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인생의 이야기 (양장)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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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하면 제목을 정할 때는 상투적인 표현을 피하고자 노력하지만, 이 책의 경우에는 이런 상투적 제목이 오히려 책을 제대로 표현하는 제목이므로 부득이 "SF 소설의 걸작"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자 한다. 사실 SF 소설이란 장르가 굉장히 마이너한 장르고 이 책을 포함해서 단 두 권 밖에는 읽어본 적이 없는 장르이므로 "걸작"이란 표현을 사용함에 딱히 거리낌이 없었다. 이렇게 SF 소설이 마이너한 이유는 간단하다. "SF 소설"이란 문구를 분설해보면 왜 그런지 명확해지는데 "SF"는 글쓴이 뿐만 아니라 읽은 사람에게도 기본적인 과학 소양을 요구하고 "소설"이다 보니 이에 더하여 글쓴이의 수려한 글 쓰는 솜씨까지 요구하기 때문이다.

최근 문이과가 통합되는 방향으로 교육과정 등이 변하고 있으나 일반적으로 문과는 문과, 이과는 이과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문과 출신이 SF 소설을 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그나마 이과 출신이 SF 소설을 쓰는 것이 대부분이나 나도 그렇지만 이과 출신은 수식에는 강할지 몰라도 글에는 약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SF 소설이 그 양도 적을 뿐만 아니라 마이너한 장르로 남아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책은 마이너한 SF 소설의 걸작으로 SF 소설의 장점을 보여주는 정말로 훌륭한 책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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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wer of Babylon



또 사람들은 의논하였다. "어서 도시를 세우고 그 가운데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탑을 쌓아 우리 이름을 날려 사방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하자."

야훼께서 땅에 내려오시어 사람들이 이렇게 세운 도시와 탑을 보시고 생각하셨다.

"사람들이 한 종족이라 말이 같아서 안 되겠구나. 이것은 사람들이 하려는 일의 시작에 지나지 않겠지. 앞으로 하려고만 하면 못 할 일이 없겠구나. 당장 땅에 내려가서 사람들이 쓰는 말을 뒤섞어놓아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해야겠다."

야훼께서는 사람들을 거기에서 온 땅으로 흩으셨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도시를 세우던 일을 그만두었다. 야훼께서 온 세상의 말을 거기에서 뒤섞어놓아 사람들을 온 땅에 흩으셨다고 해서 그 도시의 이름을 바벨이라고 불렀다.

<창세기> 11장 4~9절 (공동번역)

현재 "바벨탑"은 기술적으로 또는 재정적으로 실현하기 어렵거나 지나치게 야심적이어서 성공할 수 없는 비현실적이나 공상적인 계획을 뜻하는 단어 혹은 과학이나 문명 등이 발전하여 금기시되는 영역까지 닿으려 할 때도 은유적인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다. 테드 창의 소설에서는 금기시되는 영역까지 닿았음에도 성경과 달리 야훼가 이 탑을 무너뜨리지 않았다. 결국 원통형 인장처럼 하늘 끝까지 닿으면 다시 땅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며 "몇 십 세기에 걸쳐 역사한다고 해도 인간은 천지창조에 관해 그들이 알고 있는 지식 이상의 것을 알 수 없기 때문"이고 이를 통해 "야훼의 업적은 밣겨지고, 그와 동시에 숨겨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 많은 연구 끝에 우주의 나이는 137억년 정도임을 밝혀 냈으나 우리는 아직까지 우주의 끝이 어디인지, 우주의 시작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앞으로 수십 세기가 지난다고 하여도 "천지창조"에 관해 금기시되는 영역인 해당 내용에 대해 알기는 쉽지 않을 것이지만, 인간의 호기심은 분명히 튼튼한 바벨탑을 세워 하늘 끝까지 세우고자 노력할 것이고 비록 하늘 끝까지 닿진 못하더라도 그 과실을 우리의 후손들이 누릴 수 있으리라.


광선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 선택하기 전, 자신의 최종 목적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나는 처음부터 나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알고 있었고, 그것에 상응하는 경로를 골랐어. 하지만 나는 환희의 극치를 향해 가고 있을까. 아니면 고통의 극치를 향해 가고 있을까? 내가 달성하게 될 것은 최소화일까, 아니면 최대화일까?

