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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 일중독 미국 변호사의 유럽 복지사회 체험기
토머스 게이건 지음, 한상연 옮김 / 부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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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태어난게 잘못이야 - 일중독 미국변호사의 유럽복지사회 체험기』

토머스 게이건 저 |한상연 역 |부키 |2011.10.19

 

한국 근현대 역사와 가장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미국은 사회주의 붕괴 이후, 아메리카 드림을 ‘팍스 아메리카나’로 실현했다. 독립 혁명 이후, 미국은 민주주의 리더였고, 2차 세계 대전 이후 세계 평화의 전령사 역할을 자처했다. 또한 세계 곳곳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실현하려는 의지를 가진 많은 이에게 ‘샐러드 보울(salad bowl)로 은유되고 있다. 섞이되 각자의 맛과 향을 그대로 지켜나갈 수 있는 ‘드림’을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의 땅이 미국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20세기였다.

 

자본주의의 미덕에 기초한 자유의 땅이 붕괴하는 심상치 않은 조짐은 지난 2001년 ‘911 테러’에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진주만 폭격 이후 단 한 번도 본토를 침략 당한 적이 없던 미국에 대한 쌍둥이 빌딩(twin towers) 테러는 미국인들에게 공포라는 감정을 심어주었을 뿐 아니라, 미국이라는 나라를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에 대한 의문을 갖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이는 여전히 미국이 해결해야 할 난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여전히 희망의 땅이다. 우리는 유럽 복지의 출발이 미국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대륙에서 진행되고 있는 복지의 싹은 (뉴딜정책과 같은) 미국 정책에서 출발했다는 것과, 미국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사회를 비판하고 내부적 모순을 드러내는 훌륭한 인적 자원을 가지고 있다. 세계화와 미국 패권의 몰락에 대하여 이성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임마누엘 월러스틴, 미국 보수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며 미국 정책을 끊임없이 비판하는 노암 촘스키와 하워드 진, 미국 교육의 지식 내용을 비판하는 마이클 애플 등 열거하기에도 벅찬 훌륭한 학자들이 내부에서 미국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공개적으로 철저하게 비판하고 있다. 교육 정책가 조너선 코졸은『야만적 불평등』에서 미국의 공교육 실패를 커밍아웃하고, 자신이 참여했던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에 대한 반성을 피력하기도 했다.

 

이런 관점과 일맥상통하는 입장에서 시카고의 노동 전문 변호사인 토머스 게이건은 세계의 단일적 단극체제 중심에 서 있는 미국의 실체를 확실하게 분석한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역행하는 발언으로 가득한『미국에서 태어난게 잘못이야』는 억압된 우리의 상상력이 현실로 작동하는 유럽 - 특히 독일 - 의 복지 현실과 국가 마인드를 제대로 보여준다. 자칫 딱딱한 주제가 될 수도 있음에도 그는 감독 마이클 무어(M. Moore)식의 유머로 쓴 웃음을 웃게 하는 탁월한 글쓰기 능력을 가지고 있다. 사회과학 서적으로서의 치밀함은 떨어지지만, 두 달 동안 몸소 경험한 독일 복지와 미국 복지를 비교· 분석하여 미국 정책의 허점을 잘 드러내고 있다.

 

과연 단일화된 단극체제에서 유럽복지를 지킬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하여 게이건은 분명하게 독일이 사회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한 "YES"라고 대답한다. 하버드 대학의 사무엘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 영향 탓인지 미국 정부는 자국의 라이벌을 중국으로 상정하고 있지만, 게이건은 미국의 맞수는 독일이라는 지론을 펼친다. 여행에서 만난 독일인의 이야기를 토대로 세계화가 아무리 거세어도 독일식 삶의 방식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는 확신한다.

 

아직도 이 책에서 기술하고 있는 미국과 독일의 상반된 상황을 믿을 수 없다면, 실제 그 나라를 경험해보는 수밖에 없다. 아쉬운 대로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을 떠올려보기 바란다. 미국에 가 있는 한국인 유학생과 이민자들은 잠시 한국을 들릴 일이 있으면 치과 진료와 정기검진을 꼭 받고 간다는 사실만 기억해도 충분할 것이다.

 

2011년 한국은 교육복지, 무상급식, 한미 FTA가 전 국가적인 화두였다. 이 모든 이슈는 결국 하나의 그물망으로 엮인다. 또한 세계화의 대세 속에서 교육, 복지, 경제, 이념은 자국의 가치만으로 실현되는 것도 아니다. 미국의 사소한 바람 한 점에도 한국의 정치 경제는 버터플라이 이펙트로 휘청거린다. 한국과 정치·경제적으로 가장 밀접한 미국의 현재를 냉정하게 분석할 때만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와 정책이 미국과 유럽에서 각자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고,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에 대하여 구체적인 사례를 보게 될 것이다. 미국에 대한 제대로 된 분석 없이 구시대의 유물이 된 ‘근대화론’에 집착하는 한국 보수 세력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사족 1 : 미국에서 “변호사가 두 달이나 쉰다는 것은 일반인이 2년을 통째로 쉬는 것과 맞먹는다.”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두 달의 유럽 여행은 쉽지 않은 결정일 수도 있다. 몇 년 전 호주에서 만났던 미국인 여자가 생각난다. 그녀는 직장을 그만두고 6개월째 배낭여행을 하고 있었다. 골드코스트에서 배를 타고 들어갔던 (사막으로 이루어진) 프레이저 섬에서 수채화를 그리며 여유자적 하던 그녀와 같은 미국인의 삶이 이제는 불가능한 것일까?

 

사족 2 : 세계 최고의 장수 국가 ‘불가리스’의 노인 수명이 급격히 낮아지고 있다. 신자유주의 정책이 동유럽을 휩쓸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가, 아니면 그들이 즐겨먹은 요구르트, 토마토, 와인 가격이 급격하게 상승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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