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황홀한 꽃밭에서 그녀는 달콤한 혀끝에 몇 방울의 독을 담아 내 귀에 흘러부었다. 어지러울 정도로 간지러웠다. 꽃향기에 취한 내 잠은 너무나 깊어서 그녀의 다가오는 부드러운 발걸음을 듣지 못했다. 그녀의 분홍 꽃잎 같은 한 점의 혀, 그 끝에 흘러내리는 피 같은 독액, 그것은 점점, 떨어져 내 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그 뒤 눈은 빛을 잃었고 심장은 한 줌의 재가 되었다. 눈물만이 발끝을 적신다. 아, 어둠이다. 사람의 말 한 마디가 왜 이리 독하게 날 슬프게 하는가.(0402, 어느날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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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연휴와 시어머니의 수술 때문에 시댁에서 이주일정도 지내야 할 것 같네요. 그곳에는 컴이 없기 때문에 2월까지 서재 관리가 어려울 듯 합니다. 대신 책 몇 권을 들고 간답니다.

제 서재에 찾아주신 모든 분께 즐거운 설 연휴가 되기를 바라며, 또 아프신 어머님이 낫기를 바라며 몇 자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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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렛 2004-02-11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어머니께서 퇴원하시던 날, 저녁 시아버지께서 급성뇌출혈로 쓰러지셨습니다. 이번 일요일 새벽 5시에 돌아가셨습니다. 마지막 날 문을 닫고 나가실 때 "아버님 잘 다녀오셨어요." 하니 "오냐~"하며 웃고 나가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어제 발인을 하고 내일 삼오제를 지냅니다. 지금은 잠시 pc방 들러 한달 남짓 비운 서재를 둘러봅니다. 즐거운 편지님의 새 코멘트도 이제 읽네요. 그리고 그 사이 방문하신 분도 많이 있네요.
모두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즐거운 편지 2004-02-16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이제야 봤네요~. 요즘 서재에 로긴도 안하고 잠깐씩 있다나가느라고...
시어머님 수술 뒤라 회복을 위해 옆에 계시나보다 생각했었는데 그런 큰일을 겪으셨군요.. 뭐라 위로드릴 말이... 원래 아픈 사람보다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더 힘들다더니 시아버님께서도 그러셨는지... 시어머님이 건강을 회복하시는데 신경 쓰실 일이 더 많으시겠군요. 두 아이들에게도 충격이었을 텐데.. 엄마는 아프지도 슬퍼할 겨를도 없지요~. 그래도 엄마들에겐 아이들이 가장 큰 힘이 되지요. 힘내세요~.


초콜렛 2004-02-20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한달간 못읽었던 책도 읽고 서평도 쓰고, 으라파차~ 기운 내기로 했답니다. 님의 서평을 읽으니 갑자기 사고 싶고 보고 싶은 그림책이 너무 많아져요. 고맙습니다.
 

저기 구덩이가 있다. 때론 얕고 때론 깊다. 얼마나 깊을까. 이번에는 눈짐작으로 가늠하기 쉽지 않다. 그 정확한 깊이는 빠져 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흐린 진흙 구덩이, 그 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내가 어찌 알겠는가. 어쩌면 뛰어넘다가 발만 더러울 수도, 어쩌면 피를 흘릴 수도 있다.

나는 내게 묻는다. 저걸 넘을 수 있어? 그래, 그건 감당할 수 있어. 그 정도면 목숨을 잃을 정도가 아냐. 그리고 가볍게 쉼호흡을 한다. 사실 조금 무섭다. 하지만 그건 참을 수 있을 정도다. 그렇다. 나는 구덩이를 넘을 것이다. 늘 그래왔으므로. 앞으로도 구덩이를 넘을 것이다. 팔을 위아래로 가볍게 흔들며, 최대한 기회를 옆보다가.

그리고 훌쩍 뛰어넘었다.

이번에도 역시 운이 좋다. 나는 늘 운이 좋은 편이다. 저번에도 발가락 하나만  주었을 뿐이다. 그 땐 날카로운 돌모서리에 발가락이 찢겼다. 날카로운 아픔보다 부어오른 발을 잡고 며칠을 앓던 풀숲의 밤이 더 무서웠다. 썩은 고기를 노리던 승냥이들의 울음소리가 더 무서웠다. 그러나 나는 살아남았다. 이렇게 내어줄 발가락이 아직 몇 개나 더 있다.   

때론 내가 어찌해 볼 수 없는, 그런 깊이의 구덩이를 만나곤 한다. 그 때는 하염없이 기다린다. 그리고 또 기다린다. 나는 성급하지 않다. 먼저 뛰어들어간 성급한 이들의 시체가 그 구덩이를 메울 때까지. 내가 잃어야 할 것이 목숨이 아닐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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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몬드 브릭스의 '눈사람아저씨'에 대한 마이리뷰를 며칠 전에 썼었다. 토요일 오후 늦게 쓰니 화요일에 마이리뷰란에 올려져 있었다. 다시 읽고 나니, 이렇게 부끄러울 수가! 둘째 문단의 문장이 비문이었다. 한 문장이 한 단락이라니. 마음 속에 쓰고 싶은 말은 많은데, 그걸 다 연결해 놓으니 다시 읽기 싫은 글이 되고 말았다. 쓸 때는 고민도 많이 하고, 몇 번이나 다듬었는데, 이렇게 큰 오점이 있다니. 좀더 간결하고 명료하게 쓰는 연습을 해야 겠다.

