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 2034 - 인류의 마지막 생존자들 제우미디어 게임 원작 시리즈
드리트리 글루코프스키 지음, 김윤희 옮김 / 제우미디어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상관없어요. 인간으로 남는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p.147

 

인간으로 남는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 2034년 모스크바. 지상은 핵전쟁으로 폐허가 되어버렸고, 당시 지하철을 타고 있던 승객들은 극적으로 살아남아 그들만이 메트로에서 살아가고 있다. 지하철역은 하나의 도시이자 국가가 되었다. 그 중에서도 자원이 풍부한 곳은 부유하게, 그렇지 못한 곳은 어려움에 허덕이며 살아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지하철 역과 역 사이를 연결하는 터널은 끝없는 어둠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돌연변이 괴물들로 우글거린다. 사람들은 역을 지나가는데에도 완전 무장을 하고 조심스레 움직여야만 한다.

이런 우울한 세계를 배경으로 그려낸 소설은 이를 원작으로 탄탄한 스토리와 뛰어난 사양을 자랑하는 게임으로 만들어졌다.

 

<메트로 2033>의 베데엔하에 이어 <메트로 2034>의 무대는 세바스토폴 역으로 옮겨졌다. 세바스토폴 역은 마치 고대 스파르타와 같은 도시국가가 되어 이곳의 주민들은 주변의 위협으로부터의 생존과 방어를 위해 사투를 벌이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세바스토폴역에서 정찰을 나간 정찰병들이 돌아오지 않아 그들을 기다리는 시간은 길어져만 간다. 그리하여 그곳의 '대장' 헌터와 늙은 노인이자 아름다웠던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호메로스'라는 별명을 가진 니콜라이는 세바스토폴역과 연결되어있는 또 다른 역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아내기 위해 길을 떠난다. 그러나 근처의 툴 역에서는 알 수 없는 전염병이 창궐하고 있었고, 그리하여 세바스토폴역은 메트로와 고립되고 만 것이었다.

죽음의 기로에 서게 된 세바스토폴역의 주민들. 헌터와 호메로스, 그리고 그들이 만난 소녀 사샤는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메트로의 터널을 걷기 시작했다.

 

사샤는 그녀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얼마나 커다란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이제 그녀는 깨달았다. 이 세상은 실제로 보지 않는 한, 절대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p.241

 

헌터는 자기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서, 호메로스는 자신만의 오디세이를 완성하기 위해, 그리고 사샤는 헌터의 진짜 본모습을 찾아주기 위해서,라는 목적을 가지고 툴 역의 전염병 환자들을 구하려고 분투한다. 전염병을 치료할 방안이 없으니 환자들을 격리시켜 화염방사기로 역을 메트로와 완벽하게 단절시켜야 한다고 하는 '잔인한' 헌터를 구하기 위해 사샤는 다른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그를 설득한다. 처음에는 헌터를 주인공으로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고 이를 기록하기 위한 소설을 쓰기로 결심한 호메로스는 의외의 히로인의 등장에 그들의 모습을 지켜본다. 그렇게 시작된 호메로스의 오디세이는 과연 완성될 수 있을까?

 

희망이란 피와 같아요. 당신의 혈관을 따라 희망이 흐르는 한, 당신은 살아 있는 거예요. 전 희망을 갖고 싶어요.

-p.278

 

메트로 시리즈는 이를 원작으로 게임으로 제작되어 탄탄한 스토리에 꽤나 뛰어난 사양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다.

덕분에 아까 게임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잠깐 검색을 해 봤다. 개인적으로는 게임을 즐기는 편이 아니지만 돌연변이 괴물들의 모습이나 총알이 화폐수단이 되는 것, 그리고 <메트로 2033>의 주인공 아르티옴의 여정을 거의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것 같았다. 어쨌든 꽤나 잘 만들어졌다는 것.

그리고 이 <메트로 2034> 역시 또 다른 게임 <METRO : Last Night>의 출시 이전에 원작 소설로 출간된 것 같다.

