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판 <내 생애의 아이들>"
 
상상의 초가교실
차오원쉬엔 지음, 전수정 옮김 / 새움 펴냄
 
'제발 읽어주세요.'라고 외치고 싶은 책이 가끔 있다. 차오원쉬엔의 성장소설 연작(<빨간 기와>, <까만 기와>, <상상의 초가교실>)이 바로 그 경우다. 몇십 년 전 중국, 한 계절을 겪으며 훌쩍 자라나는 아이들. 리뷰에도 썼지만 차오원쉬엔의 작품만큼 가슴을 울리는 성장소설을 보지 못했다. 이런 표현은 좀 웃긴데, 편집자추천을 '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거의 불가항력이었다.) 가벼움과 무거움, 기쁨과 고통, 희망과 상실감. 그야말로 삶 자체를 마주할 수 있는 한 권의 소설.
 
우리 나라에 번역된 3권 모두 결국엔 비슷한 캐릭터, 같은 패턴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읽을 때마다 새롭다. 이미 다 자란 나지만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삶을 배운다. 책의 표지만 보아도 눈밑이 무거워진다는 누군가의 말에 백번 동감. 최근에 읽은 <상상의 초가교실>은 너무 재미있지만 외려 다시 집어들기가 쉽지 않다. 사무실에서 이 책을 읽다가 몰래 울기도 했다. 눈물이 차오르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차오원쉬엔의 이 멋진 성장소설들이 좀더 많이, 그 가치만큼 사랑받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아, 그러나 사실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는 편이다. 얼마나 안타깝고 또 안타까운지 모른다.
 
문학담당 박하영
(zooey@aladin.co.kr)
 
 
"청춘, 그 다음은 사랑이다."
 
연애소설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펴냄
 
<GO>와 <레벌루션 NO.3>로 뭇 남성들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던 가네시로 카즈기, 그가 이번에는 사랑 이야기를 들고 돌아왔다. 가슴이 뛰어 아무말도 못할 것 같은 첫사랑의 풋풋함부터 진실함으로 읽는 이의 코끝을 시큼하게 적시는 이야기까지. 열심히 뛰어다니는 글만 잘 쓰는 줄 알았는데, 사랑 이야기도 멋지다. 가네시로 카즈기, 앞으로도 기대할께.
 
경제.컴퓨터담당 윤성화
(rain@aladin.co.kr)
 
 
"나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났는가?"
 
탁석산의 한국의 민족주의를 말한다
탁석산 지음 / 웅진닷컴 펴냄
 
얼마 전 다른 나라 사람과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그 나라는 '단일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물어보게 되었다. (왜 물어보았을까요 -_-;) 상대방은 '민족'이 무엇인지 되물었고, 나는 막막한 심정이 되었다. 민족이란 무엇인가? 민족주의란 무엇인가? 기승을 부리는 민족주의에 넌더리를 내면서도 이미 무의식에까지 파고든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탁석산은 이런 의문들에 단서를 제공한다.
 
인문.예술담당 이예린
(yerin@aladin.co.kr)
 
 
"그렇다. 그들은 도시를 만들었다."
 
도시
데이비드 맥컬레이 지음, 이민아 옮김 / 한길사 펴냄
 
데이비드 맥컬레이의 건축 시리즈는 원서로도 사보고 싶을만큼 좋아하는 시리즈다. 치밀한 고증을 거친 꼼꼼한 그림과 글, 역시 30년간 꾸준히 사랑받은 이유를 알 수 있다. 현재 번역된 4권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것은 로마의 도시 설계와 건설을 다룬 <도시>다. 다른 이유는 없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좋아하다보니 이 책이 제일 마음에 든 것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로 유명해진 로마의 도로. 하지만 그 도로를 기능하게 했던 것은 도시들이다. 로마의 인프라스트럭처 문제를 다룬 <로마인 이야기 10>과 함께 일독을 권한다.
 
어린이담당 류화선
(yukineco@aladin.co.kr)
 
 
"절망과 희망의 경계"
 
Best ~軌跡~ : The Single Collection
자드 (Zard) / Being Music
 
우울하고 끔찍한 마음이 하루에서 서너 번씩 오가는 요즘이다. '내 의견'을 말하기가 이렇게 힘들 때가 없고, '내 주장'을 펼치기가 이렇게 두려울 때가 없다. 무섭게 몰려가는 사람들의 생각이 과연 옳은지 그른지 스스로 판단할 기준마저, 기운마저 상실해 버렸다.
 
나도 걱정되고 되도록이면 좋은 쪽으로 나갔으면 한다. 우리나라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러리라 믿고도 싶다. 하지만 믿음이란 얇고 서늘한 유리판 같은 것. 분노의 최종 종착역이 어디가 될 지, 아니 지금 곳곳에서 나오는 분노가 과연 '분노'가 맞기는 한지, 옳은 것을 찾고 싶은 나의 생각이 맞기는 한지, 이제 어느 것에도 나는 자신있게 말을 할 수가 없다.
 
이럴 때,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음악을 듣는다. 이 음반은 잠시나마 지금을 잊을 수 있고, 조금이나마 나를 달랠 수 있고, 그렇게 불완전하나마 다른 세상을 만날 수 있는 앨범이다. 정말 요즘처럼 세상에 드리워진 끈을 놓고, 음악에 의지할 때가 없다. 내가 두렵고, 세상이 두렵고, 사람이 두렵다.
 