리뷰를 쓰고  하루 지나 다시 보면 그렇게 부끄럽다. 여기 저기 잘못 쓴 맞춤법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또 평점은 어떤한가. 별 두개를 주어야 할 것을  별 세개 준 적도, 별 넷을 주어야 할 책을 별 세 개 준 적도 있다.

왜 나는 이리 내 자신에게 무르고 엄격하지 못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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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편지 2004-01-29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그렇더라구요~. 리뷰 쓴다는 게 잔뜩 준비된 마음으로 써놓아도 올려진 마이리뷰는 그리도 어색한지..^^ 정작 할 말은 올려진 리뷰 읽으며 머릿속에서 맴돌곤하니 말입니다.

평점도 그래요.. 꽤 탄탄하다고 볼 수 있는 책은 옥의 티가 보여 더 분발하라고 별 하나 덜 주고... 그저 그런 책은 이 정도라도(나는 이렇게도 못 만드는데)하며 별 하나 더 주구요..^^ 지금 보니 일관성이 없었네요. 어디선가 봤는데 별 네 개는 '사람들에게 사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고, 별 다섯 개는 '내가 사서 선물 하고싶은 책'이라고 본 적 있습니다.

요즘은 리뷰도 가끔 쓰니 아이가 좋아하는 책 위주로 쓰고... 그러니 평점이 너무 후한 것 아닌가.. 그런 생각도 합니다. 그러다 그냥 우리아이의 반응과 저의 주관적인 판단이지 정도로 생각합니다. 모두들 취향이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하니까요...^^



초콜렛 2004-02-11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님의 말씀 고마워요. ^^ 지금 시댁에 일이 많이 생겨 한달만에 서재에 들어와 인제 님의 말씀을 읽네요.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마음이 커가는가 봐요.
 

일요일 아침, 아이를 먼저 먹이고 남은 밥을 먹는다. 남편은 먼저 먹고 저만치 등을 보이며 드러누워 있다. 밥을 깻잎이나 상추에 싸고 붉은 대구아가미젖갈을 한 점 올려 먹는다. 밥맛이 좋다. 감기 때문에 며칠째 흐르던 콧물이 그칠 것 같다. 대구 아가미 젖갈의 가시를 입으로 뱉어내며 우걱우걱 먹고 있는데, 남편이 아침 TV를 보며 말한다. 저번 태풍 이후로 TV는 MBC만 나오는데다, 그마저 화면이 흐려 소리만 듣는다.

"미국이 빈라덴 찾는다고 이라크 침공하더니, 그것으로 명분이 부족해, 대량살상무기 외치더니 결국 후세인만 잡고 빈라덴도, 결국 대량살상무기도 못 찾았네. 후세인이 잘한 것 아닌데, 애꿎은 이라크 국민만 다쳤어."

작은 애가 뛰어와 상추쌈을 한 입 받아먹고 간다.

"그러게." 내가 응답하자 그가 세상은 힘의 논리로 움직인다며 낙담해 한다. 나는 "그러니, 우리가 세상을 바꾸어야하지."하며 말은 하지만 세상을 바꿀 방법을 모른다. 우리는 뭐라 말할 거창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월급쟁이이고, 나는 그의 아내일 뿐이다.

밥상 너머를 보니 거실에 누운 남편의 등이 보이고, 또 그 너머에 거실 창을 지나 앞산이 둥글게 누워 있다. 순간 상상한다. 산너머에 원자탄이 투하되는, 붉고 강한 빛이 내가 느끼기도 전에 밀려오는 것을. 그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거실창이, 저렇게 누워 있는 남편과 상추쌈을 손에 든 내가, 그리고 뛰어 다니는 두 아이가 소멸하는 것을 본다. 그렇게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오는 파멸을, 나는 느낀다. 히로시마에서 어떤 끔찍한 일이 일어났던가. 그렇게 많은 사람이 그렇게 찰나에 사라지다니, 그리고 살아남은 자의 고통은...나는 분개한다.

"지구상에서 대량살상무기를 가장 많이 가진 나라가 미국이고 게다가 그걸 히로시마에 쓴 것도 미국인데, 다른 나라에게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다니..."

물론 지구상에 그런 무기들이 존재하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힘의 논리에 의해 개인의 행복이 그렇게 쉽게 부서지는 것은 참 끔찍한 일이다.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히로시마에 있지도, 이라크에 있지도 않았다. 그냥 상추쌈을 먹는 사람이고 한 남자의 아내이고 두 아이의 엄마다. 다만 세상이 어떤 식으로든 바뀌어야 된다고, 좀더 사람 중심의, 아니 생명 중심의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2003.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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