 

전작 <메트로 2033>을 읽을 때에 비해 훨씬 얄싹해진 두께에 덜 빽빽한 글씨가 훨씬 읽기 편했다(아마 2033으로 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이해는 쉬워질 것 같고, 그 부연설명이 많이 포함된 것이 아마 이전 시리즈의 엄청난 두께에 한몫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이 더 다양해진 것 또한 플러스 요인이 된 것 같은데, 여전히 '영웅'으로 활약하는 헌터와 그와 함께 자신의 삶을 흔적을 남기고 싶어했던 노인 호메로스, 그리고 마침 그 이야기의 여주인공이 될 수 있는 사샤, 이 셋 사이의 묘한 유대감은 자기만의 '오디세이'에 담아냈으리라 생각한다.

 

그거 알아? 기적을 바란다면, 그 기적을 믿을 준비가 되어있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기적은 그냥 지나가버려.

-p.328

 

지상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고, 더 이상 삶의 희망은 없을 것 같은 2034년의 지하세계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들은 희망 그리고 기적을 믿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인간들이 살아가는 하나의 이유이자 원천이 되지 않을까. 드미트리 글루코프스키는 너무나도 우울한 미래에도 이런 것이 존재한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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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엄마 엄마 - 자살을 결심한 엄마와 그 시간을 함께한 세 딸이 전하는 이야기
조 피츠제럴드 카터 지음, 정경옥 옮김 / 뜰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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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하게 웃고 있는 어린 소녀 셋. 꽤나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사진. 그리고 그 위, '자살을 결심한 엄마와 그 시간을 함께한 세 딸이 전하는 이야기, 엄마..엄마..엄마'.

모든 것을 다 제쳐두고, 책에 대한 정보가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이를 지켜본다면 당신은 무슨 생각이 드는가? 아마 내가 생각한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처음에는 뭐 이런 어처구니 없는 책이 다 있나 싶어 화가 났다. 아니 어떤 어머니가 표지처럼 어린 세 딸을 두고 자살을 결심한단 말인가!

그럼 애들은 어쩌라고? 이 소녀들보다 훨씬 나이를 많이 먹은 나 역시 엄마 없이는 못 살 것 같은데(같은데가 아니다. 확신하건데 못 산다.), 생활 능력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것 같은 세 딸을 두고 세상을 떠난다는 것은 참 무책임한 일이다ㅡ라고 생각했던 것에서 출발해서, 아니 아무리 그래도 결국 엄마도 한 명의 인간이고, 그런 엄마가 세상을 살지 못하겠다는데..하고 내가 얼마나 자기중심적인, 이기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나 깨달았다.

 

자살을 결심한 엄마, 그리고 그 시간을 함께한 세 딸.. 오죽했으면 이 어린 딸들이 어머니와 시간을 함께했을까, 도대체 거기에는 어떤 사연이 숨어있을까, 그리고 어머니는 결국 끝내 자살을 선택했을까... 가슴이 아프면서도 화가나는, 온갖 생각이 책을 펼치기도 전에 머릿속을 휘감아왔다.

 

 

그런데 막상 책을 펼쳐보니,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내용이다. 아니, 이런 식으로 자극적인 표지로 사람 마음 뒤숭숭하게 만들다니! 라고 살짝 분노할 수도 있었지만, 어쨌든 책의 표지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냥 나 혼자 멋대로 생각하고 상상하며 화가 났을 뿐.

그렇다고 자살을 결심한 엄마, 그리고 세 딸의 생각이 어느새 누그러져 '뭐 그래.. 자살할 수도 있지..'라며 고개를 끄덕인 것은 아니다. 나는 그렇게 몰인정한 여자가 아니다.

여전히 '죽음'이라는 것은 삶을 위해 태어난 이 세상의 모든 생물들에게 여전히 민감한 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작가 조 피츠제럴드 카터의 가족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들의 어머니는 어떻게 자살을 결심하게 된 것일까?

 

 

안락사 혹은 존엄사, 라는 것은 오랜 시간동안 끊임없이 찬반의견이 대립되며 논란이 되어왔던 키워드자 주제로, 실제로 학교의 토론 수업을 형식상으로 할 때에도 이는 토론 주제가 되곤 했다.

