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 Haeundae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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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눈물을 자아내게 하는 영화들 중에는
최악으로는 빨래 쥐어짜듯하는 듯 해서 유치하고 울기 싫어 죽겠는데도 자꾸 눈물이 나는 경우가 있고,
중간으로는 정말이지 너무 왕창 슬픈 내용이라 울지 않을 수 없는 경우와 아주 조금만 슬퍼서 눈물이 고이는 경우, 
최고로는 별 거 아닌 것 같은데도 뭔가를 건드려서 엉엉 울음이 터져나오는 경우가 있다.  

이민기가 엄청 멋지구리하게 나온다는 스포만 접수하고 봤는데도 이민기가 어케 될지 빤히 보여서 초장부터 눈물이 고인다. 
아, 이거 지금 웃긴게 나중에 다 울겠구나 싶어서 영화 내내 안절부절 못했다. 중간의 경우로구나~ 

설경구랑 하지원, 둘다 좋아하는 배우라서 봐야지 하다가 못보고 지나갈 줄 알았는데 그제 예상치 않았던 휴가와 오랜만에 만난 친구덕에 보게 된 영화 [해운대]. 전날 [투모로우]를 봤다는 친구는 피식피식 웃으며 가소로워하는데 애초에 영화코드가 맞지 않은 친구였으니 아예 투명벽을 세워놓고 영화에 집중했다.  

처음에 약간 어색할 뻔 했던 하지원과 설경구의 부산사투리는 어느덧 농익어 부산친구들을 연상케했고, 대사나 목소리들이 감성을 톡톡 건드렸다. 내가 막 우니까 친구가 자꾸 옆에서 놀리는 눈으로 쳐다봐서 짜증이 무지막지하게 나서 오기로라도 안울어야지 했는데도 계속 눈물이 후드득 떨어지는 걸 보면 정말이지 영화 참 슬프다. 무섭기도 하고. 

사실은 며칠 전에 해일이 오는 꿈을 꿔서(아마도 해운대 예고편을 봤던 날이지 싶다) 영화 속의 몇십미터의 파도가 남일같지가 않았다. 꿈속에서 겪어봤던 실제적인 공포였으니까. 차라리 폭탄이 날아오면 빵 터져서 금새 죽겠지만 익사하는 건 아무래도 몇분의 고통이 엄청날테니 좀 더 무섭다.  

한국이 지진해일안전지대라는 건 이미 거짓부렁으로 판명된지 오래이다.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서라도 소재 선택이 괜찮았다. 연기도 당연히 좋았고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코믹요소도 재미있었다. 단 한가지,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급의 빵빵 터지는 급의 재난영화를 기대하고 간다면 실망할 것이다. 재난 자체에 무게를 둔 것이 아니라 그 재난으로 인한 인간애를 그린 영화다. 

사실 대부분의 혹평은 이러한 기대에서 비롯되던데,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한다면 지금까지 자연재해의 피해가 미미했다. 바탕이 될 사실 자체가 없었으니까 이쪽으로는 상상해볼 여지가 거의 없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재난영화를 만든다면 초점은 자연히 '재난'에 맞출 것이 아니라 그 재난으로 인한 사람들의 애정, 안타까움, 희생같은것에 맞춰지는 것이 당연하다. 이것이 한국 정서에도 훨씬 맞고, 수많은 관객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웰메이드가 아니라고 비판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자본과 기술력이 헐리우드에 비해서 떨어지고, 우린 이제 초기단계임을 잘 알면서 어떤 CG를 기대했으며, 해일이 뭔지, 지진이 뭔지 직접 눈으로 한 번도 보지 못했으면서 어떤 대단한 재앙이 한반도에 내릴지 기대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한 기대는 잠시 접어두고 지금 당장 사무실 바깥, 학교 강의실 바깥 창문에서 수십미터의 파도가 덮쳐오면 내가 어떻게 할지, 누구에게 전화를 할지, 누구를 구해야할지를 상상해보며 영화를 봤으면 한다. 죽음 앞에서 어떤 미운 사람인들 그 순간엔 더 사랑하고싶어서 미칠 것 같은 그 마음을 상상하면서. 

