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은 현실이다. 터질 것 같은 가방도 현실이고 주저앉은 어깨도 현실이며 닳아가는 운동화도 현실이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비현실 속으로 현실이 턱턱 걸쳐 들어온다. - P64

우리가 서로의 엽서인 만큼이나 우리는 어디에선가 좌절해야 한다. 삶은 이어지고 현실은 포장되지 않는다. 여행지에서의 산책, 혹은 여행 같은 산책, 혹은 여행이기를 바라는 산책에는 모두 잠깐의 자기중심적 환상이 있다. - P71

늘 모르는 무언가가 저기에 있다는 느낌, 손에 닿지 않는 따뜻함이 손끝에 걸릴듯 부유하고있다는 느낌, 내가 그것을 잡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고 바라지도 못하고 속지도 못하고 있다는 막연한 공포감, 어딘가 결여되어 있고, 나사가 하나 부족하고, 결정적인 부분이 비어있는 것 같다는 느낌으로 살아왔다. 뒤늦게 삶을 겨우 알아가는 이의 밤은 매일같이 서늘하다. - P80

삶은 모든 때에 있으므로 매 시간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늘 내가 다른 무엇도 아닌 나 자신이 되기를 바랐다. 나에 점점 가까워지는 삶, 내가 아닌 부분을 줄여나가고 나인 부분을 늘려나가는 삶. 오래 걸리더라도 그런 삶을 살기를. 그럴수만 있다면. - P82

영원처럼 반복되던 긴 시간을 버텨서 이런 날이 오기로 했다는 것이. 이것을 알려줄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나 모르고도 울기를 멈추지 않았기에 오늘이 왔다는 사실을 오늘의 나는 알고 있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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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향으로 온다. 바람이 면에서 선으로 불기 시작할 때 겨울은 감지된다. 길고, 얇고, 뾰족해 콧속에서 와르르 산산조각이 나는 겨울바람에서는 차가운 결말과 냉랭한 시작의 냄새가 난다. 붙잡지 못한 시간이 우박처럼 쏟아지는 계절. 시간이 눈처럼 따뜻할 일은 없다. - P13

시는 신체 감각이고, 거부할 수 없는 선언이고, 읽는 이와 쓰는 이 모두를 관통하는 물결이었다. - P28

그러니까 늘 꿈꾸다 말고 마시는 자리끼처럼 나는 시를 필요로 했던 것 같다. 악몽과 꿈 사이에 청량한 물을 흐르게 하고, 꿈이 혈관에 스며들게 해서, 그토록 땀 흘리며 삼키던 열도 잠시 내려놓게 하는 것, 대체 이것을, 시가 아니면 무엇이 해줄 수 있단 말인가. - P30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무의미했던 준비의 시간은 아주 사소한 순간까지도 지금의 내가 되어 있다. 글을 쓰는 이 순간까지도, 하나의 글감이 되어. - P49

향유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예술로 얻고 싶다면 그만한 시간을 기울여야한다. 책으로 진입하는 머리글을 읽을 인내심과 스크린 앞에 꼼짝 않고 앉아있는 두 시간을 내놓아야 한다. 그래서 어색한 분위기와 초조함과 마법같은 이끌림과 불현듯 다가오는 슬픔같은 것들이 몸을 통과하도록 두어야 한다. 우리가 아무것도 내놓지 않는다면 작품 역시 아무것도 내놓지 않을 것이다. 요약된 소설과 압축된 영화와 후렴만 있는 음악은 심장에 도달할 힘을 잃을 것이다. 예술의 경험이란 작가와 향유자가 시간을 함께 견디는 경험이다. 그리고 그것은 정확하게 삶의 경험이다.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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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들이 시칠리아를 습격한 유명한 사건
디노 부차티 지음, 이현경 옮김 / 현대문학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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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이 느린 글이라 빨리 읽히진 않지만 읽다보니 생각이 많아지는 동화.
산에서 내려와 나쁜 대공을 물리친 곰들.. 때묻지 않은 곰들이 인간과 함께 살며 편리하고 근사한것을 찾고 타락하며 권력에 눈이 멀어 벌어지는 이야기.
소중한 것을 잃고 처음으로 돌아가면 다시 시작 할 수 있는 것인가?? 끝나도 끝나지 않고 반복되는 이야기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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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8
라우라 에스키벨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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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가족의 전통이 그 사람을 본인의 의지대로 살 수 없게 삶을 억압 한다면 그 전통을 계속 이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 전통만 없었더라면 티타와 페드로는 평생 행복하지 않았을까? 감정을 담아 요리를 하면 그 감정이 담긴 마법같은 요리가 되는 동화같으면서 몽환적인 이야기. 처음엔 울화가 치밀어 올라서 그만 읽을까 싶었지만.. 책장을 계속 넘길 수 밖에 없는 달콤 쌉싸름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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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링크로스 84번지
헬렌 한프 지음, 이민아 옮김 / 궁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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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관계없는 그들이 주고받는 편지를 읽는것 뿐인데.. 그들의 따스한 마음이 담긴 편지에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러다 마지막 편지에서 펑펑 울 수 밖에 없었다. 20년간 책으로 이어진 그들이 한번쯤 만났더라면… 이 아쉬움은 덜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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