더이상 일상생활로 돌아올 수 없는 환자, 회복가능성이 별로 없음에도 생명의 존엄성 때문에 고통받으며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는 환자 등 오히려 '인간의 존엄성'을 잃은 모습으로 그저 기계 장치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가족의 동의 하에 숨을 놓게 하는 것. 그러나 역시 이러한 의견에는 그래도 앞날은 어떨 지 알 수 없다, 생명은 존엄하다,라는 도덕적 윤리적 보편적인 생각과 의견이라는 벽에 가로막히곤 했다. 그러나 드디어 한국에서도 존엄사를 허용한다는 법안이 통과되었고, 그 죽음의 처음을 맞게 된 할머니가 계셨다.

할머니의 생명을 연장하고 있던 기계 장치를 모두 떼어낸 순간, 할머니는 여전히 살아계셨고 며칠을 더 호흡하시다 돌아가셨다.

 

앞으로의 가망성이 희박하다 해도 오랜 혼수상태에서 깨어나는 경우도 있고, 그 모습에 수많은 환자의 가족들이 환자가 다시 깨어나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도록 간절히 희망하고 기도한다. 확실한 건 그렇게 함부로 남의 생명을 손에 쥐고 그 행방을 결정짓는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각자 주장하는 바가 모두 공감이 되기에, 나 역시 어느 것이 옳다, 라고 판단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삶, 그리고 죽음은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 힘겹게 받은 생명을 대하는 것은, 그 생명으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렇게 어렵고 존엄한 것이다.

 

 

언제나 죽음은 우리 주변을 도사리고 있는 것이고, 젊은 나이임에도 순식간에 목숨을 잃은 사례는 많지만 나는 그래도 아직은 '죽음'이라는 것이 나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내가 노인이 되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도 아직은 좀 싫다. 그리고 상상이 잘 가지 않고, 나만큼은 그저 평범하게 늙어가다가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리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차 있는데 사실 앞날이라는 것은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는 것 아닌가. 이 책을 읽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엄마 그리고 여동생과 함께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그 때도 나는 무려 '그냥 자다가 죽을거야!' 라는 굉장히 행복하고 자신감에 찬 말을 했었더랬다ㅡ얼마나 오만한 생각인가!

 

그 와중에 한 저널리스트의 이야기는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조 피츠제럴드 카터 그리고 그녀의 두 언니는 어엿한 사회인으로서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키우며 살아가는 자매다.

그리고 그녀들의 어머니 역시 멋진 삶을 살아온 분이었지만, 어머니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파킨슨병을 비롯한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계셨다.

그런 어머니가 죽음을 결심했단다. 더 이상 이렇게 온갖 병에 시달리며 힘겹게 살아가고 싶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렇게 어머니는 차근차근 죽음을 준비했고, 세상과 이별할 날을 정했다며 딸에게 알려왔다ㅡ.

 

당연히 딸의 입장에서는 화가 난다. 어머니가 죽음을 결심했다는 것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아니 어머니가 세상과, 그리고 나와, 다시는 볼 수 없는 영원한 이별을 하겠다고 말을 해 오는데 어떻게 '그래요 어머니, 이제 진짜 안녕합시다'라고 쿨하게 인사를 건넬 수 있겠는가! 큰언니는 분노해 어머니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고, 어머니는 막내딸인 자신에게 계속해서 그 이야기를 해 온다. 그 소식은 남편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엄마의 결심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그녀를 도와주고 싶은 바람, 엄마의 고통을 이해하면서도 그녀와 이별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책의 저자는 솔직하고 가감없이 풀어냈다. 그와 더불어 가족들이 살아왔던 삶, 어머니의 삶을 떠올린다.

 

 

앞서 얘기한 존엄사와는 조금 다를 수 있지만, 어쨌든 죽음을 받아들이는 그들의 모습은 이와 비슷한 패러독스가 보인다. 죽음을 결심한 엄마를 지켜보는 딸의 마음이 바로 그런 것이다. 죽음을 결심한 마음을 이해하지만 살아주기를, 엄마의 결심을 인정할 수 없지만 그래도 도와주고 싶은 모순적인 마음.

끝내 그들의 어머니는 굶어죽는 것을 선택하고, 조금씩 조금씩 세상과 이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딸들은 그 모습을 지켜본다.