[해운대]에는 메가쓰나미를 위한 것도, 일찌기 정보를 접하고 도망갈 수 있는 윗사람을 위한 것도 아닌 소소한 우리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마음 비우고 2시간, 재미있게 영화 보고 주위사람을 한 번씩 더 생각해보는 좋은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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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09-08-13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물을 많이 소모하셨나 봐요..ㅎㅎ 사실 눈물 흐르게 만드는 영화는 별로 안좋아하는뎅... 그래도 이 영화 괜찮다고 많이들 소개하더라구요...재난이 닥쳐올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라...흠...

Forgettable. 2009-08-13 11:51   좋아요 0 | URL
으 저도 우느라고 화장 번지고 당황했어요 ㅋㅋ
저도 엄마한테 보라고 재밌다고 해서 엄마랑 동생이랑 보러간대요~ 막내는 벌써 보고 왔고, 아빠만 빼고 온가족이 다 보겠어요 ㅎㅎㅎ 재미있어요~
 
레미제라블 - 전6권
빅또르 위고 지음, 송면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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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레미제라블]을 읽으면서 방대한 양만큼 생각도 많이 했는데, 5권까지 읽으면서 기력을 많이 소진해서 6권은 겨우겨우 읽어나가다가 이제야 완독하게 되었다. 알고보니 6권의 반 이상은 위고의 일생,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읽었을것을. 남은 책장들이 무거웠다.
이 책을 읽으며 눈은 텍스트를 따라가지만 머리 속은 딴생각을 하고 있는 기이한 경험을 자주했다. 가끔씩 지루하긴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이 매우 풍성하여 이생각 저생각을 하게 만든다.  

http://blog.aladin.co.kr/catchme84/2894583
ttp://blog.aladin.co.kr/catchme84/2936727 
링크는 책 읽으며 든 잡생각 끄적인 부분들

리뷰를 쓰기로 작당한 지금, 사실은 무슨 말부터 써야할 지 모르겠다. 작가의 말을 맹신하던 나는 뜬금없는 결말에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어리둥절 두 곳을 번갈아가며 고개를 휘휘 돌려보다가 다시금 좌절하고 말았다. 물론 레미제라블의 결말을 몰랐던 것은 아니었고, 해피엔딩을 누구보다도 더 바랬었지만 책을 덮고나니 작가가 울부짖으며 주장하던 빈민의 계몽, 혁명, 교육받을 평등한 권리는 온데간데 없고 누구보다도 숭고하게 살아왔던 장발장의 마지막 순간마저도 비참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惡'으로만 가득찬 것만 같은 떼나르디에는 돈뜯어서 미국으로 떠난다, 그의 아이들인 가브로슈와 거리의 아이들이 되어버린 동생들, 에뽀닌느까지 빠리와 빠리의 틈새로 증발해버리는 동안.  
장발장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그에게 합당한 행복을 고사하고 스스로를 지옥에 떨어뜨려버렸다. 꼬제뜨와 마리우스가 찬란한 미래의 행복을 예찬하는 동안.  

인생은 이렇게 아이러니인가, 누군가의 행복이 행복하지만 않고, 누군가의 죽음이 슬프지만은 않다. 그 각각의 인생이 하나의 우주라서 감히 내가 이렇다 저렇다 한마디로 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아마 책을 덮으면서 느낀 허망함이 이에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어렸던 나는 세계명작동화책을 덮곤,뜻대로 되었다며 기분좋게 잊어버렸지만 그때로부터 별로 자라지 않은 지금의 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며 우왕좌왕 갈피를 못잡고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울 일도, 웃을 일도 아니었다.  
사람들의 인생은 내 손 안에 있는 것도 아닐 뿐더러 작가의 손에 달려있지도 않다는 걸 왜 몰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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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09-08-12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짝짝짝 저는 범우사 판으로 일독했는데...다시 보려해도 엄두가 안나네요...ㅎㅎ