네 인생의 이야기

"네 인생의 이야기"는 절반쯤 읽고 나서야 책의 구성을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책을 읽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시계열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책을 읽게 된다. 그런데 이 단편은 두 개의 별개의 이야기를 가지며, 그 중 한 가지 이야기는 시간적 순서도 뒤죽박죽이다. 벌써 책의 구성에서 부터 시간의 흐름으로 원인과 결과로 구성되는 뉴턴역학과 달리 해석역학에 따라 책을 구성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또한, 자유의지와 전지(全知)는 양립 불가능함이 분명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처럼 자신의 딸이 젊은 나이에 사고로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자유의지로 "아이를 가지고 싶어?"라는 질문에 "응"이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자유의지와 전지(全知)는 어떻게 보면 양립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이미 결과가 정해져 있다면 그거야 말로 따분한 일 아닐까? 나라면 다른 선택을 하고 마치 오이디푸스처럼 해당 결과를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칠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에 대해서는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이 책은 SF 소설의 걸작 중에 걸작이며 SF 소설은 황당무계한 헛소리들의 항연이라는 선입견을 무참하게 깨뜨릴 수 있는 책이다. 감히 평가하건데 올해 읽은 책 중에서 한 손가락에 꼽힐 수 있는 책이고 타인에게 과감하게 추천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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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인간 실격 책세상 세계문학 3
다자이 오사무 지음, 정회성 옮김 / 책세상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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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글쓴이인 다자이 오사무(太宰治)의 자전적 소설이다. 人間失格(인간실격)이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염세적 분위기를 풍기는 소설인데 이는 이 책의 출판일은 1948년 7월 25일인데 일본의 항복선언일은 1945년 8월 15일이고 다사이 오사무가 1948년 6월 13일에 자살했다는 점을 알게되면 이 책이 왜 이렇게 염세적 분위기를 풍기는지 알 수 있다. 소설은 결국 시대상의 반영이고, 당시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의 패전 이후 절망적이고 염세적 분위기를 풍길 수 밖에 없었으며 이러한 분위기가 이 책에도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이 책의 주인공인 오바 요조(大庭葉蔵)는 스스로 "인간 실격(人間失格). 이제 나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닙니다." 라고 자조하는데 그렇다면 인간 합격(人間合格)은 인간 실격(人間失格)의 antonym(반대말)인가 synonym(동의어)인지 주인공과 호리키가 하는 놀이, 즉 앤토님 알아 맞추기 놀이에 비추어 이하 살펴보도록 한다.


첫번째 사진 - 그 남자의 어린시절 사진


이건 글쓴이인 다자이 오사무의 사진으로 왼쪽에서 두 번째가 다자이 오사무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어릿광대짓이었습니다.

어릿광대짓은 인간에 대한 나의 마지막 구애 행위였습니다.

— 첫 번째 수기 中

놀랍게도 머리말에 있는 3장의 사진은 글쓴이인 다자이 오사무의 실제 사진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즉, 스스로 평가하길 "아이의 웃는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딘지 모르게 께름직하고 섬뜩한 느낌이 든다."고 표현하는 그 사진이다. 같은 사진에 찍힌 7명의 아이들이 "무표정"한 표정을 하고 있는데 비하여 오바 요조(大庭葉蔵)만 "웃는 얼굴"을 하고 있는 점이 바로 그가 어린시절에 행하였단 "어릿광대짓"이고 인간합격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두 번째 사진 - 교복차림



다자이 오사무의 가장 유명한 사진일 것이다.

갈매기가 ''여女"자와 비슷한 모양으로 하늘을 날고 있었습니다.

— 두 번째 수기 中

두 번째 사진 역시 다자이 오사무의 사진 묘사와 일치한다. "교복 차림인데 등나무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웃고 있다."는 묘사가 바로 그러하다. 하나부터 열까지 꾸민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웃음이라고 표현하는 그러한 웃음을 띄고 있다. 자신의 페르소나(persona)를 다케이치에게 들키고, 이어서 검사에게까지 들킨 후 지었을 멋적은 웃음이 바로 그러하지 않았을까? 실제 글쓴이인 다자이 오사무도 애인과 동반 자살 시도를 하였다가 혼자만 살아 남고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바가 있었다. 아마도 중의원 의원이었던 아버지께서 힘을 써주지 않았을까 싶지만 다자이 오사무는 혼자만 살아남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같이 죽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 했을까?

세 번째 사진 - 죽을상



정확하게 세 번째 사진 묘사와 일치하진 않지만 그나마 가장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하여 가져왔다.

"진짜 아빠가 있으면 좋겠어."