사실 이 일은 '자살을 도왔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 민감한 주제다. 하지만 저자는 자살을 돕는 일에 대한 찬반 의견을 내놓는 대신 그들의 모습과 내면을 그저 솔직하게 그려냈다. 죽음으로 인한 가족과의 이별, 그리고 언젠가는 할 세상과의 이별.. 그 이별을 어떻게 준비하느냐는 것, 그리고 그 이별의 의식 속에 가족들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를 담담하게 들려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솔직히 처음 이 책에 대한 오해가 있었던 것도 있지만, 어쨌든 책의 정체(?)를 알아가면서 마지막에 다다라서는 감정적으로 상당히 흐트러질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의외로 이들의 이별은 굉장히 담담하고 쿨했다. 그리고 따뜻했다.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가족과의 이별에 어떻게 대처할 것일지, 그 미래를 잠시 상상해봤다. 슬펐다. 나는 이들처럼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꼭 자살이 아니더라도 이처럼 따뜻하게 이별하고 싶었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렇게 슬픈 이별을 맞이하기 전, 이별 이전의 삶에 충실하라고. 그러면 분명 슬퍼도 따뜻하게 보내줄 수 있는 이별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이 있기에 삶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에 삶을 행복으로 채워야 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삶을 알차게 살아가라는 수많은 자기계발서보다 훨씬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죽음으로 삶에 대한 생각을 해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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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 1 밀레니엄 (뿔) 2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뿔(웅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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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내용을 다 까먹고 몇년 만에 다시 펼친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의 제1부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은 솔직히 잠도 못 자게 만들 정도로 재미있었다. 특히 2권들어서는 더더욱 그랬었다.

그런 시리즈의 2부를, 드디어 펼쳤다. 도대체 2007년인지 2008년인지의 밀레니엄 시리즈 이후 얼마만의 후속작을 펼치는 것인지!

 

구판의 제목은 '휘발유통과 성냥을 꿈꾸는 소녀'였는데 새로 출간되면서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로 바뀌었다. 휘발유통과 성냥을 이용해 아마 불을 좀 과격하게 가지고 노는 게 아닐까 싶다..

 

그 제목은 프롤로그에서부터 반영이 되는데, 아마도 리스베트일 것이라고 추정되는 소녀의 분노가 가득 담긴 서술에는 휘발유와 성냥이 진작에 등장해 그녀의 상상을 자극하고있다.

리스베트의 어두운 과거, 그리고 '모든 악'에서부터 이야기는 출발한다ㅡ.

 

 

스웨덴을 발칵 뒤집은 베네르스트룀 폭로 이후 몇 년 뒤. 리스베트는 베네르스트룀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사기'를 조금 치면서 앞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는 전혀 지장을 받지 않을 정도의 금액을 융통해 여행을 떠난다. 여행 중 카리브해에 위치한 섬에서 머물면서 그녀는 조금 수상쩍은 옆방의 포브스 부부와 마주치고, 조금 '이상한' 허리케인을 맞이해 위기를 맞는다. 그러나 돌풍 속에서 남편 리처드 포브스는 부인 제럴딘 포브스를 살해하려하고, 리스베트는 극적으로 부인을 구출해낸다ㅡ.

그렇게 시작된 수상쩍은 사건(일 것으로 예상되는) 일화를 만난 뒤 그녀는 스웨덴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신분을 숨긴 채 안락하게 살아갈 수 있는 집을 찾아나서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 자신을 걱정하는 이가 있을까 싶어 주뼛거리며 과거의 상사였던 드라만 아르만스키와 친구 밈미를 찾아간다. 그리고 이전에 자신을 돌봐주었던 후견인 홀예르 팔름그렌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고 난 뒤에는 그가 묵고 있는 재활 요양원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한편, '슈퍼 블롬크비스트' 미카엘 블롬크비스트를 비롯한 밀레니엄 편집부에서는 5월의 특집호를 준비하면서 '성매매 여성들'에 관한 주제를 내세우기로 한다. 다그 스벤손이라는 프리랜서를 섭외해 동부유럽에서 스웨덴으로 넘어와 성매매 여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고충 그리고 성매매에 관해서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스웨덴의 법률제도, 성매매에 참여하는 고위 관리 등을 폭로하는 책을 출간하기로 한다.