Forgettable. 2009-08-12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암요암요. 마땅한 축하에요. 감사합니다. 히히
저도 일단 갖고있어볼 참인데 또 읽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에요. 삼국지는 도저히 안읽을 것 같고, 자녀를 갖게되어 그 자녀가 삼국지를 읽을 시점은 너무 오랜 후일 것 같아서 팔기로 했거든요 ㅋㅋㅋ

무해한모리군 2009-08-14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축하드립니다. 아휴 전 일독 엄두가 안나요 --

Forgettable. 2009-08-14 15:27   좋아요 0 | URL
그래도 은근히 재미있어요. 한번 시도해보세요! ㅋ

가넷 2009-10-11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발장은 한권의 얇은 책만을 접했는데, 리뷰를 살펴보면 볼 수록 저는 읽기 어렵겠네요.ㅋㅋ

Forgettable. 2009-10-11 03:05   좋아요 0 | URL
더 어려운 책들도 많이 읽으시면서요 무슨 ^^
이 리뷰는 사실 너무 허접하고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던 것들의 반의 반도 안담겨 있어요, 암튼 한번 일독을 권해드립니다 ㅎㅎ
 

로알드 달 지음, 정영목 옮김 / 강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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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제목이 '맛'이어서 그런지 각기 다른 맛의 케이크를 한조각씩 한조각씩 아껴먹은 기분이다. 한꺼번에 너무 많이 먹으면 배도 부르고 그 맛이 어떤지 잘 음미할 수 없게 되니까 하루에 2개씩. 더 먹고 싶어도 아껴두었다가 제일 맛있을 때 먹는 평소의 식습관을 따라 찬찬히 [맛]을 읽었다. 

첫 느낌은 정말 너무 재미있고 뒷통수 빵때리는 이야기로 독자의 반응을 보며 즐거워할 수 있는 작가의 특권을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포기해야 한다는 점이 아쉽겠다- 싶었다. 진짜 책을 읽는 내내 이 책을 다른 친구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기 보다는 이 이야기를 내가 재미있게 얘기해주고 싶었다. 얘기해주고 친구들의 놀라는 표정이나 깔깔거리며 쓰러지는 모습을 구경하고 싶어서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입술을 옴싹달싹하며 손을 달달 떨었다.  

두번째 느낌은 의외로 공포심이었다. 로알드 달이라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브라운 신부가 그랬다. 지금까지 그 살인을 저지른 사람은 바로 자기였다고, 살인자의 속 마음 깊은 곳까지 들어가서 왜, 어떻게 살인을 저질렀는지 알 수 있었던 방법은 바로 그 살인자가 되는 방법 뿐이라고 했다. 그래서 브라운 신부는 계속해서 참회하는 동시에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인간이라고 생각하며 추리했다.  

사실 유명한 탐정이나 공포소설가는 바로 이러한 비결을 갖고있기에 사건을 사실과 흡사하게 상상해낼 수 있는 것이다. 

로알드 달의 이 단편집에 등장하는, 너무나도 욕망에 충실하여 사람이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캐릭터들은 사실 로알드 달의 마음 속에 생생히 살아있기에 난 로알드 달이 무서워졌다. 그는 평범한 이야기꾼을 넘어서서 너무 사악하고 추악한 인간 자체이기에 이런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2000년도였던가, 이 작가가 독자들이 좋아하는 작가에 선정되었다는 경력에도 경악했다. 무섭다. 

소설가는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인생에 주목하지 않아야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간단하게 보면 아주 가난하거나 아주 부자인 사람이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르거나 엉뚱하고 기이한 행각으로 대중을 즐겁게 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물론 로알드 달 역시 이런 매력적인 소재를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당치 않게 재미있었다. 그들에게 평생 찾아올까 말까한 기회를 포착하여 그것을 극대화해서 읽는 사람 벙찌게 만드는 특유의 상상력이 있었다. 그런데 이게 완전히 말도 안되는 데도 불구하고 그럴싸한 게 문제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어날 수 없는 에피소드들. 특이하고 재미있고 가슴이 두근두근 한다. 실제로 떨린다.  