시게코는 다를 줄 알았는데, 이 아이에게도 '느닷없이 쇠파리를 때려죽이는 소의 꼬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 세 번째 수기 中

세 번째 사진에 대하여 글쓴이는 '말하자면 화롯불에 양손을 쬐다 그대로 죽은 듯, 음산하면서도 불길한 느낌이 드는 사진'이라고 표현한다. 또한 사진의 주인공에 대해서 지극히 평범하고 이상한 얼굴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아마도 글쓴이인 다자이 오사무는 머리말을 쓰는 순간에 자살을 이미 염두에 두고 있었는지 모른다. 스스로의 사진에 대해서 "죽은 듯"이라고 마치 시체를 보듯 평가할 수 있는 자가 있을까? 다자이 오사무는 스스로의 페르소나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자가 있는 경우 이를 매우 부끄러워 하고 견딜 수 없어 하는 자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人間失格과 人間合格, antonym(반대말)인가 synonym(동의어)인가?

인간 합격(人間合格)은 인간 실격(人間失格)의 antonym(반대말)인가 synonym(동의어)인가? 삶(life)와 죽음(death)는 삶도 아니고 죽음도 아닌 중간단계가 없으므로 완전한 antonym(반대말)이라고 볼 수 있다(물론 뇌사 등 애매한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인간 합격(人間合格)이 아니면 인간 실격(人間失格)이고, 인간 실격(人間失格)이 아니면 인간 합격(人間合格)으로 중간이 없는 개념인가? 누구나 가면, 즉 페르소나를 쓰고 있고 인간 합격(人間合格)과 인간 실격(人間失格) 사이에서 흔들리는 것이 바로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 완벽한 가면을 쓰고 있다고 인간 합격이라고 단언해서도 아니될 것이고 가면이 벗겨 졌다고 인간 실격이라고 자조하고 것 역시 인간의 본질에는 맞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antonym(반대말)도 synonym(동의어)도 아니지만 인간 합격을 지향하는 것이 바로 인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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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mune : A Journey into the Mysterious System that Keeps You Alive (Hardcover) - 『면역 - 당신의 생명을 지켜 주는 경이로운 작은 우주』원서
Philipp Dettmer / Hodder & Stoughton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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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Immune)"의 중요성은 최근 COVID-19의 대유행(팬더믹) 상황에서 더욱 강조되고 있다. 일반인이 백신 1차, 2차 접종, 심저어 부스터샷이란 단어를 대유행 이전만 하더라도 전혀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면역학은 정말로 복잡하고 어려운 학문이다. 대학교에서는 3학년에 2학기 동안 배우는 학문이나 글쓴이가 언급한 대로 "유감스럽게도 많은 과학자가 자신이 발견한 것에 대하여 적절한 이름을 붙이고 알아듣기 쉬운 말로 설명하는 데는 영 젬병이며, 이 점에 관해서는 면역학은 모든 과학 중에서 최악"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글쓴이 Philipp Dettmer(필리프 데트머)은 자신이 운용하는 저명한 과학 유튜브 채널의 제목인 "Kurzgesagt - In a Nutshell"(사실 이 단어의 뜻은 "짧게 말하자면" 이지만, 독일어임을 감안할 때 마치 면역학의 어려운 단어들을 보는 것과 같다.)과 같이 어려운 면역에 대해 복잡한 서술은 최대한 줄이고 다양한 그림을 통하여 필요한 수준으로 단순화하여 서술하는데 성공했다. 사실 천문학, 심리학 등에 대한 자연과학 서적에 비해 생물학, 그 중에서도 면역에 대한 자연과학 개론서가 없었는데 COVID-19의 대유행 하에서 자연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면역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좋은 책임에 분명하다.



Kurzgesagt - In a Nutshell "짧게 말하자면"

Kurzgesagt - In a Nutshell "짧게 말하자면"

본격적인 책에 대해 이야기 하기에 앞서, 아무래도 글쓴이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인 쿠루츠게작트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쿠루츠게작트는 "짧게 말하자면"이란 뜻을 가진 독일어로 모션 그래픽 애니매이션 스튜디오로서 자연과학, 사회과학 등에 대한 짧은 유튜브 영상을 올리는 채널이다. 전세계적으로 구독자수는 1930만명에 이르며, 조회수는 2,087,405,941회에 이르는 저명한 채널이다.