 

리스베트의 행동 그리고 밀레니엄을 준비하고 있는 블롬크비스트의 생활이 맞물려가며 진행되는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는 다그 스벤손과 그의 연인이자 역시 여성 성매매에 관한 박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미아 베리만이 살해당하고, 그 최초 목격자는 블롬크비스트라는 상황이 되면서 상황은 급박해진다. 그리고 리스베트 살란데르와 그녀의 후견인 닐스 비우르만의 지문이 둘의 목숨을 앗아간 총기에서 발견되고, 설상가상으로 닐스 비우르만 역시 살해당한 채 발견된다. 누가봐도, 범인은 리스베트로 추정되고 경찰과 언론은 그녀를 뒤쫓기 시작한다ㅡ.

 

 

1부에 비해 훨씬 두꺼워진 책에는 그만큼 더 긴박한 상황들이 가득 담겨있었다. 전작만한 후속작은 없다고는 하지만 나는 단연코 이 2부가 1부보다 훨씬 재미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물론, 1부가 재미없다는 소리는 아니다.. (이러다 3부는 끝판왕 되는거 아닌가 모르겠다. 도대체 스티그 라르손의 머릿속 10부작은 도대체 어떤 이야기로 채우려고 했던 것일까! 그의 죽음이 더욱 안타까워진다.)

그도 그런 것이, 이번에는 주인공이 탐정이 아닌 사건 관계자라는 입장에 서기 때문이다. 시체 최초 발견자 미카엘 블롬크비스트, 그리고 유력한 용의자 리스베트 살란데르. 매력적인 여주인공 리스베트 살란데르가 살인 용의자로 몰리며 경찰과 언론은 그녀를 주목하고 있고,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무죄를 증명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존심때문에 미카엘 블롬크비스트에게는 아마 도움을 요청하지도 못하지 싶다(물론 이는 2권에서 확인할 수 있겠지).

그와 더불어 닐스 비우르만이 파헤쳤던 리스베트의 과거의 단편들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수수께끼에 싸여 있던 리스베트 살란데르의 베일이 조금씩 벗겨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나의 자그마한 기대감이다.

 

그렇게 미스터리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스티그 라르손은 역시나 '사회적 고발'거리를 녹여내는 것은 여전했는데 그것은 바로 '러시아에서 온 사랑', 성매매 여성들에 관한 것이다.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폭로가 분명 살인사건의 불씨를 당긴 것이기에, 2권에서는 살인사건의 해결과 더불어 역시 스웨덴 사회에 일격을 날리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는 『밀레니엄』의 활약을 어떻게 그려내고 있을지 기대가 된다.

 

 

미스터리를 읽고 있노라면 별다른 내용도 없는데 어느샌가 책장이 훌쩍 넘어가 있는 것을 발견하곤 한다. 가끔은 이렇게까지 많은 이야기를 구구절절 해야할까, 하고 의구심이 들 때가 종종 있는데, 사실 이번 이야기 역시 1권의 끝자락에 다다라서야 본격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하지만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전까지의 모든 과정 역시 긴박감있게 짜여져 있어 정신없이 읽다보니 책이 덮였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질 2권은 어떤 이야기가 흘러갈지 무지하게 기대가 된다.

그럼 자세한 이야기는 2부의 2권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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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계단
루이스 베이어드 지음, 이성은 옮김 / 비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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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이렇게라도 할 수 있어 어느 정도 행운이었던 까닭은 역사의 격동기를 살아내기란 죽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믿는 척하는 게 낫다.

-p.127

 

솔직히 관심이 있거나 역사를 공부하지 않은 이상, 프랑스 역사에 대해서 단편적으로나마 알고 있는 지식은 딱 하나, '프랑스 혁명'이다.

태양왕 루이 14세때 절대왕정으로 왕의 권력은 하늘을 찌를 듯했지만, 나빠진 국력으로 인해 민심은 시끄러워졌고 미국의 독립전쟁에 영향으로 촉발된 프랑스 혁명은 시민혁명의 전형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아마 이렇게 배운 것을 실감나게 당시의 배경을 각색해 인식한 것은 아마 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 덕분일 것이고.

