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간 의학자 - 의학의 눈으로 명화를 해부하다 미술관에 간 지식인
박광혁 지음 / 어바웃어북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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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점의 그림은 보는 이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 의사인 제게 있어 그림은 인간의 신체와 정신적 완전성을 추구하는, 즉 건강하게 살고자 노력하는 '인간의 기록'입니다"(6).

성경 공부를 할 때, 학습자료 '명화'를 자주 사용합니다.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 카라바조의 <참수 당하는 세례 요한(세례 요한의 목 베임)>과 <성 마태의 소명> 등이 그런 그림입니다. 한 점의 그림 속에는 말로는 다 전달할 수 없는 이야기가 담겨 있고, 또 백 마디의 설명 보다 그림으로 전하는 메시지가 더 강렬하게, 더 오래, 길고 긴 여운을 남기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문자적인 내용뿐 아니라 신앙의 역동성을 이해하는 사람들만이 사람들만이 더 진하고, 더 깊이 느낄 수 있는 그림의 목소리입니다. 

"한 점의 그림은 보는 이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하는데 의사의 시각에서 보는 명화는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들을 쏟아낼까요?<미술관에 간 의학자>는 의학과 미술의 공통점으로, "생로병사를 겪는 인간을 그 대상으로 한다"는 점을 꼽습니다(6). 이 책을 읽으니 신화와 종교가 노골적인 미술의 소재였다면, 질병과 의학은 은밀하게 감추어진 소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조끼 안에 손을 집어넣어 배를 만지는 듯한 일명 '나폴레옹 포즈'가 사실은 위장병의 증거라는 것, 고흐의 그림(노랗게 빛나는 별 등)은 압생트 중독의 영향일지 모른다는 것, <커피포트>라는 툴루즈 로트레크의 작품은 커피포트를 그린 정물화가 아니라, "유전병으로 성장을 멈춘 짧은 다리와 그에 걸맞지 않게 큰 머리와 통통한 몸을 그린 화가 자신의 자화상"(183)이라는 것 등이 더욱 그러합니다. 

의사의 시각에서 그림을 보니 역사도 더욱 흥미로워집니다. "외과는 치루에서 나왔다"는 말이 어떻게 생기게 되었는지, 페스트가 어떻게 봉건제도를 붕괴시켰는지,
인류 역사상 최악의 재앙이라는 스페인 독감이 무오년에 어떻게 조선을 강타했는지 등 그림과 의학과 역사가 이 한 권의 책 안에 흥미롭게 녹아 있습니다. 무엇보다 "전염병으로 흉흉해진 민심이 이듬해인 1919년 3.1운동을 발발한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는 것"(45)은 처음 알게 된 흥미로운 역사적 해석입니다. 

<미술관에 간 의학자>의 눈으로 그림을 보니 질병에 대한 이해도 새롭지도 깊어집니다. 주변에 갑상샘암으로 평생 호르몬 약을 먹어야 하는 후배가 있는데, 그림을 통해
국내 발병률 1위라는 갑상샘암에 대해 더 깊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학습에 있어서 그림이 무엇보다 좋은 시청각 자료인 것을 다시 한 번 새삼 느끼며 말입니다.

<미술관에 간 의학자>는 죽음이 일상 가까이 도사리고 있었던 시대가 그리 오래전이 아니라는 것, 달리 말해 지금은 알약 한 알이면 치료될 병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죽어간 역사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라는 것, 또 무지에서 비롯된 우리 안의 편견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비극과 고통과 절망 속으로 몰아넣었는지를 말없이 보여줍니다. 우리가 당연시 누리고 있는 '평균 수명'의 축복이 우리가 체감하는 것보다 훨씬 놀랍고 놀라운 축복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미술관에 간 의학자> 덕분에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된 화가도 있습니다. 푸젤리라는 화가입니다. "푸젤리는 정신분석학에 대한 개념이 거의 전무했던 시대에, '꿈과 악몽'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그림을 그리면서 인간의 무의식을 탐구한 최초의 화가"(116)라고 하는데, 환상적인 분위기에 풍부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그의 작품이 그 누구의 그림보다 강렬하게 마음에 남았습니다. 또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낭만주의는 아름답고 로맨틱한 분위기의 화풍이 아니라, "합리적 판단과 계몽주의 같은 철저한 이성에 반하면서 대신 인간의 복잡한 감정, 환상, 무의식적 충동, 비합리적 행동 등에 주목하는 화풍"(116)이라는 것입니다. 

"한 점의 그림은 수만 갈래의 삶을 보듬고 위로합니다. 때로는 한 점의 그림에서 오랜 상처를 치유할 처방전을 얻기도 합니다"(5).

그림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흥미롭지만, <미술관에 간 의학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특히 더 흥미로웠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그림이 의학자를 더욱 해박하게 한 것인지, 해박한 의학자가 그림을 더 풍성하게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림에 대한 깊은 조예만큼이나 이야기를 참 잘 하는 의사 선생님이십니다. 마하트마 간디가 "백 년마다 한번 성 프란체스코가 태어난다면 세상의 구원은 보장될 것이다"(62)라고 했다는데, 이런 심성을 가진 의사 선생님이 지역마다 한 분씩 계신다면 질병으로부터의 구원은 보장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무엇보다 <미술관에 간 의학자>는 "다 아는 이야기"도 재밌게 들려줄 수 있는 분입니다. 명화 속 의학 이야기, 지루할 틈이 없을 거라고 살짝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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