하지만 너무 단 느낌- 그래, 심하게 달다. 달콤하게 기분 좋을 줄 알았는데 너무 달아서 약간 쓴맛이 필요하다. 왜, 나는 달달한 카페모카에도 에스프레소 샷을 추가해야 먹을 수 있으니까. 이렇게 설명하니 명쾌하군.
[taste]. 발버둥 쳐봤자 난 벌써 로알드 달에게 세뇌당했나보다. 새끼 손가락을 내어 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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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드로 축일장 캐드펠 시리즈 4
엘리스 피터스 지음, 송은경 옮김 / 북하우스 / 199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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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 소설을 읽을 때 가장 김빠지는 일 중에 하나가 왠지 이 사람이 범인일 것 같다고 맨 첫 장에서 눈치를 채버렸을 때이다. [성 베드로 축일장] 에서도 첫 챕터에서 캐릭터 묘사만 보고서 범인을 눈치챈 것 같아서 김샐 뻔 했는데 작품 끝까지 우물쭈물 결론을 못낼 정도로 교묘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작가의 능력에 감탄하며 책을 덮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읽은 캐드펠 시리즈 4권 중 가장 지리한 느낌이다. 계속해서 스티븐 왕과 모드 황후의 세력 싸움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성 베드로 축일장이라는 연중 최대의 3일장이 열려 중세시대의 경제 개념도 엿볼 수 있다. 이 시장에 신흥 부르주아들(상인)이 모여 정치적인 밀담과 서신도 나누을 나누기도 하고, 집에 갇혀 지내던 여인네들이 외출하기도 하고, 소상인들이 한몫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이 기회의 시장에 출입하기 위해 소정의 수수료를 '시'가 아닌 '수도원'에 내는데, 놀라웠다. 재미있기도 했고.  

이 혼란스럽고 시끌벅적한 배경으로 살인이 일어난다. 시체가 되어버린 이 과거인간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소설 스토리를 봐서도 가장 중심에 있지만 죽은 자는 언제나 말이 없기에 중심 역할은 젊은 조카딸이 맡는다. 젊고 아름다운 상속녀,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계급이 낮은 상인의 질녀이기에 자신을 좋아하는 젊고 잘생긴 영주에게 약간의 열등감을 갖고 있고, 이 영주를 유혹하는 큰 어떤 비밀도 갖고 있다.  
중세랑 지금 우리 시대를 비교하는 건 언제 해봐도 참 재미있다. 재벌이 갖고 있는 신분에 대한 열등감이라니 어디 상상이나 해봤던가.

캐드펠시리즈에는 항상 젊은 남녀의 사랑과 살인사건이 두개의 굵은 라인으로 자리잡고 있고 중세의 암투, 계급, 신앙, 약초학, 경제개념, 봉건제도, 장원제도 등 수많은 역사가 잔가지로 드리워져 있다. 사건이 어떻게 풀리게 될지 따라가는 것도 숨쉴 틈도 없이 재미있지만 요 배경 구경하는 것고 참 쏠쏠한 재미다. 

[성 베드로 축일장]은 약간 쉬어가는 텀인 듯하다. 3권까지 정신 없이 쏟아지던 캐드펠 시리즈의 매력이 대충 파악되면서 이 책을 읽으며 엘리스 피터슨이라는 작가의 스타일에 점점 적응한다. 그래서 약간 지루하게 느껴졌을지 모르나 이제는 편안한 매력이 또 새롭게 다가온다. 캐드펠의 사랑하는 친구이자 후원자인 휴 버링가 역시 이 책에사 손을 떼지 못하게 하는 매력적인 요소 중 하나이다. 끝까지 가볼지는 앞으로 조금 더 읽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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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09-07-10 0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이건 별이 4개군요.. 그렇지 않아도 주말에 '성녀의 유골'을 읽을 참인데...ㅎㅎ