일단 나는 그렇다는 것이다. 그렇게 엄청난 피를 보며 일으켰던 프랑스혁명은 결국 독재체제와 쉴새 없이 바뀌는 법령, 단두대를 이용한 무자비한 처형 등으로 사회는 혼란이 계속되었다는 것 이후로는 관심도 지식도 없었다. 어느샌가 내가 배우고 있던 세계사가 담긴 교과서는 서서히 그 이후 중국과 일본과 같은 아시아의 역사로 흘러가버린 것이다.그러나 그 이후의 프랑스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 뒤로는 나폴레옹이 스스로를 황제라 칭하며 군주의 자리에 올랐고, 나폴레옹 전쟁에서 제정은 실각되고 예전의 부르봉 왕가가 복귀하게 된다.

그리고 프랑스 혁명 당시에 유배되었던 루이 16세의 처형 이후 귀족들에 의해 도피 생활을 하며 정치적인 인질로 이용되고, 어머니 마리 앙투아네트의 처형 이후에는 탕플 감옥에 수감되어 지독한 환경 속에서 10세의 나이로 사망을 한 것으로 알려진 루이 샤를(후에 루이 17세로 일컬음). 하지만 부르봉 왕가가 복귀하면서 시체와 유골이 발견되지 않았던 그를 사칭하는 이가 수십년 동안이나 나타났다고 한다ㅡ이것은 <검은 계단> 덕분에 알게 된 사실이다.

 

그리고 또 다른 실존 인물, 외젠 프랑수아 비도크. 그는 훗날 에드거 앨런 포와 애거서 크리스티, 빅토르 위고 등 세계적인 작가들의 모델이 되었으며 최초의 사립탐정이라 일컬을 수 있는 인물이다.

범죄자는 범죄자가 가장 잘 찾아낼 수 있다고 했던가. 실제로 화려한 경력의 천재적인 범죄자이자 파리 범죄수사과를 창설한 경찰이었다는 그는 당시에 꽤나 활약을 많이 했던 모양이다.



언제나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보내는 카르팡티에 박사는 어느 날 언제나 늘 그 자리에 가만히 있던 걸인의 방문을 받는다. 깜짝 놀란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걸인은 집안으로 들어와서는 집에 있는 와인잔을 비우더니, 자신을 비도크라 소개하며 최근 르블랑이라는 사람이 살해된 이유를 알고있느냐가 다짜고짜 묻는다. 르블랑이라는 이가 살해되었는데 그의 행선지가 바로 카르팡티에 박사의 집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 것도 알 리가 없는 카르팡티에 박사는 그저 고개만 갸웃거릴 뿐.

그렇게 만난 비도크와 엑토르는 르블랑의 죽음을 뒤쫓기 시작하고, 그 배후에는 죽은 줄로만 알았던 루이 샤를의 행보가 있었고, 그가 나타나는 것을 막길 원했던 '나리'라는 인물이 그를 돌보아주고 있는 인물들을 살해하도록 사주한 것이 드러난다. 그런데 그것이 왜 엑토르와 연관이 있었던 것일까? 과연, 루이 샤를이 수감되어 있던 탕플 감옥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나는 한 사람의 의사로서, 사람을 치료하고 위로하는 것이 내 가장 고귀한 소명이지.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어왔어.

그저 가만히 앉아 생명이 꺼져가는 것을 지켜볼 수는 없었어.

-p.378

 

작가 루이스 베이어드는 역사적 격동기의 프랑스를 배경으로 이렇듯 당시의 역사적 사실과 실존인물, 그리고 그 토대에 허구를 섞어 멋드러진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생생하게 묘사된 프랑스의 풍경, 탄탄한 구성, 개성있는 등장인물 그리고 그것을 그려낸 상상력 넘치는 문장은 책을 쉽사리 손에서 놓질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실 무엇보다 그러한 요소가 내 마음을 끈 것은 내가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실만을 그대로 그려내든, 작가의 상상력을 보태 허구가 섞여있든 역사가 담겨있고 그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이야기는 어찌되었건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런 점에서 루이스 베이어드의 소설은, 처음 만난 작가이지만 순식간에 나의 시선과 마음을 장악해버렸다.