사실 처음 이 채널을 접한 것은 천문학에 대한 유튜브를 찾아보다가 발견한 것이었다. 모션 그래픽 애니매이션을 이용하여 어려운 자연과학 개념을 쉽고 재미있게 알려주는 점에 흥미를 느껴 해당 채널을 구독하고 관심있는 주제를 발견하면 틈틈이 시청하는 채널이었다. 그래서 먼저 이 책을 읽기 전에 해당 유튜브 채널에서 면역에 대한 영상을 시청하고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만약 면역에 대해 문외한이라면 먼저 아래 3개 영상을 시청하고 책을 읽으면 좀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면역 체계 I - 박테리아 감염 - YouTube, How The Immune System ACTUALLY Works – IMMUNE - YouTube, You Are Immune Against Every Disease - YouTube, )

면역, 사이언스 북스

내 목표는 이 모든 문제를 세심하게 밀고 당기며 적절한 균형을 잡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일상적인 용어를 쓰고 복잡한 용어는 꼭 필요할 떄만 사용할 것이다. 면역학적 과정과 상호 작용을 단순화하되 적절하다고 생각될 때는 최대한 과학적 사실에 충실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 필리프 데프머(글쓴이)

머릿말 중

글쓴이인 필리프 데프머는 면역을 전공한 자도 아니므로 과연 이 복잡한 단어와 매커니즘이 난무하는 면역에 대해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지 마음 한 구석에 의구심이 있었다. 또한, 가사 글쓴이가 정확하게 복잡한 면역을 설명하더라도 해당 분야의 문외한인 전문번역가가 번역함에 따른 부정확성이 있지 않을까 걱정되었다.(실제 자연과학 책들의 번역서의 큰 문제기도 하다)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소아과 전문의이면서 전문 번역가인 강병철 선생님이 번역해 주신 덕분에 글쓴이의 위트는 살아 있으면서 국내에서 자주 사용되는 한글 용어로 정성스럽게 번역해 주셨기 때문에 번역에 대한 의구심을 버릴 수 있었다.

또한, 생명공학을 전공하고 현재 변리사로서 항체 관련 특허 일을 하는 입장에서 살펴보더라도 어려운 개념을 최대한 단순화하여 설명하려 노력한 흔적이 인상깊었다. 특히 MHC II를 설명할 때, 핫도그 사이에 낀 소세지 라고 비유한 점은 어려운 단어와 개념을 단순화하고 비유하여 쉽게 독자로 하여금 이해할 수 있게 하는 탁월한 비유라고 생각한다. COVID-19의 대유행으로 면역에 대한 관심이 증가되고 있다. 혹시 면역학이 너무 복잡하고 어렵게만 느껴졌다면, 이 책을 통해 우리 몸을 보호하는 B세포, T세포 등을 이해하고 복잡한 면역 매커니즘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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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남자 시공사 베른하르트 슐링크 작품선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시공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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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기와 샤워, 사랑 행위 그리고 나란히 누워 있기

 이 책의 초반부(1부)는 일반적인 애정소설과 다를 점이 없지만, 차이점은 바로 "책 읽어주기"에 있다. 가끔 조카들이 책 읽어달라고 조를 때, 책 읽어주는 것이 생각보다 귀찮고 어려운 일이라는 점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이런 점은 연인 사이에서도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예상하는데 주인공은 한나의 강력한 부탁으로 사랑 행위 이전에 반드시 "책"을 한나에게 읽어주었다. 이러한 "책 읽어주기"는 2부 막바지에 이르러 그 의미를 비로소 드러나게 된다.


부인은 배반의 보이지 않는 한 변형 - 첫 번째 부인

 한나와의 관계가 흔들리기 시작한 시점은 화자의 생일을 한나가 잊어버리고 그 때문에 화자와 한나 사이에 말타툼 결과 화자가 자존심을 모두 버리고 싹싹 빌었을 때 시작되었다. 그 이후 화자는 "한나를 안다고 인정하지 않았다." 마치 성경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3번 부인한 것과 유사한 에피소드이다. 결국 베드로가 예수님을 3번 부인한 것은 돌이켜보면 예수님을 배반한 것이고, 수영장에서 친구와 놀다가 한나를 발견한 순간 벌떡 일어나 그녀에게로 달려가지 아니함으로써 한나를 첫 번째로 부인한 것이고 그녀를 배반한 것이다.


