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승리 - 도시는 어떻게 인간을 더 풍요롭고 더 행복하게 만들었나?
에드워드 글레이저 지음, 이진원 옮김 / 해냄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그들'만'의 승리.

 
도시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명제를 세우고, 그것을 증명하고자 하는 책이다. 현재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산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은 '성공한' 도시 생활을 동경하면서도, 도시가 안고 있는 갖가지 문제를 비판하며 도시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양면적 태도를 취해왔다. 성공을 위해 도시로 몰려들기도 하고, 부자들은 도시에서의 성공을 만끽하기 위해 도시밖으로 나가기도 한다. 빈과 부를 동시에 양산하는, 양날의 칼같이 위험하게 느껴지는 '도시'가 과연 인류 최고의 발명품일까?

"전 세계 학자들과 언론이 극찬한 화제의 책"이며,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하고 시카고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의 책을 비판하기가 겁이 나지만, 게다가 단 한 권의 책을 단 한 번 읽고 이런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위험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마디로 이 책은 전형적인 개발주의자적 사고방식을 드러내는 책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생태적 환경가치가 훼손되더라도 여가편익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경제지상주의적 정책으로 욕을 많이 '먹고' 계시는 우리의 최고 통치자처럼 말이다. (물론, 최고의 지성답게 이 책의 저자 에드워드 글레이저 교수도 환경 문제를 비롯해 도시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를 간과하지 않으며, 정책적 대안까지 제시하는 바이다.)

'도시'라고 하면 아마 가장 먼저 '혼잡'한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쥐'를 밀집된 공간 안에 모아놓으면 쥐가 난폭해진다는 실험 결과를 들은 적이 있다. 도시의 혼잡한 이미지는 내게 높은 밀도 안에서 서로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고단함을 먼저 떠오르게 한다. 그런데 <도시의 승리>에서 저자는 도시의 혼잡성을 '협력'이라는 단어로 대치해 놓는다. "도시는 특히 인류의 가장 중요한 창조물인 지식의 공동 생산이라는 협력 작업을 가능하게 해준다. 방갈로와 런던의 혼잡한 공간에서 아이디어들이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원할하게 흐르고 있으며, 사람들은 인재들 주위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도시의 높은 물가를 기꺼이 감당하려고 한다", "도시는 인류를 가장 밝게 빛나게 만들어주는 협력 작업을 가능하게 해준다. 인간은 다른 인간으로부터 그토록 많은 것을 배우기 때문에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더 많이 배운다"(435). 논리가 대부분 이런 식이다.

도시에 몰려 있는 금융자본과 그래서 형성된 노동시장 자체를 성공의 '기회'로 여기는 저자의 논리가 나는 못마땅하다. 비유컨대, 강남에 모여사는 부자들이 많은 세금을 투자해 강남을 '살기 좋은 동네'로 가꾸어가고, 범죄를 줄이기 위해 경찰 배치를 늘리고, 자본을 집중화해 노동시장을 형성한다면, 아직 성공하지 못한 비강남인, 비도시인은 강남에 가정부, 정원사, 운전사, 경비, 종업원 등의 일자리가 많다고 기뻐해야 할까. 강남에서 노동임금자로 일하며 살기 좋게 가꾸어놓은 강남의 공원, 편의시설 등을 이용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고품격의 삶인가 즐거워 해야 할까. 강남에 집중된 교육 인프라가 대단하다고 우러를 일인가. 우리나라 국민은 개발이 집중된 강남을 세계에 자랑하며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곳이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박수하며 환영해야 할까. 성공한 도시인이 되지 못한 루저의 비딱한 시선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다. 

뉴요커들이 다른 지역의 미국인들에 비해 심장병과 암에 걸릴 확률이 미국 전체 평균에 비해서 더 낮다는 '흥미로운' 통계와, 숲에 사는 사람들은 숲을 태우며 살기 때문에 콘크리트에 사는 것이 훨씬 더 친환경적이라는 '기막힌' 해석이 읽는 즐거움을 주기는 한다. 그러나 <도시의 승리>는 새로운 지식이라기보다, 의식의 전환을 주장하는 쪽이 더 가까운 책이라고 본다. 똑같은 문제를 놓고도 단점에 집중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질 것이 아니라, 극대화된 장점에 집중하는식의 의식의 전환. 적어도 "도시화는 번영과 행복의 열쇠다"라는 그의 명제에 대해 도대체 행복을 무엇이라고 정의하는지 정도는 되묻고 싶어진다. 행복의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할 때라는 딴지를 걸고 싶기 때문이다. 편안(편리)의 추구가 평안이라는 행복까지 보장하는지 다시 물어야 하고, 다시 점검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도시'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것에는 이상을 가장한 헛소리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지만, 도시를 진단하고 도시의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는 정책의 방향 제안은 새겨들어야 할 소리도 많다. 이 글 자체가 무식한 독자의 헛소리일 수도 있음을 인정하며, 최고의 지성에게 미리 사죄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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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람다 2011-08-06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잘 읽고 갑니다.

ㅇㅇ 2015-08-25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읽고 나서 뭔가 껄끄럽기는 했는데 님의 글을 읽으니 제 생각이 정리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느낌`에서 끝나는데 그 느낌을 글로 깔끔하게 전하는 능력이 부럽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charlie 2016-07-12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와! 유익한 서평 잘 읽고갑니다. 저자가 말한 도시의 다양성(양적측면의..)이 과연 개인과 나아가 도시 전체로의 발전(질적측면의..)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현대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개인의 영위와 평안(?)을 위해 가장 효율적인 생활양식이라고 볼 수 있는 도시생활을 추구하는 것이고 이러한 태도가 도시를 `찬양`하는 축에 속하는 것인지도 의문이구요. 서평을 읽고 오히려 더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네요. 고맙습니다.

김유진 2016-07-28 0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단순히 눈에 보이는 근린녹지면적과 실제 통계의 에너지 소비량은 다른거 아닐까 싶어요. 보기엔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할 것 같은 고밀도 단지가 실제론 출근길을 단축시켜주니까요.

글쎄요. 2017-08-13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자의 말이 백번 맞는 말이네요.
반도체가 압축할수록 전기 사용량이 적어지고 발라지고 효율이 높아지듯이 인류는 효율을 극대화하면서 발전하것이죠. 인간이기에 할수있는 멋진 일 아닌가 싶습니다. 개발이 나쁜거라는 환경론자들은 진정한 환경 보호가 무엇인지 좀 과학적으로 생각해 보라는 이야기도 함게 하는것입니다.
괴학적으로 봐야지 감성적으로만 보면 미신이 되는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