공범들의 도시』는 지난 대선 이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다양한 사건을 복기하고 차가운 분노와 뜨거운 희망으로 나아가야 할 미래 지향점을 설정한다. 이 책은 “용기 있는 소수와 정직한 다수가 연합하고 협력”해야 할 때임을 절절히 느끼게 한다.

 

범죄를 유통하는 방식

 

표창원 교수는 범죄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모순들을 낱낱이 분석한다. 범죄는 우리와 무관한 하나의 사건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범죄가 도처에 널려 있음에도 우리는 범죄에서 무관할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에 갇혀 있다. 연쇄살인은 우리 사회 어두운 고리이고, 사법 시스템은 과학수사를 파괴한다. 범죄를 막아야 하는 경찰들은 거대 국가 범죄에 가담하고 있다. 범죄를 통제하는 방식으로 우리 사회를 통제하고 있다. 이러한 범죄 유통에 공모하고 있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명확한 근거를 저자는 철저히 분석한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 <살인의 추억>마지막 장면에서 영화 문법을 위배하면서까지 형사 역으로 분한 송강호가 카메라 렌즈를 응시하게 한다. 감독은 범인이 이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올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범인이 관객석에 앉아서 화면의 형사와 눈이 마주치는 장면에서 우리가 이 사건을 잊지 않았음을 인식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분명 범인은 아주 평범한 시민의 얼굴로 그 자리를 지켰을 것이다.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언급했듯이 홀로코스트와 같은 악행은 국가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서 행해졌다.

 

안철수 열풍에 대하여

 

이 책에서 표창원 교수는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 후보가 보여준 태도에 대한 유효한 언급을 한다.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심정적 불쾌감’과 안철수에 대한 불신의 기저에 어떤 사건이 자리 잡고 있는지에 대한 분석이 부족했던 내게는 참 의미심장한 질문이었다. 지승호 인터뷰어의 질문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안철수 후보에게 세 가지를 공개적으로 요구하셨잖아요. ”문재인 후보 측과의 단일화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고, 왜 중도 사퇴를 했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해야 한다”, “왜 선거 당일 축국했으며 그 계획은 언제 세워진 것이었는지를 정확히 밝혀야 한다”, “노원 병이라는 선거구 특성에 비추어, 자신이 노희찬 전 의원이 표방하는 ‘진보’ 정치인인지, 그래서 그를 대표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노 전 의원을 지지하지 않은 노원병 주민들의 보수적 기대와 열망에 부응하겠다는 것인지를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355쪽)

 

이에 대한 안철수는 “문제인 후보가 더 적임자”라고 생각했고, 선거 당일 출국은 “잘못이었다, 인정한다, 사과한다,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리라고 생각”했다고 했으며, (노회찬의 뜻을 이어받아서) “노원 주민의 염원을 모두 받아서 새로운 정치를 펴는 시금석”을 삼겠다고 답했다. 안철수의 답에 100% 수긍을 하는 것은 아니나, 사태를 분석하고 신뢰 구축을 위해서 현문(賢問)을 던질 수 있는 표창원이 놀랍기만 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 역사 바로 세우기”다. 인구학적으로, 지리적으로 한국사회는 보수화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있다. 우리의 침묵과 무관심이 우리를 넘어뜨리는 돌부리가 되지 않도록 하는 일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나에게 유리한 사람이 아닌 품격을 갖춘 사람, 이미지가 아니라 조금 더 실체에 근접한 판단으로 대표를 선출하는 일에서부터 미래의 많은 것들이 결정될 것이다. 마르틴 니묄러의 시(詩)가 그것을 잘 대변하고 있다.

 

그들이 처음 왔을 때

 

그들이 처음 공산주의자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처음 유태인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처음 노동조합원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처음 천주교도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기독교도였으니까.

 

그들이 처음 나에게 왔을 때,

나를 위하여 발언해줄 사람은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영화 <관상>에서 송강호는 “파도를 치게 하는 것은 바람인데, 나는 파도만 보았다.”는 독백과 같은 주제를 내뱉는다. 영화 관람 이후 한동안 그 대사를 마음 한편에 두고 지내며, 과연 내가 보는 이 표상의 기저에는 무엇이 있을지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이 시작되었다. 한국사회가 드러내는 현실을 움직이는 바람은 무엇이고, 어떤 관계에서 발생했는지 인과관계를 분명히 하여 그 이치를 드러내는 것이 현실문제의 해법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범죄는 한국 사회를 가장 잘 보여주는 ‘파도’일 것이다. 파도와 같은 범죄의 높낮이 속에서 바람을 읽어내는 사람, 프로파일러. “보수주의자이며 범죄 심리 전문가인 표창원과 진보적이고 대중적인 성향의 지식인 지승호의 대화”를 통해서 대중이 어떻게 범죄와 공모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게 될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