어떤 사람이 고의로 자신을 망치고 있어. 그런데 네가 그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입장이야. 그러면 넌 그 사람을 구하겠니? - 두 번째 부인

 한나가 부끄러워하고 스스로 숨기고자 했던 "문맹"을 화자는 결국 2부에서 깨닫게 된다. 문맹이란 점이 밝혀지면 한나는 종신형을 피할 수 있을지 모르나 평생을 숨기고자 했던 치부인 "문맹"이 드러나게 된다. 화자는 결국 침묵하는 선택을 하였지만 나는 화자의 아버지의 말이 정론이라고 생각한다. 즉, 직접 한나와 이야기해서 그 사실을 깨닫게 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화자는 다시 침묵함으로써 한나를 다시 한 번 배반한다.


"네가 상대방을 위해 무엇이 좋은 건지 알고 있고 그 사람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너는 당연히 그 사람이 그에 대해 눈을 뜨도록 해주어야 해. 물론 최종 결정은 본인한테 맡겨두고서 말이다. 하지만 그 사람과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 사람과 직접 말이야. 그 사람 등 뒤에서 다른 사람과 이야기해서는 안 된단다."


당신은 왜 한 번도 편지를 쓰지 않았나요? - 세 번째 부인

 미하엘은 10년간 문학 작품을 녹음해서 한나에게 보내면서도 한 번도 한나를 찾아갈 생각도 하지 않고 또한 녹음테이프에 문학 작품 이외에는 아무런 사신도 담지 않는다. 이것은 옮긴이가 지적했 듯 "그녀에 대한 부인이요 배반이라고 할 것"이다. 


 좀 더 깊이 들어가면 편지라고 함은 즉 "글"이다. 미하엘이 한나에게 편지를 쓰지 않았다고 함은 "글"을 쓰지 않은 것이고 그 말은 여전히 한나는 글을 알지 못한다, 즉 "문맹"이라는 것, 더 나아나가 문맹이었던 시점의 과거의 한나를 사랑하고 기억할 뿐, 현재 교도소에 수감된 한나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으려는 점을 함축한다고 할 것이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3번 부인했어도 결국 베드로를 용서했지만, 초월자가 아닌 일반인인 한나는 미하엘이 자신을 3번 부인(배반)한 결과 그 끝은 결국 출소 당일 새벽 자살이라는 마무리로 귀결될 수 밖에 없었다. 만약 수영장에서 바로 그녀에게 달려갔다면 그녀는 떠나지 않지 않았을까? 법정에서 한나를 직접 만나 도와주었다면 그녀가 종신형을 받아서 교도소에서 18년간 복역했을까? 한나에게 한 번이라도 편지를 썼다면 그녀가 출소하는 날 자살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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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책모임 - 책, 수다에서 토론까지
강원임 지음 / 이비락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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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의 시작

 나는 언제나 천국이 어떤 종류의 도서관일 거라고 상상해왔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누구나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평소에 들어왔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도서관에 가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말한 것처럼 "천국"이라는 느낌보다는 엄청난 양의 장서에 기가 눌리기도 하고 조용한 도서관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다가 이른바 베스트셀러나 서울대 추천 100대 도서 이런 책들을 대출 받아 보다가 조금 읽다가 그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래서 처음에 독서모임에 들어가서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책 읽기를 시작하는 것은 책 읽기를 시작하기 위한 좋은 계기가 된다.


독서모임의 어려움

그러나 독서모임의 경우 다양한 사람이 모이기 때문에 지식의 수준, 그리고 좋아하는 책의 장르 등이 각자 다르므로 처음 독서모임을 시작하더라도 오래 지속되는 독서모임을 찾기가 어렵다. 또한 실제 책을 좋아해서 독서모임의 "리더"가 되는 경우에도 어떤 방향으로 독서모임을 진행해 나가야 할 지 막막함을 느끼게 된다.


엄마의 책모임

이 책은 평범한 주부였던 글쓴이가 주부들만의 독서모임을 만들면서 겪었던 시행착오, 또는 독서모임을 하면서 좋았던 점들에 대해서 가감없이 기록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책과 관련없는 수다가 많은 경우, 무성의한 책 선정, 그리고 독서모임 안에서 친목 모임을 계속 만드는 리더의 문제점, 논제의 중요성 등에 대해서 실제 독서모임을 하면서 겪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독서모임을 이끌어 가는 리더 입장에서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논제의 중요성

특히 인상 깊은 점은 "논제"의 중요성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부터 책에 대해 이야기해보자고 하면 어떤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특정 "논제"를 제시하는 경우 그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면서 독서모임이 활발하게 이어지는 것을 실제로 체험하였다. 다만, 이런 "논제"를 만드는 것은 해당 책, 또는 글쓴이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고서는 요원한 일이므로 리더의 경우 미리 준비해 나가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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