Forgettable. 2009-07-10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요?! 제가 너무 편애해놔서.. 너무 기대하지 말고 읽으시길 ㅋㅋ 머큐리님도 캐드펠 시리즈의 세계로~~
근데 다른 리뷰 읽어보니깐 뭐 엄청난 미스터리나 반전 이런거 예상하신 분들은 실망도 많이 했대요^^
 
메데이아, 또는 악녀를 위한 변명 환상문학전집 23
크리스타 볼프 지음, 김재영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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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뭐 쿨한 척, 괜찮은 척 하는 것에 대해 약간의 알러지를 가지고 있다.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고, 걱정이 되면 걱정을 하고, 짜증이 나면 짜증을 내고, 힘들면 괴로워하는 모습 쯤 남들에게 보여줘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제멋대로인 신들이 우스우면서도 그리스신화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고 이런 제멋대로 이기주의 신들을 숭배했던 그리스 문화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기도 했다.   

'메데이아'라는 이름 역시 그렇다.  
그 이름 하나만으로도 어떻게 해석해두었을까 궁금했다. 

하xx님의 서재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는 너무 궁금해져서 사놓고는 첫페이지를 읽고 너무 어려워서 밀쳐뒀다가 읽기 시작했는데, 재미있다. 전체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1인칭 시점으로 제각각의 이야기를 하고, 메데이아, 이아손, 글라우케 공주 등등 메데이아 주변 인물들의 시점에서 메데이아의 이야기를 전반적으로 들려준다.  

각자의 입장에 따라 이야기를 해줌에도 불구하고, 그 목소리가 사건의 진행에 따라 점차적으로 격앙되는 느낌이라서 중반 이후로는 읽기가 조금 힘이 든다. 희생양을 필요로 하는 군중심리와 그에 반응하지 않고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메데이아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마음이 불편해진다. 조금만 굽혔으면 그리 힘들게 살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라며 안타까워하는 이리저리 부유하듯 살아가는 내 모습과 너무 달라서 불편했다. 

처음의 '-척'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누구나 여린 마음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바탕에 깔고있는 나는 메데이아의 강인한 모습이 강한 척 하는 여인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작가의 손 끝에서 새로 태어난 메데이아의 캐릭터가 고전의 그것에 비해 덜 매력적인 것 같았다.
(이것은 순전히 책소개를 읽고 무의식중에 얻은 고정관념의 산물, 스포는 없을 수록 좋다.)   
그런데 책을 읽어갈 수록 그냥 원래부터 강한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메데이아가 동생과 연적과 아들들을 죽였든 그것이 사실이 아니든 나는 상관 없다고 본다.
작가는 그 신화를 미화(?)하기 위해 상당한 공을 들여서 그 스토리라인이 약간 억지스럽게 보일 정도였지만,
굳이 그러지 않았더라도 재창조된 '메데이아'라는 캐릭터는
원전의 스토리도 그녀에게 무언가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만들 정도로 강렬하다. 
오히려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이야기를 끌어갔다면 더 극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사람이 있고 이야기가 있다. 
사람의 이야기에 이유를 붙이는 것은 후대 사람들의 몫이 아니기도 하고 맞기도 하다. 
그녀의 불가사의한 행동에 온갖 이유를 붙여서 신화로 만들어내 그의 목적에 합당하게 사용한 사람과, 
그녀를 오롯이 살려내어 왜 그랬었는지 후대사람에게 상상하게끔 기회를 불어 넣어준 사람 중 누구에게 고마워 할 지는 개인의 선택.

그녀는 시대의 희생양이 아니었다. 자기 자신을 희생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에게 희생양이라는 별칭은 택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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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7 1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07 1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07 17: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머큐리 2009-07-12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해놓고 제목만 쳐다보고 있는 책 중 하나에요....ㅠㅠ

Forgettable. 2009-07-12 16:57   좋아요 0 | URL
저도 한참만에야 읽었어요. ㅎㅎ 괜찮았어요.
성녀의 유골- 은 읽으셨는지? 이번 주말에는 왠지 지루해보이는 책만 눈에 보여서 이것저것 들었다놨다 하다가 아무것도 안읽었네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