누구에게나 실제로 만나보지 못한 과거의 역사에는 나름대로 향수를 느끼는 마음이 조금씩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왕가의 통치 아래에 놓여있는 당시의 사회제도는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지만, 꽤 긴 역사를 가지고 이어져 온 부르봉 왕가의 후손을 찾아나서 그를 복귀시키려한 소설 속 인물들의 구조는 '만약 ~하다면'이라는 가정과 상상력에서 출발한 법이고, 덕분에 소설을 읽는 동안에는 그들의 생각과 마음에 완전히 몰입해 읽을 수 있었다. 물론 주인공들의 감정을 그려내 그 곳에 완전히 몰입하는 것이 독자들의 역할이기도 할 것이다.

게다가 한 명의 소년이 왕가의 일원이라는 이유로 불합리한 대우를 받고 힘든 세월을 견뎌낸 것은 인간적으로도 충분히 잔혹하고 안타까웠던 일이기에 엑토르의 생각과 행동에 더더욱 공감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들이 찾아낸 청년이 '루이 샤를'이라고 믿고 싶었던 엑토르의 마음만큼은.

 

사람들의 믿음은 결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 비도크가 말했으나 아니다. 설명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갈망하는 것들을 만들어낸다.

(중략)

우리가 아무리 불완전하게 어떤 것을 믿게 된다 하더라도 믿음만큼은 그 자체로 완벽하다.

-p.511



그렇기에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다. 그저, 책을 펼쳐 작가가 장치해둔 무대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그들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에 흠뻑 빠져보라는 것.

19세기의 프랑스를 그들과 함께 여행해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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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남 J 미스터리 클럽 2
슈노 마사유키 지음, 김수현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감이나 경험은 중요해.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진실을 잡을 수 없어. 더 중요한 건 사실이야.

-p.182

 

셜록 홈즈와 에르퀼 푸와로 그리고 아르센 뤼팽이 활약하던 탐정의 황금시절에는 피해자가 한 명이든 여러 명이든,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관계는 금전문제 혹은 애정문제 혹은 그 둘 다, 라는 것이 살인사건의 대부분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복잡한 가족사에서 유산을 혼자 차지하기 위해, 바람을 피운 부인이 미워서 등등.

하지만 대체로 이런 식의 범죄의 동기는 사람들에게 '평범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흔히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다양한 감정적인 원인들은 이제는 미스터리 소설에서뿐만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도 진부한 소재가 되고 만 것이다.

 

그래서일까. 미스터리 소설이나 사회적 관심은 이런 식의 원한 관계에 의한 살인이 아닌, 자신의 감정적인 쾌락을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다니는 연쇄살인마들에게로 초점이 많이 옮겨진 듯하다.

소위 사이코패스(psycopath)라는 것이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넓은 땅덩어리에 섞여 있는 미국에서 이러한 사이코패스에 의한 연쇄살인은 먼저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들에게는 그야말로 감정적인 결함이 있어 사람을 죽이는 데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동기가 필요하지 않다. 그렇기에 용의자를 피해자의 주변 인물들에서 특정지을 수 없다. 그리하여 수사관들은 그들의 '내면' 대신 '사실'을 추측하는 수밖에 없고, 교도소에 수감된 사이코패스들의 특징에 대한 '통계'에 의해 사건 현장의 흔적을 분석해 용의자의 특징을 추측해낸다. 이런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인물을 우리는 프로파일러(profiler)라 부른다. 그리고 경찰들은, 그 추측을 통해 어느정도 시간을 줄일 수 있다 한들 결국은 '사실'을 바탕으로 범인을 검거한다.

 

 

'궁극의 엔터테인먼트'를 캐치프레이즈로 삼고 있는, 제13회 메피스토 상 수상작이라는 이력에 걸맞게 슈노 마사유키의 <가위남>은 그러한 경향을 반영하면서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미스터리다.

1999년 작인 것을 감안하면 사이코패스를 등장인물로, 그것도 화자로 직접 내세우는 것은 당시로서는 꽤나 파격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가위남'은 젊은 소녀를 목졸라 죽이고 목에 가위를 꽂아놓고 사라지는 연쇄살인마로, 2명의 소녀에 이어 세 번째 희생자를 물색하고 있다.