음반.DVD담당 서현
(mirinae@aladin.co.kr)
 
 
"좋거나 혹은 나쁘거나 겠지만"
 
빈 서판
스티븐 핀커 지음, 김한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펴냄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현대과학에 있어서도 가장 미지의 영역은 인간의 마음과 행동일 것이다. '본성 vs 양육'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이 책에 대해 극단적인 평가가 오가는 것은 전혀 놀랍지 않다. 어쨌거나 아직은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더 많은 분야인 것이다. 이 책은 본성 쪽에 무게를 실은 주장의 경전이라 할 만 하다. 전작에 이어 이번에도 핀커의 책을 옮긴 번역가의 노고가 책에 고스란히 묻어있어 더욱 좋다.
 
편집장 김명남
(starla@aladin.co.kr)
 
 
"친구가 되자, 응, 이라는 심플함을 몰랐던 나는"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
와타야 리사 지음, 정유리 옮김 / 황매 펴냄
 
'같은 풍경을 보고 있으면서도 분명, 나와 그는 전혀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다. 이토록 아름답게, 하늘이, 공기가 파랗게 물들어 가는 곳에 함께 있으면서도, 서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148p
 
누가 보더라도 명백하게 다가오려 했던 친구가 있었고, 누가 보더라도 민망할 정도로 거부하던 몇 년 전의 내가 있었다. 운동장 바닥에 운동화로 그림을 그리고 있어도, 집에 가는 어두컴컴한 교문 하교길에서 신을 갈아신을 때에도, 연습장에 낙서를 끄적이고 있을 때에도, 칠판 앞에 불려나가 수학문제를 풀 때에도, 언제 어디서나 나를 바라보는 눈이 있었다.
 
친구가 되자, 라는 간단하고도 쿨한, 여고생답지 않은 그 아이의 말에 나도 모르게 좋아, 라고 대답했다면 이야기는 간단했겠지만 말이다. 음식냄새처럼 일상에 스며든 그녀가 친구라는 단어보다 소중해졌을 무렵, 우리 사이엔 높고도 단단한 벽이 세워져 있었다. 내가 쌓아올린 그 벽을 다시 부수기엔 그 아이는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았다.
 
친구가 되자, 내가 다시 말했을 때 그녀는 싫어, 라고 말했다. 전날밤 무선전화기로 나와 통화하며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라던 그녀가 아니었다. 넌 그냥 친구가 필요하지, 내가 필요한건 아니잖아, 그리고 그녀도 나도 대학에 왔다.
 
피크닉용 바스켓에 아직도 그 아이에게서 받은 이백통이 넘는 편지가 차곡차곡 담겨있다. 시간이 흐르고 다시 편지들을 읽어보니, 우린 분명히 같은 곳을 보며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니나가와와 하츠도 그랬다. 하츠도 그 아이처럼 가슴이 아프고, 어쩌면 내 등뼈가 부러질 정도로 패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디선지 재주도 좋게 벽돌을 주워와, 도저히 부술 수 없어 보이는 벽을 자꾸만 세우는 내가 미웠는지도 모른다.
 
이 소설은 어둡지 않다. 히로스에 료코를 닮은 20세의 일본 여자아이가 쓴, 60% 정도 경쾌한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으며 그 때의 내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리고 안심했다. 니나가와는 예상보다 단단하지 않고, 하츠도 생각 외로 약하지 않다. 주제넘지만, 그들은 괜찮을 것이라고, 그렇게 결정해버리기로 했다.
 
외국어.실용담당 김세진
(sarah2002@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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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3-26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렇게 해두니 정말 보기도 편하고 좋은데요~ 호감가는 책들이 많네요. ^^

starla 2004-03-26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맘대로 좋은책이 저희 게으름 때문에 몇달 쉬었습니다. ㅠ.ㅠ 진즉 이런 형태로 하려고 했었거든요. ^^ 간혹 메일 보내서 물어오신 분들도 계신데, 죄송하단 말씀 드립니다~ 여러분 모두 즐거운 주말 되십시오!

_ 2004-03-26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보기 좋습니다. 꼭 보지는 않더라도 편집팀분들의 내맘대로 좋은 책이 참으로 흥미롭던데 부활(?)하다니 기쁘기 그지 없습니다. ^^

▶◀소굼 2004-03-27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젠; 달마다 이런 식으로 볼 수 있는거죠?:) 활성화 될 수 있길~

paviana 2004-03-28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달이 바뀌면 편집팀분들의 내맘대로 좋은책에 어떤 책이 올라왔는지 궁금했었습니다..그중에서 사서 읽은 책들도 있고 찜만 해둔 책도 있고..항상 재미있게 읽었는데, 요 몇달 없어서 참 섭섭했습니다..이제 계속 하실거죠?

biseol 2004-03-30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신난다 .저두 그냥 책 소개보다
편집팀 분들의 일상사가 배인 글들이 재밌어서
매달 초가 되면 홈페이지 오른쪽부터 확인했습니다.

만약 여력이 되신다면 '이주의 테마'도 같이 부활했으면 좋겠어요.

smila 2004-07-28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맘대로 좋은 책에서 좋은 책을 많이 소개받았었죠. 중간에 왜 사라졌나 몰라요. 다시 부활하니 기쁘네요. 근데 이전 글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