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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집구경 - 31년 동안 세상의 핸드빌트 집을 찾아다니다 ㅣ 로이드 칸의 셸터 시리즈 2
로이드 칸 지음, 이한중 옮김 / 시골생활(도솔) / 2008년 8월
평점 :
언제부턴가 서울 시민은 아파트에 입주 한다는 것이 목표가 되었고, 이미 입주한 시민은 더 넓고 더 비싼 아파트로 옮겨 가는 것이 삶의 진정한 업그레이드인 냥 왜곡된 진리를 목표로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렇게 도시의 속물 혹은 노예가 되어 버린 나를 부끄럽게 하는 책으로 많은 고민과 즐거움을 준다.
이 책을 읽다보면 당장 이 도시의 꽉 막힌 아파트를 탈출하여 시골생활을 시작하고 싶어진다.
시골생활, 도솔출판사에서 만든 출판 브랜드이기도 하다. 이 브랜드에 걸맞는 책들을 열심히 만들어 내고 있는 이 출판사가 멋진 책을 번역해 선을 보인 것이다.
첨부한 사진은 책의 일부 내용인데, 매 페이지마다 독특한 레이아웃인 이 책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극히 일부분이다.
평범한 통나무집에서부터 오프더그리드 하우스(공공 수도·전기·통신망에서 벗어나 있는 집)를 표방하는 수많은 다양한 집들이 세세하게 소개된 멋진 책이다.
제목처럼 단지 아름다운 집을 구경하는 의미의 화보집은 결코 아니다. 이 책은 화보집이자 여행기이며, 집 제작에 관한 가이드 북이라고도 할 수 있다.
미국의 한적한 시골마을의 수많은 직접 만든 집들은 기본이고, 카리브해 연안의 아름다운 집들, 피레네 산맥의 설산이 보이는 아름다운 통나무집은 물론이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한적한 누드비치 언덕에 돌로 집을 지은 이언 캐클라우드의 이야기,
홈파워를 만든 리처드의 집과 작업실을 구경 하노라면 경이로운 오프더그리드 테크닉을 간접 경험할 수 있다.
태양열을 활용한 온돌판은 기본이고, 집 내부에 설치된 배터리리와 변환기, 기타 재생 가능 에너지 장비를 갖춘 시설들이 실감 난다. 20여 년전 홈파워라는 잡지를 창간하기 직전에 그의 직업이 원래 광전지 시스템의 설치 딜러였다는 것은 그가 이웃들에게 200개 이상의 태양열 발전 시스템을 설치해 주는 성과로 이어졌다.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오리건 주 숲 속의 리처드 페레스의 집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구입한 효과를 제대로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밥 이스튼이 설계한 네 가지 형태의 작은 집(100쪽)은 건물의 구성 요소 대부분을 보여 주며, 집이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 독자가 매우 현실감 있게 상상할 수 있는 길을 알려 준다. 별채를 달거나 확장을 하기 좋은 셰드 지붕집, 빨강머리 앤이 생각나게 하는 게이블 지붕의 집, 높은 벽체가 남쪽으로 향하게 설계된 아름다운 솔트박스 형 주택, 미국동부와 캐나다 지방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갬브럴 지붕의 집 등은 무한한 즐거움을 주는 것 같다.
레스터 워커의 작은 집짓기와 활용법은 집짓기를 정말 만만하게 보도록 하는 훌륭한 아이디어의 집합체이다. 뗏목집, 안팎집, 일요일집, 케이프코드의 허니문 하우스, 타르종이 판잣집, 모래언덕 판잣집 등 이름만으로도 대충 머리에 그려질만큼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하는 즐거운 집이 아닐 수 없다. 밥 이스튼이나 레스터 워커가 제안하는 설계 도면만으로도 기분 좋은 다양한 집의 구조들이 눈을 감으면 밀려 온다.
육면체로 압축한 볏짚(베일) 덩어리인 스트로베일 하우스의 제작 과정을 보면 어린 시절 추수가 끝난 들판에서 놀던 추억의 볏짚 쌓기 놀이가 그리워질만큼 철저히 도시화 되어버린, 자연인으로서 퇴화되어 버린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기도 했다.
멀쩡한 주택을 120Cm의 범퍼잭을 이용해 통나무 위로 굴려서 400미터 떨어진 곳으로 옮기는 것을 시도하는 존 웰스의 노력과 결과를 지켜 보는 것(45쪽)은 한 편의 흥미로운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았다.
뒤쪽으로 가서 '길 위의 집'에서는 움직이는 집들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자동차를 활용한 집의 다양한 유형들은 저자 로이드 칸이 직접 경험한 것과 인터넷을 떠도는 것을 총망라하여 소개 하고 있다.
253쪽 당나귀가 끌고 가는 미국 횡단 열차, 263쪽 베트남으로 추정되는 나라에서 소가 끌고 가는 트럭머리를 활용한 기발한 디자인의 사진은 흡사 우리나라 디시갤러리의 뽀샵질을 보는 듯한 즐거움이 있었다.
가볍게 살기를 추구하는 집의 유형도 매력적이다.
특별하게 번역되지 않고 그대로 사용된 단어 셸터(Shelter;임시 주거처의 느낌이 강한...)를 가장 떠오르게 하는 부분이다.
댄 쿠엔이 1960년대에 출간한 '몽고식 구름집' 이야기의 주요 부분을 요약한 272쪽의 그림들을 시작으로 소박한 텐트 생활과 오두막살이의 테크닉, 아메리카 선주민들의 셸터를 분석한 그림들은 도시 생활에 지친 현대인들을 끝없이 유혹하는 것 같다.
저자는 동양인의 지혜로운 집들도 빠짐없이 소개하려고 했지만 우리 전통의 가옥은 눈에 들어 오지 않았다.
한글 번역서를 읽는 입장에서는 대수롭지 않은데, 세계로 뻗어가는 우리 문화 부흥에 의무감을 갖고 출판사가 저자에게 한 꼭지 정도의 한옥에 대한 제안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든다. 어차피 이 책은 로이드 칸이 세계의 멋진 집들을 찾아나선 결과의 산물이니까 업그레이가 대수로워 보이지 않는다.
매 페이지마다 레이아웃이 달라 편집자의 수고가 많았을 법한 책이다.
친환경적인 인쇄 방식을 채택하여 책 냄새도 나쁘지 않다.
판형이 큰 풀컬러 화보집의 형태를 기본 골격으로 하고 있지만 글자 수도 많다.
대충 사진과 그림만 보고 넘어 가기엔 주옥같은 문장들도 넘쳐 난다.
번역 과정에서 단위의 선택이 평과 평방미터를 오락가락한 것 쯤이야 이 책에서 거의 드러나지 않는 애교스러운 단점일 뿐이다.
선물해 주고 싶은 사람은 많은데 33,000원으로 선물하기엔 부담스러워서 고민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내 손수 집을 만들어 보고 싶은 충동을 마음 깊은 곳에서 일어 났으며...
결국 손재주가 부족한 나 자신의 한계를 뼈져리게 아파하며 손재주가 좋은 처남 재중이를 꼬셔서 노후를 처가집 바닷가에서 직접 구상한 집을 짓고 생활하는 상상도 해본다. 루이 프레이저의 산장에 설치된 도르래(21쪽)도 설치한다면 무척 낭만적이겠지?
꿈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권쯤 소장하고 싶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