그렇게 목표에 둔 소녀를 죽이기 위해 실행에 옮기려는 순간, 소녀는 시체로 발견되고 만다. 그것도 가위남의 소행인 양 꾸며놓은 채로! 자신의 모방범의 소행, 그리고 자신이 노리고 있던 목표가 살해당했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해하던 가위남은 스스로 모방범을 찾아나선다. 그렇게 살해당한 소녀의 행적을 되짚어보니 그저 참하고 얌전한 여학생이라 생각했던 희생자의 의외의 면모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한편, 경찰에서는 이번 살인사건이 가위남의 세 번째 살인으로 간주하고 엽기 연쇄살인마를 검거하기 위해 범죄심리 분석관을 투입해 가위남의 뒤를 쫓기 시작한다ㅡ.

 

"무동기 살인의 경우는, 지금 말한 것 같은 의미에서의 '평범한 동기'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거슬러 올라가 동기를 구해도, 아무도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납득하고 싶은 겁니다. 아무 의미도 없이 사람을 죽이는 인간이 있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거에요.

그래서 무동기 살인자의 심리를 알고 싶어 해요."

우에이다 경부는 두 눈을 감고 말했다.

"그러나 범죄를 저지르는 '평범한 동기'라는 것이 정말 있을까요.

제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번 사건의 범인이 평범하게 보이느냐 아니냐는 아무래도 좋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보는 사람의 눈에 따라서도 달라지고, 보는 상황에 따라서도 달라집니다."

-p.224~225

 

자신의 모방범을 찾기 위한 탐정으로서의 가위남의 시선과, 가위남을 쫓기 위해 프로파일러까지 투입된 수사과의 경찰들의 움직임이 번갈아가면서 흘러가는 이야기는 굉장히 빨리 잘 읽힌다.

엽기연쇄살인범인 가위남은 평상시에는 출판사에서 아르바이트를 나름대로 성실하게 하고 살아가는 인물이지만 토요일이면 매번 세상과의 작별을 고하기 위해 자살을 시도한다. 그러나 번번히 실패한 뒤 다시 정신을 차리면, 가위남의 또다른 인격인 '의사'가 온갖 참견을 해댄다. 인간관계의 부족, 이중인격 등은 나중에 등장하는 범죄심리 분석관에 따르면 사이코패스의 특징으로 보인다.

덕분에 좀체 속내와 심리를 짐작할 수 없는 사이코패스의 내면을 작가는 나름대로 꼼꼼하게 조사한 듯 가위남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그 심리 묘사는 꽤나 뛰어났다.

 

반면, 경찰들의 입장에서 그려진 시선 역시 매력적이다. 늘 승진을 꿈꾸며 승진시험 공부를 하지만 번번히 낙제하는 형사나 심문의 달인, 예의바르고 공명정대한 과장, 풋내기 형사, 그리고 '사이 나리'로 불리는 프로파일러까지 각자의 개성을 뚜렷하게 가지고 있는 형사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언론의 집중포화 속에서도 '사이코패스'의 모습을 떠올리며 다양한 방법으로 수사를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생각이나 질문 등을 던지기도 하고, '베테랑'으로서의 형사의 면모를 보여줘 '탐정'이 아닌 '형사'의 직감과 능력을 그려내는 것에도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텔레비전의 오컬트 예찬 프로그램에서 이런 일이 우연히 일어날 확률은 몇백만 분의 일입니다, 그러니까 우연이 아닙니다, 기적입니다, 라고 말하는 녀석들이 곧잘 있지.

바보 같은 소리 말라고 해. 몇백만 분의 일이든, 몇억 분의 일이든, 확률이 제로가 아니라는 건 우연히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이야.

-p.392

 

하지만 결말을 향해 달려가며 점차 '탐정' 연쇄살인마와 경찰이 쫓은 사건의 진상은 굉장한 우연의 산물이었다. 정말 굉장히 드문 확률의 우연을 가장해 이야기를 끝낸 작가는 그렇기에 '확률이 제로가 아니라는 건 우연히 일어날 수 있다는 말(p.392)'로 마무리 짓는다. 굉장한 우연으로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해 공룡이 멸종되었고 그것이 정설로 받아지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들먹여가며.

그리고 그 정도의 '우연'을 이용한 결론이라 하더라도 작가가 마련해놓은 또다른 장치로 관심이 쏠려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겠다.

 

작가는, '우연'과 '편견'이라는 양날로 이루어진 가위로 독자들의 목을 찔러오는 것이다. 그것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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